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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킬로그램의 정의가 바뀌었다고? 왜? 어떻게?: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1편 본문

완결된 연재/(完) 물리 어벤져스 2019 스케치

5강 킬로그램의 정의가 바뀌었다고? 왜? 어떻게?: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1편

Editor! 2019. 12. 6. 10:00

한국 물리학회 교육 위원회가 주관하고 (주)사이언스북스가 후원하는 「물리 어벤져스 2019」 시즌 2의 문이 열렸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물리 어벤져스 2019 시즌2」 첫 번째 강연의 주인공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 연구원 이호성 박사님이었습니다. 한국 물리학회의 가을 회의 기간 중인 지난 10월 24일(목)에 광주 광역시 김대중 컨벤션 센터 214호에서 진행된 강연에서 이호성 박사님은 “킬로그램의 정의가 바뀌었다고? 왜? 어떻게?”라는 제목으로 보다 정확하게 단위를 정의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 온 물리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변화무쌍한 이 세상에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물리 표준의 부단한 답 찾기를 엿보는 강연이었습니다. 취재 및 정리는 프리랜서 작가 신연선 선생님께서 맡아 주셨습니다.


 

물리 어벤져스 2019 5강
킬로그램의 정의가 바뀌었다고? 왜? 어떻게?: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1편

 

이호성 박사 프로필 사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이호성 박사님은 『기본 상수와 단위계』, 『시간 눈금과 원자 시계』 등의 책을 통해 대중과도 만나 온 한국 최고의 물리 표준 전문가입니다. 1986년부터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30년 이상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세슘 원자 시계를 개발하는 등 대한민국 표준시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해 왔습니다. 현재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기본 물리 상수, 시공간 기준계, 시간 눈금 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계시죠. 말 그대로 우리나라 최고의 시간 단위 전문가입니다.


지난 10월 24일(목), 「물리 어벤져스 2019 시즌2」 첫 번째 강연자로 선 이호성 박사님은 “킬로그램의 정의가 바뀌었다고? 왜? 어떻게?”라는 제목으로 2019년 5월부터 새롭게 정의된 킬로그램 국제 기준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현재를 살펴보았습니다. 단위의 정확한 정의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단위를 정확하게 정의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어떤 노력을 해왔을까요? 이호성 박사님이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이호성 박사 강연 사진.

 

 

불변의 것을 찾는 출발점은 측정 


“불변의 것을 찾아서, 이용하자.”가 강연의 큰 주제라고 밝힌 이호성 박사님은 먼저 ‘측정’이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아침마다 체중계에 올라갑니다. (웃음)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은 몸무게를 재기 위해서인데요. 실제로 재려는 것은 무게가 아니라 질량이고요. 기본 단위는 킬로그램(㎏)입니다. 학생들의 키를 측정할 때 기본 단위는 미터(m)죠. 이렇듯 측정이란 어떤 대상을 기계나 장치로 재서 숫자와 단위로 나타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질량과 무게를 제대로 정의하고자 한 것이 1901년, 약 130년 정도 전의 일이에요.”

 

질량과 무게는 다릅니다. 이호성 박사님은 이 둘의 차이를 밝히기 위해 양팔 저울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저울의 한쪽에는 ‘표준 분동’이라고 할 기준을 올리고, 다른 한쪽에는 측정하고자 하는 물체를 올려서 저울이 평형을 유지할 때 그 물체는 표준 분동의 질량과 같다고 말한다.”라면서 그러나 “저울 자체는 사실상 질량이 아닌 무게를 재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호성 박사님은 달에 가면 우리의 몸무게가 6분의 1로 줄어든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우리가 달에 가도 질량은 변하지 않지만 무게는 변하겠지요. “무게를 잰다는 것은 힘을 잰다는 의미”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을 겁니다.

