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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Editor! 2023. 11. 10. 10:40

1934년 11월 9일은 칼 세이건의 탄생일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건너온 유태인 소시민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새뮤얼 세이건은 현재 전화에 휩싸인 우크라이나에서 다섯 살 때 미국으로 건너왔고, 어머니 레이철 몰리 그루버는 아버지 때 우크라이나에서 건너온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이렇게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세이건은 어떻게 위대한 천문학자가 되었을까요? 그 비밀을 세이건은 자신의 책 곳곳에 숨겨 두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첫 번째 과학 스승으로 무학(無學)의 부모님을 꼽습니다. 칼 세이건의 탄생일을 기념해서 그 이야기를 잠시 함께 읽어 보면 어떨까요.


 

 

책을 시작하며: 나의 스승들

 

 

1939년 바람이 무섭게 부는 가을 저녁이었다. 나는 아파트 창문으로 거리를 보고 있었다. 낙엽이 거리를 굴러가고 있었다. 옆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저녁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와 함께 따뜻하고 안전한 집 안에 있다는 게 참으로 평안했다. 나는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1주일 전 누군가와 싸웠던 일을 다시 생각했다.

 

우리 아파트에는 아무 이유 없이 나를 괴롭히는 나보다 나이 많은 아이가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대체 누구와 싸웠는지도 불분명하지만 그것은 아마도 3층에 살던 스누니 아가타(Snoony Agata)였을 듯싶다. 나는 정신없이 팔을 흔들다가 셱터(Schechter) 씨가 하던 잡화점의 유리창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셱터 씨는 아주 쓰라린 소독약을 내 손목에 난 상처에 발라 주면서 걱정 마라. 보험에 들어 놨거든.”이라고 말해 주었다. 어머니는 나를 아파트의 1층에서 개업 중이던 의사에게 데리고 갔다. 의사는 핀셋으로 유리 조각을 뽑아내고 두 바늘 꿰맸다.

두 바늘이라고!” 그날 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했다. ‘꿰매는일이라면 아버지의 전문이었다. 옷감 재단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전동 커터로 천을 형지(型紙)대로 재단해 부인용 코트나 정장의 안감이나 소매를 만드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재단한 옷감은 재봉틀 앞에 나란히 앉은 여성들에게 보내졌다. 나는 천성적으로 얌전하고 내성적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감정 폭발이었다. 아버지는 그게 즐거우셨던 모양이다.

 

되갚아 준다는 것도 때로는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내가 일부러 난폭하게 군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때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스누니에게 밀리다 못해 셱터 씨의 유리창에 주먹을 날렸다. 나는 유리창을 깨고 손목을 다치고 병원 치료를 받느라 부모님에게 예상 못 한 지출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를 꾸짖거나 하지 않았고 스누니도 전보다 친절해졌다.

 

뉴욕 만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런 식으로 1주일 전의 싸움을 회상했고 거기에서 무언가 교훈을 끌어내려고 했다. 그래도 밖에 나가 거리에서 또 무슨 짓을 새로 저지르는 것보다는 따뜻한 집 안에서 이것저것 생각하는 게 더 마음 편했다.

 

저녁 준비를 마치신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며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렸다. 해가 지려 하자 어머니와 나는 창가에 나란히 서서 거친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 바다 너머에서는 사람들이 싸움을 벌이고 서로 죽이고 있단다.”

 

어머니는 바다 너머를 막연하게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씀했다. 나는 눈을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 알아요. 보이거든요.” 나는 대답했다.

 

아냐, 안 보여.” 어머니는 말을 잘랐다. “너무 멀거든.” 그리고 부엌으로 돌아갔다.

 

내가 볼 수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어떻게 알았을까?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수평선 위에 아주 가늘게 대지가 보이고 그 위에서 아주아주 작은 사람들이 서로 밀고 밀리면서 칼을 휘두르며 싸우는 게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비슷한 그림을 만화책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말씀이 맞을지도 몰랐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일지도. 밤이 되면 어쩌다 한 번씩 나타나 나를 깊은 잠에서 깨우는 괴물들처럼 말이다. 괴물 때문에 잠을 깨면 나는 땀으로 범벅이 되고 심장은 쿵쾅쿵쾅 격렬하게 뛰었다.

