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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도망친 엄마에게 돌을 던지는가? 모성 본능 신화 1편 본문
살인, 폭행 등 강력 범죄 데이터를 보다 보면 재밌는 현상을 목격하게 됩니다. 살인, 시체 유기 같은 범죄에서 가해자는 대부분 남자입니다. (80퍼센트) 그런데 이 성차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경우 사라집니다. 영유아 살해 혹은 시체 유기의 가해자가 남녀, 즉 친모, 친부 반반이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모성 본능의 신화가 맞다면 다르게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생물학적 문제일까요, 사회학적 문제일까요? 아니면 이 모두를 아우른 진화적 문제일까요? 「강양구의 과학의 민낯」과 함께 이 문제를 풀어 보지요.

“베이비시터가 놀이터에서 아이의 주의를 끄는 동안 나는 몰래 도망쳤다. 아이를 울리지 않으려고 속였다. 아이가 울면 다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하면서 일을 하는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몰래 도망쳤다.”
일하는 여성 11명의 목소리를 모아서 펴낸 『돌봄과 작업』(돌고래, 2022년)을 몰입해서 읽다가 잠시 멈췄던 대목이다. 읽은 지 벌써 4년이 되어 가는 데도 이 부분을 읽을 때의 기억이 또렷하다. 왜냐하면, 당시 딱 10년째를 맞이하던 우리 가족의 돌봄 사정이 고스란히 겹쳤기 때문이다. 나도 아내도 그렇게 ‘도망친’ 적이 분명히 있었다.
애달픈 모성애나 부성애를 다룬 수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를 떠올리거나 세간의 통념을 염두에 두면 이런 ‘도망침’은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한 행동이다. 모성 본능이 인간을 넘어서 우리와 유전자를 98퍼센트 이상 공유하는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같은 유인원에게도 있다는 정황까지 떠올리면 더욱더 그렇다.
1996년 8월 16일, 미국 시카고 브룩필드 동물원(Brookfield Zoo)에서 있었던 일이다. 세 살배기 남자아이가 고릴라 우리로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아이가 우리로 떨어지자마자 암컷 고릴라 한 마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몸무게 70킬로그램이 넘는 이 고릴라는 17개월 새끼를 등에 업고 있던 여덟 살 ‘빈티 주아(Binti Jua)’였다.
남자아이의 부모를 포함해서 관람객 다수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그 고릴라가 아이를 해칠까 걱정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햇살의 딸’이라는 뜻의 고릴라 빈티 주아의 반응은 달랐다. 고릴라는 자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동물원 관계자 앞에 데려다주고 돌아섰다.
빈티 주아는 만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브룩필드 동물원의 전설로 남아 있다. 2025년 6월 27일 미국 잡지 《피플》은 만 서른일곱 살이 된 빈티 주아의 근황을 전하면서 이 놀라운 일화를 다시 한번 전했다. 빈티 주아의 행동은 인간의 종 간 벽을 뛰어넘은 모성 본능 사례로 추앙되었다.
하지만 빈티 주아의 행동은 정말로 모성 본능의 발로였을까? 나아가 모성애 혹은 부성애는 정말로 우리 행동을 좌지우지하는 힘이 센 본성일까? 뜻밖에도, 그 본성의 실체를 연구하는 과학자, 예를 들어, 1999년에 출간된 『어머니의 탄생(Mother Nature)』의 세라 블래퍼 하디(Sarah Blaffer Hrdy) 등의 답변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우선 19세기 영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살펴보자.

모성애 찬양과 영아 살해
역사 속에서 모성애를 가장 강조했던 시기가 있다. 바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1837~1901년)다. 산업 혁명이 한창이던 이 시기에 사회의 신흥 세력으로 떠오르던 부르주아 계급은 영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경직된) 인간의 ‘고유한’ 덕성을 칭송했다.
주로 남성이었던 이들은 한목소리로 특히 여성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성 가운데 하나로 모성애를 강조했다. 예를 들어, 그 위대한 찰스 다윈(1809~1882년)은 『종의 기원』(1859년)만큼이나 중요한 책 『인간의 유래와 성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1871년)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본능적인 모성 때문에 자기 아이에게 이런 자질을 무한히 보여 주며, 이를 다른 이들에게까지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다윈보다 좀 더 과감했던 지식인도 있다. 당대 가장 유명한 의사였던 윌리엄 액턴(William Acton, 1813–1875년)은 1857년에 펴낸 『생식 기관의 기능과 질환(The Functions and Disorders of the Reproductive Organs)』에서 여성의 성욕을 부정하면서 여성이 성행위를 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녀를 갖고자 하는 소망과 자녀에 대한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 빅토리아 시대 때 영아 살해와 영아 유기가 극심했다. (링크) 1861년부터 1862년 중반까지 18개월 동안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사망한 2세 미만의 아이 사망 사례 가운데 총 5,547건이 검시관 조사를 받았다. 이 가운데 224건은 (주로 엄마에 의한) 고의 살인이었다. 사인이 분명하지 않은 497건도 버려진 아이가 배고픔, 탈수, 추위로 사망한 경우였다.
