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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인포그래픽으로 만나는 비범한 학자 조지프 니덤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사진과 인포그래픽으로 만나는 비범한 학자 조지프 니덤

Editor! 2019.03.22 18:21

2019년 3월 24일은 불멸의 과학사 학자 조지프 니덤이 서거한 지 만 24년이 되는 날입니다.

조지프 니덤은 1954년 첫 1권이 나온 이래 65년간 단 한 번도 절판되지 않으며 7권 25책까지 출간되며, 13세기 전까지 지구 상 다른 어떤 문명도 따라잡지 못했던 수준 높은 과학 문명을 구축한 중국과 동아시아의 과학 기술의 전모를 농밀하게 재창조해 낸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를 받는 영국의 논픽션 작가 사이먼 윈체스터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창시자인 그를 “과학과 신앙, 특권과 가난, 구세계와 신세계,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중국과 서양 사이에 다리를 놓은” 위대한 지성으로 평가합니다. 니덤의 연구는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 등의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라는 새로운 학문 분과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한국 과학사』(사이언스북스, 2000년) 등의 책을 펴낸 고(故) 전상운 성신여대 총장 역시 니덤의 책과 연구에 자극을 받았죠.  

그러나 인류 문명사적 성과라 할 니덤의 대작은 국내에 단 한 권도, 단 한 분책도 완역 출간된 적이 없습니다. 발췌본과 축약본만 몇 권 출간되어 있고, 그나마도 절판되어 있어 아쉬울 뿐입니다.   

마침 사이언스북스에서 조지프 니덤의 삶을 다룬 평전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타임》은 사이먼 윈체스터의 이 책을 “경이로울 정도로 우아한 저술가의 서사시적 평전”이라고 평가했지만, 니덤의 위대한 업적과 모험 같은 인생을 생각하면 독자들의 지적 허기를 완전히 달래는 데 부족하지 않을까 두려울 뿐입니다. 

본문에 소개된 사진들을 통해 니덤의 삶을 간단하게 훑어봅니다. 그리고 니덤의 삶과 업적을 보여 주는 간단한 인포그래픽을 첨부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갈증을 조금이나마 달래 드릴 수 있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중국을 사랑한 남자: 조지프 니덤 평전』

사진과 인포그래픽으로 만나는 비범한 학자 조지프 니덤




노엘 조지프 테렌스 몽고메리 니덤(Noël Joseph Terence Montgomery Needham, CH, FRS, FBA)은 1900년 12월 9일 의사였던 조지프 니덤과 얼리셔 애들레이드 몽고메리 니덤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사진은 노엘 조지프 테렌스 몽고메리 니덤과 가죽끈을 묶은 애완용 고양이로 1902년 3세 때 런던 남부 클래펌에 있는 자택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어린 남자아이에게 드레스를 입히는 것은 에드워드 시대 잉글랜드의 유행이었답니다. 




조지프 니덤은 1924년 9월 13일 5세 연상인 도로시 메리 모일과 결혼합니다. 같은 연구실에서 함께 일하던 생화학자였던 도로시와 그는 뜨거운 연애 끝에 일종의 ‘자유 개방 결혼’을 합니다. 두 사람의 연구와 사랑이 얽힌 결혼 생활은 이후 60년 이상 지속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모두 영국 왕립 학회의 회원이었는데, 이것은 왕립 학회 역사상 유례없는 학문적 영예였습니다. 빅토리와 여왕과 그 부군인 앨버트 공도 부부 회원이긴 했지만, 그들은 명예 회원에 불과했으니까요.




중국 난징 출신의 루구이전의 1937년 사진입니다. 1904년 7월 22일 난징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미국인이 설립하고 직접 운영한 진링 여자 대학을 다니며 미국식 교육을 받았고, 식물학과 생화학을 공부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직후에 그녀는 중국을 떠나 케임브리지에 왔고, 노벨상 수상자이자 니덤의 스승이었던 프레더릭 홉킨스의 연구실에 합류하게 됩니다. 여기서 니덤을 만났고, 한평생 니덤의 애인이자 뮤즈이자 공동 연구자로 살아가며 생화학과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에서 큰 족적을 남기게 됩니다. 