 

누군가가 하는 이야기를 그저 상상일 뿐이라고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날 밤 나는 손을 씻고 와서 밥 먹어라 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회색 바다 너머를 계속 바라보았다. 돌아온 아버지는 나를 안아 올렸다. 하루치 자란 아버지의 수염을 통해 차가운 바깥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

 

같은 해의 어느 일요일 아버지는 내게 숫자와 관련해 이것저것 가르치고자 했다. 자릿수를 나타내는 데 0을 쓴다는 것이나 자릿수가 큰 수가 가진 기묘한 이름들이나 수에는 상한이 없다는 것(아버지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수든 1을 더할 수 있거든.”)을 끈기 있게 설명하려고 했다. 나는 문뜩 1부터 1,000까지의 정수를 순서대로 적고 싶어졌다. 집에 계산용 용지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얇은 판지 다발을 찾아왔다. 세탁소에 맡긴 옷에 붙이는 판지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던 것이다. 나는 바로 계획에 착수했다. 하지만 일은 지지부진, 생각만큼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겨우 200인가 300까지 적고 나니, “벌써 늦었어. 씻고 자라.”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을 다 못 끝내 아쉬웠다. 그때 아버지가 언제나처럼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씻고 오면 그동안 당신이 이어서 하고 있겠다고 했다. 나는 정말로 기뻤다. 씻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900 직전까지 진행해 놓고 있었다. 그 덕분에 취침 시간을 아주 조금만 늦추고 나는 1,000까지 다 적는 데 성공했다. 큰 수란, 정말로 크구나! 이때 받은 감명을 나는 평생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역시 1939년의 일이다. 부모님은 나를 뉴욕 세계 박람회에 데리고 갔다. 과학과 첨단 기술이 가능하게 해 줄 완벽한 미래 세계가 거기 있었다. 당시의 공산품 등을 채워 넣은 타임캡슐을 묻는 행사도 있었다. 머나먼 미래의 사람들은 1939년에 우리가 살았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박람회가 제시하는 내일의 세계(World of Tomorrow)’는 단정하고 청결하며 유선형이 지배하는 세계였고, 가난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소리를 보다(See Sound)’라는, 의표를 찌르는 듯한 주제의 전시가 있었다. 굽쇠를 작은 망치로 두드리면 아름다운 정상파가 오실로스코프의 스크린을 지나갔다. ‘빛을 듣다(Hear Light)’라는 전시물도 있었다. 광전지에서 섬광이 나오면 모토롤라 사의 라디오에서 잡음 같은 게 흘러나왔다. 이 세상에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경이가 있었던 것이다. 소리가 화면이 되고 빛이 잡음이 되다니!

 

부모님은 과학자가 아니었다. 과학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 편이었다. 그래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과학적 방법의 중핵이 되는 두 가지 사고 방식, 그러니까 경이와 의심이라는 서로 툭탁대면서도 어떻게든 동거하는 두 가지 사고 방식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내가 천문학자가 되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찬성해 주었다. 두 분 모두 천문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지도 거의 몰랐으리라. (하긴, 나도 잘 몰랐다.) 그렇지만 두 분 중 누구도 의사나 변호사가 되는 게 현명하지 않겠냐 하고 결코 묻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만난 멋진 과학 선생 이야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사실 그런 선생은 한 사람도 없었다. 과학 시간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암기한 기억밖에 없다. 원소 주기율표, 요철이나 사면의 문제, 광합성, 무연탄과 역청탄의 차이 등등. 반대로 가슴 떨리는 경이를 경험하거나 사물을 진화론적으로 사고해 보거나 과거에는 이렇게 잘못된 생각도 했었다는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실험 시간에는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실험만 할 수 있었다.

 

그 결과를 내지 못하면 감점을 당했다. 스스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탐구해 간다든가, 직관적으로 얻은 아이디어를 검증해 본다든가, 잘못된 개념은 어디가 틀린 것인지 생각해 본다든가 하지 못했을뿐더러 그래 보라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물론 교과서 후반부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도달하지 못한 채 학년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도서실에 가면 훌륭한 천문학 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실에는 없었다. 호제법 수업을 할 때면 미숙한 요리사가 요리책을 따라 하듯 어딘가 엉성하게 이루어졌다. 나눗셈과 곱셈과 뺄셈을 이렇게 저렇게 하면 짜잔 하고 답이 나오는데, 그 이유나 원리가 무엇인지는 들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제곱근을 구하는 방법을 배웠는데, 마치 시나이 산에서 받은 십계명을 대하는 것처럼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풀지 않으면 큰일 나는 듯 배웠다. 정답만 맞히면 되고 무엇을 하는지는 몰라도 상관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아주 우수한 대수 선생이 있어 그로부터 수학을 잔뜩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선생은 여자아이를 괴롭히고 나서 기뻐하는 성격을 가진 이였다. 그런 시절을 보냈음에도 내가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은 것은 논픽션이든 픽션이든 과학 관련 잡지를 읽은 덕분이다.

