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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사도들 스페셜, 스티븐 핑커와 최재천 1편: 인류사에서 폭력은 감소했을까?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다윈의 사도들 스페셜, 스티븐 핑커와 최재천 1편: 인류사에서 폭력은 감소했을까?

Editor! 2023. 5. 18. 17:02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이자 과학 저술가로 이름 높은 스티븐 핑커의 계몽주의 예찬이자, 비관주의와 가짜 뉴스가 정론과 언론을 가장하는 시대에 대한 비판인 『지금 다시 계몽』의 전자책이 2023년 5월 전격 출간되었습니다. 이성과 진리의 끈질긴 추구가 우리 사회를 조금씩 개선시켜 나간다는 주장을 담은 이 책은 문명의 건설 이후 인류가 폭력을 수천 년간, 진퇴는 있지만, 꾸준히 감소시켜 왔음을 보여 주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인간의 정신사 전반으로 확장한 것이기도 합니다.

 

2016년 5월 스티븐 핑커는 서울 디지털 포럼(SDF)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습니다. 이 방한을 기회로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최재천 당신 국립 생태원 원장, 전중환 경희 대학교 교수 등과의 좌담을 마련해서 세계 최고 수준 지식인들의 통찰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벌써 7년 전이지만 전쟁, 폭력, 괴롭힘 같은 문제부터 인공 지능(AI)의 미래까지 예언적인 고담준론이 오갔습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의 다윈주의자 좌담집인 『다윈의 사도들』에도 실리지 않은 특별한 좌담을 오랜만에 다시 공개합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지성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나 보시죠.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 교수(왼쪽)와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오른쪽). 사진 ㈜사이언스북스.

폭력은 정말 감소했을까?

 

최재천: 교수님은 책에서, 어쩌면 우리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평화로운 시대를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어요. 교수님의 주장에 100퍼센트 동의합니다. 저 또한 얼마나 오래됐는지도 모르겠지만 거의 20년간 강의에서 계속 해 온 이야기가 있거든요.

 

“여러분이 밤에 자고 있는데, 옆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목을 자르고 마을 전체를 불지르고 여자들을 데려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진정 이 시대보다 더 위험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해 왔기 때문에 교수님의 책을 보았을 때 와 드디어 이런 주장이 책으로 나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당신의 의견에 완벽하게 동의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비평을 해 보도록 할게요. 책에서 중국 당나라 때 일어난 안록산의 난(755-763)을 예로 들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라고 언급하셨더군요. 제가 중국사 연구자들 몇몇으로부터 알게 된 사실인데, 그들 모두가 난이 일어나기 전 약 100년 정도의 시기를 아마도 중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고 간주하더군요. 심지어 여자 황제가 탄생하기도 했죠. 중국 역사상 여제가 세상을 지배한 유일한 시대였죠.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았죠.

 

안록산의 난으로 인해 촉 지방으로 피신하는 당 현종. 중화민국 국립 고궁 박물원 소장 자료. 출처: 위키백과.

 

한 가지 사례만 가지고 당신을 괴롭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이것을 조금만 더 확장해 볼까 합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교수님께서 예로 든 자료는 사실 대부분 지난 50년 동안의 것이죠. 교수님께서는 좀 전에 책 출간 이후 지난 5년간의 자료를 더 모았다고 했습니다. 이 책 제목에는 인간의 본성”, “우리의 본성같은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 제목은 제게 곧바로 , 이 책은 진화에 대한 이야기구나.’라는 인상을 줬습니다.

 

그러나 50년 혹은 몇 백 년이라는 시간은 말이죠, 우리 본성의 진화에 대해 무언가를 이야기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입니다. 교수님께서 책에서 내린 결론은 너무 성급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폭력의 감소나 평화의 지속 같은 것은 100년 정도의 시간이면 일어날 수 있죠. 그러나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무시무시한 폭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핑커: 우선 정리를 하죠. 먼저 저는 책에서 우리가 생물학적인 의미의 진화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가능은 하죠.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현재 우리의 뇌가 1000, 2000, 심지어 1만 년 전 인류의 뇌와 동일하다는 것이고, 인류의 변화는 인간 본성의 복잡성에 기인한다는 것이죠. 폭력이 일어나는 동기가 다양하듯이, 절제, 공감, 평화, 협력을 추구하는 동기 또한 다양합니다.

