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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선생님, 드디어 나왔습니다! 『종의 기원』: 장대익 편 ①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다윈 선생님, 드디어 나왔습니다! 『종의 기원』: 장대익 편 ①

Editor! 2019. 8. 13. 17:16

사이언스북스의 「과학+책+수다」, 이번 편은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원전 초판 출간 160주년을 기념해 우리말로 번역, 출간한 장대익 서울 대학교 자유 전공학부 교수 편입니다. 『종의 기원』을 번역, 출간하게 된 사연, 여러 판본 중 초판(1판)을 번역한 이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16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 시대에 전해 주는 메시지 등을 다양하게 이야기 나눴습니다. 「드디어 다윈」시리즈 첫 책 『종의 기원』의 ‘기원’을 이 수다에서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모두 3편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인터뷰 끝부분에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열두 번째 이야기

다윈 선생님, 드디어 나왔습니다! 

『종의 기원』: 장대익 편 ①

 

 

“다윈 선생님, 드디어 『종의 기원』이 나왔습니다. 「드디어 다윈」 시리즈 1권입니다. I am sorry. I’m too late.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 중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와 『종의 기원』의 표지.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다윈 선생님, 드디어 나왔습니다!

 

SB : 진화학자가 번역한 『종의 기원』 우리말 번역본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원전 출간 160년 만의 일입니다. 그간 『종의 기원』 우리말 번역본이 여럿 출간되었지만, 진화를 공부한 진화학자가 번역한 건 우리 역사상 처음일 듯합니다. 그리고 다윈 선집으로서는 최초의 시리즈일 「드디어 다윈」 시리즈의 첫 책이잖아요. 찰스 다윈 선생님도 이 사실을 알면 굉장히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먼저 다윈 선생님께 한마디 해 주시죠.

 

장대익 : I am sorry. I’m too late.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칭찬해 주셔야 한다고 우길 것 같아요. 당신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을 한국어로,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원하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번역해 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신의 사도들이자 후예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팀을 짜서 번역 작업을 했다. 사실 이걸 가장 기뻐하실 것 같아요. 한국에서 진화 공부하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모여서 당신의 선집을 기획했고, 번역해 냈다는 걸. 다윈 선생님의 문화적 유전자, 그러니까 밈(meme)이 한국 사회에서 번식하고 적응하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일 테니까 말이죠. 다윈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도 진화하고 계십니다!! (웃음)

 

SB : 다음 이야기를 해 볼까요. 벌써 14년 전인가요, 사실 선생님과 저희가 『종의 기원』을 번역하자고 한 건, 에드워드 윌슨 선생님의 『통섭』 출간 기념 뒤풀이 자리에서였잖아요. 자정 넘어 강남역 구석에 있는 오뎅집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제대로 된 다윈 원전 번역본이 없다, 그래서 진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의외로 낮고, 대학에 진화 공부하는 학과도 없고, 연구자도 적다 하는 얘기가 오가다가 선생님께서 “그냥 내가 번역하겠다!”라고 선언하셨고, 선생님의 선언에 감동받은 제가 회사를 설득해 우리 출판 역사상 처음으로 다윈 선집을 내자는 기획을 하게 됐죠. 기억나시죠?

 

장대익 : 그렇습니다. 오뎅집은 지금 없어졌지만. (웃음)

 

SB : 오뎅집 없어졌군요. 그때 선생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번역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출판사 편집자야 필자가 글 쓰겠다고, 번역하겠다고 하면 고마울 뿐이죠. 그러나 선생님은 학위 딴 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 박사였고, 논문, 취직 등등 어마어마한 인생 과제들을 앞두고 계셨을 텐데, 어떻게 『종의 기원』을 번역하겠다는 무지막지한 결심을 하시게 됐는지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장대익 : 큰 그림이었죠. 노후를 생각하는. (웃음) 『종의 기원』을 제대로 번역을 하면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될 거고, 그만큼 인세가 들어올 테니, 어쨌든 노후 보장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러나 훨씬 더 강렬했던 건 책에 대한 욕심이었어요. 제가 명색이 생물 철학을 하는 사람인데, 또 진화학을 공부하는 사람인데, 『종의 기원』을 21세기 한국 독자들을 위해 새로 번역하는 일이라면 제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한 거죠. 왜냐하면 다윈의 책은 생물학자라고 번역을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윈은 분명 과학사에서도 정말 중요한 사람이지만, 철학적으로도 나아가 인류 사상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사람입니다. 말 그대로 ‘통섭’적으로 고려해 줘야 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다윈 책 번역의 적임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그리고 『종의 기원』의 번역자라는 타이틀 자체가 굉장히 큰 영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화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특히나 그렇죠. 실리를 생각할 때나 명예를 생각할 때나 그리고 우리나라의 진화학의 기초를 닦는 데 공헌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물론 술김에. (웃음)

