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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사도들 스페셜, 스티븐 핑커와 최재천 2편: 인공 지능과 지능은 다르다!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다윈의 사도들 스페셜, 스티븐 핑커와 최재천 2편: 인공 지능과 지능은 다르다!

Editor! 2023. 5. 25. 11:52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 교수이자 과학 저술가로 이름 높은 스티븐 핑커의 계몽주의 예찬이자, 비관주의와 가짜 뉴스가 정론과 언론을 가장하는 시대에 대한 비판인 『지금 다시 계몽』의 전자책이 2023년 5월 전격 출간되었습니다. 이성과 진리의 끈질긴 추구가 우리 사회를 조금씩 개선시켜 나간다는 주장을 담은 이 책은 문명의 건설 이후 인류가 폭력을 수천 년간, 진퇴는 있지만, 꾸준히 감소시켜 왔음을 보여 주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인간의 정신사 전반으로 확장한 것이기도 합니다.

2016년 5월 스티븐 핑커는 서울 디지털 포럼(SDF)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습니다. 이 방한을 기회로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최재천 당신 국립 생태원 원장, 전중환 경희 대학교 교수 등과의 좌담을 마련해서 세계 최고 수준 지식인들의 통찰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벌써 7년 전이지만 전쟁, 폭력, 괴롭힘 같은 문제부터 인공 지능(AI)의 미래까지 예언적인 고담준론이 오갔습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의 다윈주의자 좌담집인 『다윈의 사도들』에도 실리지 않은 특별한 좌담을 오랜만에 다시 공개합니다.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대,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지성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나 보시죠.


스티븐 핑커 교수와 최재천 교수. 사진 제공: SBS

 

인공 지능이 인류의 파멸을 불러온다?

 

최재천: 약 한 달 전에, 『사피엔스』라는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책을 쓴 헤브루 대학의 교수인 유발 하라리가 한국에 와서 1주 이상, 거의 10일을 머물다 갔습니다. 수많은 강연과 인터뷰 같은 것들을 하고 돌아갔는데, 오늘과 같은 자리에 함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한국 대중에게 가장 하고 싶은 핵심적인 큰 메시지는 책에도 나와 있듯이 인류가 사라질 것이며 그것도 매우 빨리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수십 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는 언급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집요하게 묻고 또 물었더니 그렇게 빨리는 아니라도 100년 또는 200년 안에는 그 시기가 도래한다고 얘기했어요. 그 이유에 대해 물었죠. 그는 인공 지능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인공 지능이 우리를 밀어낼 거라고 하더군요. 인지 심리학자로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핑커: 아니에요, 파멸에 대한 예측은 항상 있었죠. 교수님과 비슷한 시기에 제가 대학원에 입학할 때도요. 오래전 하버드 대학교에서, 어쩌면 당신도 같은 곳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컴퓨터 과학과의 유명한 교수인 조셉 와이젠바움이 대학원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자리에 왔습니다. 하버드에 입학하는 우리를 위한 축사를 했죠.

 

그때 그는 우리에게 음성 인식 기술을 연구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CIA가 그 기술을 이용해서 우리의 모든 대화를 도청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문제 해결 기술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국방부에서 베트콩을 어떻게 살해할지 계획하는데 이용할 테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확신합니다, 내 마음에 한치의 의심도 없이. 2,000년이 도래했을 때에는 이미 여러분들은 모두 죽은 목숨일 테니까요”라고 말했죠. 그런데 2016년 현재 우리는 아직도 살아 있죠.

 

인공 지능에 의한 인류 멸망을 그린 영화 「터미네이터」의 한 장면.

 

저는 인류의 종말에 대한 예측들은 과장된다는 점을 감안하고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인공 지능에 대한 예측도 완전히 빗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인공 지능이 무엇인가에 대한 오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인간의 심리와 인간의 지능을 인공 지능에 투사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수컷 영장류의 진화된 특성인 ‘지배’를 지능(intelligence)의 본질이라고 상상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똑똑한 기계들을 만들면, 어느 순간 그 기계들이 모든 것을 인수하려고 할 거라 여기죠. 우리는 그저 그 기계들에게 방해가 될 뿐이니까, 오늘날의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대체했듯이 기계가 우리를 대체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건 지능(intelligence)이 아니에요.

