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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칼 세이건 살롱> 스케치

(12강) 세대를 초월한 스토리텔링의 힘

Editor! 2016.12.29 15:48

올해, 칼 세이건 서거 20주기를 맞아 사이언스북스와 과학과 사람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칼 세이건 살롱 2016’이 13주간의 대장정 끝에 지난 12월 20일 막을 내렸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응원과 참여 덕분에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를 함께 보며 칼 세이건의 정신을 공유하는 이번 행사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사이언스북스는 매년 12월 20일을 ‘칼 세이건의 날’로 기념하며 더 좋은 콘텐츠와 행사로 독자 여러분과 만날 계획입니다. 이어서 『코스모스』의 역자 홍승수 선생님의 『나의 코스모스』를 비롯해 『혜성』, 『브로카의 뇌』 등 칼 세이건의 저작들도 곧 출간되오니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칼 세이건, 천문학에 이야기를 입히다!

한 해가 저무는 즈음입니다. 긴 시간을 함께 걸었습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어느덧 열두 번째 시간입니다. 이명현 박사님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2016 올해의 천문 사건’을 물었습니다. 역시 중력파 발견이었습니다.


“중력파를 발견했잖아요. 중력파를 발견하면서 ‘중력파 천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생겼어요. 전자기파의 시대에서 중력파의 시대로 넘어가는 기점이 된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중력파 검출 자료


중력파는 100년 전 아인슈타인이 예측했습니다. 블랙홀 병합이나 초신성 폭발처럼 질량이 급변하는 상황일 때 중력이 요동칩니다. 시간에 따라 질량이 변하면서 시공간이 휘어진 양상이 변합니다. 이때 중력의 변화(에너지)가 전파되면서 주변 시공간을 뒤흔드는데 이를 중력파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의 예측 이후 100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중력파 발견을 위해 미국은 2000년대부터 라이고(LIGO,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 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를 세워 본격적인 중력파 검출에 공을 들입니다. 마침내 2015년 9월 14일, 검출에 성공했고 이를 2016년 2월 11일, 전 세계에 발표합니다. 이 발표에 전 세계가 환호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이 엄청난 발견으로 우리는 우주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은하가 만들어졌고 어떻게 우주가 현재의 모습이 됐는지도 알게 될 겁니다. 가히 천문 사건이라 할 만합니다.  


중력파 발견 발표 컨퍼런스


「코스모스」 열두 번째 에피소드의 제목은 ‘지구의 메시지(The World Set Free)’였습니다. 중력파를 발견한 인류는 이제 더 넓은 우주에 더 깊이 시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는데요. 그런 인류에게 지구는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을까요. 그 메시지가 혹시 경고의 메시지는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 일곱 번째 시간 강양구 기자님의 강연을 통해 우리는 이미 지구가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를 점검해 보았습니다. 온실 기체 증가와 기후 변화가 그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는 강양구 기자님의 마지막 말은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A라는 집단은 비관론자들입니다. 개미들이라고 하겠습니다. B라는 집단은 낙관론자들입니다. 베짱이라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개미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지구 온난화가 초래한 기후 변화가 심각한 재앙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뭔가 대비를 합니다. 반면 베짱이들은 괜찮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100년 후, 지구 온난화의 효과가 나타납니다. 다행히도 베짱이의 얘기가 맞았습니다. 기후 변화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자, 좋습니다. 개미도 좋고 베짱이도 좋습니다. 그런데 만약 기후 변화의 재앙이 크게 나타납니다. 영화 「투모로우」 같은 전 지구적 기후 재앙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그때는 개미와 베짱이 중 생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는 것이 어느 쪽입니까? 개미입니다. 개미들에게 좀 더 여력이 있다면 베짱이들에게 손도 내밀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코스모스」 열두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이산화탄소입니다. 고대의 공기를 가둔 오래된 얼음으로부터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지난 80만 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0.03퍼센트를 넘긴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20세기까지는 그랬습니다. 산업 활동이 본격화된 이후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급증합니다. 증가한 이산화탄소의 온실 효과로 인해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온통 우리의 지문이 묻어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지난 시간, 인류가 놓쳐 버린 다른 길도 안타깝습니다. 1878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오귀스탱 무쇼(Augustin Mouchot) 가 선보인 태양열 수집기가 그중 하나입니다. 만일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면 석유와 석탄을 태워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방식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세상은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일을 안타까워만 할 수는 없겠지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다른 선택은 가능합니다. 「코스모스」에서 말했듯 우리는 “생존자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12월 16일, ‘칼 세이건 살롱 2016’열두 번째 강연의 주인공은 만화가 이종범 작가님이었습니다. 웹툰 「닥터 프로스트」를 그린 만화가 이종범 작가님은 삶을 확장시키는 도구로써 이야기를 점검했습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에서 여러 번 감탄한 「코스모스」 스토리텔링의 힘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세상을 바꾼 ‘이야기’의 힘