 

“무엇보다도 당신의 사도들이자 후예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팀을 짜서 번역 작업을 했다. 사실 이걸 가장 기뻐하실 것 같아요.” 인터뷰 중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그렇지만 다음 날 술에서 깨자마자 상당히 후회했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당시는 제가 그런 무지막지한 작업을 할 시기는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학위 과정을 막 끝냈으니, 자리를 잡아야 했죠. 또 그것을 위해서는 논문도 쓰고 수업도 해야 했죠. 그것만인가요. 학계든 다른 데든 여기저기서 부르면 달려가서 온갖 일을 해야 했죠. 그렇지만 번역이라는 것은 엉덩이를 의자에 오랫동안 붙이고 앉아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잖아요. 들인 시간만큼 성과가 나오는 작업이죠. 그렇지만 내가 그런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바로 그게 고민이 된 거죠.

 

하지만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어요. 저의 단점이자 장점은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질러 놓고 보는 겁니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한번 생각한 것은 어떻게든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나서서 하자고 해놓고, 저 때문에 일이 늦어지기도 하고 다른 분들께 민폐도 끼치고 해서 욕도 먹고는 그러지만, 저는 한번 하겠다고 말해 놓고 나면, 나중에 저 못 하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래 걸렸습니다. 사실 다윈 포럼에 참여해 주신 강호정, 김성한, 전중환, 주일우, 최정규 선생님들도 그렇게 이 일에 몰두하거나 빨리 할 수 있는 타이밍도 아니었어요. 다들 여러 가지 일로 무척이나 바쁘셨죠. 편집자가 오뎅집에서 놓은 욕망의 덫에 걸린 거죠. 다윈 관련해서 제 마음속에 있던 욕망을 악마 같은 편집자가 읽고 미끼를 던진 거죠. 장대익한테 이것 하자고 그러면 할 거다. 덥썩 물 거라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이제까지 끌려다니고 있습니다. (웃음)

 

SB : 술값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웃음) 중간에 후회하시지는 않았는지요?

 

장대익 : 중간에 후회했어요. 특히 편집자를 원망을 많이 했죠. 왜 나의 욕망을 긁어 가지고 이런 끝도 없을 일을 하도록 했는가! 사실 원망보다도 자책을 했죠. 아, 이것 진짜 하다 보니까 시간이 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왜냐면 영어 자체도 그렇지만 다윈의 문체도 150년 전 것이라 지금하고는 많이 달라서 뜻을 잘 파악하고 그것을 지금의 언어 환경에 맞게 늘리고 쪼개고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사실 몇 번 포기하려고 했었죠. 그러나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최재천 교수님이나 사이언스북스에서 우리 다윈 포럼에서 번역하고 있다, 장대익을 기다려라, 조금만 기다려라 하는 식으로 호언장담을 해 놓으셔서 제가 못하겠습니다 하고 나자빠질 수 없는 상황이었죠.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특히 2009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 타이밍을 놓쳤을 때 모멘텀을 잃었어요. 그래도 10년 넘게 기다려 주는 출판사와 기획자 덕분에 160년에 맞춰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때 출판사나 최 교수님이 저 보고 너 이때까지 안 하면 없는 일로 한다 그랬다면 아마 『종의 기원』 번역 출판은 없는 일이 됐을 겁니다. 또 다른 분에게 번역을 맡겼다면 아마 저는 이 자리에 못 있겠죠. 기다려 주셨다는 것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가 큰 빚을 졌다고도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기다려 주신 것은 최 교수님과 사이언스북스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사이에 다른 누가 번역을 하고, 다른 출판사가 출판을 하려고만 했다면 출판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면 제가 번역한 책은 나오지 않았겠죠. 다윈의 원전이나 진화론의 기원에 대해 궁금해 하는 학생이나 독자가 있으면 저는 남몰래 자책하면서 그 책을 소개했겠죠. 하지만 나오지 않았죠. 최재천 교수님이 대표로 계신 다윈 포럼과 제가 하는 번역을 학계나 번역자들, 출판사들, 나아가 독자들이 기다려 주신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너무 죄송하기도 하고 무척 감사하기도 합니다. 하여간 감회가 많아 가지고. 주저리주저리 얘기가 길어졌네요. 다시 한번 독자 여러분께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왜 『종의 기원』 초판인가!?

