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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Talk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과 마주하다

Editor! 2014.10.14 17:31

Talk. 한나 아렌트, '악의 평범성'과 마주하다



오늘, 10월 14일. 컴퓨터로 구글(google)을 들어가본 사람이면 평소의 구글 메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겁니다.


google 메인화면 캡쳐 (2014.10.14)


위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있죠. 이미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그림 속 여인은 '한나 아렌트'로 오늘 10월 14일이 한나 아렌트가 태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를 기념하여 그녀의 이미지를 메인에 걸어놓은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 기념 우표 ⓒwiki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여자 정치사상가로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녀와 연관된 가장 유명한 사건은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법정 소송 사건이죠.

유대인 학살을 지휘하며 악명을 떨치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정보부에 붙잡혀 1961년 12월에 재판을 받게 됩니다. 아렌트는 해당 소송 사건의 참관인 자격을 받아 예루살렘에 재판 과정을 직접 지켜봅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보고나서 그가 저지른 끔찍한 악행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평범한 인상이란 것에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냉혹한 살인마의 모습도, 피의 광기에 물든 미치광이의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주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에 대하여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말만 하였습니다.

그녀는 그 재판을 보고 난 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고 그 보고서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보고서는 1963년에 출판되어 세계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의 수송 담당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에 관한 글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표현을 썻다. 그 남자의 평범성과 동기의 평범성을 포착한 표현이었다. 아이히만에 대한 판단이 옳았는지는 둘째치더라도(역사학자들은 그가 아렌트의 생각과는 달리 좀 더 단호한 이데올리기적 반유대주의자였다고 본다.), 아렌트는 순수한 악의 신화를 해체하는 데 예지를 발휘했다. 뒤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지난 40년 동안 사회심리학은 ─ 그녀에게서 영감을 얻은 연구들도 있다. ─ 해로운 결과를 낳은 동기들이 대부분 평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악의 평범성의 특성에서 살펴봤을 때 스탠리 밀그램이 진행한 한 실험과 필립 잠바르도의 감옥 실험도 주목할만 합니다.


ⓒpixabay


스탠리 밀그램이 수행한 한 실험은 '권위에 복종(obedience to authority)'하여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수준까지 기꺼이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대학교 감옥 실험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실험에서 학생들은 교도관 혹은 죄수의 역할을 임의로 배당받았다. 그러자 교도관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곧 잔인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 사이먼 배러코언, 『공감 제로



물론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은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렌트를 반민족적인 인물이라고 비난하며 그녀의 저서를 금서로 지정했을 정도로 그녀에 대하여 맹렬한 비판의 날을 세웠습니다. 그 외의 학자들 중에서도 그녀가 아이히만을 보고 표현한 악의 평범성은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데이비드 체자리니(Daveid Cesarini)는 한나 아렌트가 재판의 초반부에만 머물렀다고 주장한다. 이때 아이히만은 가능한 한 평범해 보이길 원했다. 실제로, 그녀가 더 오래 머물렀다면, 그가 단순히 맹목적으로 명령을 따른 게 아니라 학살에 어떻게 창조성을 발휘했는지 보았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이히만의 행동은 사회력(social force)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요인의 측면(그의 감소된 공감)에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 사이먼 배러코언, 『공감 제로


그럼에도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현재까지도 많은 곳에서 인용되는 이유는, 아무리 평범하고 선한 사람의 본성 속에도 악마가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한 '악의 평범성'은 평범한 사람도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안일한 시선에서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 속의 선한 천사를 지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악에 대해 경계하고 스스로 생각하며 행동해야한다는 경고의 의미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참고 도서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사이먼 배러코언, 『공감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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