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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파괴에서 회복으로│치매 이야기 ③ 본문
「강양구의 과학의 민낯」, 이번에는 치매 문제를 다룹니다. 대한민국의 독자들은 뇌에 정말로 관심이 많습니다. 어릴 때에는 공부하는 머리를 따지고, 나이 들면 일‘머리’를 찾으니 그런 걸까요? 나이 들면, 치매 걸리지 않을까 두려움에 떱니다. 서점에서 뇌과학 책을 집어 드는 우리는 머릿속에는 어떤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치매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치매 이야기 세 번째 편은 알츠하이머 치료의 패러다임 이동을 다룹니다. 그런데 그 출발점이 놀랍게도 비만 치료제입니다!

2026년 6월 현재, 어느 자리를 가나 화젯거리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신약이 ‘위고비(Wegovy)’와 ‘마운자로(Mounjaro)’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매주 주사 한 방으로 식욕을 억제해 마치 위를 절제한 것과 비슷한 정도로 체중 감소 효과를 내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약이다.
애초 두 약 모두 당뇨병 치료제로 먼저 나왔다가 나중에 비만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위고비는 임상 시험에서 체중을 평균 15퍼센트 안팎으로 줄였고, 마운자로는 무려 20퍼센트 이상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초고도 비만 환자의 위를 잘라내는 수술이 목표로 하는 수치가 체중 20퍼센트 감량이다. 이 약들의 파괴력을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효과가 나타났다. 비만 치료제를 복용한 환자들에게서 뇌의 염증 반응이 떨어지고,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함께 나타나는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줄어드는 현상이 예비 연구에서 보고되고 있다. 살을 빼는 주사가 치매까지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나온다. 도대체 식욕을 억제하는 비만 치료제가 어떻게 치매 증상 예방에 영향을 주는 것일까? 혹시 바로 앞의 글에서 살펴본 ‘수녀원 연구’에서 삶의 마지막까지 인지 능력을 잃지 않았던 베르나데트 수녀의 비밀과 비만 치료제의 작용이 연결된 것은 아닐까?
파괴 본능은 왜 실패하는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치매 치료제의 성적이 신통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치매를 정복하려는 전략의 핵심은 ‘파괴 본능’이다. 앞의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뿐만 아니라 타우 단백질이 엉킨 현상도 확인된다.
상당수 과학자가 타우 단백질이 엉키는 것이야말로 알츠하이머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타우 엉킴 가설’이라고 부른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와 특정 유형의 타우 단백질의 축적 후에 알츠하이머병 증상이 나타나거나, 타우 단백질이 엉킨 정도가 알츠하이머병 악화를 예측하는 데에도 유의미한 상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타우 엉킴 가설에 몰두하는 과학자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에 더해서 타우 단백질까지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여전히 원인 물질 하나만 찾아서 파괴하면 성과가 날 것이라는 기존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실제로 타우 단백질을 표적으로 한 여러 후보 물질이 임상 시험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엄청난 자원과 비용을 들여서 아밀로이드 베타에 더해 타우 단백질까지 제거했는데도 실패한다면, 그 이후는?
치매 치료 전략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녀원 연구가 보여 준 방향과 최근 비만 치료제의 치매 치료 효과의 가능성은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을 제시한다. 치매 역시 당뇨나 비만과 같은 일종의 대사 질환이 아닐까? 뇌의 염증, 인슐린 저항성, 그리고 도파민 보상 회로, 이 세 가지를 잇는 선을 따라가면 그 이유가 드러난다.

