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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⑧ 딸 애니의 죽음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다윈의 편지

[다윈의 편지] ⑧ 딸 애니의 죽음

Editor! 2016. 7. 1. 13:27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⑧ 딸 애니의 죽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엠마,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있소. 패니가 전한 소식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하오. 오늘 정오에 녀석은 평안하게 마지막 잠에 들었다오. 우리 불쌍한 아이는 너무 짧은 생을 살았구려. 하지만 나는 녀석이 행복했었다고 믿고 싶소. 오로지 하나님만이 어떤 괴로움이 녀석의 앞에 놓여있었을지 아실 것이오. 한숨 한번 쉬지 않고 생의 불꽃이 꺼져버렸다오. 녀석의 솔직함, 녀석의 따뜻함이 생각나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소. 연전에 찍어 두었던 사진이 있어 고마울 따름이오. 사랑스러운 이 녀석은 한 번도 말썽을 피운 적이 없지 않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당신이 녀석에게 변함없이 보여주었던 친절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감내해야 했던 것들을 이젠 우리가 나누어야만 할 것 같구려. 나는 속이 좋지 않아 침대에 누워 있소.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소. 나의 불쌍한, 사랑하는 당신.

1851년 4월 23일

찰스 다윈


다윈과 큰 아들 윌리엄 (이미지 출처: wikipedia)


결혼 직후부터 시작된 다윈의 병치레는 평생을 갔다. 마흔 무렵엔 심하게 아프고 기력이 쇠해서 민간요법에라도 호소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사들은 다윈이 아픈 이유를 몰랐다. 용한 치료사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차와 마차를 갈아타고 이틀을 걸려 우스터셔 멜번을 찾기도 했다. 아이 여섯을 데리고 갔으니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다윈은 이른바 ‘물 치료’를 받았다. 다윈이 겪고 있던 소화불량 증세는 피가 위 쪽에 몰려 생긴 것이라 찬물로 온몸을 문질러 피를 말단으로 뽑아내야 된다는 것이 물 치료의 원리였다.


다윈은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온몸을 문질렀고 큰 컵으로 찬물을 쉴 새 없이 마셨다. 냉수 마찰하기 전에는 땀을 내고 식사도 당분·버터·향신료가 들어있지 않은 특별식으로 해결했다. 일시적인 차도가 있어서 한 달 동안 구토를 하지 않고 체중이 줄기도 했다. 석 달 넘게 멜번에서 치료를 받은 다윈은 집에 돌아와서도 정원에서 우물물을 길어 물 치료를 계속했다.


딸 애니 (이미지 출처: wikimedia)


1851년에는 큰 딸 애니가 다윈과 함께 멜번으로 가서 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자식들 중 다윈이 특별히 귀여워했던 애니는 여덟 살에 성홍열에 걸려 죽음의 고비를 한번 넘겼다. 이후에도 가끔 열이 나고 기침을 했지만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다윈은 애니의 증상이 자신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하고 함께 물 치료를 받도록 했다. 하지만 애니는 2주가 지나면서 토하기 시작했고 쇠약해져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찰스 다윈 (이미지 출처: wikimedia)


엠마 다윈 (이미지 출처: wikipedia)


다윈은 부인에게 딸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 큰 딸을 여읜 심정이 절절하다. 현대 의학자들은 애니의 병이 결핵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경제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부러울 것 없었던 다윈이지만 당시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질병으로 평생 괴로워했고 딸도 구할 수 없었다. 다윈이 남긴 애니를 추억하는 긴 글에는 딸에 대한 사랑과 신에 대한 원망이 담겨있다.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