“어렸을 때 그렸던 최초의 단편 만화 남자 주인공 이름이 ‘세이건’”이었다는 이종범 작가님은 단지 그 이름이 예쁘기 때문에 사용했던 것이지만 이후 그 이름을 썼던 기억 때문에 점점 칼 세이건에게 관심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그 관심이 도달한 곳은 과학 그리고 이야기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무척 좋아하는 ‘과학 키드’였다는 이종범 작가님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저는 칼 세이건에게 대단한 동료 의식을 갖고 있었어요. 이야기라는 형식을 매우 사랑했고, 그 형식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고 있음이 분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삶을 확장시킵니다.”라는 이종범 작가님은 만화가 양영순 작가님의 작품 「천일야화」의 그림을 화면에 보여 주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천일야화』(또는 『아라비안나이트』)는 큰 상처를 가진 왕이 등장합니다. 죽음을 면하기 위해 왕에게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셰에라자드(Scheherazade)가 등장하고, 셰에라자드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진 왕은 1,000일 동안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종범 작가님은 『천일야화』를 “이야기에 관한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만화 「천일야화」 역시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가 한 명의 미친 왕을 변화시키는지 그 과정을 잘 보여 줍니다.”


힘 있는 이야기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세헤라자데의 목숨을 구한 건 오직 이야기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잖아요. 혹시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신 분이 계신가요? 어린 아이들은 잘 변해요.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고민하다가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에는 너무 멀리 왔죠. 지금까지 겪어 온 경험, 만나 본 사람, 가 본 장소, 체험한 모든 느낌들이 쌓여서 다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린 게 아닐까 해요. 그러나 저는 운이 좋게도 나이든 어떤 분들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걸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한 경험이 있어요. 그분들 변화의 한 가운데에는 아주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었어요.” 


이야기가 가장 밝게 빛나는 지점은 바로 이 때입니다. 다른 세상을 보여 줌으로써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 다른 존재를 말함으로써 나라는 존재를 바꾸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바꿔 놓은 몇 가지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전혀 겪어 보지 못했던, 어떤 사람의 인생의 날을 깊게 담갔다가 빼는 체험을 이야기는 주죠. 내가 너무 멀리 와 버려서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잘 만들어진 이야기는 내가 겪어 보지 못한 어떤 사람의 인생을 깊이 경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내가 20대 여자이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50대 남자여도 상관없어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마지막 한 달을 겪는다거나 혹은 전쟁의 상황을 두 시간 동안 겪어보고 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건 그의 삶에 깊게 들어갔다 나오는 경험을 주는 것이죠. 그래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확장시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삶을 확장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읽는다면 그러나 그 이야기는 반쪽짜리일겁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왜 좋아할까요. 간단합니다. 이야기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이종범 작가님은 재미가 “이야기의 막강한 무기”라고 말합니다. 만화가, 소설가, 시나리오작가 등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 역시 재미입니다. 이종범 작가님이 재미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재미가 없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재미’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집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죠. 저 같은 만화가들도 재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몇 년 전부터 만화가 동료를 만나면 용기 있게 질문하고는 했어요. 재미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말이에요.”


