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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된 연재/(完) 물리 어벤져스 2019 스케치

6강 물리학자의 리더십: 홍성욱 서울대 교수 2편

Editor! 2020. 1. 9. 10:00

한국 물리학회 교육 위원회가 주관하고 (주)사이언스북스가 후원하는 「물리 어벤져스 2019 시즌 2」 두 번째 강연의 주인공은 서울 대학교 생명 과학부 홍성욱 교수님이었습니다. “물리학자의 리더십: J. J.톰슨, 오펜하이머, 그리고 LIGO”라는 제목으로 지난 11월 29일(금)에 진행된 강연은 과학사에서 단연 돋보이는 리더십을 보여 준 위대한 과학자들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과학자에게 왜 리더십이 필요할까요? 과학자의 리더십이란 무엇일까요? 1편에서는 이 문제를 J. J. 톰슨과 로버트 오펜하이머라는 위대한 물리학자들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뀜에 따라 과학 프로젝트의 규모가 더 거대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한 사람의 리더십으로는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홍 교수님은 이것을 LIGO 프로젝트로 살펴봅니다.


 

물리 어벤져스 2019 6강
물리학자의 리더십: 홍성욱 서울대 교수 2편

 

강연하는 홍성욱 교수. ⓒ (주)사이언스북스.

 


아인슈타인의 100년 선물. LIGO의 중력파 발견

LIGO(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 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onal-Wave Observatory)는 미국 워싱턴 주 핸포드와 루이지애나 주 리빙스턴에 위치해 있습니다. 두 곳은 약 3,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고요. 한 곳의 길이는 약 4킬로미터입니다. 

핸포드와 리빙스턴의 LIGO 검출기. 홍성욱 교수 강연 자료에서.


“LIGO는 중력파를 관측하는 곳인데요. 왜 두 곳을 만들었을까요? 하나만 만들어서는 중력파 검출을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두 곳을 만들어서 똑같은 신호가 검출된다면 그것이 중력파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 수 있겠죠. 뿐만 아니라 두 장소가 3,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중력파가 오는 순간이 다를 거예요. 중력파는 빛의 속도로 간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계산해 보면 0.007초 정도의 시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똑같은 신호 두 개가 잡혔는데 시간 차이가 0.007초 났다면 중력파인 것이죠.”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 100주년을 기념한 듯 2015년 9월 14일 중력파가 발견되었습니다. 13억 년 전 태양의 36배, 태양의 29배 크기의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중력파였습니다. 놀라운 발견이었죠. 이 발견으로 2년 뒤인 2017년 세 명의 물리학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합니다. 바로 라이너 바이스(Rainer Weiss), 배리 배리시(Barry C. Barish), 킵 손(Kip S. Thorne)이었습니다.

중력파 발견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배리시, 킵 손, 바이스. 홍성욱 교수 강연 자료에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홍성욱 교수님은 “하나 만드는 데에도 5000억 정도가 들어가는데 1조를 써서 중력파 검출을 위한 관측소를 두 개 만들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중력파 검출 연구의 시작이 되는 장면을 먼저 살펴봐야겠죠.

“중력파 연구는 1969년에 미국의 물리학자 조지프 웨버(Joseph Weber)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웨버가 중력파를 발견했다고 선포해요. 원통형 알루미늄 검출기를 거의 진공인 방에 두고 다른 모든 진동을 없앴는데도 큰 신호가 발견되었다고 했죠. 다른 물리학자들이 비슷한 실험을 해 봤는데 안 돼요. 그러자 이론 물리학자들이 중력파를 찾기 위해 어떤 검출기가 필요한지 연구를 했습니다. 해 봤더니 웨버의 검출기로는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웨버는 자기한테 속은 것(웃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그러면서 검출기 연구가 본격화됩니다.”

중력파 발견을 처음 공표한 조지프 웨버. 홍성욱 교수 강연 자료에서.

비록 웨버의 검출기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웨버의 아이디어는 물리학자들에게 간섭계를 이용하면 정밀하게 중력파를 측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 셈입니다. 덕분에 뒤를 이어 많은 물리학자들이 중력파 연구를 시작했죠. 그리고 등장하는 물리학자가 “중력파 연구의 트로이카”로 일컬었던 라이너 바이스와 킵 손, 그리고 로널드 드레버(Ronald Drever)입니다.

“아까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과 다르죠? 노벨상은 배리 배리시가 받았는데 트로이카는 드레버예요. 드레버가 2017년, 노벨상이 주어지던 해 3월에 사망합니다. 드레버가 살아 있었다면 분명히 이 세 명이 노벨상을 받았을 거예요. 이들이 LIGO 프로젝트를 시작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단수 리더십에서 복수 리더십의 시대로, LIGO의 3단계 리더십 발전 

MIT의 라이너 바이스는 레이저로 중력파를 검출할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고요.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의 킵 손은 이론 물리학자로 블랙홀을 연구하면서 블랙홀이 충돌해서 발생하는 중력파를 검출한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글래스고의 드레버가 그러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의 종신 교수직을 줍니다.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은 킵 손과 드레버 등으로 중력파 검출 팀을 만들죠. 그렇게 두 개 대학이 경쟁을 시작합니다.