 

SB : 다음 질문 들어가겠습니다. 이건 언론 인터뷰하시면서 많이 답을 하셨을 건데요. 왜 『종의 기원』 초판을 번역했는가? 다윈 생전에 다섯 번 수정판을 냈고, 마지막으로 낸 6판을 그의 사상의 완결편으로 보는데, 왜 초판을 번역하셨는지 독자들이 궁금해들 하실 것 같습니다. 그다음에 이 초판을 번역하는 데 있어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셨는지, 다른 한국어판 번역본들하고 어떤 차이가 차별성을 두시려고 노력을 하셨는지 그런 점을 좀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종의 기원』의 여러 판본들.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장대익 : 다윈 포럼에서 다윈의 진화 3부작, 즉 『종의 기원』,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을 번역하기 위해서 어떤 논의들을 했는지를 중심으로 얘기하다 보면 이 질문에 대해서 답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종의 기원』을 초판을 번역하기로 한 결정이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아시듯이 『종의 기원』은 다윈 생전에 6판까지 나왔죠. 다윈이 손수 다섯 번 개정 작업을 한 거죠.

 

그런데 『종의 기원』의 판본별 변화를 평생 연구했던 모스 페컴(Morse Peckham)이라는 학자가 있어요. 그가 『종의 기원』 출간 100년이 되던 1959년에 『종의 기원』의 합주판(variorum)을 냅니다. (아마존 바로가기) 『종의 기원』 개정판이 출간될 때마다 단락 별로 어떤 문장이 어떻게 바뀌고, 어떤 단어나 문구가 추가되는지 치밀하게 추적한 거죠. 이 책을 읽어 보니까 다윈이 6판으로 가면서 점점 더 자기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을 후퇴시켰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합주판 이후 다윈을 연구해 온 역사학자들, 과학사 학자들, 과학 철학자들 모두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 굉장히 소심한 성격이었던 다윈은 『종의 기원』 출간 후 사람들이 하는 비판에 대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일일이 대답하려고 노력을 했죠. 누가 공개 비판을 하거나 개인 서한으로 비판적인 논평을 보내오면 하나하나 답장을 보내 반박을 했고, 나아가 『종의 기원』 개정판을 낼 때에도 그런 내용을 모두 반영해 자신의 책을 수정해 나갔죠. 그러니까 한편은 독자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성실한 저자죠. 요즘 같으면 게시판에 자기가 쓴 글 밑에 달린 댓글들을 열심히 살펴보고 댓글들에 일일이 답글 다는 사람 생각해 보시면 되죠.

 

다윈은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댓글에 답글 달다 보면 자기 논리 꼬일 때 많죠. 다윈 역시 댓글 달기 시작하고 뭔가 말이 많아지기 시작하니까, 뭐랄까, 『종의 기원』이 약간 누더기 같아지기 시작했죠. 물론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 의미에서 초판이 가장 독창적이고 용감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종의 기원』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마지막 문장을 비교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볼까요.

 

There is grandeur in this view of life, with its several powers, having been originally breathed by the Creator into a few forms or into one; and that, whilst this planet has gone cycling on according to the fixed law of gravity, from so simple a beginning endless forms most beautiful and most wonderful have been, and are being, evolved.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조물주에 의해서 숨결이 불어넣어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이 문장을 보면 중간에 “by creator”, 즉 “조물주에 의해서”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구는 1판에는 없죠. 이것은 오탈자만 손봐서 그냥 펴냈다고 알려진 2판을 펴낼 때 슬그머니 다윈이 집어넣은 거죠. 사실 다윈이 기독교적 신을 얼마나 믿었는지 말이 많지만, 『종의 기원』 초판만 보면, 창조설을 굉장히 강력하게 배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신을 개입시키지 않아도 ‘자연 선택을 통한 진화’만으로 종의 기원과 변이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게 주된 논지니까요.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서 갑자기 ‘조물주’라니, 이것만 봐도 다윈이 당시 『종의 기원』 초판이 일으켰던 파문에 아주 많이 신경 썼음을 알 수 있죠. 이것 말고도 수많은 크고 작은 변화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그래서 1판을 번역하기로 한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두 번째 결정은 주석을 어떻게 달 것인가 하는 거였습니다. 주석을 달까, 말까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달까 하는 게 문제가 됐죠. 그런데 처음에 제 아이디어는 주석을 잘 달자. 페컴의 합주판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간 진행되어 온 다윈 연구의 성과를 주석 형태로 달아 보자 생각했죠. 그러다가 번역을 해 가면서 좀 생각이 바뀌었어요. 일단 해설을 달기 시작하면 책이 본문 반, 주석 반 될 것 같았죠. 좀 복잡하잖아요. 혼란스럽잖아요. 다윈이 원래 뭘 얘기하려고 했는지를 독자 나름대로 독립적으로 혼자 생각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냥 일단 텍스트를 훌륭하게 잘 번역하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해되는 우리말로 번역하자. 비문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문장이 되어서 문장 자체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이 되지 않게 하자. 그런데 그동안 우리말로 번역된 많은 판본들이 그래 왔거든요. 그래서 1판을 번역함과 동시에 깊이 있는 해설은 별도의 책으로 내는 것으로 하고 일단 원문을 제대로 번역하자. 그리고 옮긴이 주 같은 것은 독자의 이해를 돕는 범위 안에서 최소한으로 달도록 하자. 이렇게 결정했죠.

