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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많던 GMO는 누가 다 먹었을까 본문

완결된 연재/(完) 김병수의 GMO 가이드

1. 그 많던 GMO는 누가 다 먹었을까

Editor! 2020. 1. 20. 09:32

‘신의 선물’, ‘21세기 바벨탑’, ‘판도라의 상자’……. 우리가 그동안 들어 온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전자 변형 작물)에 대한 묘사입니다. 동식물의 유전자를 변형하여 만들어진 이 생명체는 전 세계 시민 사회에서 윤리적, 종교적, 과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한 해에만 1000만 톤(식용은 200만 톤)의 GMO를 수입하는 GMO 강국임을 알고 계셨나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먹을거리에 GMO가 얼마나, 어떤 게, 어떻게 들어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2020년을 맞아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간사 및 시민과학센터 부소장을 역임했고, 『한국 생명 공학 논쟁』, 『시민의 과학』의 저자인 김병수 성공회대학교 교수의 GMO 가이드를 연재합니다. 끊임없는 학술 연구 및 강연으로 GMO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최근 농림부장관 표창장을 수상하는 등, 한국 GMO 논쟁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온 김병수 교수에게 앞으로 한국 사회를 달굴 GMO 문제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김병수의 GMO 가이드
1. 그 많던 GMO는 누가 다 먹었을까 - GMO 표시제 논란

 

2018년 3월 GMO 완전 표시제 시민 청원단의 기자 회견 장면. 사진 제공: 김병수

GM 작물인 콩, 옥수수, 목화, 카놀라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전 세계로 확산된 지도 벌써 25년이 지났다. 콩과 목화의 경우는 전 세계 재배 면적에서 GMO가 차지하는 비율이 2017년 기준으로 약 80퍼센트나 된다. 2018년 기준 식량 자급률 46.7퍼센트(곡물 자급률 21.7퍼센트)로 절반 이상의 식량을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어느덧 세계 유수의 GMO 수입국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해마다 1000만 톤 정도의 GMO를 수입하는데, 이중 약 20퍼센트가 식용이다. 수입한 GM 옥수수와 콩은 주로 가공되어 다양한 식품의 주원료나 첨가물로 사용된다. 수입량뿐만 아니라 종류도 꽤 다양해서, 정부의 위해성 심사를 통과해 승인받은 식용 GMO는 7개 작물, 4개 미생물로 총 177건에 달한다.

이처럼 이론적으로는 177개 종류의 GMO를 먹을 수 있는데 정작 슈퍼마켓에서는 GM 식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해마다 수입되는 200만 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대중은 어떤 기업이 GMO를 얼마나 수입해서 어떤 식품에 쓰고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답부터 말하자면 한국 기업은 GM 옥수수와 콩을 가공해 아이스크림, 과자, 빵, 라면, 음료수, 올리고당, 옥수수유, 카놀라유, 콩기름, 간장 등에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매일 먹는 식품이다. 다만 부실한 GMO 표시제로 인해서 제대로 알 수는 없고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GMO 작물로 만들었지만, 열처리로 GMO 성분 잔류 가능성을 낮추었다는 이유로 표시 대상에서 제외된 카놀라유. 사진 제공: (주)사이언스북스

우리나라의 GMO 표시제는 2001년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만약 식품에 GMO가 포함되어 있다면, 눈에 잘 보이도록 “유전자 변형 식품” 포함이라고 써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가 마켓에서 GMO 식품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광범위한 예외 조항 때문이다. 우선 열처리 등으로 GMO 성분이 잔류할 가능성을 낮춘 식용유, 당류, 간장이나 식품 첨가물은 표시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생산이나 유통 과정에서 GMO가 비의도적으로 포함되더라도 3퍼센트 이하라면 표시 의무를 면제해 준다. 마지막으로 최종 산물(제품)에 변형 DNA나 외래 단백질이 검출되지 않을 경우도 대상에서 제외다. 즉 GMO를 만들 때 사용한 DNA 조각이나 여기서 발현된 단백질이 제품에 없다면 표시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GMO 표시제가 없었던 나라: 미국의 사례

미국의 GMO 정책을 패러디한 포스터 도안. © 2009 - 2020 Keep Calm Network Ltd.

세계 최대 GMO 재배국인 미국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GMO는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미국은 표시제를 불필요한 규제로 여기며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다, 최근에서야 연방 정부 차원에서 표시제 시행의 길이 열렸다. 미국 식품 의약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은 1992년부터 GMO 표시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해 왔는데, 2001년에는 유전 공학 작물은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과정이 아닌 최종 산물을 중심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최종 산물을 분석하면 전통 작물과 GMO의 성분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표시제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GMO가 전통 작물만큼 안전하다는 것이 보장되는, 이른바 실질적 동등성(substantial equivalence) 개념이다. 이는 1997년 유럽 의회(European Parliament, EP)가 채택한 과정 중심의 GMO 표시 정책과는 상반된다. 그러다 2016년 6월 ‘국가 생명 공학 식품 기준’ 관련 법률이 상원을 통과하고 2018년 12월 농무부가 구체적인 지침을 만들면서 의무적 표시제를 실시하게 되었다. 표시제는 2020년 1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돼, 2022년에는 정보 공개의 의무가 생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처럼 최종 산물에 유전자변형 DNA가 검출되지 않을 경우 표시 대상에서 제외이며, 비의도적 혼입은 5퍼센트까지 인정한다. 표시 방법은 다소 복잡하다. 식품 표면에 GMO 대신 “생명 공학 식품(Bioengineered food)”이라고 쓰거나 QR 코드, 기호, 문자 확인을 위한 전화 번호를 표시할 수 있다. 소비자가 직접 QR 코드나 전화로 문의해서 확인하라는 제도는 미국 정부가 표시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농무부에서 제공하는 GMO 식품 표시 마크.  사진 출처: USDA