“라이너 바이스의 MIT 그룹이 1983년, 과학 재단에 돈을 달라는 제안서를 냅니다. 과학 재단에서 심사를 하다 보니까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에도 팀이 있던 거죠. 그래서 협상을 한 것이 두 팀이 한 팀을 만들면 지원하겠다고 했어요.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과 MIT는 워낙 견원지간이었는데 그런 두 학교가 최초로 협력팀을 구성해 함께 연구하게 된 배경입니다. 그것이 1984년이고요. 라이너 바이스와 킵 손, 로널드 드레버 세 명이 LIGO 프로젝트의 공동 디렉터가 됩니다.”

1단계 리더십은 이렇듯 연구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강한 의지와 협력이었을 겁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초월해 협력 연구를 시작한 것이죠. 그러다 1986년, 과학 재단은 본격적으로 중력파 연구 지원을 결정하면서 3인의 공동 디렉터 대신 1명의 소장을 추대하라는 요구를 합니다. “1987년 과학 재단의 본격적인 지원이 시작되면서 세 명은 물러나고 당시 캘리포니아 공과 대학의 교무처장으로 있던 물리학자 로커스 보트(Rochus Vogt)가 첫 번째 디렉터가 된다.”고 설명한 홍성욱 교수님은 이 대목에서 2단계 리더십을 확인합니다.

“보트가 새로운 디렉터가 되고 4킬로미터짜리 간섭계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 드레버가 반대를 합니다. 연구가 아직 안 끝났는데 4킬로미터를 만들겠다고 1조를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거였어요. 결국 보트와 킵 손은 드레버를 연구에서 배제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트가 주도해서 본격적으로 제안서를 써요. 그 결과 1조 지원에 대한 과학 재단의 승인을 이끌어내죠.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이런 큰돈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거든요. 보트는 혼자서 계속 돌아다닙니다. 정치인 만나고, 관료들 만나서 설득을 하는 거죠. 이것이 미국 과학의 우수성을 알리는 굉장히 좋은 기회다, 미국이 세계 과학을 선도한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연구라고 하면서요.”

결과는 성공입니다. 보트는 의회의 승인까지 받아냅니다. 그렇지만 소장에서는 물러나게 되는데요. “보트는 너무 열정적인 나머지 세상 모든 사람이 적이었다.”는 것이 홍성욱 교수님의 설명입니다. 그리고 1994년, 3단계 리더십의 대표자인 배리 배리시가 등장합니다.

보트에서 배리시로. LIGO 프로젝트 리더십의 변화와 발전. 홍성욱 교수 강연 자료에서. 

“배리시는 중력파 연구자가 아니고 입자 물리학자입니다. 바로 그 점이 소장으로 적격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입자 물리 가속기 같은 것을 만들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아주 꼼꼼한 관리 능력이 필요하잖아요. 이제부터 중력파 연구에 필요한 사람은 이런 사람인 거죠. 저돌적인 사람이 아니라 꼼꼼한 매니저가 필요했던 거예요. 그리고 배리시 시기에 마침내 초보적인 형태의 첫 번째 LIGO가 건설이 됩니다.”

이후 두 번의 소장을 거치고, 예산도 증액되고, 전 세계 과학자들이 협업한 결과 2010년 두 개의 LIGO가 완성이 된 겁니다. 이렇게 완성된 LIGO는 4년 동안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2014년부터 본격적인 중력파 탐사에 들어갔습니다. 이에 대해 홍성욱 교수님은 “LIGO는 보셨듯 킵 손, 바이스, 드레버의 야심으로 시작했다. 이후 보트가 소장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이 됐고, 배리시가 소장이 되면서 간섭계가 건설되었다. 어려운 문제는 계속 등장을 했지만 매번 해결했다.”고 정리했습니다.

“LIGO는 ‘Big Science’죠.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가 시작한 연구일지라도 그 열매를 내가 차지하겠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겁니다. 어차피 한참 많은 사람들을 거쳐야 하는 연구고요. 그래서 초기에는 영감을 주는 리더가 필요해요. 중기에는 저돌적인 리더가 필요하고, 성숙기에는 관리형 리더가 필요합니다.”

강연하는 홍성욱 교수. ⓒ (주)사이언스북스.

