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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프랭클린 탐험대와 괴혈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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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프랭클린 탐험대와 괴혈병

Editor! 2020. 7. 15. 14:23

40년간 의업에 몸을 바치며 울산 의대에서 1,000명의 제자를 길러 낸 의학사 교육의 권위자인 동시에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일반인을 위한 의학사 컬럼을 오랫동안 연재한 ‘글 쓰는 의사’ 이재담 교수님의 『에피소드 의학사』 3부작.  시간 날 때마다 '손 가는 대로' 펼쳐 보기만 해도 의학이 무수한 희생자를 만들어 내던 시대로부터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저절로 알게 되는 이 시리즈의 재미를 책을 못 보신 분들께 전해 드리기 위해, 총 217편의 에피소드 중에서 엄선한 이야기를 7주 동안 매주 한 편씩 공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 인스타그램에서 카드 뉴스로도 즐길 수 있습니다. 댓글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놓치지 마세요!) 


무서운 의학사

7장 그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프랭클린 탐험대와 괴혈병

 

1795년 영국 해군이 레몬을 식단에 추가한 이래 괴혈병에 걸리는 선원은 급감했다. 이러한 성공은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 1827~1912년)의 무균 수술법과 더불어 의학사에서 정확한 원리를 모른 채 질병을 치료한 드문 예로 남아 있다. 그러나 괴혈병은 의학사에서 경험에 따른 처방보다 과학적, 객관적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다. 이 질병의 정확한 병인을 알지 못했던 영국 해군이 50년 후에 또 다른 희생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이미 해결했다고 여겼던 이 괴질이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존 프랭클린의 초상화.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북극 탐험을 여러 차례 완수했으며, 그 공로로 1829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1845년 5월 19일, 존 프랭클린(John Franklin, 1786~1847년)이 지휘하는 북극 탐험대가 북아메리카 대륙에 이르는 또 다른 항로를 개척하려고 템스 강을 출발했다. 그들은 에레버스 호와 테러 호 두 척의 배에 137명의 대원이 3년간 항해할 수 있는 식료품을 실었는데, 그중에는 1.3톤 분량의 쇠고기 통조림도 있었다. (영국 해군은 방금 요리한 고기가 괴혈병에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에 모든 함선에 일정량의 통조림을 싣도록 규정했다.) 탐험대는 어는 것을 막기 위해 소량의 럼주를 섞은 레몬 주스 4,200리터를 나무통에 넣어 보관했다. 모든 대원은 장교 입회 하에 하루에 레몬 주스 30밀리리터를 물에 희석해 설탕을 타서 마시도록 명령받았다.

 

 

프랭클린 탐험대의 정보를 제공한 자에게 2만 파운드의 상금을 주겠다는 공고문.

 

3년이 지나도록 탐험대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이들의 수색에 공헌한 자에게는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상금 2만 파운드를 주겠다고 발표했지만, 8년이 지나자 이것도 시들해져 갔다. 1854년 10월, 허드슨 베이 사의 전속 의사였던 존 레이(John Rae, 1813~1893년)박사는 이누이트에게 어딘가에 35구의 백인 시체가 있다는 이야기를들었다. 급히 조직된 수색대는 킹 윌리엄 랜드에 있는 그레이트피시 강 하구에서 시체를 발견했다. 탐험대는 신항로 발견이라는 목적을 달성한 것이었다. 현장에는 700여 개의 열려진 통조림 깡통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생존자들은 가지고 있던 통조림 전부를 이곳에서 열어 보았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제인 프랭클린(Jane Franklin, 1791~1875년) 부인은 직접 수색대를 조직해 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1848년 4월 22일 프랭클린 함대가 빙산에 갇혀 움직일 수 없는 채로 고립되고 말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레몬 주스는 썩어 배와 함께 남겨졌다. 105명의 생존자가 배를 버리고 얼음 위를 걸어 캐나다를 향해 떠났고, 육지에 도착할 때쯤에는 대부분이 괴혈병으로, 최후의 35명은 통조림이 상해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죽어 간 것으로 판단되었다. (이누이트들은 입에서 피를 흘리는 쇠약한 백인들이 썰매를 끌며 캐나다 본토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1878년 미국 육군의 프레더릭 슈왓카(Frederick Schwatka, 1849~1892년) 중위가 대원들의 유골을 발견했다.

비타민 C는 기니피그와 영장류를 제외한 모든 동물의 체내에서 합성된다. 만약 탐험대가 자신들의 병이 비타민 C 결핍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레몬 주스 대신 순록이나 생선을 날로 먹었더라면 일부나마 비극을 예방할 수 있었을 터였다. 1913년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교의 악셀 홀스트(Axel Holst, 1860~1931년)와 테오도르 프뢸리히(Theodor Frølich, 1870~1947년)는 음식 속 특정 물질이 결핍될 경우 괴혈병이 생긴다는 가설을 발표했고, 미국의 알프레드 헤스(Alfred Hess, 1875~1933년)는 이 물질이 감귤류나 토마토에 많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비타민 C로 명명된 이 영양소가 화학적으로는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이라는 사실은 1932년에 가서야 밝혀진다.

 

 

「뜻은 사람이 세우나,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나니(Man proposes, God disposes)」. 프랭클린 탐험대의 비극에서 영감을 얻은 에드윈 랜시어(Edwin Landseer, 1802~1973년)의 작품.


 

이재담
서울 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 시립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 과학사학 교실 방문 교수와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 생화학 교실 및 인문 사회 의학 교실 교수,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장, 울산 대학교 의무부총장을 역임했다.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의학사 관련 칼럼을 썼으며, 번역서로 『근세 서양 의학사』, 『의료 윤리 Ⅰ, Ⅱ』와 저서로 『의학의 역사』, 『간추린 의학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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