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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울렁증 극복 비결 『언어의 아이들』 : 조지은 편 ③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외국어 울렁증 극복 비결 『언어의 아이들』 : 조지은 편 ③

Editor! 2019. 6. 12. 11:00

이번 「과학+책+수다」에서는 『언어의 아이들: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언어를 배울까?』의 저자 조지은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언어학을 가르치시는 조지은 교수님과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원으로 계시는 송지은 박사님은 언어학자이자 이중 언어 사용자로서, 아이의 언어 습득 과정에 숨은 비밀을 탐구하는 이 책을 함께 쓰셨습니다. 마침 잠시 한국을 방문하신 조지은 교수님과 나눈 이야기들을 4회에 걸쳐 함께 보시겠습니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열한 번째 이야기

네이티브 스피커란 없다! 외국어 울렁증 극복 비결

『언어의 아이들』 : 조지은 편 ③
 

 

SB :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 문법은 물론이고 발음에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조지은 : 네,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 언어 불안감(language anxiety) 연구가 있습니다. 외국어 학습 빅데이터 분석 중에 한국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발음이었어요. 예를 들면 영어 유치원에서 교사를 뽑는 데에도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커리큘럼을 준비했는지 보는 대신 발음을 우선시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교포들이 불이익을 당합니다. 교포 선생님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한국 발음 느낌이 있거든요.


사실 우리에게 맞는 영어를 찾아가는 게 가장 중요해요. 우리나라 브랜드 이름 중에 90퍼센트 이상은 영어가 섞여 있을 정도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만의 영어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죠. 싱가포르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자기들의 언어를 찾아가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말하고 싶다는 환상이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네이티브 스피커는 어떻게 보면 우리가 만들어 낸 이미지일 뿐입니다. 네이티브스피커는 없다. 그게 지난 20년 동안 학계에서 내린 결론입니다.


사실 호주에도 네이티브 스피커가 있고, 영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는데 그 네이티브 스피커를 어떻게 정의를 하느냐나 굉장히 어렵잖아요. 영어를 각자에게 가장 잘 맞게 내재화해서 사용하는 거겠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하기 어려운 영어 발음들이 있고 또 우리나라 문법에 안 맞는 영어 문법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인도유럽어처럼 굴절이 있는 요소는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쓸 때 빼고 씁니다. 청바지가 영어에서는 복수(jeans)지만 진이라고 하지, 진스라고 쓰지 않는 거죠.


우리가 한국적인 영어를 지금 이렇게 많이 쓰고 있으면 한국적인 영어를 만들고 그런 발음에 열려 있을 법도 한데 현재는 그렇지 않아요. “나도 저 사람처럼 발음하고 싶다.” 또는 “이렇게 발음을 해야 외국 사람들이 더 잘 알아들어.”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발음이 좋아야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처음에 제가 영국에 갔을 때 저는 미국 영어를 공부해서 갔는데 영국 발음이 참 멋있는 거예요. 발음을 따라하고 음성학적으로 얼마나 강세(accent)가 중요한지 배우고 운율도 재미있는, 새로운 언어 습득이었지요. 그런데 그래서 비효율적입니다. 그 사람에게 가장 맞는 영어를 해야 가장 이해하기 쉬운 거예요.


유튜브로 한국 음식을 소개하는 미국의 한국계 아주머니가 요즘 인기예요. 그런데 굉장히 구수한 영어, 콩글리시로 설명을 하는데 정말 이분의 영어는 그냥 이분 같은 영어에요. 그런데 그 많은 팔로워들이 이해하지 못하겠다거나 영어에 대해서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아요.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서도 굉장히 자신감 있게 이야기를 하고 아무도 그 사람이 발음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이 들을 때 굉장히 자연스럽고 하나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고 좋다는 이야기를 해요. 만약에 그분이 영어 연습을 해서 영국 사람 같은 발음으로 말을 했으면 오히려 좀 이상하다, 어색하다 했을 거예요.

 

요리 유튜버 망치가 소개된 기사 

우리는 발음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쓸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서 소모되는 게 너무 많지요. 그런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글로벌 잉글리시 시대인 만큼 영어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지역화되어야 하니까요. 영어 교육 과정에서도 이렇게 말을 해야 된다고 더 이상 가르치지 않아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도 예전에는 영국식 발음, 미국식 발음 두 가지만 나왔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홍콩 발음도 나오고 많아졌어요. 힘이 많아지면 발음에도 선택의 여지가 많아지고, 여러 가지 개성을 다 인정해 주는 거죠. 우리가 만약에 미국이나 영국 영어 발음을 고집한다면 어색한 문제 외에도 이해도 어려울 수 있어요. 한국 사람이 편하게 발음하면 상대방도 주의를 더 기울이지만 미국 사람처럼 발음하면서 내용면에서는 미국 사람과 다르게 말해서 상대방도 의아해하는 거죠.