 

오늘날 우리는 다윈의 자연 선택과 성선택의 결과로 이렇게 영리한 뇌를 갖게 되었고, 권력의 추구와 같은 특정한 특성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로를 따라 운전하도록 고안된 인공 기기가,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지 않는 한은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해서 “운전에 신물이 나”라고 말하며 “인육을 먹고 싶어” 또는 “인간들을 다 제거해 버릴 거야”라고 나올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높은 지능을 가졌지만 지배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는 예를 알고 있죠. 바로 여성입니다. 여성은 완벽하게 지능적이지만 우두머리 수컷의 심리를 가지고 있지 않아요.

 

또 다른 시나리오도 얘기해 봅시다. 우연히 페이퍼클립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진 인공 지능이 페이퍼클립을 만드는 기술이 너무 뛰어나져서 더 많은 페이퍼클립을 만들기 위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공지능을 파괴한다는 시나리오 말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페이퍼클립을 만들기 위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완벽한 탁월함과, 페이퍼클립을 만드는 것 이외의 목표들도 프로그래밍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완벽한 어리석음의 결합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는 그런 한가지 목표만을 추구하는 기계를 만들지는 않거든요. 자동차, 요리법, 테이블 톱과 같은 여타의 모든 생산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것들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또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에 관해 경험하면서, 안전 장치 또한 개발하게 됩니다. 반면에 인공 지능이 봉기를 일으킬 정도로 자발적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진화된 유기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지성(intelligence)과 일반적인 지능(intelligence)을 혼동한 결과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최재천: 나 역시 하라리에게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만약 인공 지능에게 자연 선택이 일어난다면, 몇몇 인공 지능은 이 자연 선택 과정에서 살아남아, 머나먼 훗날에, 어쩌면 우리와 경쟁할 수도 있겠다고요. 그러나 결국 우리가 설계했고, 또 인공 지능이라는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었습니다. 궁극적으로 인공 지능이 우리를 이기거나 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말입니다. 어쨌든,

 

 

핑커: 동의합니다.

 

 

최재천: 유발 하라리가 오기 몇 주 전에 한국 사람들에게 매우 극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구글의 인공 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한국의 천재 바둑기사 이세돌 간의 굉장한 경기를 봤었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어떻게 인공 지능이 우리의 최고 바둑기사를 이기겠어'라는 생각을 했었죠. 그러나 기계는 상상 이상으로 굉장히 강한 것으로 판명 났고, 한국인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당신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해해야만 할 것이, 현재 이런 경험을 하고 난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핑커: 이미 이전에 체스 대회에서 세계를 제패한 프로그램이 있었고, 또 그 이전에는 체커스 게임에서 그 누구나 이길 수 있었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한 가지 특정한 일을 하도록 설계된 기계가 인간보다 그 일을 잘할 수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컴퓨터가 인간보다 산술 계산을 잘하게 됐을 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죠.

 

그러나 인간을 해치거나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게 된다는 경우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또한 기계가 원래 만들어진 목적이란 것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과는 별개의 것입니다. 알파고는 바둑을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며 이 세상 끝까지 죽어라 바둑만 둘 테니까요. 어느 날 문득 “바둑이 지겨워졌어, 사람들을 죽여 봐야겠어”라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최재천: 50년 후는 어떨까요? 아마 많은 수의 인공 지능 프로그램이 존재할 것이고, 여기저기 로봇들도 존재할 텐데, 그때 인간은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까?

 

 

핑커: 예측하기가 많이 주저되는 것이,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기술에 대한 예측에 얼마나 서툰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거든요. 신문에 나온 가장 최근의 트렌드를 바탕으로 너무 쉽게 50년 후를 추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죠. 그러나 그런 건 옳지 않아요.

 

단적인 예로 현대의 비행기 여행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점에서 50년 전에 비해 오히려 더 열악해졌죠. 첫 대륙 횡단 제트기가 발명됐을 때만 해도. 오늘날 비행기 여행은 전혀 빨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공항의 보안 검사 때문에 더 느려졌습니다. 더 편안하지도 않은 것이 비행기 안에 더 많은 사람을 우겨 넣기에 바쁘기 때문이죠. 이것은 발전을 멈춰 버린 기술의 한 예죠. 비슷하게 유인 우주선을 생각해 보면 1972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44년이 지난 오늘 어느 누구도 달 너머로 가보지 못했죠.

 

한편으론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기술의 발전도 있습니다. 15년 전만해도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의 부상에 관해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텔레비전 쇼의 결말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죠. 원하기만 한다면 메뉴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왕자의 게임’ 결말을 이렇게, 저렇게, 아니면 또 다른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메뉴 말입니다. 대화형 텔레비전이란 것, 결코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기술 발전은 양방향이에요. 50년 후에 대한 예측은 결국 예측일 뿐이고, 나는 그것이 틀릴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최재천: 당신은 예측하기를 원치 않는군요.

