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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꼰대’와 ‘보수 꼴통’은 닮았다!? 본문
2026년 1월 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재판에서 구형을 받았습니다. 이 구형과 곧 있을 판결은 우리 역사를 또 어떤 식으로 찢어 놓을까요? 우리는 폭력과 살인, 그리고 갈등과 대립으로 얼룩진 진화의 원죄를 씻지 못한 사람들의 후손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현대 뇌과학은, 심리 과학은, 그리고 정치 과학은 여기에 어떤 답을 제시해 줄 수 있을까요? 정치적 마음의 민낯을 과학적으로 풀어 가는 「강양구의 과학의 민낯」입니다.

여럿의 증언이 없었다면 믿지 못할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20세기 중국 정치인 가운데 마오쩌둥이 있다. 1957년 11월, 소련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그가 했던 이야기가 전해진다. 195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의 핵전쟁을 걱정하는 세계 곳곳에서 모인 사회주의 성향의 정치인에게 그가 대수롭지 않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핵전쟁이 발발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을까요? 전 세계 인구 27억 명 가운데 어쩌면 3분의 1, 그보다 많다면 절반 정도가 죽을지도 모르지요. …… 극단적으로 절반은 죽고 절반은 살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제국주의는 영원히 사라지고 전 세계가 사회주의로 바뀔 것이며,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인구 27억 명을 회복할 것이고, 어쩌면 더 많아질 거예요.”
이 일화에는 뒷얘기도 있다. 마오쩌둥의 이야기에 너무 놀란 이탈리아의 지식인이자 공산당 지도자였던 팔미로 톨리아티(Palmiro Togliatti)가 곧바로 이렇게 대꾸했다. 톨리아티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반파시스트 운동에 앞장선 정치인이라서 많은 이탈리아 시민이 아직도 존경하는 정치인이다. “그런 핵전쟁에서 살아남을 이탈리아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자 마오쩌둥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무도 없을 것이오. 어쨌거나 이탈리아 인들이 인류 발전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보는 거요?” 그가 생각하는 핵전쟁 생존자는 사회주의자로 개조된 중국인이면 충분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타노스’ 같은 희대의 악인이 이미 20세기 동북아시아에 있었다. -《조선일보》, 2025년 10월 26일자 기고문에서
한 언론에 기고했던 칼럼의 도입부다. 그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이렇게 상식을 벗어난 끔찍한 독단주의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2025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 계엄 사태를 보면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 것도 마찬가지다. “군을 통해 무력으로 정치 활동과 국회 기능을 정지시키려는” 그 전 대통령의 망상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이 질문에 답하는 가장 쉬운 답은 ‘원래 그랬다.’이다. 이들에 따르면, 보수와 진보는 태어날 때부터 뇌 구조나 유전자에 각인되어 타고났다. ‘보수 본능’ 혹은 ‘진보 본능’!
‘보수 본능’을 찾아서
2000년 들어서 보수와 진보 같은 정치 성향의 생물학적 기반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첫 번째 접근은 유전 연구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쌍둥이 연구다. 알다시피,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자를 100퍼센트, 이란성 쌍둥이는 50퍼센트만 공유한다. 만약, 이란성 쌍둥이보다 일란성 쌍둥이가 정치적으로 더 닮았다면, 정치 성향도 유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존 앨포드(John Alford) 등이 2005년 5월 1일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보다 사형, 낙태, 감세 같은 보수, 진보 성향에 따라서 입장이 갈리는 문제를 놓고서 더 유사한 반응을 보였다. 앨포드 등은 유전자가 정치 성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링크)
뇌 구조를 보면 보수, 진보와 같은 정치 성향도 알 수 있다고 해석되는 널리 알려진 연구 결과도 있다. 2011년 4월 26일,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가나이 료타(金井良太) 등은 자신의 정치 성향을 ‘보수’ 혹은 ‘진보’라고 밝힌 실험 참가자의 뇌를 MRI로 촬영해서 특정 영역의 부피를 측정했다. (링크)
보수라고 밝힌 사람은 공포, 불안, 위협 감지와 같은 부정적 감정 반응을 처리하는 데에 관여하는 우측 편도체의 부피가 더 큰 경향이 있었다. 반면, 진보라고 밝힌 사람은 불확실성을 감지하고 서로 다른 정보를 처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ACC)의 부피가 컸다.
