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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강)기계를 사랑한 남자, 별 헤는 남자와 만나다 본문

(연재) <칼 세이건 살롱> 스케치

(9강)기계를 사랑한 남자, 별 헤는 남자와 만나다

Editor! 2016.12.08 09:53

올해, 칼 세이건 서거 20주기를 맞아 사이언스북스와 과학과 사람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칼 세이건 살롱 2016’의 문이 열렸습니다. 우주를 꿈꾸던 뛰어난 천문학자이며,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섰던 세계적인 과학자 칼 세이건. 앞으로 13주 동안 진행될 ‘칼 세이건 살롱 2016’은 그의 과학과 사상, 꿈을 공유하는 특별한 자리가 될 예정입니다.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 있네> 진행자 원종우 대표가 메인 호스트로,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가 서브 호스트로 참여해 매회 다양한 전문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이번 행사는 9월 30일부터 매주 금요일마다 다큐 「코스모스: 스페이스타임 오디세이」를 한 편씩 보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지구, 46억 년의 살아 있는 기록

지난 11월 25일 저녁, ‘칼 세이건 살롱 2016’ 아홉 번째 시간에 우리가 시청한 「코스모스」 에피소드의 제목은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s of Planet Earth)’였습니다.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요? 어떤 모습의 세계가 우리가 사는 지구에 있었던 걸까요? 「코스모스」는 “별자리조차 달랐을 때”의 지구를 소개합니다. 

‘코스믹 캘린더’, 즉 우주 달력으로 12월 23일입니다. 3억 5000만 년 전 지구에는 산소가 지금보다 두 배 많았습니다. 지금은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노래기가 당시에는 악어만큼 컸습니다. 또 잠자리는 독수리만큼 거대했습니다. 상상이 가나요? 그것들을 지금 보게 된다면 거인국에 떨어진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산소 공장은 바로 식물이었습니다. 식물은 중력에 저항하도록 진화했습니다. 리그닌(Lignin)이라는 물질 덕분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아직 리그닌을 소화할 수 있는 생물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한 시기, 식물이 뿜어내는 많은 양의 산소가 폐 없이 피부로 호흡하는 곤충들을 지금보다 훨씬 큰 덩치로도 살아갈 수 있게 했던 것입니다.

그때의 식물들은 지금도 존재합니다. 석탄으로 말이지요. 지구의 달력이 넘어갈 때마다 지구의 환경도 급변했습니다. 화산이 폭발했고, 빙하기가 왔고, 대멸종으로 대부분의 생명이 잃어버린 세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석탄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구 어느 곳을 가도 발 딛은 땅 아래 그렇게 잃어버린 세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 앞에서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이후에도 지구의 기후는 변화무쌍했습니다. 대홍수와 급격한 추위, 또 더위. 혹독함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생명들은 마침내 간빙기를 맞이합니다. 온화한 기후가 생명을 보듬습니다. 인류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비로소 정착 생활을 하게 됩니다. 방랑을 마치고 문명을 일굽니다. 그리고 마침내 잃어버린 세계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칼 세이건 살롱 2016’ 첫 번째 시간 홍승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가늠자 안에 가늠하는 우리 자신이 서 있는 경이로움 말입니다.


“참 신기한 겁니다. 광활한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를 찾고 있잖아요. 그 안에 인간이 있죠. 조준 대상 안에 조준 주체가 있는 아주 묘한 형국이 연출됩니다. 저는 이게 대단히 흥미로워요. 그냥 넘겨 버릴 사항은 아니라고 보여요. 인간, 삶에 대한 어떤 의미가 이 속에 숨어있는 건 아닐까 궁금해져요.”


