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할머니와 이모가 인류를 구했다: 모성을 넘어선 돌봄의 과학모성 본능 신화 2편 본문

(연재) 과학의 민낯

할머니와 이모가 인류를 구했다: 모성을 넘어선 돌봄의 과학모성 본능 신화 2편

Editor! 2026. 6. 1. 17:42

우리는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모성 본능, 모성애 같은 단어로 이를 정당화하지요. 그러나 그 강조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남녀 관계, 가족 관계, 그리고 사회적 노동 구조의 변화 탓이지요. 따라서 돌봄의 부담을 사회가 나눠 지는 문제를 고민하게 되었지요. 그 과학적 근거를 탐구하는 과학자들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강양구의 과학의 민낯으로 그 일단을 함께 살펴보시지요.


빈티 주아가 활약한 사고가 일어나고 나서 다음 날(1996817)부터 쏟아진 기사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빈티 주아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었다. 빈티 주아가 1988117일 태어나자마자 어미 룰루(Lulu)는 양육을 거부했다. 결국, 빈티 주아는 인간사육사가 2시간마다 안아 주면서 젖병으로 직접 수유해야 했다. (링크)

 

사육사는 빈티 주아가 새끼를 낳기 전에 인형으로 새끼를 수유하고 돌보는 훈련도 시켰다. 이제 빈티 주아가 우리로 떨어진 세 살짜리 인간 아이에게 보였던 행동을 단순한 고릴라의 모성 본능으로 해석하기에는 복잡한 맥락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빈티 주아는 사육사에게 (고릴라든 인간이든) 새끼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배운 대로 실천한 것일 수도 있다.

 

암컷 고릴라의 모성애 넘치는 행동이 학습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뜻밖의 진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재생산은 실제로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세라 블래퍼 허디 같은 여성진화 생물학자가 수십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서 종합한 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우리에 떨어진 인간 아이를 구한 고릴라 빈티 주아. 위키피디아에서.

 

켜지고 꺼지는 돌봄의 스위치

 

알다시피, 인간은 어머니 자궁 속에서 만 9개월을 채우고 나서 미성숙한 상태로 세상에 나온다. 타인의 도움 없이 두 발로 서서 움직일 때까지 최소 만 3년 정도는 타인에게 의지해야 한다. 특히 생후 100일은 이상적으로는 모유처럼 출산한 여성의 젖을 먹어야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다.

 

당연히 갓난아기의 양육을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어머니는 선택할 수밖에 없다. 타인이 계속해서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고, 나아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그 어머니는 오로지 젖먹이를 양육하는 데에 몰두할 수 있다. 어머니가 아기를 사랑스럽게 안고서 젖을 먹이는 모성애 충만한 장면이 그 결과다.

 

하지만 어머니가 자기와 젖먹이의 영양 공급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면 어떨까? 현생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수십만 년 동안 진화할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젖먹이를 팔 한쪽에 안고서 하루 수 킬로미터를 걸어 다니며 혼자서 먹을거리를 구해야 하는 어머니의 모습. 그 어머니는 젖먹이는커녕 자기의 생존도 도모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냉정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젖먹이를 포기하고서 자기의 생존이라도 도모해야 한다. 고의가 아니더라도 현대인의 시선으로는 명백히 영아 살해라 볼 수밖에 없는 방임이나 유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젖먹이는 죽는다. 이런 모습에서 모성애가 차지할 자리는 없다.

 

지난 연재에서 살펴본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영아 살해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주로 하층 계급의 가난한 어머니들이 그 비극의 주연이었다. 자기의 생존조차도 도모하기 어려운 처지의 어머니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젖먹이를 버리고 그조차도 마땅치 않으면 자기 손으로 살해한다.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하는 또 다른 어머니의 모습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이 등장한다. 힘든 처지의 어머니가 모두 젖먹이를 버리거나 죽이지는 않는다. 자기의 목숨을 걸더라도 끝까지 젖먹이를 지켜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똑같이 어려운 조건에서 그 선택을 가르는 요인은 무엇일까? 그 답을 조심스럽게 유추해 볼 수 있는 신경 과학의 연구 결과가 쌓이고 있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교의 카트린 뒬락(Catherine Dulac)의 연구가 그렇다. (링크) 뒬락은 생쥐 암컷과 수컷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한 쌍의 뉴런을 발견했다. 하나는 새끼 돌보기 행동을 하게 하는 갈라닌(Galanin) 뉴런이고, 다른 하나는 영아 살해 충동을 일으키는 우로코르틴(Urocortin-3) 뉴런이다. 두 뉴런은 상호 배타적이어서 하나를 자극하면 다른 하나가 억제된다.

