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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강 물리학자가 본 인류의 물질 문명사: 정재호 고려대 교수 1편 본문

완결된 연재/(完) 물리 어벤져스 2019 스케치

7강 물리학자가 본 인류의 물질 문명사: 정재호 고려대 교수 1편

Editor! 2020. 1. 28. 11:02

한국 물리학회 교육 위원회가 주관하고 (주)사이언스북스가 후원하는 「물리 어벤져스 2019 시즌 2」 마지막 강연의 주인공은 고려 대학교 물리학과 정재호 교수님이었습니다. ‘물리학자가 본 인류의 물질 문명사’라는 제목으로 지난 12월 27일(금)에 진행된 강연은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일컫는 “세 시대 체계(three-age system)” 안에서 인류가 어떤 물질을 발견했고, 그로 인해 어떠한 문명사적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돌 도구의 사용부터 금속 합금, 나아가 반도체 개발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를 물질 문명의 측면에서 바라본 정재호 교수님의 폭넓은 이야기, 많은 기대 바랍니다.


 

물리 어벤져스 2019 7강
물리학자가 본 인류의 물질 문명사: 정재호 고려대 교수 1편

 

정재호 교수

정재호 교수님은 중성자 및 엑스선 산란을 이용한 자성체, 유전체, 초전도체 등 고체 물질의 결정 구조 자기 구조 및 동역학에 관한 연구를 주요 분야로 삼고 계십니다. ‘미국 국립 표준 연구소 중성자 연구 센터(NCNR)’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2007년부터 고려 대학교 물리학과에 부임해 연구와 교육에 힘쓰고 계시는데요. 「물리 어벤져스 2019 시즌 2」 마지막 강연에서는 고체 물리학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등을 거치면서 인류가 발견하고 개발한 물질을 고체 물리학 측면에서 접근해 보았습니다. 인류를 변화시킨 물질은 무엇일까요? 그 물질은 세계를 어떻게 바꿔 놓았을까요? 현재는 어떤 물질의 시대일까요? 

정재호 교수님은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물질 문명사가 무엇인지 점검하고 시작했습니다. 먼저 ‘역사’입니다. 정재호 교수님은 “역사를 좁은 의미로 본다면 문자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바탕으로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오늘 강연은 “비문자적 유물까지 포함한 넓은 의미의 역사를 다루고자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물질 문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강연하는 정재호 교수. ⓒ ㈜사이언스북스.

“단지 우리가 어떤 물질을 쓰느냐가 아니고요. 그 물질을 사용할 때 인류가 어떤 기술을 개발했는지, 그 물질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느냐까지 생각해 보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는 물질 문명이라는 말이 한자 문화권에서만 쓰는 단어 같은데요. 물질 문명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려서 종종 듣던 말이 ‘서양은 물질 문명이 발달했고, 동양은 정신 문명이 발달했다.’ 같은 것이거든요. 오늘 강연을 통해 여러분이 각자 물질 문명과 정신 문명이 과연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고체 물리학이란 무엇인가?

물리학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물질, 시간과 공간에서 물질의 운동, 그리고 물질과 관련된 에너지나 힘 등을 연구하는 자연 과학의 한 분야”. 정재호 교수님은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 세 개로 ‘물질’, ‘시간’, ‘공간’을 꼽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 내에 존재하는 물질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가질 때, 그 대상이 물질이 아닌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영혼’ 같은 것은 존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약간 의견이 갈릴 수 있겠죠. 하지만 저는 여기 존재하고, 여러분도 여기 존재해요. 왜냐면 우리가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에 있느냐? 하면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죠. 물리학의 정의 안에 있는 ‘에너지’, ‘힘’, ‘운동’ 이런 것은 다 물질의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생각하는 물질의 구성. 정재호 교수 강연 자료에서.

분자, 원자, 전자 등 물질의 구성을 간략히 나열하며 정재호 교수님은 “고체 물리학에서는 전자, 양성자, 중성자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빛은 물질일까요, 아닐까요?”

“‘빛이 물질인가?’를 생각하려면 빛을 들여다보기 전에 물질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야 할 텐데요. 물질은 대체로 공간을 차지하면서 질량이 있는 어떤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빛은 어떤가요? 보통 빛에는 질량이 없다고 얘기하죠. 그러나 여러분이 0도 숫자라고 인정한다면, 빛에도 질량이 있지만 단지 질량이 0일뿐이라는 말에 공감하실 수도 있어요. 이 말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웃음) 아인슈타인의 말에 따라 ‘빛 자체가 물질은 아닐지라도 물질과 등가에 해당하는 양이다.’라는 말에는 공감하실 겁니다.”