 

 

“1판을 번역하기로 한 것이 첫 번째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인터뷰 중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SB : 이번에 펴낸 『종의 기원』의 오리지널한 생각을 맛볼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을 두셨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상세한 주석은 별도의 책으로 낸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어떤 책일까요?

 

장대익 : 그 개요를 『종의 기원』 서두에 있는 옮긴이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죠. 그래서 앞으로 대여섯 번의 강연을 하면서 독자들과 책을 함께 읽고 이 성과를 책으로 엮어 보려고 합니다. 『다윈 깊이 읽기』 또는 『『종의 기원』 깊이 읽기』라는 제목으로 책을 내게 될 거예요. 그게 제목이 될지, 부제가 될지 모르지만 한 챕터 한 챕터 함께 읽어 가면서, 각 장의 핵심 주장이 무엇이고, 그 주장이 어떤 역사적, 사상사적, 과학사적 맥락에서 나왔는지, 그 챕터의 내용과 표현이 초판에서 6판까지 어떻게 변해 갔는지, 어떤 부분이 논란이 됐고, 다윈이 그것을 어떻게 방어했는지, 그리고 현대 생물학의 관점에서 그 챕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입체적으로 이야기해 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독자들은 다윈과 그의 『종의 기원』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얻게 되겠죠. 이번 가을과 겨울 사이에 강연을 하고 그 강연 원고를 모아 내년에는 책을 내야겠죠.

 

SB : 「드디어 다윈」 시리즈의 한 권이 될 겁니다. 현재 「드디어 다윈」 시리즈 3권인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 9월 출간 예정이니 “다윈 깊이 읽기” 강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쯤 책이 나오겠죠. 또 4권과 5권으로 최재천 교수님의 『다윈 지능』과 『다윈의 사도들』을 준비 중인데, 일정대로라면 올해를 넘기기 전에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윈 깊이 읽기』 책은 아마 6권이 되지 않을까요? 3권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과 함께 출간하게 되면 좋을 듯합니다.

 

 

 

궁극의 다윈: 다윈 깊이 읽기 연속 강연

 

SB : 그러고 보니까 강연 제목 어떻게 할까요? 지난번에 “궁극의 다윈”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잠깐 아이디어 주셨는데, 그것을 강연 제목으로 정해 보면 어떨까요? “궁극의 다윈: 『종의 기원』 깊이 읽기”, 이렇게 하는 거죠.

 

장대익 : 제가 가끔 정말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릴 때가 있는데, “궁극의 다윈”이라는 표현이 떠올랐어요. 그거 제가 떠올린 것 맞지요?

 

SB : 네.

 

장대익 : 가끔 남이 떠올린 걸 제 걸로 착각할 때가 있어요. (웃음)

 

SB : 선생님이 떠올리신 것 맞아요. “궁극의 다윈”, 강연 제목으로, 또 책 제목으로도 괜찮은 것 같아요. 무게감도 있고.

 

장대익 : “궁극의 다윈”이라는 제목은 다윈 사상의 핵심 가치하고도 통하는 것 같아요. 다윈은 궁극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궁극적인 설명을 시도한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죠. 즉 ‘왜라는 질문(why question)’을 던진 겁니다. 우리가 무엇이고,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힌트가 다윈의 사상 속에 있는 겁니다. 『종의 기원』은 그걸 생각하고 그걸 이해하게 만든 책이라고 할 수 있죠. 과학이 자연에 대해 내놓는 설명을 크게 궁극인에 대한 설명(ultimate explanation)과 근접인에 대한 설명(proximity explanation)으로 구분할 수 있죠. 쉬운 말로 하자면, 궁극인에 대한 설명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설명이고, 근접인에 대한 설명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대한 설명이죠. 대표적인 게 물리학이나 화학의 설명이죠. ‘어떻게?’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자연의 많은 부분을 ‘어떻게?’로 설명할 수 있어요. 새들이 어떻게 날고, 개들이 어떻게 짝짓기를 하고, 인류가 어떻게 지구를 정복하게 됐는지? 하지만 새들이 왜 나는지, 개들이 왜 짝짓기를 하는지, 그리고 인류가 왜 지구를 정복해야 했는지는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지 이해할 수 있거든요. 짝짓기 춤을 추는 새를 보고 그 춤의 물리 운동을 분석할 수는 있어도 그 행동의 이유와 목적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죠.

