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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의 희망에 스며들다: 『희망의 책』을 옮기고 나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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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의 희망에 스며들다: 『희망의 책』을 옮기고 나서

Editor! 2023. 7. 11. 17:30

5년 만에 한국을 찾은 제인 구달 선생님의 최신작인 『희망의 책(The Book of Hope)』이 나왔습니다. 지난 7월 7일 저녁 7시 이화여대 대강당을 가득 메운 청중들에게 가장 먼저 선보인 이 책에는 『기쁨의 발견(The Book of Joy)』의 저자 더글러스 에이브럼스가 제인 구달 선생님을 만나 나눈 대화가 담겨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아프리카 곰베 제인 구달의 자택에서 시작된 이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킨 인터뷰이의 개인적인 비극으로 갑자기 중단되기도 하고  전 세계적인 봉쇄 때문에 기약없이 미뤄지기도 했지만, 끊기지 않고 계속되어 책의 형태로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랜 외로운 외침에 지치고 지쳤을지도 모를 희망의 메신저와 희망이란 부질없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의심하던 인터뷰어 사이에서 희망이 업데이트되어 가는 생생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제인 구달이 최근 사반세기 가까이 외쳐 온 ‘희망의 이유’가 퇴색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 이 책은 희망의 의지를 다져야 하고, 다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쉼없이 전하는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변용란 선생님 역시 책에 실린 옮긴이의 글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간직하고도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를 담담하게 전합니다. 그 글을 (주)사이언스북스 블로그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더글러스 에이브럼스와 제인 구달 선생님의 만남. (사진 제공 Douglas Abrams)

 

이 세상에, 이 나라에, 이 사회에 과연 희망은 있을까 싶은 순간을 살면서 문득문득 마주한다. 혐오와 차별과 편견의 언어가 이토록 당당한 힘을 얻었던 적이 과연 또 있었던가? 놀라운 사건 기사 밑에 달린 댓글엔 종종 이런 극단적인 말도 보인다. “이 나라는 ○○○ 할 자격이 없다, 멸망이 답이다.”, “탈출만이 살길이다. 어딜 가도 혐오와 폭력이 판치는 여기보단 나을 것이다…….” 지구에 가장 해로운 생명체는 인간이므로 지구가 살기 위해선 인류가 멸종하는 수밖에 없다는 회의론자의 의견도 본 적 있다. 물론 그 전에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을 전멸시키지 않아야겠지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좌절과 절망의 구덩이에 파고들어 바닥을 긁으며 세상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 무렵 이 책을 만났다. 전 세계를 휩쓸던 감염병과 죽음의 위협은 손 씻기와 마스크만으로 막아내기 어려운 현실이었고, 연일 우울감에 휩쓸렸다. 사회가 점점 퇴보한다는 느낌 속에서 프리랜서로서 느끼는 회의와 자괴감도 깊어졌다. 대담자이자 내레이터인 더글러스 에이브럼스는 자신을 회의적인 뉴요커라고 묘사하는데, 대한민국 수도권에서 살아가 는 나 역시 그 사람 못지않게 회의적이고 비관적이기에, 제아무리 유명인이자 희망의 메신저인 제일 구달의 이야기라도 해도 금세 몰입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무슨 일이든 말로 하기야 쉬워도, 공감과 실천은 얼마나 어려운가.

 

하지만 제인 구달이라는 인물의 매력과 더불어 거침없는 희망에 대한 논의는 조금씩 습기처럼 나를 적셔 갔다. 늘 그러했듯이, 각 분야와 주제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며 보이는 제인 구달의 예리한 통찰력은 놀랍고 단호하다. 감동적인 이야기의 힘은 늘 크게 느껴 지지만, 무엇보다도 대담자 두 사람의 실제 경험과 내면의 토로가 오히려 큰 명분보다 위로를 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과 집필 계획이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중단되고 지연되었듯, 이 책의 번역 작업 역시 옮긴이 개인의 사정으로 오랜 난항을 겪었다. 그래서 절망과 좌절의 팬데믹 시기 직후에 한국 독자들에게 희망과 위로 안겨 주었어야 할 기회는, 나의 좌절과 방황으로 점점 늦어졌다.

