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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방패의 대결: 대전차 무기의 발달
영화 「퓨리」 극 초반 판처파우스트(Panzerfaust)를 든 소년병이 파커 소위의 지휘 차량을 박살내 버린다. 매끈한 철퇴처럼 보이는 작은 로켓포 한 방에 전차 한 대가 그대로 불타 버린다. 이후에도 판처 파우스트는 수시로 등장한다. 매복해 있던 독일군이 퓨리를 향해 판처 파우스트를 겨냥하고, 이를 발견한 포수가 여유 있게 제압(공축 기관총을 난사)한다.
여성이나 소년병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이 한 방으로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다. (Bundesarchiv, Bild 146-1973-001-30 / CC-BY-SA 3.0)
퓨리와 판처파우스트의 악연은 결국 영화 끝 무렵까지 이어진다. (SS부대원들이 판처파우스트를 들고 공격하자 장전수 그레이디가 피격된다.) 지상전의 왕자가 보병이 든 로켓포 한방에 처참하게 무너지는 상황. 전차의 존재 이유에 물음표가 따라붙게 된 상황이다.
성형 작약탄의 등장
일반적인 고폭탄은 폭발력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보병들이나 목표물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면 별 상관이 없겠지만 두꺼운 장갑으로 둘러쳐져 있는 전차라면 어떨까? 폭발력을 한 점에 모아 뚫어야 하지 않을까? 1888년 움푹 파인 폭약을 폭발시켜 구멍이 파이는 현상을 발견한 미국의 먼로(Charles Edward Munroe, 1849~1938년)의 이름이 붙은 먼로 효과(노이먼 효과라고도 한다.)를 활용한 ‘지향성 폭약’이라고 할 수 있다. 폭발력을 온 사방으로 흩뿌리는 게 아니라, 일점에 집중해서 장갑을 뚫는 것이다.
(a) 일반적인 고깔 모양에 (b) 라이너를 덧대면 폭발력이 커지고 (c) 거리가 멀어지면 폭발력이 더 크다.(Energy Transfer of a Shaped Charge Jared J. Milinazzo Dept. 6647 Sandia National Laboratories November 2016)
구리로 만든 고깔, 즉 라이너를 만들어 폭약을 감싼다. 이때 고깔은 뒤집어 움푹 들어간 부분이 정면을 향하게 한다. 폭약이 터지면, 폭압이 이 고깔(라이너)을 변형시킨다. 이 변형된 금속 입자들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장갑을 뚫고 지나간다. 이때 뚫고 지나가는 금속 입자들의 흐름을 메탈제트(metal jet)라고 하는데, 이때 속도가 최대 초속 10킬로미터에 이른다.
이 성형 작약탄의 등장은 그 동안 전차를 상대하는 상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그 전까지 전차를 잡는 방법은 전통적인 포탄, 즉 운동에너지로 장갑을 뚫는 방식이었다. 운동에너지를 얻기 위해 무거운 포탄을 빠른 속도로 날려야 장갑을 뚫을 수 있다. 무거운 포탄을 빠르게 날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긴 포신을 자랑하는 대전차포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당연히 대전차포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이 성형 작약탄의 등장으로 대(對)전차 전투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한다. 운동에너지로 전차를 잡던 대전차포의 경우는 전차와의 교전 거리, 탄두의 종류(철갑탄), 탄두의 속도 등에 따라 명중률과 관통력이 좌우된 데다가 대전차포 자체가 무거워서 쉽게 이동하기에도 어려웠다. 그러나 성형 작약탄은 거리나 탄두의 속도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날아가 꽂히기만 하면 됐다. 게다가 대전차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 보병 1명이 혼자 들고 다니며 싸울 수 있을 정도였다.
보병이 들고 쏘는 로켓포의 대명사가 된 바주카(By Turnbull, Sgt. Charles R., photo coutesy of the en:US Army Center for Military History (US Army Homepage)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보병 대전차 화기의 대명사 바주카(Bazooka) M9도 성형 작약탄을 사용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미국의 코미디언 밥 번즈가 들고 다니던 변형 트럼펫 ‘바주카’와 모양이 비슷하다고 하여 이러한 별명이 붙었다.
판처파우스트 역시 먼로-노이먼 효과를 기반으로 한 성형 작약탄이다. 일반적으로 A라는 병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A라는 병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전투기를 잡기 위해서는 전투기를 띄우고,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전차를 내보낸다. 그런데 제2차 세계 대전 중반 이후 수세로 몰리게 된 독일군은 공업 생산력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소련과 미국의 기갑 부대를 상대하기 위해 독일은 값싸게 뿌릴 수 있는 보병용 대전차 무기들을 찍어 내는데, 그 대표 주자가 판처파우스트였다.
