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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 같은 원자, 물리학과 여자: ‘충돌의 여왕’ 입자 물리학자 김영기 시카고대 교수 초청 특강

Editor! 2019. 8. 19. 17:00

지난 7월 13일(토), 민음사 본사가 있는 강남출판문화센터 지하 2층 이벤트홀에서 세계적인 입자 물리학자 김영기 교수님 초청 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현재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학과장, 미국 물리학회 입자 물리학 분과장, LHC(대형 강입자 충돌기) ATLAS 실험 그룹 FTK 위원장이며 도쿄 대학교, 카블리 우주 물리학 및 수학 연구소 수석 연구원, 미국 예술 아카데미 회원 등으로 활동하는 김영기 교수님은 미국 최대의 물리학 연구 기관 중 하나인 국립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 부소장을 지낸 세계 입자 물리학계의 거물 중 거물입니다. 실험 입자 물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리더로 활발히 활동 중인 김영기 교수님을 모시고 들어본 흥미로운 입자 물리학의 세계를 여러분께 전합니다. 현장 스케치 기사는 프리랜서 라이터 신연선 작가가 작성했습니다.


 

양파 같은 원자, 물리학과 여자:

‘충돌의 여왕’ 입자 물리학자 김영기 시카고대 교수 초청 특강

 

 

강연하는 김영기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인기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 있네」로 유명한 과학 문화 기업 (주)과학과사람들의 대표 최진영 선생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김영기 교수님 초청 강연 제목은 “양파 같은 원자(An Atom as an Onion)”였습니다. 우주 만물을 이루는 “가장 작은 알맹이”를 탐구하는 입자 물리학이 마치 양파 껍질 까기와 같다는 의미인데요. 김영기 교수님은 “입자 물리학은 세상 모든 물체를 만드는 가장 작은 알맹이가 무엇인지, 그 알맹이들은 어떻게 결합해서 우리뿐 아니라 우주의 별, 물질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이야기한다.”라고 설명하며 입자 물리학이 지나온 길과 앞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입자 물리학의 숙제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양파 같은 원자” 강연 자료 첫 페이지.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알맹이는 무엇일까?

 

먼저 짚어본 것은 물리학의 여러 분과와 각 분과가 다루는 크기(스케일)의 차이였습니다. “어떤 크기의 물질을 연구하느냐에 따라” 분야가 조금씩 나뉘는데요. 우주부터 원자까지, 망원경부터 현미경, 그리고 가속기까지 각각 어떤 연관성과 차별점이 있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만물의 스케일과 그 스케일에 따른 물리학의 분과들.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과학의 한 분야인 물리학은 그 안에도 세분화된 분야가 많아요. ‘천체 물리’는 우주나 천체처럼 아주 큰 물질을 다루는 거죠. 멀리 있는 별을 보기 위해 망원경을 사용하고요. 사람 크기의 물질은 ‘고체/유체 물리’에서 다룹니다. 여기서는 사람의 맨눈으로도 볼 수가 있겠죠. 그보다 더 작은 세포 단위로 가서는 ‘생물 물리’에서 연구하는데요. 이럴 때는 현미경이 필요합니다. 흔히 아는 현미경이 빛을 사용하는 현미경이고요. 만약 그보다 더 작은 것, 바이러스 등을 연구한다면 전자 빔을 써서 보는 현미경을 사용해야 해요. 원자를 연구할 때, 즉 ‘원자 물리’에서 사용하는 것이죠. 원자보다 더 작은 핵을 연구하는 ‘핵물리’, 가장 작은 것을 연구하는 ‘입자 물리’ 등으로 갔을 때는 입자에 에너지를 많이 줘야 해요. 핵 물리나 입자 물리로 가면 성능이 아주 좋은 현미경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가속기가 하는 일입니다.”

 

간략히 물리학의 분야를 설명한 김영기 교수님은 “레고 블록으로 만들어진 레고 세상을 상상해 보자.”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을 레고 세상에 비유했습니다. 여기서 ‘레고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나?’라는 질문이 가능하겠죠. 이는 곧 ‘레고 세상을 만드는 가장 작은 알맹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레고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은 무엇일까요? 레고 블록이죠.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알맹이는 무엇일까, 무엇이 이들을 결합해서 이 세상이 만들어졌나, 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입자 물리를 하는 사람들의 과제예요.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는 무엇이 이 가장 작은 알맹이들을 결합시키는가 하는 것까지도 연구합니다. ‘힘’인데요. 어떤 힘들이 작은 알맹이를 뭉쳐서 모든 것을 만드는가 하는 것까지가 입자 물리의 과제입니다.”

