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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드류안과 행성 하나와 한 시대를 공유하는 것에 관하여 :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편 릴레이 연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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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드류안과 행성 하나와 한 시대를 공유하는 것에 관하여 :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편 릴레이 연재

Editor! 2020. 7. 20. 17:53

앤 드루얀의 신작,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을 응원하는 리뷰들이 속속 편집부에 당도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허리 잘린 반도 남쪽에 갇힌 코로나19 시대의 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인기 과학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의 ‘최팀장’, 최진영 과학과사람들 대표님과 함께 ‘코스모스’로의, 사랑과 과학이 넘치는 ‘우주’로 여행을 떠나 보시는 건 어떨지요?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릴레이 리뷰의 최신 편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일독을 권합니다.


과학책 신간을 소개하는 과학과사람들의 유튜브 콘텐츠, 「여과시간」 ep. 1의 화면 갈무리.

 

1.

우리나라에서만 60만 부 넘게 팔렸다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수십 년간 한국 도서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학책 중 하나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나는 대중과 과학으로 소통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책이 일궈낸 특별한 성취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합당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 책은 우주와 과학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책이며, 일반인들이 밤하늘을 바라볼 때 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이와 흥분을 언어화하는 일을 도와준 책이기 때문이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산업의 종사자로서 언급해야 하는 이 책의 또 다른 성취는, ‘인생에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의사가 되는 것보다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을 시작한 수학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철학과가 아닌 천문학과와 물리학과로 보낸 일이 아닐까 한다. 『코스모스』를 읽지 않았다면 의사가 되거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철학과를 갈 수도 있었던 『코스모스』의 아이들은 이 책을 통해, 과학을 통해 확장된 세계의 경이를 접하게 된다. 광활한 우주 속 인간의 의미를 탐구하는 학문으로서의 물리학과 천문학 같은 자연 과학에 매료된 그들은, 후에 21세기 한국 과학 커뮤니케이션 계의 소중한 자산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들이 없었다면 한국의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대중이 그 밖의 경로로 과학의 재미를 알아 나가거나 하는 일은 매우 지지부진하고 더디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과학과 사람들 같은 회사가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2.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아마 전 세계에서 러브레터에 가장 많이 인용된 구절이 아닐까 싶은, 앤 드류안에 대한 헌사로 시작된다. 물론 세상에는 이보다 훌륭한 연애시들도 있겠지만, 연애시에 대한 정보가 많은 사람은 직접 시를 쓰는 경향이 있고, 그에 반해 과학책의 주 독자들은 연애 편지를 직접 쓰는 것보다 인상적인 구절을 적어 주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한다. (주: 관련 연구는 아직 없음)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코스모스』의 헌사 페이지. 한 권의 책을 몽땅 러브레터로 바꾸는 헌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앤 드루얀은 칼 세이건이라는 천문학자가 우주의 역사와 의미를 모두 담아 감사해야 할 만남의 주인공이었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로맨틱한 보이저 골든 디스크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앤 드류안의 뇌파를 골든 디스크에 새겨넣었다는 얘기를 들은 후로, 디스크를 발견한 지적인 우주 생명체들이 우리를 오해할까 봐 조금 신경 쓰이기도 했는데,―이 글을 읽는 분 중 누구라도 그럴 기회를 가진다면, “지구인이라는 종 전체가 모두 미남 천문학자와 사랑에 빠져 요동하는 뇌파를 가진 건 아니에요.”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서 더 이상 우주에 우리에 대한 오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앤 드루얀은 칼 세이건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함께 글을 쓰고, 책을 내며 세상과 우주에 대한 그림을 그려 나갔다.

 

 

사진은 『지구의 속삭임』에 삽입된 앤 드루얀의 뇌파 사진이다. 이 뇌파를 바꾼 소리 신호는 보이저 골든레코드에 기록되었다. 앤 드루얀이 직접 쓴 이때의 이야기를 읽어 보자. “뇌파의 패턴은 생각의 변화를 일부 기록한다고 한다. 나는 궁금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수백만 년 뒤의 고도로 발전한 기술은 내 생각을 해독할 수 있을까? …… 나는 여러 역사적 사상들과 인물들 중에서 그 기억이 영원히 간직되기를 바라는 것들을 골라 머릿속에서 일종의 순례를 했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억누르지 못했던 순간도 두어 차례 있었지만, 그 외에는 비교적 훌륭하게 원래 하려던 생각에 집중했다. 우리는 컴퓨터를 써서 1시간을 1분으로 압축했다. 그 결과 폭죽이 연달아 터지는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되었다.”

 

3. 