 

미국의 표시제 정책이 갑자기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미국 시민 사회의 표시제 운동이 몇몇 주에서 시민 발의로 구체화 된, 최근의 경향에서 찾을 수 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26개 주에서 70개의 표시제 관련 시민 발의가 제안되었다. 캘리포니아 주와 워싱턴 주에서 GMO 표시제가 주민 투표까지 갔으나 부결된 이후 2013년에는 코네티컷 주에서 최초로 표시제 법률이 통과되었고, 2014년 메인 주와 버몬트 주가 뒤를 이었다. 주 단위의 입법에 자극받은 정부와 업계는 2015년 연방 차원의 표시제 법률안을 의회에 제출하게 된다. 주별로 마련된 상대적으로 강한 규제를 무력화하고 다른 주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연방 차원의 느슨한 규제를 마련한 것이다. 연방 차원의 표시제 시행으로 세 주의 법률은 효력을 상실했다.

2011년 샌프란시스코, GMO 표시제를 요구하며 시위 중인 참가자. 사진 출처: David Goehring (CC BY 2.0)

 

원료 기반 GMO 표시제를 시행하는 나라들: 유럽과 중국

유럽 연합은 최종 산물이 아니라 원료 기반의 'GMO 완전 표시제'를 실시하고 있다. 

유럽 연합(European Union, EU)과 중국, 대만 등은 최종 식품 기준이 아니라 원료 기반 표시제를 실시하는 나라다. 최종 제품에서 DNA나 단백질이 검출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원료로 GMO를 쓴 모든 GMO 식품과 사료는 의무적으로 표시를 해야 한다. EU의 비의도적 혼입 허용치는 우리보다 낮은 0.9퍼센트이다. EU 국가의 식품에서 GMO 표시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우리와 정반대인데, 표시제가 부실해서가 아니라 많은 국가가 GMO를 식용으로 먹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관리가 되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긴 하지만 원칙적으로 중국 또한 DNA/단백질 잔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GMO 식품에 의무적으로 표시를 해야 한다. 비의도적 혼입 또한 일절 허용하지 않으나 GMO가 검출될 경우, 합리적인 관리가 이루어졌는가에 대하여 조사해 판단한다는 단서 조항을 두고 있다.

 

무리한 트집 잡기인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인가?: 한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GMO 표시제는 그 부실함으로 시행 초기부터 논란이 되어 왔다. GMO 옹호 측에서는 표시제를 불필요한 규제로 여긴다. 전통 작물은 받지 않는 다양한 과학적 검증을 통과했는데도 표시까지 하라니 과한 처사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생명 공학을 잘 모르거나 오해하는 시민이 많은 현재 상황에서 표시제를 강화하면 GMO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더욱 증가할까 우려한다. 수입 업체는 식품 가격 상승을 반대 논리로 제시한다. 전통 작물 구매, DNA 검사, 표시를 위한 포장 변경에 비용이 들어 그 부담이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반면 시민들은 DNA 검출 여부와 상관없이 표시하는 EU식 원료 기반 표시제를 요구하고 있다. 부실한 표시제로 우리가 먹는 식품에 대한 알 권리와 선택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안전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표시제가 소비자에게 부여된 최소한의 권리라는 식이다. 이들은 설령 안전성이 확실히 입증되어도 GMO에 대한 선호와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표시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도 식품 포장지에는 다양한 정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 이런 성분이 모두 위험성 때문에 표시하는 것은 아니다. 추가적으로 제대로 된 표시제가 시행되면 장기간의 GMO 성분 섭취와 인체 위해성에 관한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GMO 완전 표시제’ 국민 청원에 오르다

표시제 강화 요구는 국민 청원으로까지 이어졌다. 57개 시민 사회 단체로 구성된 ‘GMO 완전 표시제’ 시민 청원단이 발의해 2018년 3월 11일부터 1개월간 진행된 청원에서 청원단은 GMO 사용 식품은 예외 없이 표시하고, 학교와 공공 시설의 급식에 GMO 사용을 금지하고, Non-GMO 표시에 대한 식약처 고시를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GMO 표시제 강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기 때문에 청원단은 정부 답변에 기대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 참여가 20만을 돌파하자 진행된 이진석 사회 정책 비서관의 답변 내용은 이랬다.