 

이때 가장 작은 알맹이와 그 알맹이를 결합시키는 힘에 대한 관심이 우주의 시작이라는 미지의 순간과도 만납니다. 무엇이 가장 작은 알맹이이고, 어떻게 결합했는가를 아는 일은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영기 교수님은 “입자 물리를 통해 우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알게 된다면 우주의 미래까지도 예측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원자 역시 더 작은 알맹이로 이루어져 있다. 입자 물리학은 “양파 껍질 까는 것처럼 가장 작은 알맹이가 무엇인지 찾는 여정이다.”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양파를 까듯 원자를 까 보자

 

원자는 가장 작은 알맹이일까요? 김영기 교수님은 “마치 양파 껍질을 하나씩 벗겨서 제일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듯 원자의 속을 들여다보자.”라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원자’라는 말을 사용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를 소개했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약 2,500년 전에 ‘원자’라는 말을 시작했는데요. 이 말 자체가 ‘더 이상 깨질 수 없는’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말 속에 이미 ‘가장 작은 알맹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죠. 그런데 한참 후, 1897년이 되어서 J. J. 톰슨(190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 원자를 연구하다가 새로운 발견을 합니다. 금속에 열을 많이 가해 관찰했더니 금속 원자 안에서 많은 전자들(전자 빔)이 나온 것을 발견한 거죠. 이것들이 음전하를 띠는 것을 확인한 톰슨은 원자 안에는 양전하를 띠는 다른 물질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다시 말해, 원자에서 전자가 튀어나왔으니 원자는 전자와 양전하를 가진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톰슨의 원자 모형. 블루베리 머핀처럼 음전기를 띤 전자가 양전기를 띤 물체 속에 박혀 있다.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마치 블루베리가 박혀 있는 머핀이나 콩이 박힌 콩떡과 같은 이미지를 생각하면 어떨까요. 톰슨은 푹신하고 푸석한 양전하를 띈 물질 안에 전자가 블루베리처럼 박혀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이 상상으로 원자는 한 껍질을 벗은 셈인데요. 이 모델은 어니스트 러더퍼드(19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에 의해 다시 한번 껍질을 벗게 됩니다. 러더퍼드는 아주 얇은 금 포일에 ‘알파 입자 빔’을 쏜 후 결과를 관찰했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만약 톰슨 모델이 맞다면 알파 입자 빔은 원자를 그대로 통과했을 거예요. 워낙 양전하는 푸석하고, 전자는 아주 작으니까요. 그런데 실험을 해 보니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알파 입자 빔은 원자를 통과하지만 간혹 튕겨 나오기도 했어요.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실이었습니다. 러더퍼드는 “크리넥스 티슈에 발사한 총알이 다시 돌아와서 당신을 때리는 것만큼 놀라운 것”이라고까지 말을 했거든요. 당시의 놀라움을 짐작할 수 있겠죠.”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원자 까기” 실험. 원자핵의 존재를 발견해 냈다.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러더퍼드는 톰슨 모델이 말한 것처럼 원자에 양전하를 가진 물질이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원자의 중심에 아주 작은 씨 같은 것이 있고 그 씨가 양전하를 띠고 있을 것이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원자핵(nucleus, 핵)’이라고 부릅니다. 러더퍼드로 인해 원자가 또 한 번 껍질을 벗었군요. 이제 우리가 아는 ‘가장 작은 알맹이’는 원자가 아닌 원자핵과 전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1909년의 일입니다.

 

“원자에 따라 다르지만 핵은 원자 크기의 1만분의 1 정도이고요. 원자의 질량 대부분이 핵 안에 있습니다. 전자는 원자의 바깥 부분에서 궤도를 따라 돌고 있죠.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당시 ‘대성당의 파리’라는 말이 등장했는데요. 만약 원자 크기가 대성당의 크기라면 핵은 대성당에 있는 파리 한 마리의 크기라는 의미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성당 질량이 그 파리 한 마리에 들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진짜 놀라운 사실이에요.”

 

김영기 교수님은 여기서 가장 작은 알맹이와 우주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가 겹쳐지는 순간입니다.

 

“원자 안을 들여다보면 허허벌판이에요. 태양계를 상상해 보세요. 그 안에는 지구나 달도 있지만 태양계 전체를 생각하면 지구는 아주 작아요. 어떻게 보면 태양계 전체의 대부분은 허허벌판인 겁니다. 원자 내부와 태양계가 닮은 점이 꽤 많고요. 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가 이토록 닮았다는 사실이 참 재미있습니다.”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 원자 질량의 대부분이 집중되어 있는 자그마한 원자핵과 원자 부피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빈 공간, 그리고 그 주위를 도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가장 작은 알맹이로 인식되었던 원자가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졌다는 “짜릿한” 발견을 한 우리는 이제 원자핵 안쪽을 보아야 할 겁니다. “핵과 전자는 과연 가장 작은 알맹이인지, 더 작은 알맹이가 있는지”를 더 알아보고 싶었던 과학자들은 다시 원자핵보다 더 작은 알맹이를 발견합니다. 바로 양성자와 중성자였죠.