오죽하면 이런 사실을 조사했던 1862년 영국 의회 보고서가 “문명화된 사회(영국)에서 18개월간 5,000명 이상의 영아가 비정상적으로 사망한 일은 정부가 주목해야 할 문제”라며 심각성을 지적했겠는가.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1861년에서 9년이 지난 1870년 한 해 동안 런던 거리나 수로에서 사체로 발견된 영아 숫자만 276명에 달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광범위한 영아 살해와 유기가 있었던 이유는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산업화로 수많은 여성이 가족과 친척이 있는 고향을 등지고 런던과 같은 대도시로 일자리를 찾았다. 낯선 곳에서 임신한 여성은 아이를 낳고 나서 의지할 가족이나 공동체가 전혀 없었다. 만에 하나, 아버지 없는 아이를 낳는다면 생계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미혼모 낙인도 찍혔다.
결국, 벼랑 끝까지 몰린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기를 런던의 거리나 수로에 버리거나 혹은 교회나 보육원 앞에 두고 도망치는 일이었다. 이렇게 보육원에 맡겨진 영아의 사망률도 80~90퍼센트에 육박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여성 가운데 일부는 직접 아이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선택에 나섰다. 광폭한 산업화 앞에서 모성 본능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아웃소싱된 모성
그렇다면 빅토리아 시대 형편이 훨씬 나았던 부유한 여성은 어땠을까? 놀랍게도 부유한 여성도 모성애를 실천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부유한 여성은 아이를 낳기만 하고서 수유부터 육아까지 모든 일을 유모에게 맡겼다. 부유한 남성 지식인이 여성의 본질로 모성애를 강조했으나, 정작 그들의 아내는 직접 양육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상류층 여성의 중요한 역할은 가문의 대를 이을 건강한 자녀를 생산하고 파티 참석 같은 사교 활동을 통해서 남편의 사회 활동을 내조하는 일이었다. 여기에 일단 세상에 나온 자녀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모유 수유를 하고, 또 밀착해서 양육하는 일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결정적인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여성이 모유 수유를 계속하면 자연스럽게 배란을 억제해 다음 임신을 늦추는 자연 피임 효과가 있다. 당시에는 부유한 집에서도 각종 질병을 피하지 못하고 어린아이가 사망하는 일이 잦았다. 즉 상류층 여성은 영아 사망률이 높은 상황에서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1~2년에 1명씩 자녀를 낳아야 했다.
유모가 젖을 먹이면 여성은 출산 후 곧바로 다음 임신이 가능했다. 찰스 다윈의 아내 에마 다윈이 전형적인 사례다. 에마는 찰스와 1839년 1월 29일 결혼하고 나서 1839년 첫 아이 윌리엄을 출산하고 나서 1856년 막내 찰스까지 17년간 무려 10명의 자녀를 낳았다. 평균 1.9년 주기. 10명의 자녀 가운데 둘째 앤, 셋째 메리, 막내 찰스 셋은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했다.
더구나, 당시의 상류층 여성이 보기에 모유 수유를 포함한 육아는 전형적인 육체 노동이었다. 또 육아에 몰두하다 보면 상류층 여성이 당연히 해야 할 파티와 만찬 방문 같은 사교 활동에 쓸 수 있는 시간이 적어졌다.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건강한 젊은 여성을 유모로 채용해서 아이를 맡기는 일이었다.
여기서 악순환이 시작된다. 부잣집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일 유모는 당연히 자기가 직전에 낳은 아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아기를 보살피지 못하고 유모로 일을 해야 했다. 그 유모의 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운이 좋다면 가족이 키웠다. 하지만 운이 나쁜 아기는 교회나 보육원 안에 버려졌고, 더 운이 나쁜 아기는 길가나 수로에 방치된 채 죽어 갔다.
모성애를 그토록 강조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만의 일이 아니다. 인류학자 데이비드 커처(David Kertzer)의 영아 유기 연구는 또 다른 결정적 증거다. (그의 연구는 『명예로운 희생: 이탈리아의 영아 유기와 생식 통제의 정치학(Sacrificed for Honor: Italian Infant Abandonment and the Politics of Reproductive Control)』(1993년)으로 출간된 바 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와 같은 때였던 1840년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세례받은 영아 가운데 43퍼센트가 버림받은 아기였다. 비슷한 시기 토스카나에서는 태어난 아기의 약 10퍼센트에 해당하는 5,000명이 버림받았다.