질량과 무게 무엇이 다를까?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정확한 측정은 개인과 사회에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혈압, 혈중 알코올 농도, 자동차 속력, 원유량, 전력량 등. 모두가 측정과 깊게 연관되어 있죠. 그리고 사회가 발달할수록 측정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100킬로그램이 넘으면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면 어떨까요. 100.1킬로그램인 사람과 99.9킬로그램인 사람에게는 측정이 상당히 중요한 요소일 겁니다. 또 유조선에는 약 200만 배럴의 기름이 들어간다고 하는데요. 이것을 리터로 따지면 317,974리터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1퍼센트만 잘못 측정하면 어떻게 됩니까? 약 31,700리터가 손해일 수도, 이득일 수도 있게 돼요. 측정의 정확도는 과학과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중요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측정값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생각해 보는 일은 실로 흥미롭습니다. 이호성 박사님은 “오늘 이야기는 이 문제를 넘어서 더욱 근본적인 문제, 즉 킬로그램이 과연 정확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도량형.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호성 박사님은 역사에서 발전해 온 측정 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흔히 ‘도량형(度量衡)’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인데요. 이호성 박사님은 도량형이란 길이를 의미하는 ‘도(度)’와 부피를 의미하는 ‘량(量)’, 무게를 의미하는 ‘형(衡)’이 결합된 단어라는 점을 밝히면서 “역사적으로 도량형을 가장 먼저 통일시킨 것은 기원전 240년경 중국의 진나라”였다고 설명합니다.

 

“진나라가 주변 여섯 나라를 통일한 후 제일 먼저 한 것이 화폐 통일과 도량형 통일이었어요. 도량형 통일이 왜 필요했을까요? 당시 여섯 나라 사이에 마차가 지나가는 길이 레일처럼 있었는데요. 다른 나라의 마차가 지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나라마다 마차길의 레일 간격이 달랐다고 해요. 그런데 진시황이 나라를 통일하고 보니 계속 마차를 갈아타야 해서 불편했던 거죠. 그래서 레일 간격을 같게 통일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암행어사가 갖고 다니는 ‘유척(鍮尺)’이라는 측정 도구가 있었습니다.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인데요. 암행어사는 유척을 이용해 각 고을에서 세금을 거두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국가에서 정한 크기에 맞는지 확인했다고 하죠. “도량형은 상거래나 조세에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는 이호성 박사님의 말이 이해되는 대목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유척을 ‘황종율관(黃鍾律管)’이라고 하는 음의 높이를 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와 같은 원리로 만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호성 박사님은 “음의 높이를 바탕으로 표준 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상당히 과학적”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 길이의 단위.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고대 이집트로 가 볼까요. 당시 피라미드 건설에 있어서도 정확한 측정은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피라미드에 들어가는 돌 하나는 약 2.5톤 정도로, 이러한 돌 약 300만 개가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이때 사용된 측정 단위는 파라오의 신체였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팔 길이로 ‘큐빗(cubit)’이라는 단위를 만들어 썼다고 해요. 큐빗은 성경에도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썼던 단위로 등장하는데요. 피라미드 건설을 위해 큐빗에 해당하는 길이를 돌에 새겨놓고 똑같은 크기의 돌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하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파라오가 죽고, 다음 파라오가 등장했을 때면 새 파라오가 자신의 팔 길이로 바꿔서 쓰게 했던 거예요. 길이가 안 맞는 거죠. 발 길이로 만든 ‘피트(feet)’라는 단위도 그렇습니다. 피트는 지금도 영국과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단위인데요. 근대 영국에서는 왕이 바뀔 때마다 피트에 해당하는 길이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미터 협약.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단위를 통일시키는 일은 점차 중요해집니다. 국가 간 교류가 많아지고, 산업화가 일어나면서 세계는 단위 통일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터 협약’을 만들게 되죠. 미터 협약은 세계 최초의 국제 조약으로 1875년, 17개국이 파리에 모여 “앞으로는 미터 단위를 기준으로 하는 단위를 사용하겠다.”라는 내용에 동의한 중요한 조약입니다. 이호성 박사님은 “이 조약에 여러 국가가 사인했던 5월 20일을 ‘세계 측정의 날’로 정해 기념을 하고 있다.”라면서 미터법 개발을 위해 설립된 국제 기구를 소개했습니다.