 

현재 변한 것은 인간의 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가 아니라 뇌의 어떤 영역들이 더 많이 활성화되어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쟁의 감소와 같은 일부 변화들은 고작 70년 전에 시작됐고, 저는 이러한 감소가 인간의 생물학적인 변화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규범, 논거, 제도의 변화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최 원장님께서는 역사가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것이라 언급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에는 거대한 우연적 요소가 존재합니다. 이 두 가지는 매우 다른데 사람들이 혼동하죠. 만약 주기가 존재한다면, 마치 시계를 보듯이 100년간 전쟁이 없었으니 이제 또 한바탕 전쟁이 벌어지겠군,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전쟁이 주기적으로 발생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평화로운 시기가 존재하다가 불시에 전쟁이 일어날 뿐입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역사가 그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결코 제로가 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감소할 수 있고, 다음 전쟁이 50년 후가 아니라 100년 후 또는 500년 후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또는 가능성이 감소함으로써 전쟁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지만 실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는 점점 더 희박해진다고 볼 수도 있고요. 또한 인간이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과 같은 몇몇 폭력의 범주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모든 문명은 신의 분노를 잠재워서 자연 재해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곤 했습니다. 이제 인간 제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합법적 노예 제도 또한 모든 문명에 존재했지만 지금은 어느 국가에서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국가 간 전쟁도 노예 시장이나 처녀를 화산에 던지는 풍습처럼 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할 겁니다.

 

그러나 내전은 그 성격이 좀 다릅니다. 192개의 국가가 존재하는데, 이는 192개의 주체가 전쟁은 어리석으니 더 이상 하지 말자고 결정할 수 있음을 뜻합니다. 반면에 세상에 게릴라 집단과 해방자를 자칭하는 집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따져보면 수천, 수만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내전들을 목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국가 간 전쟁을 그만큼 보고 있지는 않습니다.

 

셋째로 각각 다른 시기에 일어난 폭력을 어떻게 측정하느냐 하는 문제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책에서 지난 70년 동안 전쟁이 감소한 것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6개 장 중에서 하나의 장에서만 다루었죠. 시기에 따라 폭력의 유형과 데이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책에서 살인과 같은 폭력 범죄들도 다루었는데, 살인은 거의 대부분의 시기에 전쟁보다 더 큰 폭력의 근원이었습니다. 현재는 아마 5~10배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쟁보다 살인으로 인해 죽습니다. 전쟁은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는 방법은 아닙니다. 또한 살인의 양상은 국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한국은 어느 시기부터 데이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알고 싶군요. 유럽의 경우 서기 12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이후 현격히 떨어지죠. ‘제도’들 또한 제 책의 한 장을 할애해 다루고 있습니다.

 

연간 인구 10만 명당 살인으로 인한 사망자 수. 서유럽의 경우 1200년 이후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 준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사진 ㈜사이언스북스.

 

노예제뿐 아니라 화형, 거열형, 맹수와 싸우는 스포츠, 채무자 수감, 이단자를 산 채로 화형시키는 것과 같은 공개적 고문 처형과 같은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적어도 서양에서는 이런 제도들이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줄어들었습니다. 따라서 시대마다 다른 유형의 폭력이 감소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장님께서 언급한 부족 전쟁과 연계되는 장도 있는데, 부족 전쟁은 수렵 채집 집단에서 매우 흔했습니다. 침략, 불화(반목), 여성의 납치, 새벽의 급습, 매복 등 그들이 주로 행했던 폭력은 오늘날의 전쟁이나 살인에 의한 사망률보다 훨씬 더 높은 사망률을 야기했는데, 이는 수렵 채집 집단이 더 강력한 정부의 통제 아래 있게 될 때마다 감소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른 것입니다. 안록산의 난과 관련해서, 우리는 지난 2000년 동안 전쟁에 의한 사망을 집계한 연속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은데, 이는 어느 누구도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안록산의 난을 언급한 것은 전세기 동안 중국이 폭력적이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안록산의 난 시기에 폭등했던 폭력을 그 시기 전후해서 어떻게 평균화하느냐에 따라 전세기에 걸친 중국의 폭력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게 되겠죠.

 

제가 안록산의 난을 언급한 것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제1, 2차 세계 대전과 같은 가장 폭력적인 사건들이 존재했다는 이유로 20세기가 가장 폭력적인 시기였음이 틀림없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 세계 인구 대비 사망률을 따진다면 안록산의 난이 훨씬 더 심할 수 있어요.

 

저는 전쟁 중 사망과 관련된 데이터에 있어 두 가지의 데이터 집합을 활용합니다. 그중 하나는 1946년부터 시작하는 데이터로, 우리가 지금까지 주로 이야기한 내용은 이 데이터와 관련된 것이죠. 하지만 거대한 힘들 사이의 전쟁만을 다루는 다른 데이터 집합이 있습니다. 거대한 제국 군대 간의 전쟁에 관한 데이터죠. 그리고 전쟁에 관한 통계에 따르면, 모든 전쟁을 합쳤을 때의 총 사망자 수의 대부분이 거대한 힘들이 결부된 전쟁으로 설명됩니다.