야생의 전략: 사랑이 아닌 생존
모성애를 강조하던 19세기의 대량 영아 유기(살해)는 그저 산업화가 인간의 본성(모성 본능)을 억누른 결과였을 뿐일까? 진 앨트먼(Jeanne Altmann)의 개코원숭이 연구는 훨씬 복잡한 진실을 보여 준다. 올해(2026년) 만 86세인 앨트먼은 1960년대부터 남편 스튜어트 앨트먼(Stuart Altmann)과 함께 아프리카 케냐 암보셀리 국립 공원 가장자리에서 노랑개코원숭이를 연구했다. (앨트먼의 연구 성과는 『개코원숭이 어미와 새끼(Baboon Mothers and Infants)』(1980년)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앨트먼이 주도해서 1971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55년째 진행 중인 암보셀리 국립 공원의 개코원숭이 프로젝트는 일곱 세대에 걸쳐 1,800마리가 넘는 개코원숭이의 삶을 기록했다. 앨트먼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중요한 사실을 밝혔다. 모성애는 고정된 본능이 아니라, 환경과 상호 작용하면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앨트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개코원숭이 어미는 하루 3분의 2를 포식자를 피하며 먹이를 찾아서 돌아다녀야 한다. 나머지 3분의 1이 생존에 필수적인 섭식과 휴식 시간이다. 이런 개코원숭이 어미에게 육아는 자신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엄청난 부담이다. 특히, 처음 출산한 초보 개코원숭이 어미일수록 육아 스트레스가 크다.
그 결과는 뻔하다. 대체로 개코원숭이 첫째는 절반 이상이 사망한다. (링크) 초보 어미는 먹이를 찾으러 돌아다니면서 새끼에게 젖을 주는 일에 미숙하고, 그 과정에서 과반수가 탈수로 죽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둘째, 셋째로 태어나더라도 개코원숭이 새끼의 30~50퍼센트는 첫해에 사망한다. 이 과정에서 어미와 새끼의 노골적인 힘겨루기가 발생한다.
생후 다섯 달 정도가 지나면 어미는 새끼가 젖을 떼고 스스로 걸어 다니면서 먹이를 찾기를 기대한다. 6~8개월쯤 되면 덩치가 커져서 안고 다닐 수도 없다. 하지만 새끼는 어미한테 의존하면서 젖을 먹는 일이 훨씬 유리하다. 이 과정에서 젖을 떼려는 어미와 계속 찰싹 붙어 있으려는 새끼 사이의 힘겨루기가 발생한다.
어미는 밀어내고 새끼는 짜증을 내며 관심을 호소한다. 어미가 마냥 모성애를 발휘하며 새끼를 거두면 최종적으로 둘 다 죽는다. 본능적인 계산이 이뤄진다. 당연히, 이 과정이 원활할 리가 없다. 새끼의 절반가량이 첫해 사망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개코원숭이 암컷은 평생 총 일곱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고, 그 가운데 성체가 되는 것은 고작 2마리뿐이다.
아직도 지고지순한 모성애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면,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 개코원숭이 어미는 신분에 따라서 모성애의 양상도 다르다. 집단에서 서열이 높은 개코원숭이 어미는 더 어린 나이에 새끼를 낳고, 그 새끼가 생존할 확률도 높다. 심지어, 서열이 낮은 개코원숭이 어미는 환경에 따라 새끼의 성별도 조절한다. 서열이 낮을수록 암컷보다 나중에 혁명가가 될(서열 역전) 가능성이 큰 수컷을 더 많이 낳는다.
이런 개코원숭이의 모습은 앞에서 살펴본 영국 빅토리아 시대 영아 유기(살해)를 둘러싼 모습도 겹쳐 보인다. 서열(사회적 자원)이 육아 행동을 결정한다는 야생의 패턴이 런던 하층 여성과 상층 여성의 선택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자기 생존을 도모하기도 어려운 하층 계급 여성은 어린아이를 버리고, 여유 있는 상층 계급 여성은 육아의 다른 자원(유모)을 가져오는 모습은 개코원숭이와 아주 흡사하지 않은가.
지고지순한 모성애가 본능이 아니라면 실제로 인간은 재생산이 가능하게 어떻게 진화해 왔을까? 앞에서 언급한 인류학자 커처가 관찰한 영아 유기의 예외 사례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다. 1879~1881년에 이탈리아 전역에서 갓난아기가 대량으로 버려지던 시기에 이탈리아 서쪽 섬 사르데냐(Sardinia)의 사정은 달랐다.
시칠리아에서 6만 9000명의 아기가 보육원에 버려졌지만, 사르데냐에서는 단 15명만이 보육원으로 갔다. 도대체 사르데냐는 무엇이 달랐을까? 다음 연재에서 우리가 탐구할 질문이다. 그 과정에서 빈티 주아의 행동이 왜 ‘모성 본능’이 아니었는지, 그 숨은 진실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강양구
서울시 미디어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 환경 담당 기자로 일했고,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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