 

원자핵이 양파 까기의 끝이 아니었다. 원자핵을 쪼개 보니, 양성자와 중성자가 나왔다.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p는 양성자를 의미하고요. n은 중성자를 의미합니다. 1932년, 양성자와 중성자가 핵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밝혀져요. 가령 수소 핵은 양성자 하나로 만들어져 있고요. 헬륨은 보면 양성자가 두 개, 중성자가 두 개예요. 핵이 갖고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의 개수는 저마다 다르지만 양성자와 중성자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1932년부터는 그러니까 핵도 가장 작은 알맹이가 아니게 된 거죠. 이때부터 가장 작은 알맹이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로 알려지게 됩니다.”

 

탐구를 멈추지 않았던 과학자들. 이들의 양파 껍질 벗기기를 통해 가장 작은 알맹이의 주인공이 거듭 바뀌는 장면을 소개하며 김영기 교수님은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핵 물리학이 아주 번창했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핵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떤 성질을 갖는지까지 연구를 많이 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양파 마돈나’라고 불렸던 마리아 괴퍼트 메이어(196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를 소개했습니다.

 

“마리아 메이어는 “핵 속의 양성자와 중성자는 여러 층 궤도를 돌며, 핵은 여러 층을 가진 양파와 매우 흡사하다.”라고 말을 해서 별명이 ‘양파 마돈나’예요. 시카고 대학교 교수이기도 했는데요. 제가 현재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학과장예요. 여기서 마리아 메이어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물리학과 안에 전시도 만들고, 그의 이름을 딴 강당도 만들었습니다. 언젠가 시카고 대학교에 오시면 한 번 방문해 보세요.”

 

입자 물리학을 양파 까기에 비유해 ‘양파 마돈나’라고 불린 마리아 메이어 시카고 대학교 교수. 아래 사진은 시카고 대학교 내 마리아 메이어 전시 공간.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슈퍼슈퍼 현미경’, 가속기

 

자, 이제 양성자와 중성자의 껍질을 벗겨 볼 차례입니다. 더 작은 알맹이를 발견하는 짜릿함을 과학자들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김영기 교수님은 더 작은 알맹이를 찾기 위해 과학자들이 사용한 전자 현미경의 원리를 설명했습니다.

 

“태양에서 빛(광자)이 나오죠. 광자가 사물에 갔다가 우리 눈에 들어와서 우리는 보는 것이 가능한 겁니다. 눈을 일종의 검출기라고 볼 수 있는데요. 눈으로 볼 수 없는 작은 세포 같은 것은 어떨까요. 여기에는 광자 빔이 아닌 전자 빔을 쏘아서 봅니다. 전자 현미경은 전자를 먼저 만든 후에 전자들에 에너지를 줘서 운동을 시키고요. 그것을 세포에 쏘아서 관찰합니다. 우리 눈은 전자 빔을 못 보니까 전자를 볼 수 있는 전자 검출기를 만들어서 보는 원리죠.”

 

그렇다면 세포보다 더 작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까요? 전자 빔보다 더 성능이 좋은, 입자 빔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속기인데요. 김영기 교수님은 가속기를 “슈퍼슈퍼 현미경”이라고 지칭하며 가속기를 통해 입자를 보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최초의 입자 가속기인 사이클로트론을 발명한 어니스트 로런스. 193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다. 그가 발명한 가속기는 그 후 고도로 발전하며 기본 입자를 관찰하는 ‘슈퍼슈퍼 현미경’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원리는 비슷해요. 입자를 먼저 만들고, 거기 에너지를 많이 줍니다. 입자에 에너지를 많이 부여할수록 더 작은 입자를 볼 수가 있겠죠. 이때 입자 검출기를 만들어서 산란되는 입자들을 검출하고, 그 안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볼 수 있는 겁니다. 즉 가속기는 슈퍼슈퍼 현미경과 같은 거예요. 이는 약 90년 전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로렌스 교수가 발명했습니다. 이후 계속해서 새로운 가속기가 많이 만들어졌어요. 현재 가장 성능이 좋은 ‘슈퍼슈퍼 현미경’은 전 세계에 서너 개 정도 있습니다. CERN,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 일본 등에서 가동 중이고요. 각 가속기는 종류가 조금씩 다릅니다. 여러 가지 성능을 가진 가속기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전 세계의 주요 입자 가속기 연구소.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앞서 김영기 교수님을 실험 입자 물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리더 중 한 사람이라고 소개해 드렸는데요. 김영기 교수님은 오랫동안 이 가속기들 가까이에서 연구를 해 왔습니다. 한국에서 석사를 마친 후 미국으로 유학한 김영기 교수님은 로체스터 대학생 신분으로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일본의 KEK에서 연구를 했고요. 이후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2002년까지 교수로 지내며 국립 페르미 연구소에 있는 가속기로 연구를 했습니다. 2003년부터는 시카고 대학교로 옮겨 교수 생활을 하는 동시에 국립 페르미 연구소에서 부소장까지 지내며 2013년까지 연구를 계속했고요. CERN에는 2009년부터 연구자로 합류해 현재까지 연구를 진행 중이죠.