 

거대한 힘이 결부된 전쟁들은 놓칠 수가 없고, 역사가들이 반드시 기록합니다. 그래서 만약 교수님이 거대한 힘들 사이의 전쟁에만 한정해서 본다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500년 이후의 숫자에 주목하면 전쟁의 횟수는 감소합니다. 전쟁의 기간도 감소했습니다. 전쟁의 격렬함, 즉 국가당 연간 사망자수는 1945년까지 상승하지만 이 또한 감소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전쟁과 잔학 행위 100건으로 인한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를 조사한 데이터. 동그라미를 쳐 강조한 점들은 20세기의 양차 대전보다 사망자 수가 컸던 사건들이다. 시대순으로 중국 신나라, 삼국 시대, 로마 몰락, 안녹산의 난, 칭기즈칸 정복 전쟁, 중동 노예 무역, 티무르 정복 전쟁, 대서양 횡단 노예 무역, 명청 교체기, 아메리카 정복 전쟁이다. 사진 ㈜사이언스북스

 

따라서 1500년도부터 1950년경까지의 전쟁과 관련된 경향은 기복을 보이는데, 서로 다른 두 경향(전쟁 횟수와 기간, 그리고 전쟁의 격렬함)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1945년 이후에는 두 경향 모두 감소하죠. 한국의 경우,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힘이 맞붙은 마지막 전쟁을 경험했고, 1953년 한국 전쟁 이후 두 개의 거대한 힘은 전쟁을 치르지 않았습니다

 

사진 설명: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과 스티븐 핑커 교수. 사진 ㈜사이언스북스.

가난한 사람들은 전쟁을 선택하지 않는다

 

최재천: 지난주에 UCLA의 재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교수가 이런 포럼과 유사한 종류의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제가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반복적으로 몇 번이나 우리는 앞으로 33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어요. 33년 안에 우리의 자원 조건, 자연 자원은 끔찍한 상황에 처하는데, 고갈 상태가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사람들 간의 불평등 문제가 끔찍한 수준이 되어 인간 사회는 매우 불안정해질 것이기에 우리는 이에 대해 뭔가 대비를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종합하면, 33년 안에 엄청난 경제적 불균등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로 인해 우리는 엄청난 폭력을 목도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핑커: 저는 그것과 관련된 어떤 증거도 본 적이 없습니다. 우선 첫째, 자원은 고갈되고 있지 않습니다. 석유 자원은 절대 고갈되지 않을 거예요. 몇 달 전 《애틀랜틱(Atlantic)》의 커버스토리에 나왔던 얘기죠.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자원이 점점 희소해질수록 가격은 오르고, 이는 기업들이 그 자원을 더 발굴하도록 하는 인센티브가 됩니다실제로 더 찾아내죠. 또한 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아껴 쓰고 재활용하며 다른 자원으로 대체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자원이 고갈될 염려는 없다고 봅니다.

 

유일한 예외의 가능성은 물인데, 물은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만약 우리가 에너지를 활용하는 더 좋은 방법을 강구한다면 바닷물의 담수화가 가능할 것이고, 바닷물은 고갈될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원이 중요해진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요. 모든 현실 만족적인 상품(complacent commodity)의 가격은 낮아졌습니다. 가격이 낮아졌다는 의미는 즉 상품이 더 늘었다는 뜻이죠.

 

우리가 가진 모든 상품과 자원의 양은 매장량으로 인해 증가합니다. 줄어들지 않습니다. 자원의 희소성이 커질수록 자원을 발견하고 보유하려는 인센티브가 커질 테니까요. 또한 전쟁은 자원 때문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매우 심각한 오해죠. 지난 100년간 일어난 모든 전쟁들의 목록을 검토하고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살펴보면, 그중 자원과 관련된 전쟁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전쟁은 이데올로기, 안전, 부당함 혹은 지각된 부당함, 잘못을 바로잡거나 복수하기 위해 일어났으며, 자원 때문에 일어난 전쟁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중동의 경우를 보면, 그들이 싸우지 않는 하나의 이유가 물이죠. 그들이 싸워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를 꼽으라면 물일 텐데 말이죠. 물은 마셔야죠.

 

 

최재천: 불공정성,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경제적 불평등이 점점 더 심화될 것 같은데요.