그러나 문제는 인류가 잃어버린 세계의 유산인 석탄과 석유를 마구 태워 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화와 기후 변화 문제는 앞서 7강 강양구 기자님의 강연에서 생각해 보기도 했지요. 인간은 산업 활동이라는 허울 좋은 이유로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5만 년이나 지속될 거라는 간빙기를 인류가 나서서 단축시키는 꼴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를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산업화 이후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과 유사한 속도로 많은 종이 멸종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명현 박사님 역시 ‘칼 세이건 살롱 2016’에서 여러 번 인류세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인류세’라고 해서 대략 250년 전, 산업 혁명 이후부터 멸종이 시작되었다고 과학자들이나 역사학자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잖아요. 우리가 그런 길에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우주의 역사에서 종의 멸종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종이 멸종했고 새로운 종이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인류라는 종은 언제 ‘멸종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게 될까요? 인류는 그 시기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행운아이다.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고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문명의 미래와 하나의 종으로서 인류의 생존 문제가 우리 두 손에 달려 있다. 우리가 지구의 입장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그렇게 해 주겠는가? 인류의 생존 문제를 우리 자신이 걱정하지 않는다면 우리 대신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코스모스』, 633쪽.





과학의 본질은 맥락을 이해하는 것

이번 ‘칼 세이건 살롱 2016’의 강연을 맡아 주신 분은 기계 비평가 이영준 교수님이었습니다. 지구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일이, 과학을 하는 일이, 사소한 것 하나에도 무수히 많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지 따져 보게 되는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먼저 이영준 교수님이 하는 기계 비평이란 무엇인지 들어 볼까요. 이영준 교수님은 “기계를 구매해서 내 손에 오는 짧은 역사”와 “컴퓨터가 개발된 역사”, “인간이 사용한 역사” 등을 언급했습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떤 과정으로 내 손에 왔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어째서 이 모든 것을 알아야 할까요. 이에 대해 이영준 교수님은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에 기계 비평을 통해 그 역사를 이해해 보고자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기계의 기능, 구조, 문화를 이해하려는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은 새삼스럽지만 흥미롭습니다. 그것은 인류가 지구의 역사, 더 나아가 우주의 역사를 조망하게 한 원동력과 무척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영준 교수님은 무엇보다 과학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전했습니다. 사실 과학이란 암기로 가능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칼 세이건 살롱 2016’에서 내내 따졌으므로 잘 알고 있습니다. 과학 하는 태도가 결여된 과학 교육은 그 자체로 화석과도 같은 것이겠지요. 이영준 교수님의 말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질문을 끌어내는 게 과학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때는 무조건 달달 외웠어요. 암기의 문제는 시험 끝나면 다 잊어버린다는 거죠. 사실 고등학교 때 배운 과학지식만 갖고 있어도 지금 제가 훨씬 더 훌륭한 평론가가 되어 있을 것 같아요.(웃음)”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정치나 권력과 관련된 대형 비리 의혹, 스캔들을 일컫는 ‘게이트’는 어떻게 나온 용어일까요?


“1972년 미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게 터지죠. 닉슨 대통령이 도청을 하려다 걸려서 탄핵을 당해요. 탄핵 직전에 자진 하야를 하거든요. ‘게이트’라는 말은 거기서 나온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도 모르고 마구 쓰고 있어요. 저는 그런 작은 질문을 하는 것이 과학 하는 태도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어요.”