재미를 묻기 시작한 이종범 작가님이 재미의 정체를 찾아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술자리, 이종범 작가님은 동료 만화가들에게 묻습니다. “재미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질문에 돌아온 답 하나는 “웃긴 것”이었습니다. 이종범 작가님은 곧바로 되묻습니다. “슬픈 건 재미가 없나요?” 이 질문에 다른 만화가가 답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종범 작가님은 또 되묻습니다. “완결된 이야기는 재미가 없나요?” 이 질문에 또 다른 만화가가 답합니다. 그 답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답이었습니다.


“아무런 변화 없는 평상시의 마음이 기뻐지거나 슬퍼지거나 무서워지거나 화가 나면, 즉 일상 속에 있던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건 움직이기 시작하면 재미가 있다는 거예요. 놀랍지 않아요? 거의 모든 사람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멋진 말이었어요.”


이제 재미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 그러나 답을 얻은 것 같았던 이종범 작가님의 마음은 여전히 석연치 않았습니다.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건데?’라는 문제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몰입의 기술이 스토리텔링

“심리학 용어 중에 ‘칵테일파티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칵테일파티는 너무 시끄럽죠. 그런데 놀랍게도 멀리 떨어진 곳의 이야기를 한 번에 알아듣는 순간이 있어요. 바로 나의 이름이 어딘가에서 들릴 때입니다. ‘칵테일파티 효과’는 우리가 우리의 주의를 선택적으로 집중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관심사를 두고 있는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내가 아는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나를 대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이는 재미없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이제 이종범 작가님과 함께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방향으로건 움직일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약간의 실마리를 찾아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장 재미없는 이야기가 무엇일 것 같아요? 제가 가르치는 만화학과 학생들에게 물어봤어요. 아주 많은 경우 ‘군대를 갓 제대한 복학생과 이야기를 할 때’였어요. 그들의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나와 무관한 이야기를 했다는 거예요. 반대로 우리 대부분은 나와 관련된 이야기, 좀 더 심하게 이야기하면 나의 이야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재미의 핵심에 ‘나의 이야기’라는 개념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한 가지 모순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가장 빛날 때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게 해서 삶을 확장시킬 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불균형을 이종범 작가님은 기술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고 말했습니다.


“누가 봐도 내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속이는 기술, 누가 봐도 타인의 삶인데 그것이 잠깐 동안 나의 삶이 되었던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수많은 기술과 장치를 연구하는 게 제가 가진 직업입니다.”


작가들은 어떻게 이런 착각을 일으키는 걸까요. 여기에 몇 가지 공식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공 파악’입니다. “만화책을 보거나 드라마를 볼 때 스스로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반드시 하게 되는 행동”이 바로 누가 주인공인지 찾아내는 것입니다. 주인공을 찾아야 그에게 몰입해 이야기를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때문에 작가들은 “주인공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게 그리”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공식은 ‘죽을 위기’입니다. 주인공을 찾았다면 주인공에게 이입할 충분한 상황이 필요한데 “거의 반강제로 독자를 주인공에게 이입시켜버리는 강력한 장치”가 바로 죽음의 공포입니다.(혹은 어떤 종류의 공포도 가능합니다.)


“이야기가 시작된 후 3페이지 만에 주인공을 죽을 위기에 빠뜨리면 돼요. 왜냐하면 나이나 사는 곳, 성별과 무관하게 누구나 죽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죽을 위기에 빠지는 순간 자기도 모르고 주인공을 응원하게 됩니다. 나와 접점이 없는 주인공인데 응원을 하게 되는 순간 주인공에게 이입하게 되는 거죠.”


