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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죽은 몸에서 배우는 생명의 지혜

Editor! 2012.10.26 17:57

네이버- 추천 도서 -  릴레이 책 추천 ~ 사이언스북스 편집장의 추천 (2012.10.26)

죽은 몸에서 배우는 생명의 지혜

‘워킹데드’, 살아 있는 시체라는 말과 어울리는 의학, 과학 분약의 학문은 해부학 말고는 없을 것이다. 해부학은 말 그대로 죽은 자들의 몸에서 살아 있는 인체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공부한다. 죽은 자들의 몸이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살려 내는 지식과 기술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해부학의 역사는 터부와의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죽음과 시체에 대한 오랜 터부를 깨뜨리고, 사람의 몸에 대한 지식의 역사에서 비가역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모든 문명 사회는 죽은 자와 그의 몸에 대한 터부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갈레노스부터 근세까지, 동양에서는 편작과 화타의 시대부터 최근까지 사람의 몸에 대한 지식은 피부라는 물리적으로 얇은 벽을 뚫지 못하고 상상과 증상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터부의 벽에 메스로 틈을 내고 해부학의 역사를 개척한 이가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이다. 1514년 벨기에서 태어난 베살리우스는 1542년 르네상스 시대 해부학의 대작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를 펴낸다. 이 책은 인체에 대한 의학과 과학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기원후 2세기부터 르네상스 시기까지 서양 사회를 지배해 온 갈레노스주의 의학의 오류를 치밀한 직접 해부를 통해 하나하나 논박하고, 체계적으로 바로잡았다.

당시 서양 의학계를 지배하던 베살리우스의 스승과 선배 들은 반발했지만, 상세한 직접 해부를 바탕으로 한 베살리우스의 대작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그의 책은 독일과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해부가 의과 대학마다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그의 강연에는 수많은 대중이 모여들었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5세는 그를 자신의 시의로 임명했다. 현대의 우리는 베살리우스를 “현대 해부학의 창시자”라고 부른다.

모두 7권으로 이뤄진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는 책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이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아주 아름다운 책이기도 하다. 마치 신전에 서 있던 신들과 영웅들처럼 당당한 포즈로,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그려진 인체 해부도들은, 시체를 만지작거리며 죽은 자를 욕보인다고 지탄받고 경원시당하던 해부학을 살아 있는 인체에 대한 과학으로 승화시켰다. 현대 서양 의학은 바로 이 책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베살리우스의 삽화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에서 [인체 완전판]까지

베살리우스의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 이후 해부학은 의학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연구 성과를 쌓아 가며 발전했고, 그 성과를 19세기의 영국 해부학자 헨리 그레이가 쓴 [그레이 해부학(Grey’s Anatomy)] 같은 베스트셀러 해부학 교과서를 통해 후학들에게 전달됐다. DK 대백과사전 시리즈로 중 한 권으로 출간된 [인체 완전판(The Complete Human Body)] 역시 이 장구한 해부학 책의 계보를 잇는 책 중 하나이다.

피부를 한 꺼풀 벗기면 그 안에 근육으로 이뤄진 층이 있고, 그 근육층을 벗겨 내면 혈관과 신경으로 이뤄진 거대한 그물망이 드러나고, 그 그물망 밑에는 뼈대가 있고, 그 뼈대 속에는 뇌와 심장 같은 장기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세포가 모여 기관을 이루고 기관이 모여 계통으로 이루고 계통들이 모여 이루는 인체 구조의 하모니가 펼쳐진다.

심장혈관계통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대동맥을 거쳐 올라온 관자동맥을 손가락으로 따라가다 보면 머리의 관자놀이에서 피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뼈들이 이룬 프레임들을 하나하나 음미할 때면 내 몸무게를 간신히 견디고 있을 척추와 골반 그리고 다리뼈 들 사이 관절들의 삐걱거림이 느껴진다. 내 피부 밑에도 분명 있지만, 결코 볼 수 없는 해부학적 구조들에 대한 경이로운 화상들을 보다 보면, 내 눈과 뇌 사이에서 반짝반짝 발화하며 정보와 기억을 기민하게 구축하고 있을 뉴런들이 보일 듯하다. 힘줄의 무늬 하나하나, 뼈에 있는 굴곡과 얼룩 하나하나 추적한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내 몸이 그저 고단하기만 한 고깃덩어리가 아니라 세포에서 기관까지 조화롭게 결합된 하나의 유기체임을 깨닫게 된다.


| 인체 완전판 |

엑스선, 컴퓨터 단층 촬영(CT), 자기 공명 영상(MRI), 전자 현미경, 3차원 가상 현실 등 최첨단 기술과, 의학의 발전을 위해 시신을 기증해 준 수많은 이들과, 수백 년간 축적된 해부학 지식 덕분에 우리는 클로로포름과 방부액 냄새, 그리고 은밀한 죽음의 냄새를 맡지 않고 인체라는 소우주의 구석구석을 탐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인체 완전판], 바로 이 책에서 죽은 자들은 해부학 지식으로, 생명의 과학으로 되살아난다.

거울을 보다 문득 육체의 변화를 느낀 이라면 이 책을 펼쳐 보길 권한다. 비록 메스로 째 볼 수는 없지만, 방금 발견한 변화가 어디서 기인한 건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해부학의 역사에 전신전령을 바친 이들을 다룬 [해부학자](빌 헤이스, 박중서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2년) 같은 책도 읽어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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