 

 

“결국 자연계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왜라는 궁극의 질문을 던져야 할 수밖에 없죠. 그 궁극의 질문을 던진 사람이 바로 다윈이라는 거죠. 인류 역사상 처음, 제대로 던진 사람일 겁니다. 목적론적 세계관, 조물주에 의한 창조론에 오염되지 않고 자연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창을 열어 줬다고 할까요.” 찰스 다윈 초상화. 사진 제공: shutterstock.

 

결국 자연계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왜라는 궁극의 질문을 던져야 할 수밖에 없죠. 그 궁극의 질문을 던진 사람이 바로 다윈이라는 거죠. 인류 역사상 처음, 제대로 던진 사람일 겁니다. 목적론적 세계관, 조물주에 의한 창조론에 오염되지 않고 자연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창을 열어 줬다고 할까요.

 

SB : 그 궁극적인 질문이 바로 이 『종의 기원』에서 시작된 셈이군요.

 

장대익 : 그렇죠. 이 『종의 기원』이 바로 '궁극의 책'입니다. 궁극의 책. 궁극의 책을 깊이 읽는 강연과 책이니 '궁극의 다윈'이라는 제목도 나쁘지 않겠죠.

 

SB : '궁극의 책'이라, 좋네요. 강연 제목을 그렇게 잡겠습니다. '궁극의 다윈.' 좋은 아이디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화와 진보를 구분하라!

 

SB :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인터뷰를 계속해 보죠. 앞에 하신 말씀을 이어서 다윈 사상의 역사적, 사상사적 의미를 좀 더 다뤄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궁극의 책이라 할 『종의 기원』이 출간된 160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인류와 생명 그리고 자연 세계를 포함한 세상 만물이 존재하는 이유를 조물주나 신성한 설계자 같은 어떤 존재의 창조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었잖아요. 물론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나 고대 인도의 사상가들 중에 그런 생각을 부정했던 유물론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계를 신이 창조했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다윈은 코페르니쿠스에 비견될 만한 어떤 불연속 지점을 인류에게 선사한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로 진보적인 역할을 한 셈이죠. 그런데 선생님도 이 책 옮긴이 서문에서 강조하셨고, 스티븐 제이 굴드나 리처드 도킨스 같은 많은 다윈주의자들이 다윈의 진화를 진보와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다윈이 결국 ‘진화’라는 단어를 쓰기는 했지만, 다윈의 사상을 19세기적 진보 패러다임 안에 가둬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죠. 그럼 여기서 다윈의 진화 사상을 진보 개념하고 구분하는 게 왜 중요한지.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그걸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장대익 : 말씀대로 ‘진화(進化, evolution)’라는 말에는 ‘진보(進步, progress)’ 패러다임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최재천 교수님께서도 다른 자리에서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꾼이었던 다윈이 ‘진화’라는 단어처럼 오해받기 쉬운 단어를 선택했을까, 좀 더 좋은 대안을 생각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신 적이 있어요. 초판에 따르면 진화를 뜻하는 다윈의 오리지널한 표현은 “변화를 동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입니다. 이 표현 역시 저희가 이번에 번역을 하면서, 다윈의 용어들을 표준화할 때 가장 많이 고민한 단어입니다. 우리는 우리말 독자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정확하고 적합한 표현을 찾았고 결국 이렇게 번역했죠.

 

“다윈은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입니다. 그런 그가 왜 오해를 부를 단어를 남겨 뒀을까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 교수.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그런데 이 부분에서만큼은 저는 최 교수님하고 생각이 좀 달라요. 물론 다윈은 진화라는 단어를 쓰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그건 분명해요. 과학사 학자들이 다 입증하는 거고, 『종의 기원』에서도 맨 마지막 문장, 맨 마지막 단어로 “evolved”를 쓸 때까지도 다윈은 동사형이든 명사형이든 진화라는 단어를 절대로 쓰지 않았죠. 정말 울며 겨자 먹기로 썼다는 느낌이 들어요. 따라서 우리는 이번에 초판을 번역하면서 이 evolve를 ‘진화’라고 번역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진보’라고 번역해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evolve의 원래 의미인 unfold, 즉 ‘전개’ 또는 ‘펼쳐지다.’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꽃봉오리가 펼쳐져 꽃이 되는 것처럼 정해진 뭐가 있고 거기서 이렇게 펼쳐진 거니까 그 전개라는 표현을 쓴 거죠. 그래서 마지막 문장을 우리는 이렇게 번역했죠.