우리는 많은 지식을 ‘원래 그런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마치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전혀 의문을 품지 않는 것들도 많습니다. 순식간에 생활 안으로 들어와 버린 것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는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죄수 브룩스가 가석방으로 세상에 나와 도로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보고 놀라는 장면이 나오지요.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 이제는 자동차 없는 도로를 상상하기 힘들 지경인데 말입니다. 어디 그런 것이 한둘일까요. 이영준 교수님은 기계 비평을 하는 이유가 이 같은 맥락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스위치를 누르면 켜지죠. 우리는 아무런 의식도 하지 않고 그냥 사용해요. 그렇지만 과연 어떤 얼개로 스위치가 켜지는 것인가 묻는 것, 저는 그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원종우 대표님도 한 SF를 언급하며 “만약 우리를 500년 전으로 데려가 자동차, 컴퓨터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물으면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다.”라면서 우리가 누리는 문명과 문명을 이루는 지식 사이에 있는 큰 괴리에 동감했습니다. 이 괴리를 줄이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일 겁니다. 이와 관련해 이영준 교수님이 최근에 진행했던 재미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들어 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작가들과 진짜 라디오 방송을 하는 작업을 했어요. 찾아보니 중국제 라디오가 있기에 몇 십 대를 사다가 라디오 방송을 했는데요. 이 프로젝트를 홍보할 때 처음 받은 질문은 항상 똑같았어요. ‘인터넷에서 볼 수 있나요?’였어요. 여기서 주파수를 보내면 수신기에서 받는 가장 기본적인 라디오 프로젝트를 했던 건데 사람들의 인식은 인터넷에 딱 묶여 있던 것이죠.”


디지털을 공기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세상에서 애써 다른 작업을 함으로써 전하려던 메시지를 알 것도 같습니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의 필요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늘 필요를 기반으로 선택해야 하는 걸까요. 선택받지 못한 것들은 사라져도 괜찮은 걸까요. 다양한 것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한다면 세상은 훨씬 안전할지도 모릅니다.  

보이저호에 실어 보낸 골든 레코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영준 교수님은 골든 레코드의 수명이 10억 년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대체로 LP가 사라지고 있는데 그것이 10억 년 갈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다.”라고 감상을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명현 박사님은 “보이저호를 보낼 때 저장 매체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가장 오래 견디는 것으로 채택한 거예요. 하드 디스크 같은 전자 기기는 우주 공간에서 나오는 알파 입자 같은 것들의 충격을 받으면 금방 고장 나거든요. 고민 끝에 가장 원시적이지만 가장 오래갈 수 있는 매체를 고른 것이 LP였던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다시 이영준 교수님의 프로젝트가 등장해도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기계 문명 속 소외된 인류를 구하라!

한편 사물의 가능성과 무관하게 “우리가 사물을 대하는 사이클이 굉장히 짧아졌다.”라는 이영준 교수님의 지적이 날카롭게 다가왔습니다. 소비적인 문화에 대한 이영준 교수님의 고민은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였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이 차를 타는 평균 수명이 5년 정도라고 하네요. 저도 똑같이 소비의 사이클에 있기 때문에 다른 차를 보면 바꾸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소비와 다른 패턴으로 기계를 대하며 살 것인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요. 요즘 기계들, 가령 아이폰 같은 경우도 아예 속을 들여다볼 수 없잖아요. 뜯어본다 한들 안에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요. 그 엄청난 콘텐츠는 알 필요가 없죠. 소비자는 신경 쓰지 말고 소비나 하시오, 라는 의미일 텐데요. 더군다나 터치 방식이기 때문에 사람은 그 안의 구조를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예요.”



구조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영준 교수님은 스스로 ‘철도 덕후’라고 지칭하면서 이 질문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독일 쾰른 역에서의 일입니다.


“1년에 딱 한 번 증기 기관차를 운행하는 날이었는데요. 우연히 가서 증기 기관차를 보게 됐는데 움직이는 부분이 굉장히 많은 거예요. 사람으로 치면 내장이 훤히 드러나서 다 보여 주는 식이에요. 그런데 지금의 KTX는 그렇지 않죠. 우리가 작동을 볼 수 있는 부분이 전혀 없죠. 매끈하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되도록 그 속을 보려고 하는데요. 소비의 문제는 그런 것이죠. 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속을 들여다봄으로써 “다른 패턴”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그 작은 변화가 인류의 미래를 다시 기록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연료 소비의 패턴을 바꿔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라고 하는 이영준 교수님은 이 문제에 당면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살펴봅니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또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출입문이 열려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곳으로 엄청나게 많은 따뜻한 공기가 빠져나가죠. 여름이면 시원한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냉난방 효율이 떨어지겠죠. 이때 할 수 있는 건 아주 간단해요. 내 뒤에 있는 문이 닫혀 있나 보면 됩니다. 제 경우는 누가 열어 놓았으면 제가 닫고 들어가거든요. 식당에 가 보면 웃기는 게 여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겨울에도 냉장고를 가동하거든요. 바깥 온도가 영하 2도라고 한다면 그 온도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 돼요. 열 교환기가 있어서 그 온도를 끌어오면 되죠. 그런 식으로 조금만 생각하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면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요.”