이 공포의 감정은 “인간의 감정 중 유일하게” 하나의 장르가 된 감정입니다. “공포라는 감정이야말로 별 다른 장치 없이도 강력하게 여러분을 주인공에게 이입시켜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게 이종범 작가님의 말이었습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살펴본 ‘재미’라는 이야기의 요소 외에 결핍이라는 이야기의 형식으로도 가능합니다. 이종범 작가님은 대중적으로 흥행한 이야기를 분석하기로 합니다. 인기 있는 이야기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약 3,000권의 만화책을 모두 읽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한 문장 또는 두 문장 정도로 짧게 바꾸는 작업, 육 개월에 걸친 작업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추출해 냈던 인기 있는 이야기들이 놀라울 정도로 같은 형태로 쓰여 있다는 걸 알았어요. 사람들이 보통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누군가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데 그걸 얻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형식으로 쓰인 이야기에 매료되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 삶이 그런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원하지 않았던 걸 얻게 된 경험은 시간이 지나면 금방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간절히 원했지만 수월하게 얻은 경험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몹시 원했으나 얻기가 어려웠다면” 그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가진 불행이자 축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을 그런 형태로 기억하기 때문에 멋진 이야기들에 매료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보르헤스의 말이 떠오릅니다. 세계가 악몽이라 생각하는 작가는 책 읽기를 가장 행복한 일로 꼽습니다. 구원은 차단되어 있지만 글쓰기가 구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리둥절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작가는 아니겠지만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어렵게 얻을 수밖에 없는 세계를 사는 존재로서 꿈을 꾸기 위해 이야기에 매료됩니다. 그 이야기가 우리 삶을 어디로 이끌지는 좀 더 지켜볼 일입니다.  


나는 인생이, 세계가 악몽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탈출할 수 없고 그저 꿈만 꾸는 거죠. 우리는 구원에 이를 수 없어요. 구원은 우리에게서 차단되어 있지요. 그럼에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나의 구원은 글을 쓰는 데 있다고, 꽤나 가망 없는 방식이지만 글쓰기에 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에요.(중략) 끊임없이 경험하고 행복하고 슬퍼하고 당황하고 어리둥절하는 수밖에요. 나는 늘 이런저런 일들에 어리둥절해하고, 그러고 나서는 그 경험으로부터 시를 지으려고 노력한답니다. 많은 경험 가운데 가장 행복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에요. 아, 책 읽기보다 훨씬 더 좋은 게 있어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것인데, 이미 읽었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풍요롭게 읽을 수 있답니다.(『보르헤스의 말』, 152-153쪽)



이종범 작가님은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라며 만화 「베르세르크」를 소개했습니다. 친구를 한 순간에 잃고, 연인도 잃을 뻔한, 오직 살아가는 목적은 복수심뿐인 주인공. 그런데 주인공이 복수해야 할 상대는 신(神)입니다.


“이 만화는 주인공이 너무나 얻고 싶은 무언가를 너무나 어렵게 이루어 나가는 의지의 흔적으로 가득 찬 만화입니다.”


츠루타 겐지의 「스피릿 오브 원더」 역시 “무언가 알고 싶다는 강력한 마음이 모든 이야기 속에 녹아 있”는 작품입니다. 너무나 알고 싶은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이종범 작가님은 반면 아쉬웠던 작품으로 영화 「인턴」을 꼽습니다. 이유는 주인공에게 원하는 게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원하는 사람은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의 주변인입니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엑스트라가 되는 느낌”을 가지게 된 겁니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에서 스토리두잉(storydoing)으로

“칼 세이건이라는 사람은 제가 보기에 ‘스피릿 오브 원더’라는 단어와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무언가를 알고 싶고, 알고 난 뒤에 경이로워할 준비를 전부 끝내 놓은 사람이었어요.”


만끽한 사람. 이종범 작가님은 ‘칼 세이건 살롱 2016’ 첫 번째 시간 홍승수 교수님의 말씀에서 비슷한 맥락을 읽었습니다.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과학에 흥미를 느끼도록 할지 고민하는 선생님의 질문에 홍승수 교수님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정말 즐겁게 했던 것을 학생들도 즐거워하게 해 주고 싶어요. 전염을 시켜 주고 싶어요. 그러면 열광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인간은 참 묘해서 금방 알아차려요. 저 사람이 쇼를 하는 거다, 아니면 저 사람은 정말 자기가 공부하는 것을 이렇게 좋아하는구나, 라고 말이에요. 그게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지고 옵니다. 그 즐거움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보여 주시면 학생들도 따라옵니다.” 