“안경잡이에, 올빼미 같은 얼굴에, 두려움 없는 모험가이며, 아울러 나체주의자였고, 열혈 춤꾼이었고, 아코디언 연주가였고, 줄담배를 피우는 영국 국교도”였던, 말 그대로 “괴짜” 생화학자였던 조지프 니덤의 1930년대 모습입니다. 또 그는 자유 연애주의자인 동시에 열혈 사회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루구이전을 만나고, 또 중영 과학 연구 사무소 대표로 중국을 방문하면서 그는 생화학에서 동아시아 과학사라는 새로운 학문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1943년 3월 21일 니덤은 중국의 전쟁 임시 수도 충칭에 도착합니다. 영국에서 출발해 홍해, 봄베이(지금의 뭄바이), 캘커타(지금의 콜카타),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 중국 윈난 성 쿤밍을 거치는 파란만장한 10주간의 비밀 여행 끝에. 니덤은 영국 정부로부터 전쟁으로 피폐해진 중국의 대학 및 학계를 지원하라는 임무를 받고 중영 과학 협력 사무소 대표로, 한 사람의 외교관이자 학자로서 파견된 것입니다. 이후 4년간 니덤은 폭격과 중국의 동서남북을 종횡무진 누비며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다리’ 역할을 합니다. 중국 학자들은 그를 “설중송탄(雪中送炭)”이라는 말로 극찬합니다. 눈 오는 추운 겨울에 장작을 가져다준 고마운 사람이라는 말이죠. 한편 이때 인류 문명사적 불멸의 업적이 될 중국 과학사 연구가 시작됩니다. 사진은 니덤이 중국 도착 직후 지역 재단사에게 부탁해서 맞춘 파란색 비단에 파란색 소맷부리가 달린 도포 차림을 보여 줍니다. 그의 힘겨웠던 여정이 옷매무새에도 잘 드러나 있지 않나요?




니덤은 중국에 머무는 동안 4만 8000킬로미터를 주파하며 원정을 합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 1만 2800킬로미터의 4배에 달하는 거리입니다. 이를 통해 쓰촨, 신장, 윈난, 푸저우 같은 중국 오지로 피신한 중국 대학들과 학자들을 지원합니다. 그리고 세계 과학사 연구를 뒤흔들 탐험들을 합니다. 사진의 차량은 셰보레의 구급차를 개조한 트럭입니다. 매일매일 고장 나고 강물에 빠지는 등 문제도 많이 일으켰지만 니덤의 둔황 및 실크로드 탐험을 가능하게 해 준 차량이죠.




1946년 중국 임무를 마친 조지프 니덤에게 UNESCO의 초대 총재 줄리언 헉슬리는 UNESCO 설립 임무를 맡깁니다. UNESCO의 과학 분과 위원장을 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이며, 중국 공산당에 친화적인 니덤은 냉전을 시작한 미국과 영국 정부의 견제를 받고 UNESCO에서 물러나고 맙니다. 케임브리지로 복귀한 니덤은 4년간 중국에서 수집해 온 연구 자료들을 풀며, 중국 과학사를 소개할 책을 집필할 계획을 세웁니다. 사진은 니덤이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 보낸 12쪽짜리 ‘극비’ 기획서의 일부입니다. 이 기획서에서 니덤은 자신의 집필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왕립 학회 회원 조지프 니덤의 저술에 대한 사전 계획서. 이것은 중국학자를 위한 책도 아니고, 일반 대중을 위한 책도 아님. 대신 과학과 과학 사상과 기술의 역사에 대하여, 또한 그러한 역사와 문명의 전반적인 역사와의 관련성에 대하여, 특히 아시아와 유럽의 상대적인 발전에 대하여 관심을 지닌 모든 교양 있는(과학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독자를 위한 책이 될 것임.”


65년간 지속되며 7권 25책, 1만 6000여 쪽의 대작 프로젝트가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입니다.




1954년 『중국의 과학과 문명』 1권이 출간되며 니덤의 학문적 지위는 확고한 것이 됩니다. 한국 전쟁에서 미군의 생화학 무기 사용 검증을 위한 국제 조사 위원회에 참여하는 등의 문제로 국제 이데올로기 투쟁의 도구로 사용되는 등 불명예를 안기도 하지만, 『중국의 과학과 문명』의 저술을 중심으로 한 그의 연구 작업은 높은 평가를 받고 학계의 인정을 받습니다. 역사가로 유명한 아놀드 토인비는 물론이고, 평론가 조지 스타이너에 이르기까지 니덤이 경이로운 밀도와 현장감으로 세계를 재창조했다고 극찬합니다. 1965년 12월에는 유서 깊은 케임브리지 키즈 칼리지의 학장으로 선출되어 영국 학계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국 과학사 연구는 쉼 없이 계속됩니다. 결국 1987년 니덤 연구소라는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의 최고 사령부이자 거점을 마련하는 데까지 이릅니다. 