 

There is grandeur in this view of life, with its several powers, having been originally breathed into a few forms or into one; and that, whilst this planet has gone cycling on according to the fixed law of gravity, from so simple a beginning endless forms most beautiful and most wonderful have been, and are being, evolved.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숨결이 불어넣어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종의 기원』 초판이 번역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저처럼 ‘진화’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배제한 채 초판을 번역한 건 제가 처음일 것 같아요. 이렇게 번역해야 다윈의 오리지널한 생각에 다가갈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다윈의 “변화를 동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라는 표현이 좀 복잡하고 비직관적이라는 최 교수님의 말씀에 꼭 동의하는 건 아니죠.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자연 선택의 작동 조건으로 세 가지를 듭니다. 첫째가 변이이고, 둘째가 적합도, 그리고 셋째가 대물림, 즉 계승이죠. 이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작동하는 자연 현상을 하나의 용어로서 표현한다고 해 보세요. “변화를 동반한 계승” 그대로죠. 다윈 생각에 자연 선택을 통한 종의 분화 및 변이를 설명하기에 이것보다 더 분명한 것은 없었을 거예요. 글쎄 단어를 못 만들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정확한 표현을 선호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진화’라는 단어가 자신의 사상을 대표하는 용어처럼 사용되는 상황 속에서도 10년 넘게 ‘진화’라는 단어를 자신 책에 쓰지 않고 ‘변화를 동반한 계승’을 고집했던 것도 이해가 되죠.

 

양차 대전은 물론이고, 사회주의의 흥망성쇠까지 다 겪고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인간이 야기한 기후 온난화에 벌벌 떠는 지금 관점에서 보면 ‘진보’라는 게 낡은 이데올로기요 거리를 둬야 하는 과거의 패러다임이겠지만, 1870년대 다윈에게 진보 뉘앙스는 그리 멀리 해야 할 가치는 아니었겠죠. 그런 의미에서 10년 넘게 ‘변화를 동반한 계승’을 고집하던 다윈이 ‘진화’라는 단어를 받아들인 건 표현의 간결성과 효율성을 중시한 것일 뿐 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요. 저라도 ‘진화’라는 단어를 수용했을 것 같아요.

 

SB : 그렇다고 하더라도 20세기에도 많은 다윈주의자들이 진보와 진화의 구분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장대익 : 방향성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진보라는 개념 속에는 방향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윈 사상은 방향성 또는 그 유사품인 목적론을 배격해요. 생명 현상을 포함해서 자연 현상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어디를 향해서 가는 게 아니에요. 그냥 그 환경에 더 잘 적응한 놈이 살아남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방향을 얘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물론 다윈도 『종의 기원』에서 진화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어떤 환경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경우 자연 선택이 어떤 한 방향을 계속해서 더 유리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환경은 급변할 수 있고, 그러면 그동안 가장 잘 적응했던 놈들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자연의 선택을 받아 온 형질들이 불리한 것으로 돌변하는 거죠. 그걸 왜 다윈이 몰랐겠어요? 특정한 기간, 장소에서의 진보는 다윈도 있을 수 있다고 봤어요. 그러나 생명이 전반적으로 길게 봤을 때 어느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얘기는 자기 이론과 맞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진화라는 단어를 쓰는 걸 계속 주저했던 거죠.

 

SB : 그러면 다윈의 진화론이라고 부르지 말고 ‘전개론’이라고 해야 할까요? (웃음) 그렇다면 다윈의 진화론은 진보 사상하고 약간 대립적인 사상인 건가요?

 

장대익 : 진화는 진보를 만들기도 하고 그렇지도 않기도 하죠. 우리말의 진화라는 단어는 일본 학자들이 영어의 evolution을 번역한 걸 가져온 것입니다. 한자로도 나아갈 진(進), 될 화(化)를 합친 거죠. 이것만 보면 진보(進步)라는 단어와 크게 다를 바 없어요. 어떻게 보면 잘못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윈은 이것보다 진보주의적 뉘앙스가 약한 evolution이라는 단어 자체도 꺼려했죠.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진화라는 개념이 정착돼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윈의 진화 개념이 진보 개념과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어요.

 

SB : 그러나 허버트 스펜서나 카를 마르크스 같은 이들은 ‘진화’를 ‘진보’의 근거로 많이 사용했죠. 진화의 법칙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처럼 진보의 법칙이 인간 사회와 역사를 지배한다는 거죠. 역사 발전 5단계 법칙 같은 게 그런 예죠.