이종범 작가님은 칼 세이건 역시 그 자신이 너무나 과학을 즐겼던, 만끽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이야기가 우리를 매료시키는 원리 세 번째가 등장합니다. 바로 ‘주제’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단어”로 주제를 설명한 이종범 작가님은 “주제란 소재에 대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작가가 자신이 가진 입장을 정리하면 굉장히 강력한 주제가 됩니다. 이것이 왜 우리를 매료시킬까요? 혹은 왜 어렵게 느낄까요? 이유는 입장이라는 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종교에 대해? 군대에 대해? 여혐에 대해? 입장을 표현하면 우리는 반드시 반대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입장을 표현하는 순간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주제, 입장, 테마라는 말을 무겁게 받아들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나 이야기꾼이 이야기에 자신의 입장을 넣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그게 작가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 작가에게 어느 이상 중요한 문제는 반드시 다른 사람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는 이종범 작가님은 성소수자 예를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성 정체성을 고민해 온 성소수자가 만약 ‘내가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계속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는 어느 시점에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 고민은 그의 이야기 바깥으로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굉장히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겁니다. 어쩌면 이 말은 처음에 이종범 작가님이 했던 “이야기는 삶을 확장시킵니다.”라는 말과 놀랍게 만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강연에서 잘 만들어진 이야기가 작동하는 세 가지 원리를 살펴본 이종범 작가님은 마지막으로 행동을 이야기했습니다. 칼 세이건이 그랬듯, “진짜 이야기꾼들의 야망”이라면 그것은 행동 촉구일 것입니다. 이야기에 재미를 느끼고, 이야기에 매료돼 삶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이야기의 주제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내 삶을 변화시키자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을 만화의 마지막 페이지,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라고 보지 않습니다. 저는 그 작품을 접한 청중, 독자, 관객이 집에 가서 자려고 누웠다가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기 시작할 때,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는 완결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무언가 유산을 전해 주었기 때문이죠. 칼 세이건이 닐 타이슨에게, 닐 타이슨이 여러분에게 뭔가를 전했을 거예요. 이야기를 통해 삶이 확장되면 반드시 교감이 생기는데요. 그것이 많이 퍼졌을 때 어쩌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모인 여러분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을 통해, 「코스모스」를 통해 여러분은 어떤 변화를 경험했나요? 아주 작은 변화라도 그것은 우주의 변화만큼이나 엄청난 것입니다. 아주 작은 실천이 함께 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질의응답


이산화탄소나 메탄은 다른 기체와 달리 온실 효과를 가져오는데요. 원리가 무엇인가요? 

이명현(이하 ‘이’): 이산화탄소가 열을 잡아둔다는 건 화학적 작용을 한다는 거잖아요. 어떤 원소는 특성상 쉽게 다른 것과 반응하고요. 어떤 원소는 다른 것과 반응하지 않아요. 이산화탄소나 메탄은 열과 쉽게 반응해서 열을 머금는 성질이 있는 것이죠. 탄소가 다른 것과 쉽게 결합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메탄은 쉽게 깨져요. 메탄 가스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다른 걸로 변해요. 때문에 짧게 보면 메탄이 온난화에 기여를 많이 하지만 길게 볼 때는 이산화탄소가 온실 효과의 주된 원인입니다. 


미국 도심에서 옥상에 식용 식물을 기르고 근처 식료품점이나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국내에 도입하면 어떨까요? 

: 친환경의 그림자가 있어요. 가령 풍력 발전을 할 때 소음이 엄청나요. 또 근처의 새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고요. 친환경이 오히려 환경 파괴를 하는 일들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 거죠. 국내에 태양광 발전소가 1만 개 가까이 있는데요. 태양광 발전을 하기 위해 산을 깎는 일이 발생하기도 해요. 유기농이라는 것도 어폐가 있죠. 약을 치지 말자는 건데 그렇게 하면 우리가 겪었던 기생충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다 얽혀 있기 때문에 복잡하고요. 옥상에 녹지를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하는데요. 그런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캠페인이나 운동처럼 하면 실패하는 것 같아요. 맥락을 고려해야 할 것 같아요. 


우주 탐험보다 지구 탐험이 더 어렵다는 글을 봤습니다. 의견이 궁금합니다. 