이 연구 결과를 해석하기 전에 2014년 6월 27일에 나온 다른 연구도 마저 살피자. 앞에서 언급한 정치학자 앨포드와 존 히빙(John Hibbing) 등은 실험 참가자에게 위협적이거나 불쾌한 이미지(얼굴 위의 거대한 거미, 심한 상처, 구더기 등)를 보여 주거나 갑작스러운 소음을 들려주면서 땀이나 눈 깜빡임 반사(startle reflex) 같은 생리 반응을 측정했다. (링크)
보수 성향의 사람은 위협적인 이미지에 더 강한 피부 전도도 반응을 보였다. 땀이 나면 몸의 전기 저항이 낮아져서 피부 전도도가 강해진다. 즉 보수 성향의 사람이 위협적인 이미지에 더 긴장했다. 이들은 갑작스러운 소음을 놓고도 더 강한 눈 깜빡임 반사를 보이며 더 놀랐다. 한마디로 보수 성향이 진보 성향보다 외부의 위협 자극에 생리적으로 더 민감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태어날 때부터 외부 세계의 위협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위협 민감성(threat sensitivity)’이 높은 사람이 있다. 이들은 공포, 불안, 위협 감지와 같은 부정적 감정 반응 처리에 관여하는 편도체가 크고, 외부의 위협 자극에 생리 반응도 강하다.
이렇게 ‘위협 민감성’이 강하게 태어난 사람은 세상을 잠재적으로 위험하고 불안정한 곳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스럽게 이들은 안정, 질서, 전통 그리고 ‘우리’ 집단의 결속을 지키는 강력한 권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들은 예측 불가능한 변화에 거부감이 있다. 바로, ‘보수 본능’이다.
반면, ‘위협 민감성’이 낮은 사람은 불확실하고 새로운 상황에 인지적 유연성이 높다. 불확실성을 감지하고 서로 다른 정보를 처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대상피질의 부피가 큰 것은 그 증거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변화를 수용하고 낯선 사람이나 환경을 받아들이는 데에 개방적이다. 바로, ‘진보 본능’이다.
‘세상은 얼마나 위험한 곳인가?’에 답하는 ‘위협 민감성’의 생물학적 기반이 태어날 때부터 다르기에 보수와 진보가 갈린다는 주장! 아직은 정치학자와 과학자 사이에 소수의 열성 분자가 있을 뿐이지만, 그 자극적인 주장 덕분에, 연구의 질과 양에 비해 훨씬 널리 알려진 견해다. 그런데, 정말로 ‘보수 본능’이나 ‘진보 본능’이 있는가?

‘정치 본능’을 찾으려는 지독한 ‘본질주의 중독’
과학 연구 결과를 접할 때, 우리가 주의 깊게 두 번, 세 번 살펴야 할 지점은 바로 상관 관계와 인과 관계를 헷갈리는 일이다. 자주 얘기되는 사례로 설명해 보자. 어떤 사람이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늘어나면, 상어 공격 횟수도 증가한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읽자마자, ‘피식’ 웃은 독자가 있겠다.
아이스크림이 판매량이 증가하는 때는 더운 여름이다. 당연히 더위를 피해서 해변을 찾는 관광객도 많아진다. 그렇게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운이 나쁘게 상어를 마주쳐서 공격받는 숫자도 늘어난다. 아이스크림 판매량과 상어 공격 횟수는 약한 상관 관계가 있을 뿐, 인과 관계가 아니다.
‘위협 민감성’을 둘러싼 연구 결과를 해석할 때도 이렇게 상관 관계와 인과 관계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 보수주의자의 편도체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관찰 결과(상관 관계)를 곧바로 인과 관계로 해석할 수 없다. 비슷한 크기의 편도체를 가지고 태어난 어떤 사람이 그가 살아온 환경 요인 때문에 그것이 커졌을 수 있다. (뇌 가소성 때문에 가능하다.)
