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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두운 때 가장 밝은 빛을 찾아내려는 인류를 위하여: 『권오철의 코스모스 오디세이』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가장 어두운 때 가장 밝은 빛을 찾아내려는 인류를 위하여: 『권오철의 코스모스 오디세이』

Editor! 2020. 9. 23. 11:32

NASA 오늘의 천문학 사진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된 천체 사진 작가 권오철 선생님이 이번에는 천체 투영관용 영화 「코스모스 오디세이: 우주를 탐구해 온 위대한 여정」을 위해 아타카마에서 마우나케아까지 세계 각지의 천문대로 독자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천문대 방문이 쉽지만은 않아진 2020년, 그 아쉬움을 달래 줄 가이드북 『권오철의 코스모스 오디세이』가 찾아왔습니다.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신 윤성철 교수님(서울 대학교 물리 천문학부)의 크나큰 감동을 먼저 함께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한 인간이 별을 바라보고 있다. 앙상하게 마른 사람이다. 똑바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인다. 살아온 날들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 대자연은 언제 또 짓궂은 심술을 부릴지 모른다. 이번에는 홍수일까, 아니면 가뭄일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땅의 흔들림일까? 오랜 기간 그 모든 풍랑을 겪어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 지겨운 버팀이 어떤 보상을 줄 수 있을까? 이제 곧 죽음이라는 허망한 운명을 마주할 것이고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저 암흑으로 사라질 것이다.

 

 

발라드 호수의 석상 © 권오철

 

 

피곤하고 외로운 인간은 여전히 고개를 든다. 별을 바라본다. 저 별들은 영겁의 세월 동안 변치 않고 반짝이며 암흑을 수놓았다. 손에 닿지 않는다. 얼마나 높이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 별은 항상 가슴을 설레게 한다. 살아오면서 끊임없이 되뇌었던 질문. 이 고통스러운 삶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해줄 유일한 존재는 아마도 저 별일 것만 같다. 그러나 별은 말이 없다.

권오철 감독은 ‘코스모스 오디세이’라는 기나긴 여정의 동기를, 은하수를 배경으로 서 있는 발라드 호수의 조각상 사진 하나로 알려준다.  『코스모스 오디세이』의 모태가 된 영화의 시사회에서 이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새겨진 깊은 여운은 지금도 내 마음 속에서 울리고 있다. 

 

 

스코틀랜드 루이스 섬에 있는 컬러니시 거석 (cc) Kristi Herbert

 

하늘을 바라보며 신화적, 혹은 낭만적 상상에 잠기곤 했던 연약한 인간은 현대에 들어와 비로소 저 별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별들도 불멸의 존재가 아니라 언젠가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별의 탄생과 죽음이 우리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그리고 별에서 온 한줌의 먼지인 인간은 죽어서 다시 별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별들은 우리에게 고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고백을 듣기까지 인류에게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고전 영화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도입부에는 하얀 뼈다귀가 나온다. 원시적 앙상함과 결핍. 여기에서 문명이 시작되었다. 하늘로 던져진 뼈다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곧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디스커버리 호를 보게 된다. 앙상한 발라드 호수 조각상에서 이 뼈다귀를 연상한 것은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뼈다귀가 디스커버리 호로 바뀌듯, 「코스모스 오디세이」에서는 별을 바라보는 이 조각상이 어느새 ALMA와 VLT 망원경 같은 현대의 최첨단 관측 시설로 바뀌어 간다.

 

외국어를 이해하기 위해 수년에 걸쳐 그들 말의 문법을 배우듯, 천문학도는 별들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수학을 비롯하여 양자 역학, 빛의 물리, 상대성 이론 등 다양한 현대 과학의 이론을 배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들의 말소리는 너무나 희미하기에 소리의 시그널을 담아 증폭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망원경이다. 별들은 빛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천문학의 역사는 망원경을 비롯한 관측 기기 발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관측 기술은 항상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천동설을 깨는 코페르니쿠스 © 권오철

 

갈릴레오는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한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가 망원경으로 본 하늘의 모습은 르네상스 이전의 사람들이 상상했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완전무결한 질서의 상징이었던 하늘의 민낯은 사실 매우 지저분하며 복잡했다. 신의 상징인 태양에는 흑점이, 신의 신부인 교회의 상징인 달에는 분화구가 가득했다. 더군다나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우주의 변방에 위치해 있다고 믿었던 목성의 주변에는 여러 개의 위성이 목성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름이 불과 4.4센티미터에 불과한 갈릴레오의 망원경은 인류를 천동설의 동굴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동굴을 벗어난 인간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는 이 광활한 우주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영화 「코스모스 오디세이」에는 우주의 팽창을 발견한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활약했던 윌슨 산 천문대의 돔이 열리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나는 하늘이 태초부터 감춰놓았던 비밀을 저 돔의 열린 틈으로 인류에게 계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주는 대폭발로 시작했다. 현대인들이 발견한 우주의 모습은 정적이 아니라 역동적이다. 우주의 풍경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저자는 천체 사진 작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사진만으로는 우주의 모습을 온전히 다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천문학을 전공하는 나 자신도 깊이 공감한다.

 

 

카나리아 대 망원경(GTC) 너머 북극성 주변 © 권오철

 

사진을 넘어 영상에 도전한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천체 투영관용 영화로 제작해 발표했다. 장담컨대, 영화로서 「코스모스 오디세이」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걸작이다. 고대의 우주관으로부터 시작하여 현대 천문학이 말하는 빅뱅과 외계 생명에 이르기까지, 천문학이 어떻게 새로운 기술에 힘입어 발전하였는지를 수십 분이라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저자는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이 책을 손에 든 독자들께는 근처의 천체 투영관을 방문하여 「코스모스 오디세이」를 관람하실 것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우주를 향한 인류의 여정에 동참하고 싶은 열망을 느끼시리라 믿는다.

 

사진으로 보고 글로 읽는  『코스모스 오디세이』 역시 그 자체로 탁월한 작품이다. 글이 주는 차분함에는 역시 영상이 줄 수 없는 대체 불가능한 매력이 있다. 영화 제작을 위해 저자가 직접 촬영했거나 선별한 여러 천체 사진들도 압권이다. 천문학자들조차 쉽게 방문하기 어려운 세계 유수의 천문대를 간접적으로 방문할 수 있는 귀한 기회도 얻게 될 것이다. 소장 가치가 넘친다. 의미 있는 천문학 안내서의 탄생을 환영한다.

 

― 윤성철(서울 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권오철의 코스모스 오디세이』

 

 

『아름다운 밤하늘』

 

 

『별빛 방랑』

 

 

『성도』

 

 

『스타 토크』

 

 

『코스모스』

 

 

『창백한 푸른 점』

 

 

『지구의 속삭임』

 

 

『혜성』

 

 

『우리 혜성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