 

“BIPM(국제도량형국)은 사무국 역할을 하고 있고요. CIPM(국제도량형위원회)는 전문가 집단입니다. 1년에 한두 번 회의를 해요. CGPM(국제도량형총회)는 미터 협약에 가입한 회원국으로 구성되어 4년에 한 번 회의를 합니다. CGPM은 중요한 사항을 승인하는, 제일 높은 기구에 해당합니다. 현재 미터 협약에 가입된 나라는 60개국 정도고요. 42개가 준회원국으로, 100여 개 나라가 미터 협약에 가입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편 회원국이긴 하나 국제 단위계(SI 단위)를 사용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가령 미국이 그렇습니다. 시간 단위는 국제 단위계를 사용하지만 길이 단위, 질량 단위 등은 사용하지 않고 있죠. 이호성 박사님은 이에 대해 “단위를 바꾸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 예를 들어 도로에 속도를 나타내는 표지판, 거리를 나타내는 안내판 등을 모두 바꿔야 할 텐데 그것만 해도 엄청난 돈이 든다. 미국 내 측정 과학자들은 차라리 지금 정부에서 확 바꾸면 좋겠다는 말도 농담처럼 한다고 들었다. (웃음)”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단위 통일은 중요합니다. 이호성 박사님이 들려준 다음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1999년, 화성 탐사선을 보냈다가 화성에 거의 근접해서 폭발하는 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기관 간에 저마다 다른 단위를 써서 난 사고예요. 록히드 마틴에서는 ‘마일(mile)’을 사용하고 나사에서는 ‘킬로미터’를 사용해서 결국 사고가 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터와 킬로그램의 정의는 어떻게 바뀌어 왔을까

 

1889년 열린 제1차 국제 도량형 총회(CGPM)에서는 길이의 표준이 되는 ‘국제 미터 원기(IPM)’와 무게의 표준이 되는 ‘국제 킬로그램 원기(IPK)’를 승인합니다. 이호성 박사님은 “사실 프랑스에서는 이보다 100년 전에 이미 이 두 가지를 만들어서 사용해 왔다.”라며 “이 가운데 미터의 정의는 그동안 두 번 바뀐 적이 있다. 그러나 국제 킬로그램 원기는 지금까지 계속 사용해 왔다.”라고 말했는데요.

 

“국제 킬로그램 원기가 인공 구조물이기 때문에 분실한다든지 재난에 의해 소실되면 킬로그램이라는 단위 자체가 사라지는 일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써 왔던 측정치는 전혀 믿을 수 없게 되겠죠. 똑같은 것을 만들 수 없으니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과학자들은 엄청나게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원기를 대체할 좋은 방법을 못 찾았어요. 그러다가 30년 전에 방법을 찾아서 2019년, 130년 만에 킬로그램 국제 기준이 새롭게 정의된 겁니다.”

 

국제 킬로그램 원기를 대체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찾아낸 방법은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미터의 정의는 어떻게 바뀌어 왔을까요? 처음 1미터를 정의한 것은 “지구의 둘레를 4만 킬로미터라고 정의한 후 내린 결정”이라는 것이 이호성 박사님의 이야기였습니다.

 