 

“제 연구 궤적이 이렇습니다. 처음 일본에서 연구를 했을 때는 당시 가장 고에너지 가속기가 그것이었어요. (둘레 3킬로미터) 박사 과정이 끝난 후에는 더 큰 고에너지 가속기가 페르미 연구소에 있어서 그곳으로 가 연구를 했고요. (둘레 6킬로미터) 지금은 가장 큰, 고에너지 가속기가 제네바에 있는 LHC인데요. (둘레 27킬로미터) 에너지가 더 높은 가속기를 따라서 연구를 했습니다.”

 

가속기의 성능이 진화할수록 그에 맞는 검출기도 필요할 겁니다. 지난 30∼40년간 몇 곳을 거치면서 검출기를 개발해온 김영기 교수님은 60여 명의 연구원들과 함께한 AMY 실험부터 700여 명과 함께한 CDF 실험, 40개국 3,00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한 ATLAS 실험까지 간략히 소개했습니다. 동시에 문화 다양성에 대한 의미 있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더 크고 더 높은 에너지를 내는 가속기들과 함께 성장해 온 김영기 교수의 연구 궤적.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저는 페르미 연구소의 CDF 실험에서 연구자가 600명 정도 됐을 때 총책임자로 있으면서 실험 그룹을 만들었어요. 연구자들이 수십 개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문화도 다 달랐죠. 제 경험으로는 다양한 문화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수록 훨씬 아이디어가 잘 나옵니다. 여성이 생각하는 것과 남성이 생각하는 것도 다를 수 있어요. 이것들이 같이 모여야 합니다. 자라온 환경, 배움의 방식 등이 다른 사람들이 모이면 더 좋은 결과가 나와요.”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의 부소장을 맡았던 시절을 소개하며 김영기 교수님은 잠시 하나의 마을처럼 운영되는 연구소의 이모저모를 살폈습니다. 약 4,300여 명이 모여서 생활하는 규모로, 어린이집과 소방서 등이 설치되어 있어 자치가 가능할 뿐 아니라 그곳에서는 버펄로 같은 동물까지 키웠다고 합니다.

 

강연하는 김영기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화면의 사람들은 김영기 교수의 공동 연구자들이다.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버펄로는 앞장서서 나아가는 선구자 이미지가 있죠. 페르미 연구소를 만들 때 우리도 누구보다 앞장서 갈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마스코트로 데리고 온 거예요. 버펄로는 주변 지역 주민들도 많이 와서 구경하곤 합니다. 물리학을 하는 사람들과 지역 사람들을 친밀하게 하는 좋은 연결점이 되는 것이죠.”

 

 

세상 만물의 가장 작은 알맹이, 쿼크

 

입자 물리학은 ‘가장 작은 알맹이’라는 양파 껍질을 어디까지 벗겼을까요? 이제 김영기 교수님과 입자 물리학의 현재를 살펴봅니다. 가속기를 통해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양성자와 중성자는 다시 ‘쿼크(quark)’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양성자는 2개의 업(up, 위) 쿼크와 1개의 다운(down, 아래) 쿼크로, 중성자는 1개의 업 쿼크와 2개의 다운 쿼크로 만들어져 있다는 게 밝혀졌죠.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정리해 보면 가장 작은 알맹이가 우리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개념은 2,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게 된 지식 수준이 달라진 것이죠. 처음에는 원자를 가장 작은 알맹이로 생각했다가 1910년대에 원자가 핵과 전자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요. 불과 20년 후인 1930년대에는 핵이 다시 그보다 훨씬 작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지금은 양성자와 중성자가 더 작은 알맹이, 업 쿼크와 다운 쿼크로 만들어져 있다고 알고 있죠.”

 

세상을 이루는 기본 입자들과 그 입자들을 결합시키는 기본 힘들.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또한 앞서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알맹이는 무엇일까?’에 더해 ‘무엇이 이들을 결합해서 이 세상이 만들어졌나?’라는 질문이 입자 물리의 과제라고 했는데요. 김영기 교수님은 이 작디작은 알맹이들을 결합하는 힘, 즉 약한 핵력(약력)과 강한 핵력(강력) 대해 설명했습니다.