 

이런 식이다. 교미를 하지 않은 수컷 생쥐는 생쥐 새끼를 색다른 먹잇감으로 본다. 그런 수컷 생쥐의 갈라닌 뉴런을 자극했더니 공격을 멈추고서 둥지를 짓고 새끼를 그곳에 가져다 두고 털을 쓰다듬어 주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새끼를 낳은 암컷 생쥐의 우로코르틴 뉴런을 자극하면 새끼를 돌보는 대신 공격했다.

 

이 갈라닌 뉴런과 우로코르틴 뉴런이 어떻게 켜지고 꺼지는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의 시상하부에서 우로코르틴 뉴런이 확인되었으나 그것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뒬락은 자기 아이를 해치고 싶은 강박을 호소하는 산후 우울증과 우로코르틴 뉴런의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다른 관찰 결과가 겹친다. 허디가 어머니의 탄생에서 소개하는 사회사가 레이첼 푹스(Rachel Fuchs)의 연구다. 푹스는 1830년과 1869년 사이 파리의 한 자선 병원 사례를 소개한다. 이 자선 병원에서는 산파를 구할 수 없는 가난한 여성의 출산을 도왔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는 맞은편 영아 지원 센터에 합법적으로 버려질 수 있었다.

 

이 병원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일부 가난한 여성에게 갓난아기와 8일 동안 함께 머물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그랬더니, 출산 후 아기를 버리는 가난한 여성의 비율이 24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줄었다. 푹스의 분석대로라면, 빈곤층 어머니가 출산 당일 병원을 떠날 때 갓난아기가 버려질 확률은 50 1이었지만, 단 이틀을 더 머무르면 6분의 1로 줄었다.

 

허디는 변한 것은 젖을 물리고 있던 갓난아기와 맺은 애착의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이 실험 결과를 뒬락의 연구와 연결해 보면 인상적인 그림이 나온다. 생존을 도모하기조차 어려운 처지의 어머니는 냉정하게 젖먹이를 버리거나 심지어 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애착이 형성되는 물리적 시간이 확보되면 그 가능성은 낮아진다.

 

애착 형성 과정에서 수유 행위는 옥시토신 호르몬을 포함한 다양한 연쇄 반응을 촉진하고, 그 과정에서 갈라닌 뉴런이 켜지고 우로코르틴 뉴런이 꺼지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완성이 되면 젖먹이는 모성애로 뭉친 어머니의 든든한 지원을 업으며 생존의 기회를 노릴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와 젖먹이 둘만으론 역부족이다.

 

갈라닌 뉴런과 우로코르틴 뉴런의 상호 작용을 연구한 카트린 뒬락.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녀는 현재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있다. 위키피디아에서.

 

 

인류의 뇌를 키운 할머니

 

이 어머니와 젖먹이를 동시에 살릴 수 있었던 해법이 바로 공동 육아다. 허디는 2009년에 펴낸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 상호 이해의 진화적 기원(Mothers and Others: The Evolutionary Origins of Mutual Understanding)(유지현 옮김, 에이도스, 2021)에서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어머니 외의 수많은 대행 어미(allomother)’ 혹은 대행 부모(alloparents)’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아버지와 자기가 친부라고 믿는 남성뿐만 아니라 할머니, 이모(어머니의 자매), 큰 자녀 등이 그 대행 부모다. 허디는 이런 대행 부모가 어머니와 젖먹이를 도와서 공동 육아를 할 수 있었기에 인류의 생존과 진화가 가능했으리라고 여긴다. 허디는 인간 여성이 다른 대형 유인원보다 훨씬 빨리 번식하는 것도 이 대행 부모의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라고 여긴다.

 

예를 들어, 오랑우탄 어미는 오로지 혼자서 새끼를 키워야 한다. 오랑우탄은 홀로 생활하는 습성이 있는 데다가 수컷은 교미 후에 곧바로 떠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박 육아의 결과 오랑우탄 암컷은 약 7~9년에 한 번씩 임신한다. 반면, 인간 수렵 채집인의 출산 간격은 2~3년이다. 대행 부모가 있기에 아기가 젖을 빨리 뗄 수 있고, 그 결과 다음 임신이 가능해진 것이다.

 

인류학자 크리스틴 호크스(Kristen Hawkes)1998년 제안한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도 흥미롭다. (링크) 인간 여성의 독특한 점 가운데 하나는 자연에서 극히 드문 폐경이다. 여성은 약 50세 근처에 생식 기능을 잃고 나서도 길게는 30년 넘게 생존한다. 포유류 가운데 이렇게 폐경 이후에도 생존하는 동물은 인간 외에 범고래, 들쇠고래 등 극소수다.