“절대 기업들에게 무엇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라는 것이 이영준 교수님의 말이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더 이득이 된다.”라고 말하는 이영준 교수님은 세월호를 이야기했습니다.


“세월호 사고의 귀중한 교훈은 이거예요. 돈으로 말하는 게 무리가 있지만요. 여러 가지를 따졌을 때 세월호 사고가 몇 조원의 손실을 가져왔다고 하거든요. 우리나라는 해난 구조 사업이 활발하지 않아요. 세월호 인양을 위해서도 해양 산업이 발달한 나라의 전문가를 불러오는데요. 네덜란드나 덴마크는 해양 산업이 굉장히 발달해 있어요. 거기서 생기는 부가가치도 많을 거예요. 우리나라도 그런 데 투자하면 새로운 사업 분야도 생기고 비극적인 해난 사고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인간 VS 기계’가 아니라 ‘인간 WITH 기계’

기계 비평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다소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는 기계와 문명, 환경 문제 등에 관한 이영준 교수님의 생각을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문명과 기계에 대한 문제 제기입니다. 커지는 문제들과 관련해 기계 비평가로서 어떻게 문제의식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제가 직접 다룰 수 있는 작은 차원에서부터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많이 생각하는데요. 확실한 건 우리의 기계 문명은 근대 이후의 산물이지 않습니까. 전에도 단순한 기계는 있었지만 환경을 파괴할 정도는 아니었죠. 제임스 와트가 증기 기관을 발명하고 석탄을 때면서부터 환경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는데요. 문제는 거대한 산업 구조와 맞물리다 보니 항상 과잉이었다는 점이에요.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내고 점점 값이 내려가다 보니 과잉을 즐길 수도 있어요. 저 자신도 과잉 속에 있고요. 어떻게 하면 과잉을 줄일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앞서 무엇을 소비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문제 제기와 닿아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불필요하게 많은 것을 소비하고 있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과잉 속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반드시 필요한 것과 거리가 있지요. 필요한 것만 소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영역에서 내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은 무척 중요합니다. 이영준 교수님의 시선은 우리의 식탁으로 이동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매일 닭 한 마리씩 먹을 수 있죠. 몸에 안 좋잖아요. 그렇게 먹는 닭 자체도 건강하지 않고요. 우리는 닭 한 마리씩 먹으면서 어떻게 살을 뺄지 고민하는데 사실은 저 닭을 저렇게 막 죽여도 될까,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동물 복지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있잖아요. 어떻게든 과잉을 거꾸로 돌려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원종우 대표님은 이를 “모든 것에 중독되어 있는 상태”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아주 사소한 선택이라도 “어떻게 하면 과잉을 줄일까”를 생각하고 “되도록 그 속을 보려고” 하면 어떨까요? 조금만 시선을 변화시키면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많은 과학자들이 2045년이 되면 특이점이 온다고 말을 합니다. 인공 지능이 모든 면에서 인간의 모든 능력을 급격하게 뛰어넘는 정도의 시대가 2045년 정도에 올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것을 ‘특이점’이라고 합니다. 스티븐 호킹, 레이 커즈와일 같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지금 목격하는 많은 인공 지능을 보면서 과학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말은 지난 2강에서 이명현 교수님이 설명한 ‘특이점’에 관한 내용입니다. 기계 비평가는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이영준 교수님께 물었습니다. 인공 지능을 위시한 기계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관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들어 봅니다. 역시 새로운 시선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인간은 기계에게 졌다고 생각해요. 증기 기관처럼 인간이 계속 일할 수도 없고요. 기계의 한 가지 중요함은 일정하다는 거잖아요. 사람이 일을 하면 퀄리티 컨트롤이 안 된단 말이죠. 손톱깎이 없이 물어뜯어 손톱을 깎으면 손톱깎이처럼 깨끗하게 깎을 수 있을까요? 이미 인간은 손톱깎이한테 진 거죠.(웃음) 마셜 매클루언은 바퀴는 발의 연장이고, 책은 눈의 연장이고, 옷은 피부의 연장이라고 했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연장이 아니라 압도 내지는 대체 같아요. 바퀴 달린 자동차는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잖아요.”