비만 치료제가 도파민을 가라앉힐 때 생기는 일
먼저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비만 치료제가 작용하는 원리부터 살펴보자. 우리가 음식을 먹다 보면 어느 순간 포만감이 든다. 그 순간 주로 소장에서 나오는 호르몬이 인크레틴(incretin) 계열이다. 인크레틴 호르몬은 뇌의 시상하부를 비롯한 여러 영역을 자극해서 ‘배가 부르니 그만 먹어!’ 신호를 보내고, 췌장을 자극해 인슐린을 분비함으로써 혈당을 조절한다.
상당수의 사람은 이런 포만감이 금세 사라지고 다시 음식에 손을 대서 끝내 과식하게 된다. 몸속으로 나온 인크레틴 호르몬이 우리 몸에 존재하는 혈액 내 분해 효소(DPP-4)의 공격을 받아 단 2~3분 만에 분해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포만감이 잠시 들었다가도 멈추지 못하고 과식해서 살이 찌는 이유다.
인크레틴 호르몬 가운데 인슐린 분비에 영향을 주는 호르몬이 ‘GLP-1(glucagon-like peptide-1)’이다.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약은 이 GLP-1과 유사한 구조의 인공 호르몬이다. 그래서 이들을 통칭해서 ‘GLP-1 작용제’라고 부른다. (마운자로는 GLP-1에 더해 GIP(glucose-dependent insulinotropic polypeptide) 수용체까지 동시에 자극하는 이중 작용제다. 마운자로가 위고비와 비교했을 때 체중 감량 등 효과가 큰 이유다.) 이 인공 호르몬이 몸에서 2~3분 만에 분해되는 진짜 GLP-1 대신 길게는 일주일까지 파괴되지 않고서 몸속에 잔류한다.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질까? 우리 몸속 식욕 조절 스위치가 이 인공 호르몬들 덕분에 항상 ‘배부름’ 상태로 고정된다. GLP-1 수용체가 존재하는 뇌에 계속해서 포만감 신호를 보내니 좋아하는 음식이나 간식이 앞에 있어도 뇌의 보상 회로가 잠잠해지면서 도파민이 솟구치지 않는다. 평소보다 덜 먹으니 자연스럽게 살이 빠진다. 경이로운 체중 감량 효과의 비밀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부작용이 나타난다. 비만 치료제를 복용했더니 식욕뿐만 아니라 성욕도 줄어든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멀리한다. 도박에 미쳤던 사람이, 게임 없이 못 살았던 사람이 슬며시 중독 증상이 완화된다. 항상 술자리에서 화제의 중심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던 사람이 말수가 줄어든다.
이유가 있다. 우리 뇌의 보상 회로는 식욕과 성욕, 나아가 성취욕과 권력욕 등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는다. 식욕을 제어할 때 영향을 주는 뇌의 여러 부분이 다른 욕망에도 관계한다. 당연히 식욕을 억제하면 다른 욕망도 거세된다. 비만 치료제가 도파민 보상 회로를 안정화해 과도한 욕망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평소 끊임없는 도파민 스파이크와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뇌의 대사 기능을 망가뜨려서 만성 염증을 유발한다. 그런 염증은 수녀원 연구에서 중요성이 드러난 인지 예비능을 갉아먹고, 물리적인 흔적으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과 엉킨 타우 단백질 같은 쓰레기를 남긴다. 노화는 이런 상황을 악화한다.
비만 치료제는 이런 쓰레기를 직접 청소하지 않는다. 대신 욕망의 평탄화를 통해서 뇌의 대사 작용을 원활하게 만든다. 그 결과 뇌 염증이 가라앉고 그 효과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과 엉킨 타우 단백질 같은 쓰레기가 쌓이는 양상도 완화한다. 어떤가? 충분히 인과 관계를 따져봄 직한 합리적 추론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아!’ 하는 독자가 있을 테다. 수녀의 삶이 어떤가? 평생 규칙적인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긍정적인 정서를 유지하려 애쓴다. 그들의 삶은 과잉 욕망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즉 비만 치료제는 그들이 누렸던 평온한 정서적, 생리적 상태를 모사하는 약물인 셈이다.
단백질 쓰레기, ‘청소’가 아니라 ‘해체’가 답이다
실험실에서는 또 다른 접근의 잠재력도 드러나고 있다. 흥미롭게도 그 방향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2010년대 후반 몇몇 과학자가 그래핀 양자점(graphene quantum dots, GQD)이 치매와 마찬가지로 퇴행성 신경 질환인 파킨슨병의 유력한 병리적 특징인 알파-시누클레인(α-synuclein) 단백질 쓰레기가 쌓인 ‘루이소체(Lewy body)’를 해체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알파-시누클레인을 투명한 용액 속에 배양해 루이소체와 비슷한 상태를 만들어 놓고 나서, 그래핀 양자점을 넣었더니 일주일 만에 단백질 응집체가 완전히 해체되었다. 서울 대학교 홍병희 교수와 존스 홉킨스 대학교의 고한석 교수팀이 시도한 이 연구 결과는 2018년 7월 9일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에 발표되어 주목받았다. (링크)
이들은 그래핀 양자점이 열역학적 상태 변화(깁스 자유에너지 변화)를 유도해서 알파-시누클레인 단백질 응집을 막고 나아가 다시 그 응집이 해체되는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들은 이런 식의 열역학적 상태 변화가 파킨슨병뿐만 아니라 치매, 루게릭병 등 각종 퇴행성 신경 질환을 치료할 새로운 플랫폼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읽고서, 결과적으로 치매로 따지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나 엉킨 타우 단백질을 제거하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항체를 이용해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나 엉킨 타우 단백질을 제거하는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차이가 또렷하게 드러난다.
항체를 집어넣어 단백질 쓰레기에 들러붙게 하면, 뇌와 같은 중추 신경계의 면역 세포(미세아교세포)를 호출한다. 이 미세아교세포가 아밀로이드 베타와 엉킨 타우 단백질을 제거하면 최종적으로 뇌 안의 이들 단백질 쓰레기의 농도가 낮아진다. 하지만 이렇게 면역 세포가 단백질 쓰레기와 힘 겨루기하는 과정에서 주변의 멀쩡한 신경 세포의 연결도 파괴된다.
그래핀 양자점은 접근 방식이 다르다. 엉켜 있는 단백질을 풀어내면서 신경 세포 연결망의 추가 손상을 최소화한다. 나아가 그래핀 양자점 자체가 강력한 항산화제(환원제)로 작용하기 때문에 뇌의 염증을 유발하는 활성 산소를 제거해서 신경 독성을 중화한다. 기존 신경 세포 연결망을 보호함으로써 인지 예비능의 손상을 최소화하고 나아가 뇌 가소성을 통한 회복을 도모하는 접근이다.

치료의 패러다임 전환: 대사 정돈과 환경 복구
수녀원 연구는 치매가 단순히 아밀로이드 베타와 엉킨 타우 단백질 같은 쓰레기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치료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평소 인지 예비능을 극대화해 노화에 따른 물리적 손상에도 신경 세포 연결망이 무너지는 것을 최소화하고 그것이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놀랍게도 GLP-1 작용제는 뇌의 대사 환경을 정돈하고 그래핀 양자점은 신경 세포 연결망의 손상을 최소화하면서 뇌가 자연 회복할 수 있는 환경 복구를 돕는다. 수녀원 연구가 20세기에 던진 질문에, 21세기 과학이 드디어 흥미롭고 혁신적인 생화학적 언어로 답하고 있다. 이렇게 치매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강양구
서울시 미디어 재단 TBS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참여연대 과학 기술 민주화를 위한 모임(시민 과학 센터) 결성에 참여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 환경 담당 기자로 일했고,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메르스 사태, 코로나19 팬데믹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 언론상, 녹색 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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