발음 교육에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너무 많이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발음 자체는 물론 중요해요. 아이들이 어휘보다 먼저 배우는 거니까요. 아이들이 그 소리에 익숙해지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런데 이 단어는 이렇게 발음해야 한다는 식의 발음 교육을 한다는 것은 교육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SB : 아이들이 어릴 때는 영어든 한국어든 씩씩하게 한다고 쓰셨잖아요? 어른이 됐을 때 그런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주변에서 주는 압박감 때문인가요?

조지은 : 외국어 두려움증(foreign language anxiety), 외국어 울렁증이 최근에야 연구가 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어떤 새로운 언어에 불안도가 높은 사람들은 주로 한국 사람들, 아시아 사람들이 많아요. 다른 나라 사람들과 영어 공부의 양을 비교해 보자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닌데 불안도가 높으면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이해력은 굉장히 뛰어난데 발화를 하려면 일단 입을 떼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때 제일 중요한 게 바로 발언권을 얻는 거예요.


혼자서는 말을 잘 해요. 그런데 여럿이 말을 하려면 끼어드는 것도 배워야 되는데 한국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서 끼어들기가 정말 안 되는 거예요. 뭔가 완벽해야 된다는 데 사로잡히기 쉽죠. 사실 우리가 발화를 할 때는 문장 단위로 말하지 않거든요. 문장이라는 것은 굉장히 문어 중심의 구조예요. 말은 짤막짤막하게 구(phrase)로 해요. 그런데 외국어로 말을 할 때 한국 사람들은 문장을 만들고 말을 해서 준비 시간이 서너 배는 더 드는 거예요. 머릿속으로 교정까지 보니까 시간이 많이 들지요. 그러다 보면 발언권을 절대 가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불안도가 더 높아지는 거예요.

에드바르 뭉크, 「절규」(1893년)


문법이 있지만 말을 배울 때 패턴을 찾아가는 데는 우리 안에 있는 기제가 작동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른이든 아이든 마음이 편해야 돼요.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하면 말이 안 나오는 거지요. 제가 연구 중인 우리나라 아이들의 경우 마음이 불안해서 영어 유치원에 가서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부모들은 계속 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말이 트일 것이라고 믿어요. 그런데 불안증이 생기면 실어증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냥 듣고만 있고 말을 안 하고. 어른이든 아이든 마음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외국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사람들끼리 영어로 말하는 것도 한 방법이죠. 아무도 틀린 점을 고치지 않으니까 편하게 말을 하는 거니까요. 언어를 배울 때 첫 번째는 편안함이 중요하고 즐거움까지 있으면 정말 금상첨화지요.


제가 어렸을 때 영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펜팔 친구였어요. 그 친구와 대화를 하는 게 너무나 즐거웠기 때문에 영어를 공부했거든요. 그 친구는 내가 잘못 쓴다고 지적하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아이들도 어른들처럼 ‘틀렸다’는 것에 굉장히 민감해요. “그렇게 하면 안 돼.”, “틀렸어.” 하다 보면 ‘아, 나는 못하는구나. 나는 하면 안 되는구나.’ 이런 심리적인 효과가 있거든요. 문법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도 있지 마음을 편하게 갖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SB : 펜팔은 몇 살 때 하셨어요?
 
조지은 : 11살 때라 영어를 잘 못하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도 저를 이해해 준 것 같아요. 요즘 케이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어떤 흥미 요소가 있어서 동기가 되는 거죠. 그래서 외국어 공부를 싫어하는 이유도 거기에 달렸어요. 제가 했던 영국 교육부 프로젝트 설문 조사에서 영국 아이들은 모든 사람이 영어를 하는데 왜 외국어를 배워야 하나, 또 재미가 없는데 왜 배워야 하냐고 답했어요. 한국 아이들은 영어가 스트레스가 되어서 싫어하고, 영국 아이들은 영어를 왜 공부하는지 몰라서 외국어 공부가 싫은 거예요.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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