당장 표시제를 바꾸기보다는 협의체를 만들어 사회적 논의를 지속하겠다는 것으로, 먼저 물가 인상을 이유로 들었다. 식량 자급률이 낮고 Non-GMO가 GMO보다 비싸기 때문에 물가 상승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업계에서 10여 년 전부터 한, 새로울 것 없는 답변이었다. GMO 완전 표시제를 시행하면 정말 모두가 피부로 느낄 만큼 식품 가격이 크게 상승할까? 업계에서는 기름류 같은 일부 제품에서 20~24퍼센트 정도 가격 상승을 예상하는 반면, 소비자 단체는 식품에 첨가되는 GM 성분이 대부분 매우 소량이므로 가격 변동이 거의 없으리라고 예측한다. 아무튼 가격 상승이라는 일종의 협박성 주장에는 식품 업체 간의 경쟁이나 약간의 비용 상승을 감수할 수 있다는 소비자의 의견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계층 간 위화감 조성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았지만, 정부의 이런 주장은 Non-GMO가 고급 식품(?)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유럽, 대만, 중국인은 비싼 고급 식품을 먹고 있던 셈이다.

세 번째 이유로 그는 통상 마찰을 들었다. 이 주장도 자세한 설명이 없는데, 아마도 미국과의 마찰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에서 연방 차원의 표시제가 실시되면서 이런 우려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미국과 우리는 이미 자유 무역 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을 체결했으며, 체결 당시 “농업 생명 공학 양해서”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만약 우리가 EU식 원료 기반으로 표시제 기준을 강화하면 미국에서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참고로 미국은 현재의 우리나라 GMO 승인 과정이 미국보다 까다롭다면서 여러 경로로 개선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시민 사회가 한목소리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표시제가 미국식, 또는 지금 표시제에 미국식이 포함된 이상한 형태로 완화될 가능성까지 있어 보인다.

또한 사회적 협의를 통해 표시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청와대의 답변에는 그 근거뿐만 아니라 내용에도 진전된 부분이 없었다. 이미 2013년부터 업체와 일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협의체가 구성돼 운영되어 왔는데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였다. 7년간 서로 유사한 얘기를 반복한 상황에서 추가로 위원회를 꾸려 협의를 지속하겠다는 셈이다.

사회적 합의는 지금처럼 정부가 지정한 이해 관계자들을 불러 서로 논쟁하게 만들고 정부는 뒤로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방관자적 입장을 취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GMO처럼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시민들에게 직접 의견을 물어볼 필요가 있다. 설문 조사뿐만 아니라 숙의적 시민 참여 제도인 공론 조사, 합의 회의 등을 실시해도 좋을 것이다. GMO에 대한 찬반을 떠나 이 과정에서 GMO 다양한 정보, 입장 등이 드러날 것이며 사회적으로도 큰 학습의 기회가 된다. 이런 제도들이 이미 다른 정책 결정 과정에서 활용되고 있음에도 논의 내용조차 외부로 공개되지 않는 위원회를 고집하는 것은 표시제에 대해서 정부가 어떤 입장에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선택권이 보장된 식탁을 위해

궁극적으로 안전한 식탁이란 무엇일까?

지금처럼 부실한 표시제를 지속한다면 GMO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논의는 사라진 채 Non-GMO는 고급 또는 유기농이라는 잘못된 인식만 확산 될 것이다. 정부가 표시제 개정 반대 논리로 제시했던 계층 간 위화감은 완전 표시제가 가져올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부실한 표시제가 일으키고 있는 문제임을 자각해야 한다. 광범위한 예외 조항으로 GM 식품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유기농이나 Non-GMO가 표시된 식품을 선택한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학교 급식에서 GMO를 쓰지 않기 위해 조례를 제정하거나 GMO일 가능성이 높은 식용유,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을 Non-GMO로 바꾸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은 일부가 아닌 모든 시민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표시제가 시행된다면 사람들이 골라 먹는 식품은 Non-GMO에서 유기농 제품이나 GM 성분이 기준치 이하로 포함된 식품까지 넓어질 수 있다. 선택권이 한 단계 높아지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Non-GMO를 골라 먹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우선은 제대로 된 표시제를 만들 수 있도록 시민 사회가 힘을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하고 시급해 보인다.


김병수
대학에서 생명 공학과 과학 기술학을 공부했다. 참여연대 시민 과학 센터 간사, 국가 생명 윤리 심의 위원회 유전자 전문 위원, 시민 과학 센터 부소장을 지냈고, 현재는 건강과 대안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성공회대학교 열림 교양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황우석 사태, 생명윤리법제정 운동, DNA 검사 규제, 인보사 사태 등 한국 사회의 중요한 생명공학 논쟁에 깊게 개입해 왔다. 『한국 생명 공학 논쟁』,『침묵과 열광: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공저),『불확실한 시대의 과학읽기』(공저),『시민의 과학』(공저)을 쓰고 『인체 시장』(공역), 『시민 과학』(공역)  등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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