 

 

줌(zoom) 회의를 준비 중인 제인 구달 선생님. (사진 제공 Ray Clark)

 

서글프게도 인간은 삶의 변화를 어느덧 몸으로 느끼는 시기를 꼭 겪게 되는 듯하다. 몸이든 마음이든 주변에 아픈 사람이 너무 많다 는 걸 느낀다. 얼핏 저주라고 느껴지는 ‘백세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의 DNA와 장기는 풍성한 영양 공급과 과학의 도움에도 막강한 건강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특히 마음의 병을 이겨내는 항체는 어떻게 해야 키울 수 있을까. 아이를 졸지에 잃고 의연하고 꿋꿋하게 잘 견뎌 내고 있다고 ‘믿었던’ 친구 하나는 결국 얼마 전 아이를 따라갔다. 그들이 왜 그런 길을 가야 했는지 남은 자들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원망과 안쓰러움에 가슴을 치는 아픔을 공유할 뿐이다.

 

존경을 자아낼 만큼 역동적인 활약을 지속해 온 제인 구달에게도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 남긴 역경과 힘겨운 시기는 있었으며, 그때 선생에게 가장 큰 힘을 준 건 반려 동물과 숲이었다. 놀랍게도 요즘 내게 숲과 자연은 삶을 버텨내는 힘을 주는 공간이고, 반려 동물 대신에 다정한 사람들이 곁에 있다. 예민하고 까칠하고 비관적인 나에게도, 그러니까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숲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연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대나무 칫솔을 쓴 지 좀 되었다. 플라스틱 칫솔이 발명된 이래 단 하나도 아직 썩지 않고 이 지구 어딘가에 쌓여 있다는 소름 돋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디 칫솔뿐인가. 수많은 일회용품과 썩지 않는 옷들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는 삶은 당연히 불편하다. 다소 평면적이고 불친절한 대나무 칫솔만 해도 인체 공학적인 모양새의 기능성 플라스틱 칫솔보다는 사용감이 비교되지 않을뿐더러, 잘 말려두지 않으면 금세 손잡이가 썩는다. 그래도 대나무와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 어진 그 칫솔이 훗날 땅속에서 생분해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불편함과 수고로움은 참기로 결심한다.

 

 

원숭이 인형 미스터 H와 함께 걷는 제인 구달 선생님. (사진 김흥구 © 사이언스북스)

 

 

어쩌면 희망에 매달리는 건 이런 태도와 비슷한 것 같다. 어려움과 불편함을 알지만, 나 하나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자괴감이 들지만, 어딘가 있는 나의 동지들을 믿고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믿고 계속해 나가는 끈기. 그리고 분노의 힘. 야생을 지키고 싶은 욕망. 지리산 봉우리를 깎아 골프장으로 만들려는 지자체와 개발업자를 막아내고, 바다에 핵으로 오염된 폐수를 버리려는 욕심을 저지해 자연을 지키고 싶은 분노와 힘. 종종 자본의 힘과 정치 논리는 정당한 분노를 억압해 퇴보시키지만, 역사상 결국 성난 사람들의 분노는 큰 흐름을 만들었다. 퇴보처럼 보이지만 세계는 분명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제인 구달의 말처럼 아직 완전히 늦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행동에 옮기는 걸 망설이지 말아야 할 때다.

 

희망(希望). ‘어떤 일을 이루거나 얻고자 기대하고 바람.’ 제인 구달의 희망이 곧 우리의 바람이기에 모두의 희망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기를 기대하고 또 바란다.

 


변용란

서울에서 나고 자라 건국 대학교와 연세 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했고 영어로 된 다양한 책을 번역한다. 옮긴 책으로 『시간여행자의 아내』, 『트와일라잇』, 『대실 해밋』, 『마음의 시계』, 『나의 사촌 레이첼』, 『오드리 앳 홈』, 『음식 원리』, 『호르몬 찬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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