 

 

핑커: , 무엇보다도 전지구적으로 심화되고 있지 않습니다. 중국과 인도의 급부상은 사실 1인당 자본 불평등(per capita inequality)의 격차를 줄여 주고 있으니까요. 국가 내에서 보자면, 빌 게이츠가 나보다 돈이 많다는 따위의 이유로 내전이 일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빌이 나보다 돈이 10, 100, 혹은 1,000배 많다고 해서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불평등은 중요한 문제일 수 있지만, 불평등보다 더 큰 문제는 빈곤입니다. 그런데 빈곤의 정도는 완화되고 있어요. 전 지구적 빈곤율은 10퍼센트로 떨어졌고, 유엔의 지속 가능 개발 목표는 2030년까지 전 세계 극빈율을 제로로 낮추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한국과 미국처럼 산업화된 나라에서조차 비록 불평등은 늘고 있으나 그것이 사람들이 더욱더 가난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부자들이 더 부유하게 되는 속도가 가난한 사람이 부유하게 되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전쟁은 불평등 때문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최재천: 가장 가난한 자들이 어느 정도 살아갈 만한 수준의 가난에 머물 수 있다면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은 그리 크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긴가요?

 

 

핑커: 대부분의 갈등들은 어차피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지 않아요. 단지 도덕적 관점에서 볼 때 가난한 자들이 잘살도록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이죠. 아마 러시아 혁명을 떠올리실 수도 있을 텐데, 그럼에도 러시아 혁명이 가난한 자들에 의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들이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전쟁 같은 것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환상과 같은 거예요.

정신적 폭력은 증가하지 않았나?

 

최재천: 한국에는 큰 화제거리가 있었어요. 한국의 젊은 여성 소설가인 한강이라는 작가가 맨부커 상을 수상한 거죠. 이건 우리에게 엄청난 소식이었어요. 우리의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니까요. 당신의 부인도 상당한 명망을 가진 소설가죠. 그래서 당신도 소설과 같은 문학의 힘을 알겠네요.

 

상을 받은 소설은 『채식주의자』란 제목으로,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은 궁극적으로 나무가 되기를 원해요.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순전히 우연하게 채식주의자가 되죠. 만약 당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채식주의자이다.”라고 한다면 당신을 공격하려는 사람들이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도대체 당신 문제가 뭔가요? 고기를 먹는 것이 그렇게 혐오스러운가요?”라고요.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옹호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유사한 몇몇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책입니다.

 

왜 타인들을 괴롭히죠? 나는 나만의 신념 같은 것이 있는데 말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정신적 학대나 정신적 잔인함을 다룹니다.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어제 그녀의 책을 빠르게 읽으면서 생각했죠. 당신 책 속의 수많은 데이터들은 물리적 잔인성에 대한 것인가요?

 

 

핑커: 네 물리적 폭력 맞습니다.

 

 

최재천: 정신적 잔인성은 어떤가요? 물리적 잔인성만큼 감소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나에겐 데이터가 없어서 그저 한 번 언급해 봅니다. 우리의 언어가 매우 정교해지고 사회가 매우 복잡해지면서, 지난 수년 동안 정신적 잔인성이 줄어들기보다 사실상 늘어나지는 않았나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질문해 봅니다.

 

 

핑커: 저는 정신적 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동일시하지 않는데, 둘은 완전히 다른 것들이기 때문이죠. 사람이 죽으면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집니다그러나 만약 누군가 당신을 모욕한다면, 당신은 박차고 그 자리를 벗어나 여전히 당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죠. 나는 물리적 폭력을 대신해 무례와 모욕이 증가해 왔다는 증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8, 19세기 소설을 봐도 서로를 모욕하고 경시하고 억누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현상에 대해 나는 우리가 점점 잔인한 상호작용에 민감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한국에도 미국 대학가의 현상, 마이크로어그레션에 상응하는 현상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네요. 단어 자체만으로도 많은 것을 내포하죠.

 

일단 마이크로어그레션은 물리적 측면의 공격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누군가를 쳤는데 세게 치지는 않았다는 그런 뜻이 아니에요. 마이크로어그레션은 소수 인종이나 여성들이 모욕적이라고 느낄만한 발언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만약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재능이 있는지에 따라 성공의 정도가 결정된다는 말을 한다면, 이는 마이크로어그레션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는 인종적 소수자들이 가난한 이유는 그들이 충분히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뜻을 내포하게 돼 버리거든요.

 

이제는 이런 경우도 공격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공격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이 이전 세대들이 무시했거나 그냥 참고 넘어갔을 법한 문제들에 대해 정신적인 도움을 찾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최재천: 방금 우리가 타인의 감정에 점점 더 예민해지고, 따라서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도널드 트럼프는 무슨 경우인가요? 새로 당선된 필리핀 대통령은요? 이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대놓고 사람들을 모욕하고 그것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었죠. 이것도 어떤 새로운 경향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시스템 내에서 뭔가 붕괴되고 있는 걸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핑커: 이런 이야기는 시기상조인 것 같아요. 필리핀에서는 이미 일어난 일이지만, 미국에서 여론조사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죠. 그러나 만약 당신이 제기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분명 수많은 경향들이 역전된다고 볼 수는 있겠네요.

 

 

최재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핑커: 저 역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대담은 2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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