집마다 총기를 가지고 있어서 산책길에 사유지에 들어가자마자 총에 맞아 죽을 수 있는 미국 남부에서 평생 살았던 사람이나, 혹은 집을 나가자마자 날아오는 총알 세례에 죽을 수 있는 대도시 슬럼가에서 살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경우를 보자. 그런 이들만 모아서 뇌 사진을 찍어 보면 상대적으로 큰 편도체가 또렷하게 관찰될 것이다.
더구나, 이렇게 ‘보수 본능’, ‘진보 본능’ 딱지를 붙이다 보면 한 사람, 심지어 한 세대를 가로지르는 정체성 변화도 설명하지 못한다. ‘보수의 성지’로 불렸던 경상북도에서 10대 시절을 보내고서 1980년대 대학에 진학하고서 보수에서 진보로 정체성이 바뀐 사람을 어떻게 설명할까. 또 그런 사람이 다수인 1980년대 학번 세대의 진보 정체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렇게 보수와 진보 같은 정치적 정체성은 사회 경제적 지위, 개인의 경험, 시대적 배경과 문화 등이 얽히고설킨 구성물이다. 그 구성물의 형성 과정을 고작 뇌 영역 2개의 크기나 피부의 땀 분비 정도로 설명하는 일이야말로 복잡한 한 인간의 정체성을 뇌 부위 한두 군데의 크기로 ‘박제’하려는 지독한 본질주의 중독이다.
심지어, 이런 연구 결과는 방법론에서도 심각한 허점이 있다. 실험 참가자가 스스로를 ‘보수’ 혹은 ‘진보’라고 밝힐 때 그 범주는 지극히 미국이나 영국 중심이다. 지역, 시대, 문화에 따라서 가변적일 수밖에 없는 정치적 정체성의 본질을 찾는 일이 위험한 또 다른 이유다. (이런 비판에서 조너선 하이트의 도덕 기반 이론도 자유롭지 못하다.)

좌파 극단주의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여기서 글머리에서 잠시 소개했던 20세기 ‘타노스’라고 부를 수 있는 마오쩌둥을 떠올려 보자. 마오쩌둥의 정치적 정체성은 누가 봐도 가장 극단의 ‘진보’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진보주의자가 대학생 때 『중국의 붉은 별』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유럽과 미국에서도 ‘68 혁명’ 이후 신좌파의 성전이 바로 『마오 어록(毛主席语录)』이었다.
그런데 ‘보수 본능’을 설명하는 ‘위협 민감성’ 가설로는 마오쩌둥 같은 진보 극단주의자, 즉 좌파 극단주의자의 정체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자기 신념에 독단적이고, 반대 의견에 비타협적이며, 자기 뜻을 관철하고자 수십,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가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이들 진보/좌파 극단주의자의 독단주의와 권위주의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이 대목에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연구하는 레오르 즈미그로드(Leor Zmigrod)의 접근 방식이 아주 유용하다. 즈미그로드는 그동안의 연구가 주목해 온 ‘무엇(What)’을 믿는가, 즉 ‘보수냐 진보냐?’를 묻는 대신 ‘어떻게(How)’ 믿는가, 즉 보수와 진보 같은 신념을 처리하고 유지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진다.
이런 대안 연구를 통해서 즈미그로드가 제시한 핵심 개념이 ‘인지적 경직성(cognitive rigidity)’이다. 그는 수만 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지 과제를 수행하게 했다. 규칙이 바뀌는 카드 분류 게임을 통해서 변화에 얼마나 유연하게 적응하는지(Wisconsin card sorting test), 애매하고 불완전한 이미지 속에서 패턴을 인식하려고 하는 경향을 따져서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정도 등을 측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보수와 진보의 정치적 스펙트럼 양쪽 끝에 있는 극단주의자들, 즉 극우와 극좌 모두 높은 수준의 ‘인지적 경직성’을 보였다. 반면, 보수든 진보든 정치적 중도를 지향하는 이들은 인지적으로 더 유연했다. 극단주의, 독단주의, 권위주의의 뿌리는 특정 이념의 ‘내용’이 아니라 세상의 정보를 처리하고 그것에 의해 형성된 신념을 유지하는 ‘방식’에 있었다.