 

“강력이나 약력 같은 힘은 두 물체가 멀리 있을 때는 작용하지 않는다고 봐도 됩니다. 좁쌀 크기, 물체 크기에서는 이 힘이 워낙 작아서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미약해요. 아주 가까이, 핵의 크기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있을 때 아주 강력한 힘이 되는데요. 약력이나 강력이 핵 안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뭉쳐 주는 겁니다. 또한 붕괴시키기도 하고요. 또 이 힘은 쿼크 입자들을 뭉쳐서 양성자나 중성자를 만들기도 합니다.”

 

김영기 교수님은 전자기력은 사람 크기에서 주를 이루며, 천체 크기 정도로 큰 규모에서는 중력이 주를 이룬다고 설명한 후 “자연에는 이렇듯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등 네 가지 힘이 있고 물체가 얼마나 가까이에 있느냐에 따라 영향을 달리 준다.”라고 말했습니다.

 

쿼크의 발견은 의미가 큽니다. 김영기 교수님은 “19세기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는 주기율표라고 생각한다.”라며 “20세기의 가장 큰 성취”를 업 쿼크와 다운 쿼크의 발견으로 꼽았습니다.

 

강연하는 김영기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주기율표에서 보듯 이 원자들 성질이 이렇게 다른데 그 안을 들여다보니 세 가지, 업 쿼크, 다운 쿼크, 전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죠. 원자마다 개수는 다르지만 결국 이 세 가지가 들어있다는 사실. 저는 이 발견이 20세기의 아주 놀라운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우주의 가장 초기 순간에 존재했던 입자들

 

김영기 교수님이 가속기의 원리를 설명하며 이를 ‘슈퍼슈퍼 현미경’으로 표현했었죠. 한편 가속기는 ‘반입자’를 만들어 냅니다. 반입자는 입자와 질량도, 성질도 똑같지만 전하가 다른데요. 이 반입자는 우주에는 거의 없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반입자는 우주에는 잘 없어요. 보이긴 하지만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가속기는 반입자를 모아서 거기에 또 에너지를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에너지의 입자 빔과 고에너지의 반입자 빔을 만들 수 있는 것이죠. 이 둘을 서로 충돌시킬 수도 있거든요. 충돌을 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입자들이 없어집니다. 입자와 반입자가 갖고 있던 에너지는 보존이 되는데 입자들은 없어져요.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에너지(E)는 질량(m)과 동등하다고 했잖아요. 이는 에너지가 크면 클수록 알맹이의 질량이 큰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질량이 큰 기본 입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이죠.”

 

입자와 반입자의 빔이 충돌하면 수많은 입자들이 만들어진다. 에너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에 따라 더 무겁고, 에너지가 더 높은 입자가 만들어진다. 이 입자들을 연구함으로써 빅뱅의 시점으로 가까이 갈 수 있고, 우주의 비밀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이제 입자 물리학을 통해 우주의 시작과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강의 첫 부분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고에너지 가속기를 이용해 우주 초기의 조건에 해당하는 입자 알맹이를 만들어 낸다면, 앞으로 우주가 어떻게 될지도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우주의 본질에 대해서 말이죠.

 

“빅뱅, 들어보셨죠? 우주의 가장 초기 순간은 점과 같이 작은 하나의 원자, 그러나 에너지는 엄청나게 많고 온도도 무척이나 높은 점이 폭발하듯 팽창한 건데요. 초기의 열로 우주가 팽창했지만 지금은 많이 식었어요. 지금 우주는 아주 온도가 낮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가속기를 통해 우주 초기에 있던 아주 질량이 큰 입자 알맹이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거예요. 이 입자 알맹이는 지금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고, 그 옛날 우주 생성 초기에만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초기인가 하면 우주 나이가 0.00000000001초일 때를 말하고요. 그때 있었던 입자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렇다 해도 우리가 우주 그 당시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 당시 있었던 입자 하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거든요. 우주 초기의 조건들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입자들은 금방 붕괴됩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검출기를 이용해 정밀하게 입자의 에너지, 성질 등을 분석합니다. “붕괴된 입자들을 다 조사하려면 한 가지 기술로는 안 된다. 여러 기술을 복합해야 검출된 입자들을 설명할 수 있다.”라는 김영기 교수님은 현존하는 여러 검출기들이 발견한 입자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양파 까기 같은 입자 물리학의 핵심 도구인 검출기 또한 양파처럼 여러 겹으로 이뤄져 있다. 검출기의 각 껍질마다 검출하는 입자들이 달라진다.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페르미 연구소에서는 3개의 입자를 발견했어요. 중성미자 중 하나와 보텀(bottom, 바닥) 쿼크, 톱(top, 꼭대기) 쿼크를 발견했는데요. 위 이미지에는 원의 넓이가 질량과 비례하도록 표현해 두었습니다. 오른쪽 상단에 노란 원으로 표시한 것이 수소 원자의 질량이라면 왼쪽에 있는 가장 큰 빨간 원, 톱 쿼크의 질량은 수소 원자 질량의 175배 정도 되죠. 질량은 이렇게 큰데 가장 작은 알맹이에요. (웃음) 유럽에서는 Z 보손, W 보손, 힉스 보손 등이 발견됐고요. 재미있는 것은 미국에서 발견된 입자들은 전부 1/2 스핀이에요. 한편 유럽에서 발견된 입자들은 스핀이 0 또는 1이죠. 스핀이 1/2인 입자를 ‘페르미온’이라고 하고요. 스핀이 0 또는 1인 입자를 ‘보손’이라고 하는데요. 우연하게도 모든 페르미온은 다 미국에서 발견되고, 모든 보손은 유럽에서 발견됐습니다.”

