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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편지] ⑩ 지질학자의 ‘외도’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다윈의 편지

[다윈의 편지] ⑩ 지질학자의 ‘외도’

Editor! 2016. 7. 29. 11:00

찰스 다윈이 살아생전 주고받은 수많은 편지들 중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들을 번역,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에서는 『종의 기원』 초판 발행일인 11월 24일을 기점으로 관련 전문가들의 꼼꼼한 번역과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 다윈의 주요 저작 세 권인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순차적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에 앞서 진화 이론이 어떻게 싹트고 발전해 나갔는지, 당시 학문 세계에서 다윈과 진화 이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등 다윈의 책에서는 볼 수 없는 내용들을 그가 남긴 편지들을 통해 만나 보고자 합니다.  


[다윈의 편지]

⑩ 지질학자의 ‘외도’


친애하는 라이엘 선생님, 

(…) 제가 쓴 지질학 책이 나오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 선생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하렵니다. 선생님의 『지질학 원리』 새 판이 나오기 전에 제 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산호초에 대한 이론 말고도 화산을 다룬 부분에 새로운 사실들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순전히 지질학만 놓고 이야기하면 최근에 제가 좀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유혹이 종종 있습니다. 종(種)에 대한 질문을 포함하고 있는 동물의 분류, 유사성, 그리고 본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어서 그쪽으로 관심이 많이 쏠리네요. 공책은 사실들로 가득 차 있고 그것들을 하위 법칙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1838년 9월 14일 

안녕히 주무세요, 선생님.

당신의 찰스



찰스 라이엘 (이미지 출처: wikimedia)


다윈은 책을 통해 ‘근대 지질학의 아버지’ 찰스 라이엘(1797~1875)을 스승으로 삼았다. 라이엘은 비글호의 선장이던 로버트 피츠로이에게 항해를 하면서 빙하에 떠밀려 엉뚱한 곳에 자리 잡은 표석(漂石)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선장은 그때 받은 책 『지질학의 원리』 초판 첫 권을 다윈에게 주었다. 배 위에서 책을 읽은 다윈은 첫 기항지부터 ‘라이엘의 눈’으로 땅을 살폈고 섬의 지질학적 역사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라이엘의 책은 케임브리지에서 에덤 세지윅이나 존 헨슬로 같은 선생들을 통해 받은 훈련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지금은 다윈을 지질학자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스스로 지질학자라고 생각했고 처음에 얻은 명성도 지질학 분야였다.


라이엘은 항해를 끝내고 돌아온 다윈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그 뒤로 둘은 친한 친구가 돼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칠레에서 겪은 지진과 안데스 고원지대에서 수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지각 운동에 큰 관심을 가졌던 다윈은 자신의 호기심이 점점 동물이나 식물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종의 기원』은 20년도 더 지나야 나올 예정이었지만 이미 1830년대 말부터 종의 불변이라는 통념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라이엘은 『지질학의 원리』 개정판을 거듭 내면서도 다윈의 생각을 반영하지 않았다. 『종의 기원』이 출간 된 뒤에야 10판에서 진화를 언급했다.


라이엘은 진화에 대해 미지근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다윈이 진화에 대한 생각을 발전시키는데 라이엘의 기여는 결정적이었다. 라이엘은 지질학적 변화가 과거 어느 시점의 격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평범한 원인’들이 오래 쌓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를 과거를 이해하는 틀로 삼고 ‘작은 원인’들의 축적이 변화를 이끈다는 생각은 진화론적 사고의 좋은 출발이었다. 물론, 그 변화의 원인이 ‘자연선택’이라는 것을 찾아낸 사람은 다윈이었다.


주일우 / 문학과지성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