인공 지능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이미 우리 안에 기계가 들어와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인간의 기계화, 기계의 인간화가 충분히 진행되었다는 것이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적응하면서 진화해 온 것”이므로 인간이 기계에 점령당하거나 기계가 인간을 모조리 전멸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었습니다. 


앞으로의 기계는 인간이 생활하는 모든 과정에 도움을 주고 있으면서도 인간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원종우 대표님의 전망입니다. 선택할 필요조차 없이 가장 가까운 비서처럼 선택을 제안하는 것, 이것을 “기계 문명의 편리함의 극한”이라고 생각한다는 원종우 대표님은 이영준 교수님이 생각하는 건강한 기계 문명의 미래를 물었습니다. 이영준 교수님은 인간의 개입 가능성을 높이는 기계를 상상했습니다.


“모든 게 터치 위주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얄팍한 소비자로만 남아요. 생산에 참여할 기회가 전혀 없는 거죠. 라면 봉지에 성분표가 있는데요. 정말 난해해요. 라면이야말로 기계화된 음식의 대표적 형태죠. 몇 년 전 라면에 나트륨이 많다는 것이 크게 뉴스가 되었는데요. 그러나 우리는 라면에 간섭을 할 수가 없어요. 원자력 발전은 그게 더 심하다고 해요. 저는 그런 기계가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지하철을 탈 때도 카드 찍고 들어가는 게 너무 단순하니까 좀 더 작동을 시켜야 들어갈 수 있는 형태의 기계 말이죠.(웃음) 하지만 실현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농담 같은 이영준 교수님의 말이지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택하는 방향이 여러 방향으로 분산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선택권을 주는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영준 교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좀 더 큰 차원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보잉 747의 엔진이 1초에 1톤의 공기를 빨아들여요. 어마어마한 압축입니다. 이런 엔진이 네 개가 달려 있죠. 1초에 4톤의 공기예요. 한 시간이 3,600초이고, 비행시간이 14시간이라고 하면 엔진 하나당 대략 5만 톤 이상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거죠. 그중 산소의 비중이 10퍼센트라고 한다면 약 5,000톤의 산소가 사라지는 거예요. 무서운 일이죠. 하루에도 수천 대의 비행기가 떠 있으니 어마어마한 양의 공기가 사라지는 건데요. 제트 엔진이 처음 발명된 1930년대에는 아마 대기 오염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공기는 무한대고, 공짜니까요. 더군다나 많이 쓴다고 공기가 항의하지도 않잖아요. 그런 식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의 기본적 철학은 인간 중심주의인 거죠. 인간이 가장 소중하고, 만물의 영장이니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은 막 써도 된다는 거예요. 그 결과는 오염된 세계, 파괴된 세계예요.”


