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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오펜하이머」 N차 관람 가이드

Editor! 2023. 8. 31. 16:14

2023년 8월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오펜하이머」로 뜨거웠습니다. 8월 30일 현재 250만 가까이의 관객이 3시간짜리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고, N차 관람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주)사이언스북스에서도 이 바람에 동참하고자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영화를 함께 보고, 과학학 전문가인 옮긴이와 원작을 함께 읽는 “「오펜하이머」 함께 보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다시 읽기”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한국어판의 번역자 최형섭 서울과기대 교수님, 과학 큐레이터 강양구 TBS 기자님과 함께  과학과 역사, 정치와 윤리를 아우르는 오펜하이머의 서사를 영화 안팎으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행사 시작에 앞서 최형섭 교수님께서는 영화와 책을 생생하게 비교하는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영화를 아직 안 보신 분, 책을 아직 안 읽으신 분 모두 예습과 복습에 도전하실 때에도 좋은 내용입니다.


스트로스는 왜? 오펜하이머는 왜?

“오펜하이머 박사님! 오펜하이머 박사님! 당신을 만나기 위해 수십 년을 기다렸습니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의 저자 카이 버드가 뉴멕시코 주의 영화 「오펜하이머」 촬영장에서 로버트 오펜하이머로 분한 킬리언 머피를 만난 후 내뱉은 첫 마디라고 한다. 지난 8월 11일 영화 시사회장에서 상영이 시작되자 커다란 화면 속에서 오펜하이머가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영화는 숨가쁘게 진행되어 3시간이라는 러닝 타임이 전혀 길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펜하이머의 깊고 푸른 눈동자는 역시나 매력적이었고, 개봉 전부터 모두가 기대했던 원자 폭탄 실험 장면은 기대 이상이었다.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 미국 포모나 칼리지에 있는 멕시코 화가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의 벽화.

 

영화는 원작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 제시한 서사를 충실하게 따라간다. 첫 장면부터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언급한 것은 인류에게 불을 전해 준 죄로 영겁의 세월 동안 절벽에 매달려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고통을 당하게 되는 오펜하이머의 “영광과 비극(triumph and tragedy)”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의도를 명시적으로 보여 준다. 영화는 2개의 청문회와 두 주인공의 회고를 교차시키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1954년에 열린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AEC) 보안 청문회이다. 이 청문회는 오펜하이머의 비밀 취급 인가를 갱신할 것인가가 쟁점이었는데, 미국에 대한 그의 충성심에 의문을 제기했다. 청문회장에서 오펜하이머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 행적을 되짚어 보게 되는데, 오펜하이머의 회고는 컬러로 표현된다. 

 

두 번째는 1959년에 열린 미국 상원 상무 위원회 청문회이다. 이 청문회는 전 AEC 의장인 루이스 스트로스(번역본에서는 외래어 표기 용례에 따라  “스트라우스”라고 표기했지만 극중에서 그는 “스트로스”로 발음해 달라고 한다.)를 상무부 장관 임명을 승인할 것인지가 쟁점이었다. 흑백으로 표현된 스트로스의 회고는 오펜하이머의 회고와 격렬하게 충돌하며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1954년 청문회로 오펜하이머는 비밀 취급 인가를 박탈당했고, 1959년 청문회로 스트로스의 상무부 장관 비준은 부결되었다. 두 주인공은 추락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 속에서 치열하게 과거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고, 감독은 그들의 시선을 빌려 자신의 서사를 섬세하게 엮어 낸다.

 

 

1953년 7월 2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AEC 의장을 맡으며 선서 중인 스트라우스(맨 왼쪽).

 