: 우주 탐사를 하면 돈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데 실제 바다 탐사가 훨씬 덜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어떤 걸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를 두고 과학자들 사이에 격론이 있었어요. 우주에 대해 아는 것보다 바다에 대해 아는 것이 더 적다는 얘기를 하는데요. 그렇지만 적절한 비유는 아닌 것 같아요. 우주는 굉장히 넓잖아요. 넓은 걸 스케치하듯 아는 게 굉장히 많이 아는 것 같죠. 반면 지구는 가까이 있어요. 별의별 세부 요소가 다 있죠. 그것들을 하나하나 아는 것과 우주를 직접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종범(이하 ‘범’): 비슷한 생각이에요. 기사를 보거나 연예인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같이 살고 있는 아내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잖아요. 비슷한 의미로 우주와 지구를 안다는 것은 다른 개념인 것 같습니다. 


미국 항공 우주국(NASA)에서 심해 연구도 하나요? 

: 네. NASA의 관심은 크게 두 가지, 우주의 기원과 생명의 기원이에요. 여기서 심해 탐사를 하는 이유가 있어요. 목성의 위성 중 ‘유로파’라는 게 있는데요. 겉은 얼음이지만 그 속에 지구보다 더 큰 바다가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때문에 그곳을 탐사하고 싶어 해요. 미국항공우주국에서 지구 심해 탐사를 열심히 하고 있죠. 우주 생물학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 남극 같은 극한 지역의 박테리아를 연구한다든지 화산 옆의 미생물을 관측한다든지 하거든요. 지구도 열심히 연구를 합니다. 



왜 지구가 아닌 우주에 재미를 느꼈나요? 

: 결국 미완성이잖아요. 해결될 수가 없죠. 그런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 있어서 계속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범: 우주에 대한 탐구심이 너무 컸던 사람을 보고 나서였어요. 저 정도로 알고 싶어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 첫 시작이었어요. 그분이 암에 걸려 유학을 관둘까 고민하던 상황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넓은 평원에 있는 양 떼를 봤대요. 양은 신체 구조상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다고 하는데요. 수많은 양 떼 중에 딱 한 마리의 양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는 거예요. 어떤 계시처럼 그때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신 분이 있었는데요. 그 말을 들으면서 ‘저 정도로 저기에 미쳤다는 건 분명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원종우: 저는 그 거대함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큰 것, 가장 무한에 가까운 것, 가장 영원에 가까운 것, 그런 것이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인류가 외계인과 교류한다고 했을 때 인류는 그들의 문명을 파괴하고 이용하게 될까요?

: 그런 걱정을 하는 분들이 있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 정도 되는 문명과는 만날 수가 없어요. 너무 멀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보다 훨씬 발전된 문명을 영위하는 외계 종족을 만날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을 텐데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싸움이 그들의 가치관에 남아 있을까, 저는 의문이거든요. 그런 식의 다툼은 없을 거라고 봐요. 


이종범 작가님은 언제부터 만화가를 꿈꿨나요? 만화가가 되기 위해 학창 시절에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범: 여덟 살 때 처음 꿈꿨고요. 운 좋게도 결국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만화책을 만끽했었어요. 뭔가 하고 싶을 때 제일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는 건 얼마나 비의도적으로 만끽하느냐 라고 보거든요. 그것을 제일 열심히 했고요. 공부 진짜 열심히 했어야 했어요. 성적을 잘 못 받으면 밤새 만화 그릴 수도, 만화책 볼 수도 없었으니까요. 


웹툰 작가라는 직업이 힘든 점, 행복한 점, 보람을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범: 좋은 건 많습니다. 삶에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이 좋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치 게임에서 광역 마법 쓰는 캐릭터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명에게 전달할 수 있는 직업이라 매력이 확실히 있어요. 다만 그런 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웹툰 작가의 어려운 점은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아 공격당하기 매우 좋은 직업이라는 거예요. 그렇지만 법적인 대항은 할 수 없는 개인들이라는 것이 가장 문제죠. 웹툰 작가의 직업병이 디스크, 손목 터널 증후군, 거북목 등만 있었다가 최근에 직업병이라고 할 만큼 늘어난 게 공황 장애예요. 취약 지대에 있는 거죠. 



글 : 신연선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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