 

장대익 : 그러니까 그걸 사회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라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만일 다윈 선생님이 살아 계셔서 인간이나 사회가 하등한 존재에서 고등한 존재로 ‘진화’한다는 따위의 주장이 ‘사회 다윈주의’라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되게 섭섭해하시고 막 분개하실 것 같아요. 그건 사회 다윈주의가 아니라 사회 스펜서주의라고 해야 맞기 때문이죠. 스펜서는 ‘진화’라는 용어뿐만 아니라 ‘적자생존’ 같은 단어도 고안해 냈고, 다윈의 학설을 바탕으로 단순함에서 복잡함으로 가는 ‘진화’를 우주를 지배하는 보편적인 원리로까지 확장했죠. 그 과정에서 다윈의 오리지널한 사상에 의미의 미끄러짐이 발생했죠. 아직도 많은 사람이 스펜서의 사상들을 다윈에서 기인한 것처럼, 다윈이 그걸 얘기한 것처럼 알고 있죠. 이건 앞으로 바로잡아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다윈이 우생학의 아버지라 할 프랜시스 골턴의 사촌이다 보니 다윈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는 것 같아요. 약육강식을 기본 원리로 한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그 중 한 사람으로 다윈을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든 논리적으로든 다윈은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어요. 스펜서라는 사람이 다윈의 학설을 차용해 대중화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이든 아니든 오역과 오독이 발생한 거죠. 그래서 저는 다윈의 오리지널한 아이디어는 그게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볼게요. 다윈이 약육강식을 얘기하지 않았냐고들 하죠. 맞아요. 그런데 다윈은 『종의 기원』만 아니라 다른 책에서 자연 세계에는 경쟁만큼 협력이 있다고 수십 번, 수백 번 강조해요. 그래서 표트르 크로포트킨 같은 아나키스트는 『만물은 서로 돕는다(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라는 책에서 다윈이 했던 얘기 중에 정말 중요한 부분은 협력에 대한 것이었다 했죠. 또 협력 또는 이타성의 진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게 현대 진화 생물학의 역사에요.

 

“약육강식, 적자생존, 승자독식 같은 개념들이 모두 다윈에게서 나왔고, 이런 개념들 때문에 현대 사회가 점점 더 냉혹해진다고, 혹은 무자비한 정글이 되어 간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윈을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진 제공: shutterstock.

 

약육강식, 적자생존, 승자독식 같은 개념들이 모두 다윈에게서 나왔고, 이런 개념들 때문에 현대 사회가 점점 더 냉혹해진다고, 혹은 무자비한 정글이 되어 간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윈을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번 기회에 『종의 기원』을 한번 읽으시면서 다윈의 오리지널한 사상을 발견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다윈이 진보에게, 다윈의 보수에게

 

SB : 진화하고 진보 관련해서 하나 더 여쭤 볼게요. 다윈의 진화론은 과학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진보든, 보수든 어느 하나라고 정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모든 과학 기술이 그러했듯 역사 속에서 진보든 보수든 정치 세력에 의해 이렇게 저렇게 이용되어 왔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이론을 과학스럽게 포장할 때 쓰이기도 했고, 제국주의자들이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식민화할 때 정당화 기제로 이용되기도 했죠. 그런 기억이 다윈에 대한 현대인의 오해를 부채질하는 걸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그런 기억을 불식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21세기도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현대의 진보와 보수의 정치 세력에 다윈의 사상은 과연 어떤 교훈을 줄 수 있을까? 새로운 깨우침을 줄 수 있어야 과거의 기억을 불식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대익 : 일단 진보에 대한 얘기를 더 하고 싶은데요. 진보와 보수를 어떻게 나눌까 하는 건 복잡한 문제죠. 그런데 오늘 인터뷰 자리는 ‘수다’ 자리니까 ‘나이브하게’ 통상적인 구분법을 따라 진보를 모두를 위해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꿔 보려는 이념, 보수를 우리 사회의 기존 질서를 지켜 가자는 이념으로 나눠 보죠.

 

진보의 이념은 참 훌륭하죠. 좋은 사회, 평등한 공동체, 그런 게 만들어지면 좋겠죠.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뭐냐면 그걸 구현할 길이 없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진보의 이념에는 목표는 있지만 방법이 없다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짧아요. 인간이 아무리 숭고한 존재이고,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와 사상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생존과 번식에 불리한 환경과 행동은 싫어해요. 그런 환경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고, 그런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죠. 이건 모든 생명체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속성이에요. 인간이 아무리 고상하고 대단해 보여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하고, 번식을 하려면 짝짓기 상대를 찾아야 하죠. 문명이라는 이름의 포장지가 계속 바뀌어 왔지만, 우리의 몸과 머릿속은 여전히 신석기 시대 원시인과 그리 다르지 않죠. 그런데 진보주의자들은, 모두는 아니겠지만, 대부분 그걸 간과해요. 그래서 왜 사람들이 이 좋은 생각을 따르지 않을까 하고 당혹스러워하죠.