이어 물질의 상태를 보겠습니다. 흔히 기체, 액체, 고체로 물질의 상태를 이해하죠. 정재호 교수님은 “고체가 어떤 상태인지 이해하기 위해” 또다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액체는 기체에 더 가까울까요, 고체에 더 가까울까요?” 답은 고체입니다. 정재호 교수님은 “고체 물리학이 발전하기 전에 사람들은 액체가 기체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했다. 모양이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체 물리학 발달 이후 액체는 고체와 더 비슷하다고 이해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우리에게 묻는 두 번째 질문은 “무거운 고체 물질과 가벼운 고체 물질을 낙하시키는 실험은 고체 물리학일까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갈릴레오는 물리학 실험을 한 것이었을까? 정재호 교수 강연 자료에서.

“답부터 말씀드리면 이 실험은 고체 물리학은 아닙니다. 이 실험에서 관심 두는 것이 낙하하는 물질 자체는 아니죠. 이 실험에서 주목하는 것은 중력입니다. ‘고체 물질을 사용하는데도 왜 고체 물리학이 아닐까?’, ‘액체는 왜 고체와 비슷할까?’에 대한 답을 이제 설명할게요. 고체 물리학은 단지 고체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요. 고체 물질을 정말로 잘 이해하기 위해 물질 안에 들어 있는 구성 요소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때 구성 요소란 원자이고요. 원자 안에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가 포함됩니다.”

고체 물리학이 연구하는 ‘원자’에 대해 조금 더 들어가 볼까요. 찻숟가락 하나(약 5밀리리터) 분량의 소금 안에는 원자가 몇 개나 들어 있을까요? 정재호 교수님은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아주 멋있게 답하는 방법이 있다. ‘아보가드로의 수(1몰(mol)의 구성 입자 속에 들어 있는 입자의 수)만큼 있다.’고 답하면 된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 작은 양 안에 이렇게나 많은 원자가 존재한다는 것은 고체 물질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지를 보여 주는 한 예인데요. 그럼에도 우리가 고체 물질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다행히도 고체 물질 안에 그 많은 수의 원자들이 일정하게 늘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고체 물질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너무나 어려웠을 거예요. 예를 들어 소금(염화나트륨)은 나트륨과 염소 원자가 일정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때문에 가장 작은 한 조각의 성질만 잘 이해한다면 그 물질을 다 이해할 수가 있죠. 아시겠지만 다이아몬드와 숯을 구성하는 물질은 똑같이 탄소입니다. 탄소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 성질이 너무나 달라지는데요. 고체 물질에서는 이렇듯 어떤 원소가 들어 있느냐도 중요하고, 그들이 어떻게 늘어서 있느냐도 아주 중요합니다.”

다이아몬드와 숯의 운명을 가르는 비밀. 정재호 교수 강연 자료에서.

 

 

역사 안에서의 고체 물리학

고체 물리학의 개념을 살핀 정재호 교수님은 이제 인류 역사 안에서의 고체 물리학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세 시대 체계”, 즉 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그리고 철기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에서 인류는 어떤 물질을 발견하고, 다시 그 물질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을까요.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루기에 앞서 정재호 교수님은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들어 썼던 구석기 시대와 정교하게 돌 도구를 만들던 신석기 시대, 무기를 기반으로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 철을 사용하기 시작한 철기 시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정립되었는지를 보였습니다.

“‘세 시대 체계’와 관련해, 처음 제안된 것은 기원전 7세기 그리스 헤시오도스(Hesiod)의 “다섯 시대”입니다. 인류 역사를 금, 은, 구리, 영웅, 철의 시대 순서로 구분하며 이 순서대로 인간이 타락했다고 해석했죠. 왜 그랬을까요? 기원전 7세기는 호메로스(Homeros)가 『일리아드』를 쓴 시기였습니다. 이 영웅 시대의 주제가 ‘트로이 전쟁’이었죠. 이 시기가 헤시오도스에게는 ‘헬그리스’(웃음) 시기였던 셈입니다. 혼란기였고요. 따라서 역사의 과정을 인간의 타락으로 본 거예요. 한편 기원전 1세기 로마의 루크레티우스(Lucretius)는 똑같은 시대를 인간이 발전했다고 재해석합니다. 이건 또 왜일까요? 기원전 1세기는 로마의 최대 번영기였습니다. 인간의 타락이 이어진 끝에 로마 시대를 맞았다고 해석할 수가 없었죠.”

인류 고대 문명의 탄생 시점. 정재호 교수 강연 자료에서.

이 같은 시기 구분을 최초로 학문적으로 정리한 것은 1820년의 일입니다.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위르겐센 톰센(Christian Jürgensen Thomsen)이 고고학적 유물의 연대기를 찾아 ‘세 시대’를 정립한 것이죠. 이후 1865년 영국의 존 러벅(John Lubbock)이 석기 시대를 둘로 구분해 석기 시대에서 ‘비문명’과 ‘문명’의 흔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비문명 시기를 구석기 시대, 문명 시기를 신석기 시대로 본 것입니다.