유태 혈통과 남부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하던 스트라우스는 자신의 성을 “스트로스(Straws)”로 발음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대단히 독선적이던 그는 다른 사람의 실수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기억했고, 그것을 “기록용” 파일에 세심하게 기록했다.-『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에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영화 「오펜하이머」는 원자 폭탄 개발 과정뿐만 아니라, 20세기 지식인으로서 오펜하이머의 삶과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냉전기에 들어서면서 미국 사회가 겪은 혼란스러운 과정을 다룬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국과 소련은 연합국으로 동맹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자유 세계”는 충돌을 일으키게 되고, 곧 냉전 경쟁의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정치적 사상의 지형이 급박하게 변화하는 와중에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사상에 친화적이었던 사람들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전쟁 이전에는 순수하게 사회주의를 지지했던 진보적 지식인들이나 인도적인 차원에서 스페인 내전을 지원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미국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존재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오펜하이머 역시 이와 같은 ‘매카시즘’ 광풍에 휩쓸려 나락으로 떨어지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오펜하이머 정도의 사회적 위치에 있는 인물을 추락시키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사회에서 과학자, 특히 물리학자의 위상은 급격하게 상승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인류가 처음으로 과학의 위력에 재갈을 채워 의도적으로, 짧은 기간 내에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강력한 군사 무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한 첫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비교를 위해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 대전을 생각해 보자. 이때에는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화학 무기를 개발해 참호전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원자 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나 레이더 개발을 위한 MIT 방사선 연구소처럼 대규모 조직을 이용한 무기 개발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더구나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에서는 당대 최고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해군 자문 위원회(Naval Consulting Board)를 조직해 첨단 무기를 만들기 위해 전방위로 노력했지만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실정이었다. 1920년대의 물리학자들은 양자 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을 개척하면서 빛이 입자인가 파동인가,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는가 등 현실 세계와는 동떨어진 철학적 논의에 심취한 사람들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20여 년이 지나자 물리학자를 중심으로 한 과학자 공동체는 적 비행기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레이더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양자 역학의 원리를 이용한 강력한 폭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물리학자는 미국 사회의 영웅으로 대접받았고, 오펜하이머는 그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영화에서도 오펜하이머가 《타임》 표지 모델로 등장한 1948년 11월 8일자 잡지가 슬쩍 등장하기도 한다.)

 

 

《타임》 1948년 11월호 표지에 게재된 오펜하이머(왼쪽)와 《피직스 투데이》1948년 5월호 표지에 실린 오펜하이머의 중절모(오른쪽).

 

《라이프》는 물리학자들이 이제 “슈퍼맨 옷”을 입은 듯하다고 비평했다. 오펜하이머는 이와 같은 찬사에 익숙해졌다. 그는 마치 지난 2년 반 동안 메사 위에서 새로운 역할을 준비하는 훈련을 받은 것 같았다. 그는 과학자-정치가로 탈바꿈했고, 심지어 시대의 우상이 되었다. 파이프를 피우고 중절모를 쓰는 등 조금은 가식적인 그의 행동들조차 곧 전 세계에서 알아보게 되었다.-『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

 

 

맨해튼 프로젝트 성공 이후 오펜하이머의 “영광”은 그의 “비극”을 예비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 영웅이 최고점에 도달했을 때 갖게 되는 자만심(hubris)이 그의 추락으로 이어진다는 스토리는 영웅 서사의 클리셰이기도 하다. 오펜하이머 역시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상황을 과신했다. ‘원자 폭탄의 아버지’를 누가 감히 어찌할 수 있으랴? 누구든 오만함에 빠지는 순간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오펜하이머의 실수는 원자력 관련 기술적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보안 조치들이 무의미하다는 자신의 믿음을 피력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관계 인사들을 조롱하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조롱의 대상이 된 사람 중 한 명이 루이스 스트로스였다. 

 

금융계 사업가 출신으로 1947년에 AEC 위원으로 임명된 스트로스는 보수적인 정치관을 바탕으로 원자력 문제를 바라보던 인물이었다. 그는 의료 연구 목적으로 방사선 동위 원소를 해외로 반출하는 것이 ‘핵 독점’을 유지한다는 미국의 이익에 해롭다고 믿었다. 이에 대해 오펜하이머는 스트로스의 입장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핵물리학 연구를 전혀 모르는 문외한으로 취급했다. 이것이 스트로스가 오펜하이머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스트로스는 치욕을 잊지 않고 오펜하이머를 끌어내릴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렸고, 1954년에 비로소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오펜하이머가 자만심을 내려놓고 조금 더 겸손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면 몰락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오펜하이머의 사람들

 

패트릭 블래킷.

 

(주)사이언스북스의 책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영화 「오펜하이머」에 등장하는 여러 과학자들의 모습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케임브리지 시절 지도 교수였던 패트릭. 블래킷이 오펜하이머를 괴롭히는 ‘괴수’로 잠깐 등장한 것은 아쉽다. (오펜하이머가 청산가리를 주사한 사과를 먹이려 한 지도 교수 말이다.) 블래킷은 입자 물리학 실험의 대가로 안개 상자와 우주선을 이용해 질소 입자의 분해 현상을 해명한 공로로 194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이듬해인 1949년 출간된 『두려움, 전쟁, 그리고 폭탄(Fear, War, and the Bomb)』을 통해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 투하를 결정한 것은 군사적 목적이라기보다는 소련의 만주 진격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전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외교적 판단이라는 논쟁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지도어 라비.