 

이 암컷의 폐경 후 장기간 생존 현상을 설명하던 중에 호크스가 내놓은 주장이 바로 할머니 가설이다. 할머니는 자기 딸이 낳은 친손주나 공동체의 어린아이에게 먹이를 구해 주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또 오랜 시간 동안 쌓은 육아 경험과 지식을 공동체의 젊은 여성(어머니)에게 전달함으로써 공동체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에도 이바지한다.

 

할머니는 자기가 직접 자손을 낳지 않더라도 공동체의 재생산 즉 종의 보존에 중요한 역할을 맡다 보면 결과적으로 자기 유전자가 안정적으로 재생산된다.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인간 여성은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나서도, 폐경 후에도 한 세대(30) 정도 더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했다. 이것이 바로 할머니 가설이다.

 

허디는 어머니의 탄생에서 이런 할머니 가설을 좀 더 확장한다. 폐경 후에도 여성이 할머니로서 오랫동안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일은 공동 육아를 촉진했다. 이 공동 육아는 인간의 긴 아동기를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 인간은 천천히 성장하면서 뇌를 발달시키고 사회적 학습 능력을 키워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할머니와 공동 육아의 존재가 인간의 뇌 발달과 사회성 진화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허디의 주장은 돌봄이 어머니 혼자의 손에서 떠난 일이 인류의 생존과 성공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 준다. 어머니(모성애)는 최소한의 필요 조건이었을 뿐이고 할머니, 이모, 자매를 포함한 공동체 구성원의 대행 부모의 돌봄이야말로 충분 조건이었다.

 

『어머니의 탄생』의 저자 세라 블래퍼 허디. 위키피디아에서.

 

모성을 뛰어넘은 돌봄의 연대

 

이제 지난 연재 마지막에 언급한 이탈리아 서쪽 섬 사르데냐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1879~1881년에 이탈리아 전역에서 갓난아기가 대량으로 버려지던 시기에 사르데냐에서는 단 15명만이 보육원으로 갔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커처는 영아 유기가 거의 없다시피 한 사르데냐의 비밀을 어머니 중심의 친족 구성에서 찾는다.

 

미혼이든 결혼한 여성이든 간에 이들은 할머니와 어머니 중심의 친족 근처에 남아서 여성 혈육 지원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었다. 만약 이 공동체에서 한 여성이 아기를 낳는다면 즉시 어머니, 할머니, 자매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었다. 가까이에서 직접적으로 양육을 지원한 대행 부모와 그들의 공동 육아가 바로 사르데냐에서 영아 유기가 없었던 이유였다.

 

마지막으로, 이런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가 필요하지 않을까? 실제로 인간 성장기에 대한 수많은 과학 연구는 신생아부터 최소 만 5세까지 어린아이가 안정적으로 애착을 느끼는 환경에서 보살핌을 받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나는 안정적으로에 주목하고 싶다.

 

허디는 어머니의 탄생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인간이 진화해 온 오랜 시간을 염두에 두면 어린아이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안정적인돌봄 환경 그 자체다. “아기가 열망하는 것은 자기가 절대 돌보는 사람의 사랑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즉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돌보는 사람이 그들을 모든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이라는 점이야말로 중요하다.

 

허디는 어머니의 탄생마지막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기 비극 타이투스 안드로니쿠스(Titus Andronicus)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이 비극에서 악당으로 등장하는 무어 인 에런(Aaron the Moor)은 자기 핏줄인 아기를 지킬 때만큼은 강렬한 부성애를 보여 준다. 그는 검은 피부색을 이유로 자기 아기를 해치려는 이들에 맞서며 이렇게 외친다.

 

“This before all the world do I prefer,
This maugre all the world will I keep safe.”
“세상의 그 무엇보다 나는 이 아이를 우선하며,
온 세상에 맞서서라도 나는 이 아이를 안전하게 지킬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하필 악당의 입에 이 말을 넣었다. 사랑은 도덕과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역설이 거기에 있다. 이 선언이 꼭 어머니나 아버지의 것일 필요는 없다. 설사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이런 약속을 하고 굳건하게 실천하는 공동체 구성원이 있다면 그 아이는 행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공동체가 재생산에 성공해 온 진짜 이유였다.

 

「타이투스 안드로니쿠스」 4막 2장을 위해 토머스 커크(Thomas Kirk, 1765∼1797년)가 그린 삽화.

 


강양구

서울시 미디어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 환경 담당 기자로 일했고,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등이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과학의 품격』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기술을 꿈꾼 과학 저널리스트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

 

『어머니의 탄생』

무조건 희생하는 어머니? 천만에!

 

『자연스럽다는 말』

진화 인류학의 성찰을 토대로, 우리의 통념과 태도를 되묻는 여정을 제안하다!

 

『엄마 생물학』

내 몸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

『호르몬 찬가』

다윈주의 페미니즘의 새로운 패러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