“구석기 시대는 약 200만 년 전에 시작했다고 봐요. 인간이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 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시적인 형태의 도구를 수렵, 채집에 이용했는데요. 하지만 이것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술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동물도 도구를 사용합니다. 원숭이, 수달, 까마귀 등이 도구를 사용하거든요. 사실 구석기 시대는 인간의 창의력을 엿볼 수 있는 시기이긴 하지만 그 모습이 동물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닙니다. 한편 신석기 시대는 인간의 문명이 발전한 시기인데요. 네 개의 시대(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가운데 유일하게 ‘혁명’이라는 말을 붙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학자들이 혁명이라는 말을 쓸 때는 대단히 큰 변화가 있을 때거든요. 인간 삶의 모습이 동물로부터 구분된 때가 바로 신석기 시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류가 만들어 낸 “새로운 돌”. 정재호 교수 강연 자료에서.

정재호 교수님은 고체 물리학의 관점에서 인류의 물질 활용 기술이 가장 크게 변화한 시기가 언제였을지 따져봅니다. “많은 분이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시기를 청동기 시대라고 생각하실 것 같다. 물론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체 물리학자인 제 입장에서 금속 사용은 그리 큰 변화가 아니다. 신석기 시대야말로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시대를 ‘새로운 돌’의 시대라고 봅니다. 구석기 시대의 도구는 새로운 돌은 아니죠. 신석기 시대의 새로운 돌이란 ‘토기’입니다. 토기는 지구상에 가장 많이 존재하는 원소인 산소-규소-알루미늄-철-칼슘-나트륨-칼륨-마그네슘(O-Si-Al-Fe-Ca-Na-K-Mg) 중에서 두 번째로 많은 규소를 재료로 삼았고요. 인간이 도구 제작에 최초로 열에너지를 활용한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600도에서 800도. 그리 높지 않은 온도지만, 신석기 시대에 인류는 이 열에너지를 이용해 흙 상태의 물질을 도구로 만듭니다. 정재호 교수님은 이 대목을 “인간의 지혜를 이용해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처음으로 만든 순간.”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인류 최초의 금속, 구리. 정재호 교수 강연 자료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오면 인간은 신석기 시대에 이용하기 시작한 열에너지로 금속을 제련하기 시작합니다. 더 많은 열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합금을 통해 더 단단한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죠.

“청동기 시대에도 중요한 고체 물리학적 의미가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 직전을 동기 시대라고 부르는데요. 이때는 비교적 순수한 구리를 사용했습니다. 구리의 문제는 약하다는 것이죠. 그러다 청동기 시대 구리에 주석을 섞어서 소위 ‘합금’을 통해 물성을 향상시켰어요. 기술적으로 본다면 신석기 시대에서 크게 변한 게 아님에도 청동기 시대에는 금속을 사용했다는 점이 문화적으로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지는 거예요. 특히 녹인 금속과 거푸집을 이용해 대량 생산을 시작했거든요.”

대량 생산을 통해 만들어낸 것은 무기였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전쟁이 급격히 증가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트로이 전쟁입니다. “끊임없는 전쟁”의 시기였다고 말하며 정재호 교수님은 고대 이집트의 ‘카데시 전투’와 고대 그리스 미케네 문명 시기의 칼과 갑옷 등을 보여 주었습니다.

‘무기’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다. 정재호 교수 강연 자료에서.

“동아시아는 유럽보다는 전쟁이 적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청동을 어디에 사용했을까요. 청동이라는 ‘하이테크’를 귀한 일에 사용했겠죠. 지금 남아 있는 청동기는 대부분 제사에 사용했던 것들입니다. 음악 역시 제사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청동을 활용한 악기 등이 남아 있어요.”

청동을 무기보다는 제사 도구에 사용했던 동아시아. 정재호 교수 강연 자료에서.

혁명이라고 부를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온 신석기 시대, 거푸집을 이용한 대량 생산으로 생활상을 확연히 바꿔 놓은 청동기 시대. 그렇다면 철기 시대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철은 구리와 같은 금속입니다. 그렇지만 구리는 상대적으로 “귀한 금속”이었습니다. 정재호 교수님은 “철기 시대의 가장 큰 의미는 지구상에서 네 번째로 많은, 금속 중 가장 싼 금속을 이용해 철기를 모든 생활에 거의 다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만큼 인간의 생활을 폭넓게 바꿔 놓은 것이죠.

“이때 거대 제국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훨씬 더 전쟁이 많아졌죠. 쉽게 생각하면 철기 칼이 청동기 칼보다 훨씬 우수하기 때문이에요. 철을 만들려면 청동을 만들 때보다 온도를 훨씬 높여야 합니다. 그만큼 기술이 발전한 거예요. 중국도 철기 시대에 처음으로 ‘진나라’라는 거대 제국을 형성하게 됩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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