 

내 꿈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야 이루어졌다. 대학에는 과학에 대해 스스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설명할 수 있는 선생들이 잔뜩 있었다. 나는 운 좋게도 당시 학계에서 최고의 도량이었던 시카고 대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소속되어 있던 학과의 중심에는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1901~1954)가 있었다.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Subrahmanyan Chandrasekhar, 1910~1995)는 수학적 우아함의 진수를 가르쳐 주었다. 화학과 관련해서는 해럴드 클레이턴 유리(Harold Clayton Urey, 1893~1981)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여름에는 인디애나 대학교의 허먼 조지프 멀러(Hermann Joseph Muller, 1890~1967) 밑에서 생물학을 배웠다. 또 행성 천문학 분야는 당시 유일한 전문가였던 제러드 피터 카이퍼(Gerard Peter Kuiper, 1905~1973)의 사사를 받을 수 있었다.

 

카이퍼로부터는 많은 것을 배웠는데, 무엇보다 봉투 뒷면을 가지고도 가능한간단한 계산 비법이 있음을 가르쳐 준 게 바로 그였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해 보자. 그리고 이 문제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고 해 보자. 그러면 버리지 않고 남겨 둔 오래된 봉투를 꺼내 뒷면에 근사적인 수식을 적어 넣는다. 기초 물리학만 이용해 만든 개괄적인 식일수록 좋다. 그 식에 그럴듯한 수치들을 대입하고 대략적인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한다. 만약 나온 결과가 엉뚱한 것이라면 그 봉투는 버려 버리고 새로운 설명 방식을 궁리해 본다.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른 봉투를 꺼내 수식을 적어 본다. 이렇게 하면 바보 같은 아이디어를 쉽게 버릴 수 있다.

 

시카고 대학교 시절 만난 또 다른 행운은 로버트 메이너드 허친스(Robert Maynard Hutchins, 1899~1977)가 고안한 일반 교육 프로그램을 들은 것이다. 그 교양 교육 프로그램에서 나는 인류가 이제까지 짜 온 지식이라는 고귀한 태피스트리에 관해 배울 수 있었고, 그 태피스트리에서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향상심에 불타는 물리학자가 플라톤(Platon, 기원전 427/424~348/347)이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기원전 384~322),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1794), 브로니스와프 카스페르 말리노프스키(Bronisław Kasper Malinowski, 1884~1942),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를 몰라서야 하겠느냐는 이야기도 이 강의에서 들었다. (앞에서 든 예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과학의 입문 강좌에서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했던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eos, 100?~170?)의 우주관이 아주 설득력 있는 형태로 제시되었다. 그래서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 편을 드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나올 정도였다. 허친스의 커리큘럼에서 강사들의 학내 지위는 연구 내용과 거의 관계가 없었다. 오늘날 미국 대학의 표준과는 달리 강사들은 다음 세대에게 얼마나 많은 지식을 전수했고 다음 세대를 얼마나 많이 고무했는가로 평가받았다.

 

이 들뜬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때까지 받은 교육에서 빠진 부분들을 상당히 보충할 수 있었다. 수수께끼라고 여겨지던 것의 베일이 벗겨지고 과학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의 정체도 대략 알게 되었다. 우주의 구조를 다소나마 밝히는 일에 참여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사람들이 커다란 기쁨을 얻는 광경도 직접 볼 수 있었다.

 

대학에 다닌 1950년대, 나는 훌륭한 스승들의 가르침과 인도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은 적이 없고, 그 마음을 그들 한 분 한 분에게 전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아 왔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인생을 돌아보고 생각하건대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 준 것은 학교 선생도, 대학의 교수도 아니었다. 이제 아주 오래전이 되어 버린 1939년이라는 해에 나는 암흑 속에서 더듬더듬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최초의 도움을 준 것은, 다시 말해 어둠을 밝힐 촛불이 되어 준 것은 과학은 하나도 몰랐던 부모님이었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 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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