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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 잔혹사: 치매 정복의 신기루│치매 이야기 ① 본문
「강양구의 과학의 민낯」, 이번에는 치매 문제를 다룹니다. 대한민국의 독자들은 뇌에 정말로 관심이 많습니다. 어릴 때에는 공부하는 머리를 따지고, 나이 들면 일‘머리’를 찾으니 그런 걸까요? 나이 들면, 치매 걸리지 않을까 두려움에 떱니다. 서점에서 뇌과학 책을 집어드는 우리는 머릿속에는 어떤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치매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이번 9화는 3편으로 나눠 연재됩니다.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문득 걱정스러워지는 순간이 있다. ‘나는 과연 알츠하이머 치매를 피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나와 유전자의 4분의 1을 공유하는 할아버지가 말년에 알츠하이머 치매로 3년 정도 고생하다가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이 할아버지 얘기는 조금 자세히 할 필요가 있겠다.
앞서 후성 유전학 연재에서 언급했듯이 1920년생 할아버지는 2010년에 만 90세가 됐다. 놀랍게도 이때만 하더라도 정신은 물론이고 육체도 정정했다. 평생 애연가로 살았던 할아버지는 말년에 담배 냄새가 역해졌다며 줄이기는 했지만, 가끔 찾아뵐 때마다 재떨이에는 연초 꽁초가 있었다.
그러던 할아버지는 2012년 2월 평생 해로했던 할머니를 먼저 보내고 나서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언행에 변화가 없어서 할아버지 댁 인근에 살던 아버지를 포함해 모두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다 아찔한 사고가 있었다. 밤에 시골 마을을 배회하다 논두렁에 빠져서 실족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전형적인 치매 증상이다. 뇌가 망가진 치매 환자는 낮과 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뿐더러 오랫동안 지내 온 집마저 낯설게 여긴다. 불안한 마음에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서 끊임없이 걷게 된다. 그러다 왜 나왔는지 목적도 잊어버리고 방향 감각까지 잃게 되면 할아버지처럼 배회하다 사고를 당하는 일이 많다.
새벽 일찍 나선 마을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할아버지는 그때 큰일을 당했을 수도 있다. 그제야 할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중증임을 알아챈 가족은 급하게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버지, 어머니가 할아버지를 돌봤으나 점점 심해지는 치매 증상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아버지가 결단했다. 마침 직장을 은퇴하고 나서 현역 때 마음껏 못했던 여행을 다니던 참이었다. 아버지는 뜻밖에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그러고 나서 이곳저곳 평이 좋은 요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찾은 요양원에 할아버지를 맡기고 나서, 아버지도 그곳에 요양 보호사로 취직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일하는 요양원에서 할아버지는 약 2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떴다. 말년에 즐기던 요구르트를 아버지가 떠먹여 주고 나서 15분쯤 후에 돌아와 보니, 할아버지는 잠이 들듯 세상을 떴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장남(아버지) 얼굴은 기억했다니 할아버지는 가시는 길이 외롭지는 않았겠다.
하지만 타지에서 밥벌이하느라 자주 찾아뵙지 못한 손자가 보기에 할아버지는 행복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토록 총명하던 눈빛도 탁해지고, 나중에는 손자를 알아보기는커녕 의미 없는 대화조차 나누기 힘들었다. 2024년 3월 27일 스위스에서 의료 조력 사망을 선택한 대니얼 카너먼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말년의 “고통과 수모”를 할아버지께서 겪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결심했다. 나는 저런 “고통과 수모”를 겪고 싶지 않다. 이 글을 읽는 대다수 독자의 생각도 같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토록 고통을 주는 알츠하이머 치매에 대해서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심지어 그 원인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120년의 수수께끼: 원인조차 모른다
2024년 6월 과학계에서 깜짝 놀랄 소식이 있었다. 2006년 3월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의 조작 사실이 확정된 것이다. (링크) 여기까지만 듣고서, 국내에서도 낯설지 않은 ‘과학 사기’ 사건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논문은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원인을 밝힌 획기적인 연구라서 지난 18년간 무려 2,300회 이상 인용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인류가 이 거대한 조작의 함정에 빠지게 된 배경에는 고령화라는 시대적 물결이 있었다. 평균 수명이 40세, 50세 되던 때만 하더라도 치매는 흔한 질병이 아니었다. 치매 증상이 나타날 만큼 오래 산 사람이 드물었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날수록 치매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2025년 3월 13일 발표한 「2023년 치매 역학 조사 및 실태 조사 결과」(보도 자료 링크)를 보면, 2025년 치매 환자 수는 약 97만 명(치매 유병률 9.17퍼센트)으로 예상됐다. 2026년 100만 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을 염두에 두면,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1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85세 이상 노인만 놓고 보면 3명 가운데 1명이 치매 환자다.