1996년 칼 세이건이 사망한 후, 명왕성이 행성에서 퇴출되고, 중력파가 검출되고, 아인슈타인이 정말 똑똑했다는 것이 몇 번에 걸쳐 재확인되고, 우주는 가속 팽창하고, 암흑 물질의 후보를 특정할 수 있기도 했다가 또 아니기도 하는―솔직히 이 문제는 이제 그냥 결정해서 알려줘도 괜찮지 싶다.―등의 여러 가지 과학적 이벤트가 있었고,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칼 세이건의 뒤를 이어 성공적인 『코스모스』 호스트 데뷔를 가졌다. 그리고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 가능한 세계들』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계승한 책이며 그가 떠난 후 홀로 남은 앤 드루얀이 홀로 다듬어 온 비전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나는 앞에서 칼 세이건과 그의 책인 『코스모스』 가 우리와 함께 20세기의 끝을 보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충분한 감사를 표한 바 있다. 그리고 지금은 칼 세이건도, 그 시절의 과학도, 20세기도 과거 속으로 지나갔고, 우리에게는 새로운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 가 새로 전해졌다. 왜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로는 충분치 않을까? 왜 2020년은 새로운 『코스모스』를 필요로 할까?

 

세상의 모든 것이 4개의 원소로 되어 있다는 아이디어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이론이던 때도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과학은 절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과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규명하고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고, 세이건의 사망 이후에도 쉼 없는 연구들로 과학의 역사와 우주의 지도를 다시 그려 왔다. 우리에게는 새롭게 드러난 세상과 인간의 비밀을 이야기하는 책이 필요하다. 게다가 세상은 점점 빨리 바뀌고 있다.

 

비단 새로 씌어지고 있는 페이지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새로운 문제들은 참조할 수 있는 다른 페이지들을 필요로 한다, 중력 도움을 이용해 행성 탐사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유리 콘드라튜크의 업적을, 생태계 전체의 안녕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생물 다양성 개념을 제안한 니콜라이 바빌로프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오리지널 『코스모스』에서 소개되지 않았던 이 새로운 영웅들은, 이 시대가 우리에게 준 도전의 정체를 짐작하게 하며, 2020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식의 첫 장을 장식하는 이름들이 될 것이다.

 

 

앤 드루얀이 재조명하는 잊혀진 과학자들의 대표인 바빌로프(위)와 콘드라튜크(아래). 숙청되고 망각된 이들은 가짜 미래를 역설하는 사회 체제 속에서 진짜 미래를 꿈꾼 이들일지도 모른다.

 

 

앤 드류얀은 이 책에서 문학과 과학, 철학과 예술 전체에 걸친 해박한 지식으로 인간과 우주를 잇는 선을 그어낸다. 에밀리 디킨슨에서 허먼 멜빌까지, 조로아스터교부터 플레 화산 폭발의 유일한 생존자 실바리스까지 작가는 우리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세계사의 주요 장면들과 성취들을 탐욕스럽게 헤치고 나아가면서 어떤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고, 얼마나 강하며,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는 어떤 문제들을 겪었고, 무엇을 이겨냈으며, 어떤 도전을 받고 있나.

 

전편에서 우주를 담았던 눈, 지금은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에는 애정과 지성, 따뜻함과 부드러움이 담겨 있다. 그녀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지구의 생명들에 대한 경이 섞인 찬탄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구축해 간다. 그건 때로는 문학적이고, 예술적이며, 과학적인, 인류가 성취해 온 다양한 경험들을 넘나들며 넘실대는 파도처럼 우리를 그녀의 비전에 깊이 동참시킨다.

 

세계의 기술 의존도는 높아지고 과학의 테두리 아래서 논의가 필요한 문제들은 점점 많아진다. 매 순간 새로운 도전을 경험하게 되는 인류의 21세기를 위해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소통을 위한 공통의 문화로서의 과학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망쳤다는 공연한 자괴감이나 섣부른 공포로 모든 걸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4.

이 책을 읽는 내내 『코스모스』의 유명한 구절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었는데, 책을 계속 넘겨감에 따라, 나는 점점 더 칼 세이건의 의견에 격렬하게 동의하게 되었다. 그렇다. 앤과 행성 하나와 한 시대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큰 기쁨이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진: ⓒ 최진영.

 

최진영

(주)과학과사람들 대표. 각종 과학 공연 및 전시는 물론이고, 팟캐스트와 유튜브까지 온갖 과학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학 문화 기획자. 과학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의 ‘최팀장’으로 활약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얻어들은 과학 지식들도 살다 보면 다 써먹을 데가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뜨겁게 노력 중이다.

 

 

 

◆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책들 ◆

『코스모스: 가능한 세계들』

 

『코스모스』
전 세계 과학자들이 추천하는 제1의 과학서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인류의 운명에 대한 과학적 성찰

 

『혜성』
우주의 미스터리를 풀어 줄 타임캡슐의 모든 것

 

『지구의 속삭임』
인류가 심우주로 보낸 편지

 

『창백한 푸른 점』
현대 천문학을 바탕으로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다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
과학계와 종교계를 뜨겁게 달군 위대한 강연

 

『에필로그』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콘택트1』
『콘택트2』
외계 생명과의 만남을 그린 명작 영화의 원작

 

『에덴의 용』
뇌과학과 우주적 상상력의 만남!
퓰리처 상 수상작

 

『코스믹 커넥션』
50년의 세월에도 바래지 않는 칼 세이건의 통찰

 

『브로카의 뇌』 (근간)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