 

오펜하이머를 보듬어 주는 유태인 동료 물리학자인 이지도어I. I. 라비는 핵 자기 공명 현상의 발견으로 194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전쟁이 끝난 후 모교인 컬럼비아 대학교로 돌아가 여생을 마쳤다. 영화 속에서 라비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표현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먹을 것을 건네주는 다정한 친구라니!

 

 

에드워드 텔러.

 

에드워드 텔러 역시 상당히 비중 있는 역할로 등장한다. 헝가리 출신의 물리학자인 텔러는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부터 열핵(thermonuclear) 폭탄, 즉 수소 폭탄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수소 폭탄 개발을 주도하게 된다. 텔러는 AEC 보안 청문회에서 동료 과학자 중에서 유일하게 오펜하이머의 비밀 취급 인가를 갱신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이후 과학계에서 논란이 되었다.

 

 

리처드 파인만.

 

그 외에도 리처드 파인만은 봉고를 두드리는 모습과 트리니티 시험장에서 자동차 유리창이 자외선을 차단해 줄 것이라고 말하며 끝까지 폭발 장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모습으로 그려져 지시에 따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느낌을 준다.

 

 

닐스 보어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조반니 로마니츠이다. 버클리 시절 오펜하이머의 제자인 로마니츠는 대학원생 시절부터 공산당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과거 행적이 문제가 되어 전쟁 이후 더 이상 물리학자로 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생계가 곤란한 지경이 되어 철길 보수하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기까지 했다. 그 외에도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크고 작은 인물로 등장한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의 상당 부분은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 인용하는 사료에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오펜하이머가 공개석상에서 했던 발언은 물론이고 그에 대한 도청, 감청 기록이 녹취록으로 남아 있기 때 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가 1953년 강연에서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과 소련은 “유리병 속에 든 두 마리의 전갈”로 비유하며 “서로 상대방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러려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펜하이머의 이 강연 장면은 영화에도 등장한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수사(修辭) 전략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오펜하이머가 청문회장에서 스스로를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결혼 전 연인이었던 진 태트록과의 불륜이다. 아내인 키티를 배신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묵묵히 형벌의 길로 들어섰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하나는 원자 폭탄이라는 비윤리적 무기를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핵 기밀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솔직함’을 바탕으로 ‘국제적 통제’ 체제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수소 폭탄이라는 더욱 강력한 무기의 개발을 막아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그가 청문회장에 서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논리를 청문회장에서 어떻게든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오펜하이머의 몰락은 남편으로서, 그리고 과학자로서 가진 죄책감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양장본, 특별판

 

놀란 감독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거대한 핵 미사일이 도열한 장면과 그 모습을 허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오펜하이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것으로 선택한 것은 꽤 의미심장하다. 핵 군비 경쟁과 핵 확산을 막기 위한 오펜하이머의 고민은 오늘날 더욱 유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펜하이머의 삶과 철학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는 것은, 문제가 비교적 단순했던 핵 시대 초기에 이 문제에 대해 대응할 수 있었던 하나의 경로를 생각해 봄으로써 미래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를 계기로 로버트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이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영화를 본 이후 오펜하이머의 삶과 철학에 대해 관심이 생긴다면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영화에서 빼놓을 수밖에 없었던 디테일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기를 권한다. 오펜하이머와 꼭 닮은 킬리언 머피의 내면 연기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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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섭

과학기술사 연구자. 서울 대학교 재료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 공과 대학과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를 공부했다. 2007년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과학기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 대학교 공과 대학을 거쳐 2015년부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융합교양학부 교수로 있다. 2019년 「정원 속의 수입기술: 경운기와 한국 농업 근대화」로 26회 한국과학사학회 논문상을 받았다. 한국 현대사 속의 과학과 기술의 모습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 『처형당한 엔지니어의 유령』 등을 우리말로 옮기고 『한국 테크노컬처 연대기』(공저), 『그것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 일상을 만든 테크놀로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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