이영준 교수님은 “인간만이 소중한 것은 아니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철학 안에 해결책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시선을 우주로 넓히면 더욱 그렇습니다. 우주의 압도적인 규모를 깨달을수록 “엄청난 회의”가 든다는 이영준 교수님은 그렇지만 “그 엄청난 우주는 우리를 표상하지 못한다.”라는 사실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주를 표상”하지요. “우주를 표상하면서 우리의 인식 체계로 끌어들이고 우리 나름의 질서를 세우고 있다.”라는 점에 의미를 둡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존재하는 “아주 작은 출구”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주를 보면 경이로움과 허무함이 같이 오잖아요. 그 과정에서 칼 세이건 같은 사람들은 냉혹한 현실을 인지하고 거기서부터 가치를 새롭게 찾아 나가자고 얘기해요.”라는 이명현 교수님의 말씀도 이어졌습니다.

다시 홍승수 교수님의 가늠자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질의응답

기계와 문명, 그것으로 비롯할 인류의 미래를 꼼꼼하게 살펴보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결코 냉소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코스모스」 아홉 번째 편,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s of Planet Earth)’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이명현(이하 ‘이’):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고, 현재를 사는 생명체가 전부라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서 ‘멸종의 전당’ 이야기를 했죠. 멸종된 생명체들, 그것들이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고요. 땅속에 파묻힌 예전의 세계가 모두 ‘잃어버린 세계’인 것이죠. 그것들을 종합한 이야기 같아요. 


지구의 현재와 과거가 사실상 다른 행성이라고 한다면 화성이나 금성 같은 지구 주변의 다른 행성도 생명 이전 혹은 이후의 행성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 천문학계가 추정하기를 태양계 초기에는 지구보다 화성이 더 거주 가능한 환경이었을 것이라고 해요. 화성에 물이 더 많고 다른 생명 거주의 조건들도 더 많았을 것 같다는 추론이에요. 지구보다 화성에서 먼저 생명체가 태동했을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인류의 멸종 이유가 무엇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나요? 

: 멸종 개념을 일단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나타났던 모든 생명체는 다 멸종했고요. 현재 살고 있는 생명체도, 우리도 멸종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요. 다만 우리는 후손을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잖아요. 그에 걸맞게 생각을 해서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요. 저는 멸종해도 무방하다고 봐요. 그래도 좀 억울한 건 이제 20만 년 살았잖아요. 공룡은 1억 년도 넘게 생존했는데 말이죠. 또 이렇게 우주를 알기 시작했는데, 궁금한 것이 많은데 멸종하기는 조금 억울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트랜스휴먼(trans-human)이 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에요. 빨리 기계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주로도 막 뻗어 나가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영준(이하 ‘준’): 기계 역시 멸종된 기계도 많죠. 기계라고 해서 영원할 것 같지는 않고요. 중요한 건 멸종이 되어도 외계에서 지적 생명체가 지구를 봤을 때 ‘지구에 훌륭한 지적 존재가 있었구나.’라고 할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순신 장군은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위대하다고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기록을 잘 남겨 놓고 멸종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에요. 



기계 비평이란 무엇인가요? 

준: 비평이라는 단어 ‘critic’은 기준을 의미하는 ‘criteria’라는 단어에서 나왔어요. 비평은 비판이 아니라 어느 쪽에 속할 것인가를 구분해보는 것입니다. 현대 미술은 난해해서 어느 게 작품이고 어느 게 설비인지 구분하기 힘들거든요. 그럴 때 어디까지가 예술이고 어디부터는 예술이 아닌가를 구분해 보는 것이 비평인데요. 제 경우 기계에서 어디가 가치 있는 부분이고 어디가 아닌가를 구분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전철에서 모터, 중요하겠죠. 문짝도 중요하고요. 그런데 만약 스피커가 중요한지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중요할 수도, 안 중요할 수도 있죠. 안내 방송이 나와야 하니까 중요할 수도 있고요. 그런 식으로 어느 부분이 필수적이고 어느 부분이 부수적인가, 어느 부분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인가 등을 따져 보는 일입니다. 


기차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가 뭔가요? 