사실, 치매는 정확한 병명은 아니다. 치매는 대뇌의 신경 세포가 다양한 이유로 손상되어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상태를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치매를 일으키는 구체적인 질환은 수십 가지나 된다. 그 가운데 특별히 관심을 가질 질환이 앞에서 언급한 알츠하이머병이다. 전체 치매 환자의 50~70퍼센트가 알츠하이머병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과 전개 과정을 파악하고 그 치료 방법을 찾으면 수많은 노인이 비교적 또렷한 정신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말년을 보내다가 세상을 뜰 수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06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Alois Alzheimer, 1864∼1915년)가 최초로 이 질환을 보고하고 나서 120년이나 지났는데도 치료제는커녕 발병 원인도 모른다.
정말이다. 여전히 과학계에서는 알츠하이머병의 발병 원인을 놓고서 논쟁 중이다. 현재 전 세계 과학자는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두 가지 종류의 이상(異常) 단백질을 지목하고 있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amyloid beta(Aβ) protein)과 타우 단백질(tau protein) 응집이 지나치게 많이 발견된 탓이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 아밀로이드 베타
우선,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사정부터 살펴보자. 알츠하이머가 알츠하이머병을 보고한 지 78년이 지난 1984년에야 환자의 뇌에서 나타나는 이상한 단백질 덩어리의 중요한 성분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때부터 이른바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이 등장했다.
이 가설의 논리는 간단하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가 많이 쌓여서 알츠하이머병이 발병된다고 간주한 것이다. 그렇다면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만 제거할 수 있다면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가 다양한 방법으로 그 단백질을 제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연구 가운데 널리 알려진 가장 영향력 있는 논문이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카렌 애시(Karen Ashe)와 실뱅 레스네(Sylvain Lesné)가 2006년 3월 16일 《네이처》에 발표한 것이다. 글머리에 언급한 논문 조작이 확정된 바로 그 연구다.
이들은 이 논문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의 한 종류를 어리고 건강한 쥐에게 주입했더니 알츠하이머병 증상을 유발한” 실험 결과를 전하면서 알츠하이머병의 중요한 원인은 뇌에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라고 주장했다. 앞뒤가 딱딱 맞는 이 논문에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을 옹호하는 많은 과학자가 환호했다.
그동안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을 설명하는 여러 접근 가운데 가장 주류였다. 이 주류화 과정에서 훗날 조작으로 판명된 논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논문의 결과를 뒤에 업고서 전 세계 여러 기업과 정부는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을 염두에 둔 치료제 개발 등에 연구비를 쏟아부었다.
2024년 6월에 밝혀진 논문 조작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물론, 과학계는 신중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논문이 조작이라고 하더라도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을 폐기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1984년 이후 30년 가까이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을 뒷받침하는 다른 연구도 많았기 때문이다.

치료제는 왜 효과가 없을까?
하지만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은 앞으로 더욱더 가혹한 검증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동안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 수많은 치료제가 만들어졌지만, 실제 임상에서 환자에게 효과가 별로였다. 미국 FDA가 2021년 최초로 승인한 아두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Aducanumab))은 효능을 둘러싼 논란으로 2024년 1월 31일 개발 기업 바이오젠이 자진해서 상업 개발을 중단했다.
FDA가 2023년에 승인한 바이오젠과 에자이의 또 다른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레켐비(Leqembi, 성분명 레카네맙(Lecanemab))를 놓고서도 뾰족한 시선이 많다. 결정타는 2026년 4월 16일 비영리 보건 연구 기관 코크란(Cochrane)의 분석이었다. (링크) 코크란이 총 2만 342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17건의 임상 시험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레켐비를 포함한 항아밀로이드 신약이 인지 기능 저하와 치매 중증도에 미치는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없거나 극히 미미했다.
이번 분석에 참여한 이탈리아 볼로냐 IRCCS 신경 과학 연구소(IRCCS Istituto delle Scienze Neurologiche di Bologna)의 프란체스코 노니노(Francesco Nonino)는 “(레켐비 등의) 약이 환자에게 의미 있는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단언했다. 노니노는 “현재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축적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링크)
여전히 일부에서 반론이 나오는 코크란의 분석 결과가 진실의 방향을 가리킨다면, 정말로 큰일이다. 왜냐하면 2000년대 이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대다수가 아밀로이드 베타에 항체를 붙여서 제거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아밀로이드 베타 제거가 아닌 아예 다른 방향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의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다.
다음 단서는 수녀원에 있다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해도 환자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과학자들은 이제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까? 그 실마리는 뜻밖에도 첨단 실험실이 아니라, 미국 미네소타 주 맨케이토의 조용한 수녀원에서 왔다.
수십 년에 걸쳐 자신의 뇌를 기꺼이 과학에 바친 678명의 수녀들이 남긴 기록은, 알츠하이머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외면해 온 불편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이 남긴 기록이 왜 알츠하이머 연구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었는지, 다음 편에서 그 수녀원 문을 함께 열어 보자.

강양구
서울시 미디어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 환경 담당 기자로 일했고,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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