1미터는 어떻게 정해졌나?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지구 둘레를 4만 킬로미터라고 했을 때 북극에서 적도까지는 1만 킬로미터가 되겠죠. 실제로 프랑스의 천문학자 들랑브로와 메셍이 파리 천문대를 통과하는 자오선을 따라 덩케르크에서 바로셀로나까지 거리를 측량해보니 대략 1,000킬로미터 정도 됐어요. 그것으로 1미터를 결정했고, 앞서 설명한 국제 미터 원기를 만들었던 것이죠. 만약 지구 둘레를 4만 킬로미터가 아니라 4,000킬로미터라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1미터 자의 길이가 10미터 정도 되는 거예요. 반대로 4만 킬로미터가 아니라 40만 킬로미터라고 했다면 1미터 자의 길이가 10센티미터밖에 안 됐겠죠. 따라서 그 당시에 이미 1미터가 어느 정도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터 정의의 역사적 변천.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그렇게 결정된 국제 미터 원기는 그러나 1960년 재정의됩니다. 1미터를 “크립톤-86 원자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으로 정의하게 된 것인데요. 이호성 박사님은 “그러다가 1983년 ‘진공에서의 빛의 속력’이라고 미터가 다시 정의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진공에서의 빛의 속력’이라는 것은 기본 물리 상수입니다. 기본 물리 상수를 가지고 미터를 정의했다는 것이 오늘 강연의 주제인데요. 이것을 이해하시면 킬로그램이 플랑크 상수로부터 재정의된 것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IPK와 복제본의 질량값 변화.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1889년, 국제 킬로그램 원기를 정의한 후 각 회원국은 국제 킬로그램 원기 복제본을 하나씩 보유하게 됐습니다. 당연히 똑같은 질량을 설정했죠. 이호성 박사님은 “지난 130년 동안 국제 킬로그램 원기는 두세 번 정도밖에 세상 바깥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그때 원기를 복제품과 비교해 봤더니 공교롭게 복제품들이 원기에 비해 다 질량이 높아졌다.”라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복제품 질량이 높아졌다는 것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국제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이 줄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국제 킬로그램 원기 역시 인공물이기 때문에 당시 여러 안전 조치를 취해 두었어요. 그중 하나가 국제 킬로그램 원기와 똑같은 복제품 6개를 똑같은 공간에 보관한 것인데요. 위치가 달라지면 성질이 달라질 것은 우려했던 거예요. 그런데 복제품의 질량값도 높아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국제 킬로그램 원기의 질량이 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이유는 원기를 꺼냈을 때 세척을 하면서 뭔가 질량이 줄어들게 한 것이 아닌지 추측하고 있어요.”

 

 

양자 역학적으로 재정의된 킬로그램

 

2019년, 130년 만에 킬로그램 국제 기준이 새롭게 정의된 킬로그램은 플랑크 상수를 기반으로 재정의된 것입니다. “국제 킬로그램 원기를 쓸 때는 진공 중에 작동하는 정밀한 양팔 저울을 이용해 측정했다.”라고 설명한 이호성 박사님은 “플랑크 상수로 측정하는 것은 키블 저울을 이용한다.”라고 말했습니다. 

 

2019년 이후 킬로그램 단위의 재정의.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키블 저울에서는 측정하려고 하는 쪽은 중력이 작용하지만 기준이 되는 쪽에는 전자기력을 발생시켜 균형을 맞추도록 합니다. 전자기력의 세기가 얼마인가를 확인해서 질량값을 알아내는 것이죠. 그에 앞서 키블 저울의 측정 대상에 표준 분동을 올려서 플랑크 상숫값을 알아내는 실험을 하는 거고요. 플랑크 상숫값은 이전부터 측정해 온 값이 있는데요. 거기에는 불확실도가 따라다녀요. 그 불확실도가 점점 작아진다면 점점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는 의미겠죠. 따라서 키블 저울로 플랑크 상숫값을 측정했을 때 그 값이 현 수준에서 가장 정확하게 측정했다면 바로 그 플랑크 상숫값을 고정시키게 되는 겁니다.”