 

 

핑커: , 그렇습니다. 나는 우리의 예측이 틀릴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스티븐 핑커 교수. 사진 ㈜사이언스북스

 

생물과 무생물을 연결하는 다윈의 자연 선택

 

최재천: 내가 2009년에 당신의 연구실을 방문한 것 기억하세요?

 

 

핑커: , 기억합니다.

 

 

최재천: 그때 우리는 왜 다윈이 중요한가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나는 그 질문을 여러 다윈주의 학자들에게 물어봤어요. 당신의 대답은 뭐랄까… 무척 특이했어요. 당신의 말을 인용하자면, “자연 선택, 다윈주의의 자연 선택이란 아이디어는, 생물과 무생물을 연결한다’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무생물의 세계를 자연 선택이라는 다윈의 사고와 연결 짓지 않았기 때문에 꽤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인공 지능, 기계와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요, 그러니까 상기가 되네요. 우리가 무생물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요. 그래서 당신이 예전에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 봤습니다. 당신은 이미 뭔가를 예견했던 걸까요?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이러한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은 필연적이었을까요?

 

이미 이것에 대해 얘기했지만, 당신이 생물 세계와 무생물 세계, 그리고 그 간극을 이어주는 다리를 언급했을 때 무슨 의미였나요?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이 논의가 더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공 지능, 기계와 같은 무생물 개체들에 대해 훨씬 더 많이 논하게 됐으니까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핑커: 한편에는 돌, , 모래와 같은 무생물,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개구리, 백합, 인간과 같은 생물체가 존재하는데, 이 둘의 가장 확연한 분리는 두 번째 범주인 생명체가 삶을 유지하고 엔트로피를 막기 위해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것이죠. 그들은 자신의 복제품을 만들고, 대사작용을 함으로써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그것들(생물과 무생물)이 서로 매우 다르다고 보았고, 그래서 신과 같은 존재가 있어서 짠~하고 살아있는 것들을 창조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죠. 돌과 개구리는 서로 너무나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나로부터 다른 하나를 얻을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다윈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줬어요.

 

모든 것은 복제자(replicator), 즉 자신의 복제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고, 자신의 복제품이 또 다른 복제품을 끊임없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활용하는, 조금의 물질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다윈은 일단 그러한 과정이 시작되면, 더 높은 복제율로 이어지는 오류를 가진 복제품들이 수 세대에 걸친 복제의 과정에서 모집단의 주류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 줬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복제품을 세상의 행위자로서 만들기 위해 작용하는 시스템, 즉 생물체를 보게 됩니다.

 

진화생물학을 설명하는 학자이자 무신론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는 다윈이 등장하기 전에는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고 얘기했습니다. 다윈이 아니라면 생물체라는 존재는 설명 불가능했으니까요. 다윈은 우리로 하여금 지적으로 일관된 무신론자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사고하면, 오늘날의 로봇이나 인공 지능은 우리의 확장 표현형의 일부라고 할 수 있죠. 그들은 우리의 의복이나 집, 혹은 비버 댐이나 벌통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복합적인 존재입니다.

 

 

최재천: 그럼, 당신은 인공 지능이나 로봇 같은 것들을 무생물이라 보지 않는 거네요?

 

사진 설명: 최재천 교수. 사진 ㈜사이언스북스

 

핑커: 그것들을 우리의 일부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네 맞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의

표현형(phenotype)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최재천: 우리에게 뭔가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네요.

 

교수님은 책 『마음은 어떻게 작용하는가』에서 제시한 ‘귀로 듣는 치즈 케이크’ 개념은 교수님을 우리 대부분과 동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전공이 같잖아요. 대부분은 음악의 진보를 성 선택 등과 같은 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하는데, 갑자기 교수님이 나타나 그것이 아니라면서, 음악은 단순한 부산물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전 잘 모르겠습니다.

 

제 처는 음악가인데 음악 역사의 발전 등등에 관해 강연하곤 합니다. 아주 가끔 저도 그녀의 세미나 강사로 초청되어, 음악이 어디에서 기원할 수 있었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죠. 그때마다 항상 저는 당신의 개념을 소개하는데,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치즈 케이크와 달리 음악은 항상 우리와 함께했죠, 안 그래요? 현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하기 이전에도 음악은 존재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롭 브룩스(Rob Brooks)였나요? 그가 최근 책에서 ‘귀로 듣는 치즈 케이크’ 라는 교수님의 개념 전체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음악은 너무나 오랫동안 있어 왔고 치즈 케이크나 다른 것들보다 훨씬 더 오래 존재해 왔기 때문이죠.