 

사회에 좋은 게 모든 사람에게 좋은 걸까요? 모든 사람이 공동체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정말로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풀 수가 없어요. 결국 궁극의 질문을 던져야 하는 거죠. 인간은 왜 이런 걸 싫어하지? 반대로 왜 좋아하지? 궁극의 질문을 던져야 하는 거죠. 이 질문의 가장 큰 모범이 바로 이 궁극의 책, 『종의 기원』이라는 얘기에요. 다윈은 자연 세계에 궁극의 질문을 던지고, 나아가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대해서 궁극의 질문을 던진 거죠.

 

그런데 진보주의자들은, 다 좋은데, 인간을 대상으로 궁극의 질문을 던지는 데 익숙지 않아요. 인간이라는 존재를 신성시하는 건지, 인간의 자연적 본성을 비루하다 여기고 외면하는 건지 정면으로 마주 보고 궁극의 질문을 던지는 데 망설이죠. 하지만 궁극의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잘 이해한다면, 사회를 바꾸는 데, 그걸 개량이라고 하든, 개혁이라고 하던, 혁신이라고 하든, 혁명이라고 하든, 도움이 되는 지혜를 얻을 수 있겠죠. ‘넛지’ 같은 게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거예요. 행동 경제학이 업데이트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사회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잖아요. ‘넛지’는 어쩌면 예고편일지도 모르죠. 우리가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대해 이해가 깊어진다면 얻게 될 방대한 지혜의 예고편 말이죠. 『종의 기원』은 그 출발점이기도 하죠.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으로써 진보는 보다 원숙해질 것이고, 경쟁과 협력의 두 바퀴가 같이 굴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보수는 보다 품이 넓어지겠죠. 『종의 기원』은 과학책이지만 그런 통찰과 성찰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다윈 조상. 사진 제공: shutterstock.

 

진보에 대해서 한소리했으니, 보수에 대해서도 얘기해야겠죠. 현대 보수주의자들이 지키고자 하는 기존 질서는 아마도 자유, 시장, 경쟁 이런 것들이겠죠. 손대지 말고 가만히 두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알아서 시장도 굴러가게 하고, 사람들도 먹고살게 하고, 그러다 보면 사회도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꿔 줄 것이다 같은 얘기를 지지하죠.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이 인간의 자연적 본성과 훨씬 더 부합한다고 여기죠. 그러나 그것은 반쪽짜리 이야기일 뿐입니다.

 

다윈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통들을 아주 민감하게 느끼는 관찰자였습니다. 자연계의 약육강식을 보고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면서 신이 존재한다면 왜 저런 고통을 그냥 놔두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곤 하죠. 그리고 경쟁의 사례 속에 숨은 협력의 사례들, 개미들, 벌들, 다양한 사회성 동물이 보여 주는 협력 행동에 대한 관찰을 그치지 않아요. 그리고 그 협력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진화할 수 있었을까 고민하죠. 다윈에게 있어 경쟁은 한 가지 측면일 뿐입니다. 그것도 협력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는.

 

SB : 진보는 다윈으로부터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대한 성찰을 배워야 하고, 보수는 다윈으로부터 경쟁과 협력의 공진화를 배워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장대익 : 요약해 보면, 진보든 보수든 인간과 자연에 대해 궁극의 질문,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때 이 책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고 막 외우라는 뜻이 아니에요.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 질문법을 배우라는 거예요.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으로써 진보는 보다 원숙해질 것이고, 경쟁과 협력의 두 바퀴가 같이 굴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보수는 보다 품이 넓어지겠죠. 『종의 기원』은 과학책이지만 그런 통찰과 성찰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윈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통들을 아주 민감하게 느끼는 관찰자였습니다. 자연계의 약육강식을 보고 스스로 고통스러워하면서 신이 존재한다면 왜 저런 고통을 그냥 놔두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곤 하죠.” 인터뷰 중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다음 편에 계속)


장대익

서울 대학교 자유 전공학부 교수. 문화 및 사회성의 진화를 연구하는 진화학자로 학술, 문화, 산업 등 분야를 넘나들며 지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제11회 대한민국 과학 문화상을 수상했다. 『다윈의 식탁』, 『다윈의 서재』, 『다윈의 정원』, 『종교 전쟁』, 『울트라 소셜』, 『통섭』 등의 책을 쓰고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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