 

변하지 않는 불변의 기준을 찾기 위한 노력입니다. 이호성 박사님은 “단위는 하나의 기준이며 이 기준은 자연의 법칙 또는 물리학의 법칙에서 나오는 기본 (물리) 상수에서부터 찾는다.”라고 말하는데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맥스웰 방정식, 이상 기체의 법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에는 다 기본 물리 상수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법칙은 반드시 실험과 이론이 함께 있어야 하는데요. 이론은 대부분 방정식으로 표현되고, 대개의 경우 그 안에는 기본 물리 상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본 물리 상수란 숫자와 단위로 표현되는 물리량인데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죠. 그러나 측정을 통해 그 값을 결정하기 때문에 불확실도(uncertainty)를 가집니다. 가령 100킬로그램을 측정했는데 ±0.5킬로그램만큼 값이 흔들렸다면 0.5에 해당하는 것이 불확실도죠. 이것을 100으로 나눈 값 ±5×10³을 상대 불확실도라고 말합니다. 측정이 정확해진다는 것은 이 상대 불확실도 값을 점점 낮춰 가다가 궁극에 가서는 0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 과정이 오늘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자연법칙의 특성.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기본 물리 상수는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실험적으로 기본 물리 상수가 변한다는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호성 박사님은 자연의 법칙과 기본 물리 상수의 예가 되는 것들을 몇 가지 소개했습니다. 다음 이미지 자료에서 빨간색으로 표기된 부분입니다.

 

기본 물리 상수의 예시.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CODATA(Committee on Data for Science and Technology, 과학 기술 데이터 위원회)는 기본 물리 상수를 다루는 기구입니다. 이곳에서는 기본 물리 상수와 관련된 전 세계의 데이터를 수집해 4년에 한 번 가장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숫자를 공개합니다. 그런데 2017년에는 별도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2018년, 기본 단위 재정의를 위해 필요한 기본 물리 상숫값을 확정하기 위해 별도의 논의를 가졌던 것”이라고 소개하며 이호성 박사님은 “그때 4개의 기본 물리 상숫값을 확정했다. 플랑크 상수 h, 기본 전하 e, 아보가드로 상수 NA, 볼츠만 상수 k다. 오늘은 플랑크 상수 h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을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호성 박사님은 빛의 속력에 관한 이론을 살펴봅니다.

 

“맥스웰은 맥스웰 방정식에서 빛의 속력이 일정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이미 밝혔죠. 아인슈타인은 기본적으로 광속 불변의 원리를 바탕으로 상대성 이론을 전개했습니다. 또 이 두 가지 이론은 우리가 맞다고 다 인정하고 있는 것이죠. 빛의 속력은 이론적으로는 일정하다는 것이 밝혀진 거예요. 그러나 실험적으로 그 값을 결정하는 일이 남아 있었어요. 많은 실험 물리학자들이 진공에서의 빛의 속력값을 알아내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해왔습니다.”

 

앨버트 마이컬슨은 한평생 빛의 속력을 측정하는 데 보냈습니다. 이호성 박사님은 “마이컬슨은 빛을 쏘아 보내 그 빛이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최장 36.8킬로미터 거리에 반사경을 두고, 빛이 거기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시간을 쟀다.”라는 건데요.

 

마이켈슨 빛 속도 측정.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당시에는 레이저도 없었어요. 측정을 하다 보니 공기 흐름이나 습도 등이 불확실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걸 줄이기 위해 진공관을 만들었고요. 그 속에 거울을 적당히 배치해서 그 안에 프리즘을 돌린 겁니다. 거기에 들어갔던 빛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까지 걸린 시간을 측정한 방식이고요. 이를 ‘푸코 방식’이라고 합니다. 1924년에 초속 299,796±4킬로미터라는 빛의 속력값을 얻었습니다.”

 

이후 세계는 전쟁을 겪습니다. 이호성 박사님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마이크로웨이브를 이용한 레이더 연구가 엄청나게 발전했다.”라고 설명하며 루이센 에센이 이 기술을 이용해 빛의 속력을 측정한 사례도 소개했습니다. 1950년의 일입니다.

 

“루이센 에센은 당시 발전된 마이크로웨이브 관련 장비, 기술 등을 이용해 공진기 속에서 마이크로웨이브의 파장과 주파수를 동시에 측정했습니다. 파장과 주파수를 곱한 것이 바로 진공에서의 빛의 속력이 되는 거죠. 이런 방식으로 1950년에 구한 값은 초속 299,792.5±3킬로미터였습니다.”