 

광적인 음악 애호가들이 한국에는 많습니다. 그들이 교수님의 이야기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교수님의 입장은 여전합니까?  

 

 

핑커: 최 원장님은 음악이 다윈주의적 적응 과정에 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적응(adaptation)이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기준을 적용한다는 측면에서 저 역시 원장님과 같은 입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비판가들이 때로 말하죠, 당신네 다윈주의자들은 모든 것이 적응적(adaptive)이라고 얘기한다고, 또 그것이 순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누군가가 적응적 목적(adaptive purpose)이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하면 분명 다윈주의자는 적응적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적응적이 아니라면 진화도 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죠.

 

저는 그런 순환 논리가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우 엄격한 방식으로 모든 개별적인 특성을 살펴보아야 하며, 왜 그 특성이 실제로 재생산을 확대해 나가는 데 기여하는지를 보여 주는 공학적 분석이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화심리학에 대한 비판가들이 말하는 것과 똑같은 행동을 교수님이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즉 적응적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만약 아니었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라 믿어 버리는 순환적 사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로 다른 이론들에 대해 (기준을) 적용하고는 있지만, 교수님과 제가 같은 입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의 경우에는, 우리와 오래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여전히 적응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적응이 아닌 부산물 또한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음악, 그것도 기악의 경우 7만 년 전 혹은 10만 년 전 아프리카로 거슬러 올라가는 증거가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더 최근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최재천: 아마 유럽에서는 약 3만 년 전일 겁니다.

 

 

핑커: 3만 년 전 유럽이라고 해도 음악이 인류의 존재 전반에 걸쳐 생물 종인 우리와 함께 해 왔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정말 발명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노래하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노래하기는 부산물일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단지 악기를 만들거나 치즈 케이크를 만드는 것보다 전제 조건들이 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치즈 케이크는 최소한 농경 문화가 전제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음악과 관련해, 저는 여전히 왜 리듬과 멜로디를 생산하는 능력이 생존 자손의 수를 증가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논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성선택 이론은 합당하지 않다고 보는데, 그 이론은 믹 재거의 진화에 대한 이론이기 때문입니다. 음악의 진화에 대한 이론일 수 없습니다. 99.99퍼센트의 음악가들이 믹 재거는 아닙니다. 대부분 많은 팬들을 거느리지 않죠. 그들은 여가 시간에 10살배기에게 트럼본을 가르치는 사람처럼 그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음악이 이들의 성적인 매력을 딱히 높여 주지는 않습니다.

 

음악 진화에 대한 다른 이론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수님이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음악이 생물학적 적응이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마치 그것이 음악에 존엄성, 또는 특별함, 또는 가치를 추가로 부여해 준다고 생각해서인데, 이 또한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치 있게 여겨야 하는 것은 적응이 아니며, 그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은 반드시 적응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문자 언어가 적응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죠. 너무 최근에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학습으로 자연스럽게 늘지도 않습니다. 오직 소수의 문화에만 문자 언어가 있었고 또 다른 문화로까지 전파됐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적응이 아닙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인류가 이룩한 가장 아름다운 성과들 중의 하나입니다. 문학, , , 과학적 이론, 서신, 이 모두가 생물학적 의미에서 적응의 산물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은 매일의 삶 속에서 적응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는 생물학자가 이야기하는 적응이 아닙니다.

 

반면에 적응이라고 볼 수 있으나 매우 달갑지 않은 것들도 존재하는데, 예를 들어 보복, 대학살, 강간과 같은 것들을 적응으로 설명하는 우수한 다윈주의적 논거들이 존재하지만, 이들 모두 근절시키고 싶은 것들입니다. 저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첫째, 생물학적 의미에서 적응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바람직하다는 보장이 없고, 그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째로, 어떤 것이 적응인지를 판별하기 위한 엄중한 기준이 필요하고, 개인적으로 음악에 대한 타당한 논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최재천: 최근 당신은 『글쓰기의 감각(Sense of Style)』이라는 책을 썼죠. 그런데 영어로 글을 쓴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어 글쓰기의 기본(The Elements of Style)』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 겁니다. 그 책이 생각나던데, 혹시 그 책을 대체하고 싶은 것인가요? 아… 이건 그냥 농담입니다.

