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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이언스-오픈-북

펼쳐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두근두근: 『무기』(2판)

Editor! 2019. 2. 28. 14:14

2009년 1판이 출간된 지 10년 만에 2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영국 왕립 무기 박물관의 소장 자료를 중심으로 원시 시대부터 현대까지 인류가 만들어 온 온갖 무기를 백과사전식으로 소개하는 이 책은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필독서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32쪽이 추가되며 화포류와 수류탄 등 70여 종의 화기가 추가 소개된 2판은 무기에 응축된 인류의 창의성과 비극성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영화를 비롯한 대중 문화 평론가로 이름 높은 김봉석 편집장이 『무기』(2판)에 대한 리뷰를 보내 주셨습니다. 김 편집장님의 무기에 대한 본인의 은밀한 매혹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펼쳐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두근두근: 『무기』(2판)



베를린 박물관 섬의 구 국립 미술관(왼쪽)과 보데 박물관(오른쪽). Ⓒ 김봉석.


베를린 영화제에 간 김에 짬을 내서 ‘박물관 섬’에 갔다. 이집트 유물의 신미술관, 그리스 유물의 신미술관, 그리스와 이슬람 유물의 페르가몬 등 5개의 박물관이 슈프레 강 위에 뜬 섬에 위치해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등에서 유물을 가져오는 것만이 아니라 거대 유적을 통째로 떼어오는 것으로도 악명 높았던 독일이기에 전시물의 크기와 종류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방대하다. 처음 페르가몬 박물관을 갔을 때는 그리스 신전과 이슈탈의 문 등 거대함 유적들에 압도당했는데, 한 번 경험한 덕에 이번에는 소소한 것들로 눈이 갔다. 이집트와 그리스의 역사를 보여 주는 갖가지 유물들.


이집트와 그리스 그리고 베를린의 역사를 보여 주는 전시물들을 보면서 세 가지 정도로 머릿속에 분류가 되었다. 생활용품, 신과 종교를 위한 제기들, 그리고 무기들. 그릇과 장신구 등 일상용품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종교적 상징과 의식을 위한 도구와 물품, 조각상도 마찬가지. 삶과 죽음을 다른 것으로 보지 않았던 고대인에게 종교는 정신적 영역을 넘어 가장 중요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베를린 역사관의 전시물들. Ⓒ 김봉석. 


그렇다면 무기는 어떤 의미일까? 베를린의 역사를 정리한 전시관을 보면서 가장 끌린 것은 무기들이었다. 솔직히 프랑크 족과 게르만 족의 생활용품은 보잘것없었다. 이미 이집트와 그리스의 유물들을 보고 난 후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무기는 달랐다. 『무기』(2판, 사이언스북스, 2018년)의 「청동기 및 철기 시대의 무기와 갑옷」(『무기』(2판), 50∼51쪽)에 나오는 켈트 족들의 투구와 무기, 「앵글로색슨 족 및 프랑크 족의 무기와 갑옷」(52∼53쪽)의 무기들을 실제로 관람했다. 유럽의 북쪽에 살았던 고대인들은 이런 무기로 사냥을 하고, 전투를 벌였다는 실감이 무기를 보면서 다가온다. 전투에서 떼로 죽은 사람들이 진흙 바닥에 그대로 묵혀 유골이 된 전시품도 있었다. 쓰러져 죽은 모습 그대로, 무기들과 함께 대여섯 명의 유골이 엉켜 있었다. 인상적이었다.


「청동기 및 철기 시대의 무기와 갑옷」, 50∼51쪽에서.


「앵글로색슨 족 및 프랑크 족의 무기와 갑옷」, 52∼53쪽에서.


『무기』에 나오는 고대의 주요 병기인 칼과 막대형 무기 등을 이용하여 벌이는 전투의 리얼리티를 실감한 것은 드라마 「바이킹스」였다. 히스토리 채널에서 처음 만든 드라마답게 고증이 무척 잘 되어 있었다. 「바이킹스」는 처음으로 바이킹이 영국에 상륙하여 전투를 벌이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전장에서 싸우다 죽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고, 그렇게 죽어야만 신들이 사는 발할라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바이킹의 전투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죽음이 두렵기는 커녕 가장 원하는 미래이니만큼 피가 튀는 전투와 전쟁이 즐거울 수밖에 없다. 칼과 도끼를 사용하여 백병전을 벌이는 사실적인 전투 장면을 보고 있으면 어쩔 수 없이 심장이 두근거린다. 폭력과 죽음은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바이킹스」의 전투 장면들에서 보았던 무기들을 「바이킹 족의 무기와 갑옷」(54∼55쪽)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영국 왕립 무기 박물관에 소장된 무기와 갑옷 자료를 중심으로 인류 역사에 등장한 무기의 흥망성쇠를 보여 주는 『무기』를 소장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이유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았던 전투 장면에 등장한 무기들을 검증할 수 있다는 것.