조작이 간단하고 무게도 3킬로그램밖에 안 되어 병사들이 휴대하기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0밀리미터의 장갑판을 관통할 수 있는 파괴력은 연합군 기갑 부대의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복음과도 같은 존재였다. 물론 판처파우스트의 사거리가 30미터 내외였기에 (후기형에 가서는 100미터까지 사거리가 늘어났지만) 전차를 잡기 위해서는 보병들 역시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30미터 안에서 제대로만 겨냥한다면, 어지간한 전차들은 일격에 다 격파할 수 있었다.
창과 방패의 대결
성형 작약탄의 위력이 다시 한 번 맹위를 떨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거의 30년이 흐른 1973년이었다. 제4차 중동전, 소위 욤 키푸르 전쟁이었다. 지난 3번에 걸친 중동전을 통해 이스라엘군의 기갑 부대의 위력을 확인한 이집트는 (덤으로 이스라엘군의 공군력도 뼈아프게 체험했다.) 전혀 새로운 방식의 ‘전투’를 기획했다. 바로 미사일이었다.
이스라엘 바테이 하-오세프 박물관에 전시된 RPG-7(By Bukvoed [CC BY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3.0)], from Wikimedia Commons)
이집트군의 바레브 라인을 뚫고 진격해 들어왔다. 이스라엘군은 늘 그래왔듯이 무적의 기갑 부대들을 투입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첫 전투에서 이스라엘군은 시나이 반도에 전개된 이스라엘 전차의 60퍼센트인 150여대의 전차를 잃어야 했다. 이 당시 이집트군은 전차 대 전차의 기갑전 대신 AT-3 대전차 미사일과 RPG-7으로 구성된 대전차 방어 진지로 이스라엘 기갑 부대를 궤멸시켰다. 하늘에서는 대공 미사일이, 땅에서는 대전차 미사일이 이스라엘 공군과 육군을 학살했다.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이스라엘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는 전술 핵탄두 사용을 고려할 정도였다. (결국 미국의 지원으로 핵무기 사용까지는 가지 않았다.)
전쟁의 승패보다 중요한 건 전쟁이 남긴 교훈이었다. 대전차 미사일과 대전차 로켓에 격파당하는 전차라면,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다. 지상전의 왕자인 전차는 언제나 전선의 맨 앞에서 적진을 돌파해야 하는데, 보병이 어깨 위에 둘러 멘 대전차 로켓에 무너진다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다.
제4차 중동전의 교훈을 되살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전차에 반응 장갑을 덕지덕지 붙였다.
By No machine-readable author provided. Bukvoed assumed (based on copyright claims). [GFDL (http://www.gnu.org/copyleft/fdl.html), CC-BY-SA-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or CC BY 2.5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2.5)], via Wikimedia Commons
전차 무용론이 스멀스멀 고개를 치켜드는 그때 전차는 다시 한 번 변신을 시도한다. 바로 반응 장갑(explosive reactive armour)과 복합 장갑(composite armour)이다. 반응 장갑은 기존의 2세대 전차, 즉 쇠장갑을 두른 일반적인 전차 위에 장갑을 한 겹 더 덧댄 경우다. 단순히 장갑의 두께를 더 두껍게 한 것은 아니다. (엔진 출력을 생각한다면 한정 없이 장갑 두께를 늘릴 수 없다.) 성형 작약탄의 핵심 역량 자체를 날려 버리는 것이 반응 장갑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형 작약탄은 메탈제트를 한 방향으로 집중해 장갑을 뚫는 방식으로 전차를 무력화시킨다. 그렇다면, 이 메탈제트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려 버린다면? 반응 장갑은 장갑 안에 둔감성 화약을 넣고는 성형 작약탄에 맞았을 때 메탈제트를 분산시켜 전차 본체를 지키는(정확히 말하자면, 장갑이 움직여 메탈제트를 분산시키는 방식) 장갑이다.
반응 장갑이 임시변통의 느낌이라면, 복합 장갑은 전차의 본격적인 진화라고 말할 수 있다. 기존 전차의 갑옷은 쇠 혹은 쇠를 기반으로 한 재질로 만들어졌으나, 이때부터는 다른 금속과 재료들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3세대 전차의 조건 중 하나로 복합 장갑을 꼽는다. 창과 방패의 대결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탱크 북』 240~241쪽에서 Copyright © Dorling Kindersley
이성주
《딴지일보》 기자를 지내고 드라마 스토리텔러, 잡지 취재 기자,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SERI CEO 강사로 활약했다. 민간 군사 전문가로 활동하며 『펜더의 전쟁견문록(상·하)』와 『영화로 보는 20세기 전쟁』을 썼다. 지은 책에 『러시아 vs 일본 한반도에서 만나다: 전쟁으로 보는 국제정치1』, 『글이 돈이 되는 기적: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것』, 『실록에서 찾아낸 조선의 민낯 : 인물과 사료로 풀어낸 조선 역사의 진짜 주인공들』, 『아이러니 세계사』, 『역사의 치명적 배후, 성』 등이 있다. 예술인들이 모여 있는 지방으로 이사해 글 쓰는 작업에만 매진하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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