 

우주 초기에 존재했을 입자들이 발견되면서 과학자들은 이론을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김영기 교수님은 ‘표준 모형’을 위해서는 가장 작은 알맹이를 찾아 나가는 노력과 우주 초기 입자들을 발견하는 노력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김영기 교수는 “입자 물리학은 가장 작은 것과 가장 큰 것이 만나는 연구이며, 기본 요소와 초우 우주가 만나는 연구이고, 내부 세상과 외부 세상이 만나는 연구이다.”라고 말한다. 김영기 교수 강연 자료에서.

“19세기에 우리가 주기율표를 만들었듯 20세기에는 우리가 발견한 기본 입자들을 성질에 따라 표를 만들어 봤습니다. 단순한 표가 아니라 주기율표와 같이 어디에 위치했느냐에 따라 예측도 가능한, 여러 의미를 담은 표이고요. 표준 모형에 필요한 입자가 모두 발견이 되어서 이론이 완성되었는데요. 여기서 끝일까요? 끝이 없어요. 표준 모형은 완성됐지만 여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령 톱 쿼크와 전자의 질량을 비교했더니 톱 쿼크가 100만 배 더 컸어요. 뿐만 아니라 중성미자는 전자보다 질량이 100만 배 작았죠. 패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각양각색이에요. 그렇다면 왜 그럴까요? 이것을 아직 설명하지 못합니다. 또, 쿼크를 6개 발견했는데 왜 6개인지도 아직 모르고요. 가속기로 입자를 만들어 보면 반은 입자고, 반은 반입자거든요. 이것은 우주 초기에는 입자와 반입자가 절반씩이었을 거라는 예상을 가능하게 하는데요. 현재 우주를 보니 반입자는 없잖아요. 왜 그런지, 입자 세계와 반입자 세계의 자연 법칙은 얼마나 다른지, 이런 것들이 아직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 외에,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도 여전합니다. 김영기 교수님은 “우주를 빙산이라 생각할 때 표준 모형을 비롯해 우리가 발견한 것들을 모두 합한 것과 암흑 물질 그리고 암흑 에너지를 비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5퍼센트뿐”이라며 따라서 이것들을 설명하지 못하는 표준 모형은 “완전하지 못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마 더 작은 알맹이가 존재하고, 지금 표준 모형보다 더 완벽한 그들 관계 이론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리가 많이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김영기 교수님은 마지막으로 “양파 까기는 끝이 있는데 이 양파 까기와도 같은 입자 물리 탐구는 언제쯤 끝이 날까? 끝이 있기는 할까?”라고 물으며 강의를 마쳤습니다.

 

김영기 교수는 “양파 까기는 끝이 있는데 이 양파 까기와도 같은 입자 물리 탐구는 언제쯤 끝이 날까? 끝이 있기는 할까?”라고 묻는 김영기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질의응답

 