 

어쨌든 한편으로는 언어학자가 영어 글쓰기에 대한 책을 쓴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습니다. 반면에 당신은 왜 굳이 이런 책을 썼을까요? 그리고선 생각했죠. 에디 라이트도 소설가이고 스트렁크도 영문학 교수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글은 어떻게 써야 하며 영어라는 언어를 구사하는 적절한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언어학자가 책을 쓰지 못할 이유가 있겠어요? 그러다 또 생각했죠. 잘못된 문장과 표현들을 읽는 것이 정말 지긋지긋해졌음이 틀림없다라고 말입니다. 나도 한국어에 있어서 그렇거든요. 이 이유가 맞나요?

 

 

핑커: 강간, 종족 학살, 세계 대전, 대학살에 대한 책을 쓰고 났더니, 분리 부정사처럼 좀 논란이 되는 주제로 전환하고 싶었습니다.

 

 

최재천: 지금 분리 부정사가 이 책의 주제보다 논란이 된다는 건가요? 알겠습니다.  

 

 

핑커: , 농담 좀 해 봤습니다. 사실 글쓰기와 문법의 정교한 측면들에 있어 사람들이 실제로 격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제가 가진 두 개의 전문적인 관심사를 결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중 하나가 언어 심리학입니다.

 

문장이 쉽게 읽히거나, 또는 기억에 부담을 주도록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문장이 이해하기에 분명하고 쉽거나, 또는 혼란스럽도록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언어의 규칙들은 어떻게 작용할까? 문장을 문법적, 또는 비문법적으로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교수가 비문법적이라고 지적하는데, 정작 저는 그 문장에서 아무런 하자도 찾지 못할 때, 누가 옳은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이들은 모두 언어, 그리고 언어 연구에 관한 이슈들입니다.

 

동시에 대부분의 학자들과는 다르게 저는 학술 저널에만 기고하는 것이 아니라 폭넓은 대중을 위한 책도 쓰면서 영역을 넘나듭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교수로서 습득한 많은 나쁜 습관들을 잊어야 했습니다. 저널에 기고하기 위해 아무도 읽고 싶어하지 않는 과학 논문을 쓰던 것에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으로의 전환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나쁜 글쓰기와 좋은 글쓰기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는데, 이러한 고민이 언어의 작용에 대한 저의 관심사들과 만난 것이죠. 그래서 이 책은 언어심리학자이면서 동시에 폭넓은 독자층에 다가가기를 좋아하는 저에게 좋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했습니다

 

 

최재천: 저는 신문에서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라고 하는 칼럼을 하나 쓰고 있습니다. 2 주전에 365번째 칼럼을 썼어요.

 

 

핑커: , 축하합니다.

 

 

최재천: 주간 칼럼이니까, 지난 7년간 그 칼럼을 써 왔다는 뜻이죠. 거기서 저는 제가 이 짧은 신문 칼럼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토록 오랫동안 칼럼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충분히 이른 시점, 즉 데드라인 3, 4일 전에 쓰는 것이라고요. 그러고 나서는 소리 내서 읽기 시작합니다. 아마 50번 이상은 읽을 거에요. 그리고 계속 수정해나가죠.

 

 

핑커: 맞아요, 맞아요.

 

 

최재천: 잘못된 표현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떤 면에서 저의 글은 저의 아들보다도 더 소중하고 위험하다고나 할까요. 적어도 제 아들은 난 최재천의 아들입니다, 이름표를 달고 돌아다니지는 않거든요. 하지만 글에는 제 이름이 남습니다. 제가 죽고 나서도 여전히 존재할 거에요. 그래서 완벽하지 않은 글을 세상에 내보내도 싶지 않습니다. 짧은 에세이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죠. 잘 하고 있는 건가요?

 

 

핑커: 그럼요. 제가 글을 쓰는 방식도 같아요. 사람들마다 서로 방식이 다른데, 신문 칼럼니스트의 경우에 앉아서 뚝딱뚝딱 타이핑하고 보내면 끝, 곧바로 게재해 버리는 칼럼니스트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방식이 맞지 않고, 당신도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저는 교정을 반복, 또 반복 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제가 내용을 제대로 쓰고, 주장을 논리적으로 개진하고, 사실 확인을 명확하게 하면서, 동시에 명확하고 짧고 쉽게 읽히도록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주제가 확실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글쓰기에 주의를 기울일 차례인데, 최대한 좋은 글을 써보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의 경우 오로지 글쓰기만을 생각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또 여러 번 원고를 고치는 과정을 거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생각해요.

 

 

최재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해 주시고, 또 이 모든 흥미로운 이슈들에 대해 어떻게 사고할지를 알려주기 위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핑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스티븐 핑커와 최재천 교수. 사진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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