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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자의 이상한 믿음 - 비타민 C 요법과 진실 게임 본문

완결된 연재/(完) 에피소드 의학사 미리보기

노벨상 수상자의 이상한 믿음 - 비타민 C 요법과 진실 게임

Editor! 2020. 8. 5. 16:55

40년간 의업에 몸을 바치며 울산 의대에서 1,000명의 제자를 길러 낸 의학사 교육의 권위자인 동시에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서 일반인을 위한 의학사 컬럼을 오랫동안 연재한 ‘글 쓰는 의사’ 이재담 교수님의 『에피소드 의학사』 3부작. '에피소드 의학사 미리보기'에서는 총 217편의 에피소드 중에서 엄선된 이야기를 7주 동안 매주 한 편씩 공개합니다. 그 네 번째 이야기의 주제는 비타민 C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일 정도의 신 맛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비타민 C. 이 비타민 C에 노화를 방지하고, 감기를 고치고, 암에 효과를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사실일까요? 그리고 누가 주장했을까요? 이번 이야기에서는 비타민 C와 한 노벨상 수상자에 관한 놀라운 비밀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사이언스북스 페이스북에서 카드 뉴스로도 즐길 수 있습니다!) 


이상한 의학사

23장 노벨상 수상자의 이상한 믿음
비타민 C 요법과 진실 게임

 

 

비타민 C가 감기나 암의 예방에 좋다는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되는 데는 노벨상을 2번이나 받은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 1901~1994년)의 역할이 크다. 1954 년에 노벨 화학상, 1962 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폴링은 하루에 비타민 C를 1 그램 이상 먹은 사람의 45 퍼센트가 감기에 덜 걸린다는 주장을 담은 『비타민 C와 감기 (Vitamin C and the Common Cold)』 를 1970 년에 내놓았다. 그 후 1976 년에 발간한 개정판에서 그는 감기에 효과가 있으려면 더욱 많은 양을 먹어야 한다고 권하더니, 1979 년에는 비타민 C가 암에도 듣는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1986년에 발행한 다른 책에서는 다량의 비타민 C가 건강을 증진시키고 심장병이나 암에 좋은 것은 물론 노화 방지 효과도 있다고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스스로 하루에 12그램을 먹는데 감기 증상이 나타나면 40그램까지도 먹는다고 밝혔다.

 

 

라이너스 폴링은 생애 노벨상을 두 번, 그것도 공동 수상자 없이 단독으로 받았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그만이 가지고 있는 기록이다.

 

그의 책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곧 이 주장을 확인하려는 임상 시험이 16개가 넘는 의료 기관에서 진행되었다. 그 결과 비타민 C를 대량으로 복용하면 감기에 덜 걸린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일부 시험에서 감기의 증상이 좀 가볍게 지나가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나타났으나 이 효과도 미국 국립 보건원(NIH)이 비타민 C와 가짜 약의 모양을 똑같이 만들어 시행한 임상 시험에서 차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결국 감기에 대한 비타민 C의 효과는 흔히 말하는 ‘위약 효과(placebo effect)’로 결론이 났다.

 

 

비타민 C 대용량 요법을 선전하는 내용을 담은 그의 저서.

 

1976년, 라이너스 폴링은 스코틀랜드의 이완 캐머런(Ewan Cameron, 1922~ 1991년)이라는 의사와 함께 하루에 10그램의 비타민 C를 복용한 말기 암 환자 100명의 수명이 복용하지 않은 대조군에 비해 3~4배 연장되었다고 발표해 또 하나의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곧 미국 국립 암 센터(National Cancer Institute, NCI)가 이 연구는 환자 선정 방법 자체가 틀렸으므로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미국의 메이요 클리닉도 1979년, 1983년, 1985년 3회에 걸쳐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
로 시험을 했지만 비타민 C가 가짜 약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폴링은 비타민 C에 관한 아이디어를 ‘스톤 박사’라는 사람에게서 얻었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 인물은 로스앤젤레스 정골사 학교에서 2년짜리 과정을 이수하고 명예 정골사 자격증을 얻은 사람이었다. 그의 박사 학위는 미국 대학 협회가 대학으로 인정하지도 않는 학교에서 수여한 것이었다.

 

 

비타민 C의 분자식.

 

한편 세계에서 가장 많이 비타민 C를 생산하는 호프만 라 로슈 제약 회사의 기부로 1973년에 설립된 라이너스 폴링 의학 연구소에서는 묘한 사건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폴링의 조수로 일했고 초대 연구소 소장이었던 아서 로빈슨(Arthur Robinson, 1942년~)이 1978년 대량의 비타민 C를 투여한 생쥐에게 피부암이 2배나 많이 생겼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가 이를 보고하자 연구소는 그를 해임하고 생쥐들을 없애 버린 후 연구 결과를 몰수했다. 폴링은 로빈슨의 실험이 미숙하다며 공공연히 비난했고 로빈슨은 연구소와 재단을 고소했다. 이 재판은 1983년에 화해로 끝이 났는데, 피고 측이 지급한 57만 5000달러 중 42만 5000달러가 로빈슨의 명예를 훼손한 데 대한 보상금이었다.

 

이런 소동을 일으키고 나서도 폴링은 1977년과 1979년 2번에 걸쳐 미국 건강 식품 협회가 주는 상을 받았다. (후일 딸이 평생 회원권을 받는 조건으로 그가 이 단체에 상당 금액을 기부했음이 밝혀졌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압권은, 수십 년 동안 비타민 C를 다량 복용했음에도 폴링과 그의 부인 에이바 헬렌 폴링(Ava Helen Pauling, 1903~1981년)이 1993년과 1981년에 각자 암으로 죽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논란이 되고 있는 비타민 C 대량 복용 요법은 아직 정통 의학계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 채 민간 요법 차원에서 개인의 선호에 따라 시행될 뿐이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장 큰 이유도, 비타민 C를 대량으로 복용해도 별 부작용이 없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오늘도 세계의 비타민 C 소비량은 늘어만 가고 있다.

 

 

그의 이름을 딴 상품이 있을 정도로, 세계의 비타민 C 소비량에 그가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이재담
서울 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 시립 대학교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대학교 과학사학 교실 방문 교수와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 생화학 교실 및 인문 사회 의학 교실 교수, 울산 대학교 의과 대학장, 울산 대학교 의무부총장을 역임했다. 조선일보와 문화일보에 의학사 관련 칼럼을 썼으며, 번역서로 『근세 서양 의학사』, 『의료 윤리 Ⅰ, Ⅱ』와 저서로 『의학의 역사』, 『간추린 의학의 역사』 등이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이재담의 에피소드 의학사 1: 무서운 의학사』

코로나19 시대를 극복할 지혜, 의학사에서 찾는다!

 

『이재담의 에피소드 의학사 2: 위대한 의학사』

병마와 투쟁해 온 의료 영웅들의 놀라운 이야기

 

『이재담의 에피소드 의학사 3: 이상한 의학사』

나폴레옹의 치질, 루터의 요로 결석, 루스벨트의 고혈압이 역사를 바꿨다!

 

『의학의 역사』
한 권으로 읽는 서양 의학의 역사

 

『미생물의 힘』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바꾼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의 흥미진진한 역사

 

『아름다운 미생물 이야기』
미생물의 탄생과 진화 다 모았다!

 

『전염병의 문화사』
인류를 만들어 온 것은 병원성 미생물들일지도?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병과 의학을 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스트레스』
치명적인 질병을 부르는 현대의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