준: 저의 가장 큰 궁금증이에요. 왜 기차를 좋아하게 됐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는데요. 어렸을 때 외갓집 앞에 건널목이 있었어요. 외갓집에 놀러 갈 때마다 건널목에 매달려서 기차를 보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증기 기관차도 많이 다녔거든요. 석탄이 탈 때 매캐한 냄새가 나요. 그 냄새가 큰 추억의 냄새예요. 다시 맡아 볼 수 없는 냄새죠. 디젤 기관차의 경적은 모터로 날개를 돌려 나팔로 내보내고 증기 기관차는 증기 자체를 이용해 피리를 부는 거거든요. 지금의 신호는 대부분 전자 발진음이잖아요. 그런 감성적 경험이 깊이 각인되어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 기차 때문에 시공간이 많이 바뀌었죠. 가지 못하던 곳을 가게 되고요.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작품을 보면 기차를 놓친 후에 괴물로 변해요. 언젠가 기차를 놓친 것을 근대로부터의 소외라고 글을 쓴 적이 있는데요. 증기 기관차라는 게 근대의 상징이죠. 이영준 선생님은 굉장히 근대적인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웃음)


기계에 의존하는 생활방식, 디지털 미디어 기록의 휘발성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준: 디지털 미디어 이전에도 기록은 많잖아요. 물론 근대 이후, 산업화 이후 축적한 자료가 양으로 보면 많겠지만요. 돌에 새긴 고대의 자료를 과연 충분히 해독하고 이해하고 있을까 싶어요. 저는 그 안에도 굉장한 정보가 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저장한 정보가 휘발성이 되면 될수록 과거의 자료 저장 수단을 생각해 보고 그것을 활용할 수단은 없는지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헬리콥터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벌의 비행을 연구한다고 하거든요. 어찌 보면 원시적인 것에 해결책이 있는데 우리가 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학과 종교가 바라보는 창조와 진화에 관한 의견이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 종교가 과학과 부딪치는 지점은 두 곳인데요. 형이상학과 윤리 문제거든요. 형이상학에서 부딪치는 건 이미 같은 선상에서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종교의 우주론을 현대 우주론과 비교하고 토론하거나 할 수 있는 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문제는 윤리인데요. 윤리는 가치의 문제와 함께 형성되잖아요. 흔히 과학을 팩트, 종교를 가치에 놓는 프레임이 있는데 저는 그것도 이미 깨졌다고 봐요. 「코스모스」도 과학을 통해 인간 삶의 가치를 만드는 것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그동안 종교, 설화, 신화가 해 왔던 것을 그것 없이도 할 수 있는 시점이 온 거죠. 

준: 비슷한 입장이에요. 종교와 과학은 아예 겹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말할 것이 없다는 건데요. 종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는 그 영역에 있으면 되는 것이고 과학에서 일체 언급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에요. 다만 저는 예수를 존경하는데요. 십자가라는 게 원래 굉장히 잔인하고 저열한 것이잖아요. 사람을 묶어서 잔인하게 처형하는 도구였죠. 아마도 분명히 피가 얼룩져 있을 거고요. 그것이 예수의 숭고한 정신 때문에 숭고하고 거룩함의 상징이 되었잖아요. 굉장히 초월적인 면이거든요. 

핵심은 종교는 믿는다면 과학은 믿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설사 진화론을 믿는다고 해도 왜 믿는지 계속 따지고 따져서 끝까지 파고드는 것이 과학이지 적당한 선에서 이 정도는 믿자고 하는 게 과학이 아니란 말이죠. 회의의 태도가 과학이에요. 종교는 과학의 태도와는 정반대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서로를 언급할 여지는 없다고 봅니다. 

: 이영준 선생님의 태도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태도예요. 과학자들 사이에도 굉장히 다양한 입장 차이가 있고요. 참고로 리처드 도킨스의 아들은 철저한 기독교 신자입니다.(웃음)


*<칼 세이건 살롱 2016>  11강 ‘불멸을 꿈꾸다(The Immortals)’는 12월 9일 금요일 7시에 ‘벙커1’에서 진행됩니다.



글 : 신연선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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