 


질의응답

과학의 발전이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져 인간의 정신력이나 문화에도 영향을 주나요? 그런 예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많죠. 세계관, 철학이라고 불리는 것, 가치 등에도 과학이 영향을 많이 줍니다. 누구는 그에 대해 비판적이기도 하지만요.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근대적인 세계관은 사실 과학에 바탕을 둔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공기처럼 주변에 있기 때문에 못 느끼는 것이지,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 자체가 과학의 발전으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정보가 러시아 스파이에게 유출이 되었는데요. 유출된 내용을 보고 그대로 폭탄을 따라서 만드는 것이 가능한 건가요?
지금 관점에서 보면 원자 폭탄은 그리 어려운 기술은 아니에요. 당시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기 때문에 원자 폭탄을 만드는 기술이 아주 어려운 기술이었던 거고요. 실험할 때까지 연구를 한 사람들도 이것이 진짜 터질지에 대해 회의적이었어요.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임계 질량’이었습니다. 원자 폭탄은 뇌관을 만들어 터트리는 방식이 아니잖아요. 우라늄을 얼마나 모아야 터지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그걸 알기가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것만 알면 이후는 별로 어렵지 않은 거죠. 또 한 가지 문제는 우라늄 235를 얻는 법이었어요. 몇 년 동안 그 큰 공장을 돌려서 얻은 양이 폭탄 세 개 만들 수 있는 양이었으니까요. 후에 그것 역시 방법이 개량되고, 우라늄이 훨씬 더 많이 캘 수 있게 되면서는 굉장히 많이 만들었어요. 미국이 (구)소련과 핵무기 감축 협정에 들어갈 때 원자 폭탄을 각각 2만 기씩 가지고 있었을 정도니까요. 잠깐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많이 만든 거고요. 처음에만 어려웠던 겁니다. 나중에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비밀 문서가 다 공개되는데요. 그걸 본 MIT 학부생 한 명이 원자 폭탄을 만들었어요. 당장 압수당하기는 했지만요. 그러니까 그냥 보고 만들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은 원자 폭탄을 만드는 지식을 비공개하는 것은 불가능하고요. 폭탄 만드는 재료를 어떻게 확보하지 못하게 할 것인가가 핵심인 거죠.

과학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과학자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뉴턴의 법칙은 알지만 뉴턴이 어떤 고민을 해서 이 법칙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잖아요. 그런 것을 많이 알 수 있죠. 과학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과학에 대한 통찰, 과학과 사회에 대한 통찰은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역사를 통해 과학자의 리더십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고, 과학자의 창의성에 대해 이해할 수도 있고요. 과학과 예술과의 관계, 과학과 인문학의 상호작용, 과학과 철학 또는 과학과 기술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등을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왜 어떤 과학은 성공했고, 어떤 과학은 실패했는가, 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과학의 발전이 늘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고,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등 부정적인 영향도 있는데요. 과학자들은 과학의 발전 속도를 통제할 수 있나요? 
통제할 수 없다, 심지어는 통제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원자 폭탄에 사용되는 여러 과학적 지식들에 대한 연구를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런 시도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결국 이런 시도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많은 게 사실인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말씀하신 문제는 철학적이기도 하고, 정치적이기도 한 문제인데요. 이 자리에서 다 얘기할 수는 없고요. 이사벨 스탕제(Issabel Stengers)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있어요. 그가 최근 내놓은 개념 중 하나가 ‘느린 과학(slow science)’이라는 개념이에요. 느린 과학이 가능하고, 우리는 지금 느린 과학을 해야 한다는 거죠. 이 개념은 과학의 발전 속도를 늦추자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과학이 나아가는 방향과 관련해 다양한 사회적 관심을 개입할 수 있는 공간적인 구조를 만들자는 의미가 큽니다. 인공 지능 발전은 어쩔 수 없다, 회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니까 결국 발전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인공 지능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는 게 좋을 것인가, 실업의 문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인공 지능이 갖는 편견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을 얘기해 보자는 식의 사회 담론이 모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아주 중요하거든요. 우리 모두 납세자잖아요. 우리 세금으로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납세자로서 충분히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죠.

오늘 소개한 과학자 중 홍성욱 교수님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모두 워낙 훌륭한 과학자예요. (웃음) 감히 누구를 롤모델로 삼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제가 젊었을 때, 맥스웰을 아주 좋아했어요. 아주 유명한 과학자죠. 물리 하시는 분들은 한 번 ‘헉’하고 넘어지는 게 맥스웰 방정식일 텐데요. 그렇게 유명한 과학자인데 케임브리지 대학이라는 곳의 특수성 때문에 맥스웰의 강의실에 학생이 두세 명이었다고 해요. 한 독일 학자가 그 강의실을 보고 깜짝 놀라서 기록을 남기거든요. 맥스웰이 독일에서 강의를 했다면 수백 명의 학생이 강의실을 채웠을 텐데 어떻게 여기서는 이렇게 진행되고 있느냐고요. 하지만 그 두세 명이 있는 강의실에서 마치 학생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열강을 매번 했다는 거예요. 맥스웰이 많이 아팠고, 꽤 젊은 나이에 죽었는데요. 죽을 때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고요. 그래서 오늘 제목에는 없는 맥스웰을 J. J 톰슨 얘기 전에 일부러 조금 많이 얘기했어요. (웃음)


홍성욱 
서울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과학사 및 과학 철학 협동 과정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교수를 거쳐 서울 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한신대 포스트 휴먼 연구단에서 포스트 휴먼 시대의 인간과 문명을 연구하고 있고, 고등 과학원 초학제 연구단을 이끌며 인공 지능의 책임과 윤리 등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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