「바이킹 족의 무기와 갑옷」. 54∼55쪽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을 끝낸 원자 폭탄이 ‘대량 살상 무기’의 장을 열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압도하고 파괴하는 무기란 개념이 희미했다.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면 전략의 변화를 통해서 우위를 점하는 정도였다. 로마 군단은 모든 군대가 가지고 있는 창과 방패를 이용한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여 유럽을 제패했다. 총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칼을 압도하지 못했다. 한 발의 총알을 쏘고 다시 장전하는 과정까지가 너무 복잡했다. 유럽에 앞서 일본에서는 오다 노부나가의 철포대(鐵砲隊)가 순환하며 총을 쏘는 방식으로 현저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처럼 새로운 무기가 등장해도 계속 개량되면서 자리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총의 위력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칼과 막대형 무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일단 정착된 무기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살아남는다.


「아시아의 화승총」. 158∼159쪽에서.


가끔씩 나이프 전문점의 사이트에 들어가고는 한다. 한국에서는 도검을 사기는 힘드니까 일단은 나이프. 장인들이 공들여 만든 칼이 있고, 유명한 회사에서 만든 실용적인 칼도 있고,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하는 칼도 있다. 칼을 들고 다닌 적조차 없지만 볼 때마다 매혹되고 소장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아니다. 죽일 마음도 없다. 설령 칼을 산다고 해도 그런 용도는 아니다. 집안 어딘가에 잘 모셔두고 가끔씩 들여다보며 위안을 삼을 것 같다. 예리하게 빛나는 날을 보며 두근거릴 것 같다.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 누구인가를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총이 금지된 국가에 살고 있어, 애초에 총에 대한 매혹이 희박한 탓에 칼에 대해서만 그런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만약 내가 밀리터리 마니아라면 분명히 총에도 빨려 들어갈 것이다. 『무기』에 나오는 다양한 머스킷 총부터 첨단의 M16 코너 숏과 벡터CR21을 보면서도 반했다. 칼이나 총이나 흔한 심리 분석에서 쓰이는 것처럼 남근의 상징이기 때문은 아니다. 누군가는 찌르고 관통하는 도구로서만 무기를 인식하겠지만 칼과 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일 수도 있지만 가장 화려하고 위험한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위험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이 다스리고 하나가 되어야만 가치 있는 존재. 악마는 무기가 아니라, 인간이니까. 혹은 악마 들린 인간이거나.


「리볼버 1950년 이후」, 316∼317쪽에서.


「현대의 소화기」, 378∼379쪽에서.


『무기』의 띠지에는 “인류의 역사는 무기의 역사였다.”라는 처칠의 말이 적혀 있다. 서문에는 “전쟁은 문명보다 역사가 길다.”는 말도 나온다. 인간은 사냥을 위해 무기를 만들었고, 다른 부족과 경쟁하기 위해 무기를 개량했다. 더 나은 무기가 그들의 안전과 미래를 보장했으니까. 칼과 활만으로 싸우던 전쟁은 총과 포가 등장한 이래 획기적인 변화를 겪었다. 아직 인류가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대량 살상 무기’가 전면적으로 쓰이는 전쟁이 벌어진다면 인류의 역사는 아마도 미증유의 현실을 맞이할 것이다. SF 영화에서나 보았던 아포칼립스의 비극적인 미래를.


그러고 나면 무기도 다시 시작하지 않을까. 『무기』에 나오는, 문명이 시작되기 전 돌로 만들어진 무기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스의 무기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무수한 무기들이 모두.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동시에 나오는 기이한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전에 반드시 『무기』를 봐야만 하지 않을까. 무기의 강점과 약점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각각의 무기들이 전장에서만이 아니라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 무기의 모든 것을 『무기』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


「북아메리카의 단검과 곤봉」, 210∼211쪽에서.


「중국과 티베트의 칼」, 194∼195쪽에서.


단 하나 아쉬움은 서양에서 만든 것이라 역시나 동양의 무기가 적다는 것. 언젠가 일본이나 중국에서 동양의 무기들을 망라한 백과사전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김봉석(대중 문화 평론가, 영화 평론가)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기자가 되었고, 영화 못지않게 좋아하는 장르 소설, 만화, 대중 문화, 일본 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씨네필》, 《씨네21》, 《한겨레》 기자를 거쳐 컬처 매거진 《브뤼트》와 만화 리뷰 웹진 《에이코믹스》의 편집장을 지냈으며 현재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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