 

1924년에 초속 299,796±4킬로미터라고 측정된 빛의 속력은 1950년, 초속 299,792.5±3킬로미터로 측정되면서 정확도를 높여 갑니다. 그리고 1972년, K. M. 이벤슨은 주파수를 빛의 주파수 영역으로 올립니다. 이전 주파수보다 거의 1만 배 가까이 높은 ‘헬륨-네온 레이저’의 주파수와 파장을 동시에 측정한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당시 파장을 측정하는 실험은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한 실험이었는데요.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한 파장의 상대 불확도(δλ/λ)는 ±3.5×10⁻⁹였습니다. 한편 빛의 주파수를 단계별로 조금씩 마이크로웨이브 주파수 수준으로 낮춰서 측정한 주파수의 상대 불확도는(δf/f)는 달랐죠.

 

“1972년 당시 미터의 정의는 크립톤-86 원자에서 발생하는 파장이었습니다. 이 파장이 대략 605.7나노미터 정도였는데요. 이 자체가 갖는 불확도가 ±3.5×10⁻⁹였던 것이죠. 때문에 레이저 간섭계를 이용한 파장의 상대 불확도가 이것으로 결정되어 버린 거예요. 빛의 속력은 m/s(매초 미터)니까 파장도 알아야 하고, 주파수도 알아야 하잖아요. 주파수 측정은 파장 측정보다 더 정확했거든요. 빛의 속력은 고정되어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는데 측정 과정에서 미터 단위 때문에 더 이상 빛의 속력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이제는 미터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고요. 그래서 지구에서의 빛의 속력을 고정시켜 불확도를 0으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등장하게 됩니다.”

 

진공에서의 빛의 속력과 미터의 재정의.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1975년 제15차 국제 도량형 총회(CGPM)에서는 진공에서의 빛의 속력을 초속 299,792,458미터라고 고정했습니다. 즉 “미터는 빛이 진공 중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라고 정의된 것입니다. 1983년의 일이었죠. 국제 미터 원기에 의해 미터가 정의되던 것과는 완전히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떻게 미터를 잴 것인가, 가 남죠. 따라서 미터의 정의와 미터의 구현이 분리가 됩니다. λc/f잖아요. f는 주파수인데요. f의 기준은 세슘 원자 시계입니다. 주파수를 가지고 파장을 결정하는 것이죠. 아래 이미지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개발한 헬륨-네온 레이저인데요. 1980년 무렵에는 10의 마이너스 11승 정도의 불확실도를 가졌는데 점점 새로운 레이저와 안정화 기술이 개발되면서 오늘날에는 10의 마이너스 16승까지 갔습니다. 1980년대에 비하면 10⁵배까지 정확도가 개선된 것이죠. 불확실도가 줄어들었어요. 바로 이것이 미터의 정의와 미터의 구현을 구분한 결과입니다.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미터의 정의는 바꾸지 않고, 미터를 훨씬 정확하게 구현할 수 있다는 거예요.”

 

헬륨-네온 레이저. 이호성 박사의 강연 자료에서.



(2편에 계속)


이호성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물리표준본부 시간표준센터 책임연구원.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 물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부터 현재까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재직하며 광 펌핑 세슘 원자 시계, 한국 표준시 및 시간 눈금, 기본 상수 및 국제 단위계 등을 주제로 탁월한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한국연구재단 나노융합단장, KIST 유럽 연구소(독일 소재) 소장 등을 역임했다.

 


 

「물리 어벤져스 2019 시즌2」 
3강 "물리학자가 본 인류의 물질 문명사"

 

「물리 어벤져스 2019 시즌2」 3강 "물리학자가 본 인류의 물질 문명사"가 12월 27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에 ‘강남출판문화센터 지하 2층 이벤트홀’에서 진행됩니다.

 

[강연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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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 클래식』 [도서정보]
물리학 원전을 순례하다


『날마다 천체 물리』 [도서정보]
바쁜 현대인을 위한 짧은 천체 물리학 특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