Q. 강의에서 아직 많은 연구 주제가 남아 있다고 하셨는데요. 현재 연구 중인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인가요?

A. 질량의 근원을 연구 중이에요. ‘힉스’라는 입자가 우주 공간에 퍼져 있죠. 정확히 말하면 입자가 아니라 장으로서 퍼져 있는데요. 작은 알맹이가 공간에 있게 되면 힉스 장과 입자가 서로 상호 작용을 해요. 상호 작용이 크면 질량이 크고요. 전자 같은 것은 힉스 장과 상호 작용을 작게 해서 질량이 작아요. 그렇게 우리가 설명을 하는데요. 그래도 ‘왜’가 남아요. 현재 이론으로는 왜 톱 쿼크는 상호 작용이 커야 하고, 전자는 작아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거든요.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힉스 입자의 성질을 많이 연구하는 겁니다. 힉스가 질량을 주는 근원이니까요. 연구할수록 조금 더 새로운 이론을 만들 수 있는 거예요. 앞서 ‘암흑 물질’ 이야기를 했는데요. 암흑 물질도 질량이 많잖아요. 우주에 있는 질량보다 5배가 많은데 그렇다면 과연 암흑 물질에 있는 질량은 누가 주었는지, 힉스가 준 건지, 알아봐야겠죠. 그런 걸 연구 중이에요. 만약 힉스가 암흑 물질에 질량을 준다면 힉스라는 입자가 암흑 물질로 서로 붕괴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 것도 찾으려고 합니다. 톱 쿼크라는, 아주 질량이 큰 입자들의 질량을 정확히 재면 힉스 질량을 예측할 수가 있어요. 페르미 연구소에 있을 때는 그걸 주로 연구했고요. 항상 질량에 관해 관심이 많습니다.

 

사회를 봐 준 최진영 (주)과학과사람들 대표와 김영기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Q. 동양인, 그리고 여성으로서 활동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A. 어려운 질문인데요. 답을 아시는 분? (웃음)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사실 저도 잘 몰라요. 그런데 저는 “물이 반이나 남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에요. 나 자신에게든 뭐든 안 좋은 얘기를 들어도 금세 잊어버려요. 어떻게든 항상 앞으로 나가는 편이고요. 안 좋은 얘기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털고, 앞을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또 주변에는 항상 나를 도우려는 사람이 있거든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Q. 지금의 물리학자들은 큰 프로젝트도 많고, 펀딩을 해야 하고, 여럿이 같이 연구를 하잖아요. 일반 조직을 운영하는 것과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아요. 윗세대 과학자와 현재가 다른 면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A. 분야마다 다른데요. 우리 분야는 어찌 보면 작게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보셔야 해요. 다음 단계, 그다음 단계, 더 깊이 가려면 도구도 아주 성능이 좋아야 하고, 심지어 도구도 우리가 계속 개발을 해 나가야 하죠. 때문에 인력과 지식이 많이 필요해요. 한 사람의 지식으로는 검출기도 못 만들고요. 검출기 만드는 데 거의 1,000명 정도가 투입되거든요. 또 각 그룹마다 검출기로 하고 싶은 게 달라요. 저는 검출기로 질량의 근원을 연구하고 싶고, 어떤 사람은 톱 쿼크를 더 많이 연구하고 싶고, 하는 식이죠. 그것들을 다 연구할 수 있는 검출기를 만들면 좋잖아요. 그렇게 모여서 자신의 관심 분야는 조금 달라도 같이 사용하고, 연구하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Q. 입자 물리학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큰 가속기를 만들어서 실험을 하면 무언가가 나온다는 정도의 막연함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일반의 편견도 있고요. 암흑 물질을 연구하고 싶다면 가속기보다 차라리 망원경에 투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암흑 물질 연구를 망원경으로만 하면 안 돼요. 우주에 있는 입자들은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그렇죠. 예를 들어 암흑 물질과 암흑 물질이 만나 없어져서 전자, 양성자, 광자 같은 것이 나오거든요. 우주에 검출기를 띄워서 그런 것을 받아 해석하는데요. 그것도 입자 물리학의 한 분야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고요. 다만 그것만으로는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어요. 우주에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직 많으니까요. 사실상 암흑 물질이 있다면 충돌기를 이용해 암흑 물질을 만들어 내야 해요. 가속기를 통한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실험이잖아요. 그렇게 암흑 물질을 만드는 것, 이것이 다 한 분야예요. 모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큰 가속기는, 맞습니다. 돈이 많이 필요하죠. 여러 기술적인 부분도 더 개발을 해야 하고요. 그런데 사실 가속기를 돌려서 산업이나 의학에 사용되는 분야가 많아요. 다음 단계로 가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은 연구자들도 알기 때문에 계획을 많이 세우고 있습니다. 저는 입자 물리학을 연구하지만 최근에는 가속기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작지만 더 성능이 좋게 할지에 대한 몇 가지 아이디어도 있고요. 여러 가속기 연구자들이 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어쨌든 두뇌를 가속기 연구에 많이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바로 다음 단계의 가속기에는 그 새로운 아이디어를 쓸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이후에 만드는 것은 훨씬 다를 거라는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Q. E=mc²이라는 개념이 궁금합니다. 입자가 에너지고, 에너지가 입자라니 궁금합니다. 입자는 입자고, 에너지는 에너지인데 왜 힉스 입자는 장의 형태로 퍼져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A. 아주 작게 들어가면 자연에서도 질량 차이가 에너지로 나와요. 미시 세계로 가면 자연에서도 질량이 바로 에너지로 전달되거든요. 가속기를 써서 보면 에너지가 새로운 질량을 가진 다른 알맹이를 또 만들어 내고요. 그러니까 질량과 에너지는 거의 동등하다고 보면 돼요. 아주 궁극적으로 가면 분리된 것이 아닌 거죠. 단지 우리 질량이 에너지를 안 내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아주 안정적이어서 붕괴가 안 되기 때문인 거고요. 붕괴될 수 있는 입자들은 질량 차이가 바로 에너지로 나옵니다. 만약 입자가 빛의 속도 정도로 빠르면 뉴턴의 중력이 적용되는 게 아니라 다른 원리를 쓰잖아요. 그렇듯이 양자 역학도 비슷해요. 우리가 있는 이런 크기에서는 무시해도 되지만 아주 작은 크기로 들어가면 그 원리가 나와요. 양자 역학이 잘 이해 안 되는 건 우리가 자연 원리 한 부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체감이 안 되는 것이지 다른 데서 실험을 하면 바로 보입니다.