1989년 9월 15일 니덤은 루구이전과 결혼합니다. 도로시 니덤은 오랜 투병 끝에 1987년 12월 22일 세상을 떠납니다. 조지프, 도로시, 구이전, 세 사람은 1930년대 후반 처음 만난 이후 반세기 넘게 연인들이자 친구로서 자유 개방 결혼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고, 학문적으로 놀라운 생산성을 보였습니다. 루구이전과 니덤의 신혼 생활은 2년 만에 끝나고 말죠. 루구이전이 1991년 11월 28일 세상을 떠나고 말기 때문입니다.




1995년 3월 24일 오후 8시 55분, 위대한 과학자이자 과학사 학자 노엘 조지프 테렌스 몽고메리 니덤은 세상을 떠납니다. 니덤의 마지막 순간을 사이먼 윈체스터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1995년 3월 23일 목요일, 이제는 최후가 다가왔음이 모두에게 분명해 보였다. 연구소의 동료들은 그의 건강이 크게 악화되었음을 깨달았고, 다음날 아침에는 모두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그가 결근하고 말았다. 이날은 어차피 금요일이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긴 주말이 될 수도 있었다. 다음 주를 위해 주말 동안 힘을 충전할 수도 있었다. 

“좋아.” 그가 말했다. 

“오늘은 집에 있겠어.”

그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에 앉았고, 계속해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았다. 정오에 그의 담당 간호사들이 그를 도로 침대에 눕혔다. 키즈의 교목이 갑자기 찾아와서 그를 위해 잠깐 기도를 해 주더니, 다음날 아침에 다시 와서 조지프에게 성찬식을 베풀어 주기로 했다. 노인은 양가죽 모피를 덮은 채로 초저녁까지 내내 잠을 잤다.

곧이어 도우미가 그에게 혹시 두렵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음, 아니야.” 그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의 후임으로 연구소장이 된 크리스토퍼 컬렌(Christopher Cullen)은 혹시 고통을 느끼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니, 고통은 없어.” 그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훗날 스탠리 비시가 쓴 글에 따르면, 이때 친구 겸 이웃인 저명한 문학 및 과학 전문 역사가 엘리너 섀퍼도 문병을 왔다. 마침 그녀는 감기에 걸린 상황이었기 때문에 들러도 되는지 몰라 망설였다. 그녀는 수선화를 한 송이 가져왔는데, 이것이야말로 이 쌀쌀한 3월의 날씨가 또 다른 봄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징조나 다름없었다. 조지프 니덤은 이제 95회나 그런 봄을 맞이한 셈이었다.

비시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아서 최근에 있었던 자신의 강연 여행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으며, 자신이 하는 말의 요점을 그가 이해했다고 믿었다. 오후 8시 45분에 간호사 두 명이 집에 도착했고, 이렇게 예쁜 아가씨 두 사람으로부터 보살핌을 받고 있으니 운도 좋으시다고 누가 조지프에게 농담을 했다. 그는 기분 좋게, 장난꾸러기처럼, 행복하게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에 엘리너 섀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운 밖으로 나가기 전에, 조지프의 침실 옆에 있는 거실에서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는 권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도우미의 말에 따르면 조지프의 한 손을 붙잡고 꽉 움켜쥐며 밝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잘 있어요, 조지프. 내일 오후에 다시 올게요.” 이 말을 하는 순간, 노엘 조지프 테렌스 몽고메리 니덤, CH, FRS, FBA는 아주 약하게 한숨을 내쉬더니, 숨을 거두었다. 고통이나 헐떡임은 전혀 없었고, 마치 불가피한 일을 힘없이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후 8시 55분의 일이었다. 그는 94년 하고도 3개월이 조금 넘게 살았다. 무척이나 충만한 삶이 아닐 수 없었다. 어느 중국 여성에 대한 사랑의 결과로, 그는 평생에 걸쳐서 사실상 혼자의 힘만으로 서양 사람들이 동양 사람들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 버렸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인류의 상호 이해에서 중대하고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으며,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극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사진의 붓글씨 “인거유영(人去留影)”은 “사람은 떠나지만, 그의 그림자는 남아 있다.”라는 뜻으로 니덤이 쓰던 키즈 칼리지 연구실에 남아 있습니다. 니덤의 연구실을 한때 스티븐 호킹도 사용했기 때문에, 스티븐 호킹의 사진과 함께 기억하시는 독자도 있을지 모릅니다. 영국인들에게는 특이하게 보일 이 기념물은 앞으로 수십 년, 아니 케임브리지가 존속하는 수백 년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니덤의 위대한 업적들과 함께 말이죠.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조지프 니덤의 삶과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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