더구나 즈미그로드의 ‘인지적 경직성’은 민족주의, 권위주의, 종교나 신념에 근거한 근본주의 심지어 자기 신념을 관철하고자 정치적 폭력을 사용하려는 의지 등 다양한 정체성과 사회적 태도를 예측하는 강력한 변수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장담컨대, 전 대통령과 마오쩌둥(극좌)과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극우)의 뇌는 인지적 경직성만 놓고 보면 놀랍도록 닮았다.
문제는 ‘인지적 경직성’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통합도 시도할 수 있다. 앞의 연재에서 살펴본 조너선 하이트의 도덕 기반 이론과 즈미그로드의 인지적 경직성 모형을 연결하면 어떨까? 정치적 신념을 ‘내용(what)’과 그것을 처리하고 유지하는 ‘스타일(how)’이라는 2개의 축으로 분류해 보자는 것이다. x축이 보수(우파) 진보(좌파) 같은 내용이라면, y축은 인지적 경직성의 차이다.
여기 40대 김 씨가 있다. 그는 누가 봐도 ‘보수’다. 회사에 충성하고, 가정에서는 권위적이다. 정치적으로는 보수 쪽 정당을 지지하고, 매주 일요일에는 강남 교회도 나간다. 하지만 그는 12월 3일 비상 계엄 이후에 전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주말 촛불 집회에 대학생 아들과 나갔다. 자기가 투표했던 전 대통령의 일탈에 실망하고 분노하면서!
어떤가? 김 씨는 ③ 충성심/배신(loyalty/betrayal), ④ 권위/전복(authority/subversion), ⑤ 신성함/타락(sanctity/degradation) 도덕 버튼이 강하게 눌린 보수다(x축). 하지만 인지적 경직성은 상대적으로 낮아서 유연하다(y축). 김 씨 같은 경우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또 이웃으로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반면, 똑같이 ③, ④, ⑤의 도덕 버튼이 강하게 눌렸지만, 인지적 경직성이 높은 40대 이 씨가 있다. 그도 회사에 충성하고, 가정에서는 권위적이다. 정치적으로는 보수 쪽 정당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는 전 대통령의 계엄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옹호한다. 그 때문에 친구와의 모임에서 몇 차례 언성도 높였다. 그는 속으로 이런 생각도 한다. ‘1년 전 차라리 군대 진입이 성공했었더라면…….’
이런 경우도 있다. ① 자비/피해(care/harm)와 ⑥ 자유/압제(liberty/oppression) 버튼이 강하게 눌린 40대 박 씨가 있다. 그는 항상 사회 약자에게 마음이 밟히고, 당연히 진보 성향 정당을 지지한다. 아침마다 자기 마음에 드는 얘기만 꼭 집어서 해 주는 정치인, 지식인 등이 나오는 유튜브 채널을 들으면서 출근한다.
하지만 박 씨는 일상 생활이 가시밭길이다. 매사에 진보 쪽의 선명한 정치적 입장을 강조한 탓에 정치 성향이 다른 지인 여럿이 떠나갔거나 그와의 교류를 꺼린다. ‘지구를 지키고’ ‘동물권을 존중하려’ 시작한 채식에 공감하지 못하는 지인 여럿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 건 이런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켰다. 안타깝게도, 박 씨도 인지적 경직성이 높았다(y축).

이렇게 두 축으로 보수와 진보, 인지적 경직성과 유연성을 따져보는 일은 무슨 장점이 있을까? 우선, 정치의 양극화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나아가, 정치적 갈등의 원인을 ‘나쁜 이념(보수 또는 진보)’에서 찾는 진영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서 ‘인지적 경직성’을 강화하는 사회적, 환경적 요인을 따지는 대안적 접근의 가능성도 제시한다.
어떤가. 가만히 따져보자.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더 중요한 질문으로는 인지적 경직성은 어느 정도나 될까? 나 또 우리의 인지적 유연성을 높이려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어쩌면 그 시작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지적 겸손(intellectual humility)’을 뇌의 기본 모드로 설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강양구
서울시 미디어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 환경 담당 기자로 일했고,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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