 

Q. 질량과 크기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A. 관계는 없어요. 밀도에 따라 부피(크기)가 커도 가볍고, 부피가 작아도 무거울 수 있잖아요. 아주 작은 알맹이의 질량을 말할 때는 여기 부피가 있다는 것이 아니고 질량 자체를 하나의 성질로 생각하면 되고요. 또 질량과 무게는 비례하기 때문에 톱 쿼크 질량을 재면 무게가 나오는 거예요. 그건 다른 게 아닌데요. 단지 양성자는 2개의 업 쿼크와 하나의 다운 쿼크가 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양성자의 질량을 1로 보면 2개의 업 쿼크와 하나의 다운 쿼크를 다 합한 질량이 1퍼센트도 안 돼요. 그렇다면 양성자의 질량은 어디서 왔을까요? 업 쿼크나 다운 쿼크의 본질의 질량에서 온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에너지에서 온 거죠. 에너지가 양성자의 질량이에요. 예를 들어 업 쿼크나 다운 쿼크의 질량이 아주 작은데 얘네들이 많이 움직이면 운동 에너지가 있잖아요. 그게 또 질량의 한 부분이 됩니다. 앞서 에너지와 질량이 동등하다고 말씀드린 내용이 이거예요.

 

Q. ‘초끈 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초끈이론이 아무리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을지라도 실험적으로는 초끈 이론이 맞는지 안 맞는지 내놓지를 못해요. 실험하는 사람으로서는 초끈 이론이 맞다, 안 맞다, 할 여지가 없는 거죠. 특히 초끈은 빅뱅 초기 중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짧은 시간에 해당하는 이야기라 아직은 먼 얘기예요. 워낙 멀고, 실험 현상으로는 알아야 할 게 없으니까 더 수학에 가깝죠. 아무리 아름다운 이론이라도 서로 주고받을 것은 지금까지는 없어요.

 

Q. 업 쿼크와 다운 쿼크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전하가 달라요. 다운 쿼크는 전자와 같이 음인데 전자보다 3분의 1 정도 전하가 작죠. 업쿼크는 전자의 3분의 2이고 전자와는 달리 양이고요. 질량도 약간 달라요.

 

Q. 20세기 양자 역학으로 입자 물리학은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가요? 아니면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고 있나요?

A. 입자 물리 세계가 새로운 것이 나오는 속도가 빨라요. 양자 역학도 항상 이해해야 하고요. 상대성 원리도 항상 들어와야 설명이 돼요. 그런데 하나 못하는 건 있어요. 중력은 아직까지 표준 모형에 어떻게 포함시켜야 할지 모르고 있어요. 표준 모형은 중력까지는 아직 다루지 못하죠. 특히 원자 세계에서 작용하는 중력은 아직 모릅니다. 그것도 큰 문제 중 하나예요. 중력파가 아주 미약하거든요. 블랙홀처럼 아주 질량이 큰 것들이 가속이 되어야만 중력장을 볼 수 있는 정도죠.

 

김영기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앞에 있는 블록 장난감 등은 입자 물리학 강연 시 항상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라고.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김영기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미국 최대의 물리학 연구 기관 중 하나인 국립 페르미 가속기 연구소 부소장을 지냈고, 《디스커버》에 의해 ‘21세기 선도 과학자 20인’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한 김영기 교수는 현재 혁명적인 성과를 내놓고 있는 실험 입자 물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리더 중 한 사람이다. 현재 시카고 대학교 물리학과 학과장, LHC(대형 강입자 충돌기) ATLAS 실험 그룹 FTK 위원장, 도쿄 대학교, 카블리 우주 물리학 및 수학 연구소 수석 연구원, 미국 예술 아카데미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호암 과학상 등 최고의 과학자에게 수여되는 여러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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