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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조림에서 자연 복원으로, 산불 피해 복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본문

(연재) 최강 과학, 기초 과학

인공 조림에서 자연 복원으로, 산불 피해 복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Editor! 2021. 5. 14. 16:30

강원도 태백시는 최근 봄철 산불 조심 기간을 5월 30일까지로 연장했습니다. 보통 5월이 되면 종료하던 기간이 요 몇 년 사이 건조기가 길어지며 연장되고 있는 것이죠. 2019년 4월 초 강원도 고성군 일대를 덮었던 초대형 산불의 화마를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2019년 오스트레일리아, 2020년 미국 서부 등 전 세계에서 초대형 산불이 빈번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한 숲이 재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 탓일까요? 산불은 원인도 중요하지만, 그 후 복원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산불 피해 복원 정책의 패러다임이 21세기 들어 급격하게 변했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맹목적 인공 조림이 아니라 자연의 복원력을 살린 자연 복원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생태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일시적 변화일까요? 아닙니다. 치밀한 생태학적 연구에 바탕을 둔 과학적 증거 기반 변화입니다. 이 변화의 근거가 된 기초 연구의 출발점, 강원대 정연숙 교수님의 연구를 「최강 과학, 기초 과학」에서 소개합니다. 사이언스북스 독자 여러분의 깊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인공 조림에서 자연 복원으로,

산불 피해 복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정연숙 강원 대학교 교수

 

기후 변화로 초대형 산불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산불 피해 복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고 있다.

 

2019년 미국, 브라질,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국이 초대형 산불로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국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코알라는 서식지 감소에다가 산불이 겹쳐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인도네시아는 산불로 6조 원이 넘는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 지구 곳곳에서 매년 이와 유사한 초대형 산불이 일어나 막대한 경제 손실, 생태계 파괴, 오염 발생, 인명 피해 등을 야기한다. 한국도 예외 지역은 아니다.

 

그런데 산불은 사전 방지가 중요하겠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산불은 다양한 인간적, 자연적 요인으로 예기치 않은 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산불이 일어난 후에 피해 지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한편으로는 중요하다. 여기에는 상반된 두 입장이 맞서고 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행해져 온 인공 조림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자연 복원이다. 특히 인공 조림 전통이 강력하게 유지되어 온 한국에서는 이를 둘러싼 거센 논란이 불가피하다.

 

 

산불 피해 복원 패러다임

 

한국에서도 산불은 매년 어김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 건수는 연평균 500건에 이른다. 특히 봄이 시작되는 3월과 4월에 산불이 집중해서 발생해 왔다. 사람들의 산림 출입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날씨가 건조하고 바람도 강하게 불어 산불의 빈도가 높아졌다. 아울러 산림의 보전으로 나무숲이 성숙해짐에 따라 산불이 대형화하는 경향도 뚜렷해졌다. 최근에는 24년마다 대형 산불이 반복해서 일어나 엄청난 피해를 주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1. 1990년대 이후 주요 대형 산불 발생 상황.

시기(년월) 산불 지역 피해 면적(ha) 피해액(원) 비고
1996. 04 고성 산불 강원 고성 3,762 230 사격장
2000. 04 동해안 산불 강원 5지역 23,794 1080 소각장 등
2002. 04 청양 예산 산불 충남 3,095 60 무속인
2005. 04 양양 산불 강원 양양 973 276 원인 미상
2013. 03 포항 울주 산불 경북 359 95 방화 추정
2017. 05 강릉 삼척 산불 강원 1,017 608 방화 추정
2019. 04 고성 속초 산불 강원 5지역 2,832 1291 전기 누전

자료: 우리나라의 재난성 산불(산림청 홈페이지).

 

 

한국에서 발생한 산불의 특징 하나는 대다수 대형 산불이 강원도 동해안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났다는 점이다. 최근에 발생한 대형 산불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맞닥뜨린 7개의 대형 산불 가운데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동해안 지역에서 일어났다. 대형 산불과 지역적 특성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1996년의 고성 산불은 역대 최고의 피해를 가져왔고, 2000년 동해안 산불은 그것을 훌쩍 뛰어넘었다. 고성 산불은 군부대 사격장에서 불량 TNT를 폭발하는 과정에서 불씨가 날려 거의 4,000헥타르 가까운 산림을 태웠다. 산림뿐만 아니라 하루아침에 주요 자연 송이 산지가 사라졌고 주변 마을도 상당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동해안 일대에서 유사 이래 최대의 산불이 거세게 일어났다. 여러 군데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불씨가 강풍과 함께 순식간에 번져 약 2만 4000헥타르(여의도 82배)의 산림이 불타고 엄청난 재산 피해를 낳았다. 그 피해액은 무려 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당연히 산불 피해 지역은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동해안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이 초대형으로 발전하게 되는 데는 특별한 요인이 있다. 그 하나는 환경 요인으로 험준한 산악 지대인 데다가 건조한 강풍까지 불기 때문이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는 봄철이 되면 태백산맥을 넘어오는 고온 건조한 성질을 띤 빠른 풍속을 지닌 바람이 몰아친다. 예로부터 이 바람은 ‘불을 몰고 온다.’는 의미에서 화풍(火風)이라 불리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잘 주목하지 않는 식생(植生) 요인으로 소나무 위주의 단순림이 대거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나무 숲은 송진과 솔잎, 껍질 등이 땔감 역할을 해 산불에 특히 취약하다. 단순한 실수나 작은 발화 원인에 의해서도 쉽게 산불이 발생하여 확산하게 된다. 특히 30년생 이하의 소나무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그 위험성은 훨씬 더 커진다.

 

 

행정안전부 환경재난대응과, 「2019년 강원 동해안 산불 백서」(2019년 12월 20일)의 언론 보도 내용을 화면 갈무리한 것.

 

 

이에 대해 정부는 산불 피해 지역 복구 방안으로 인공 조림 정책을 꾸준히 펼쳐 왔다. 정부가 산불 피해 지역 모두에 대해 무상 조림하고 육림을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땅만 있으면 무조건 조림을 하려는 조림 신화에 매달려 왔던 것이다. 산림이 황폐했던 1970년대 전후에는 녹화 조림이 불가피했지만 그 이후에는 숲의 자연 복원력이 크게 신장되어 사정이 달라졌다. 숲이 성숙해지면 저항력과 복원력도 커지게 된다. 숲은 산불로 인해 죽은 것처럼 보이나 실은 생명을 여전히 그 안에 간직하고 있다. 자연의 생명력은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그럼에도 정부 주도의 인위적 조림 정책은 1990년대 말까지 별다른 변화 없이 그대로 이어져 왔다.

 

한국에서는 특히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 조림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높다. 소나무가 경제 수종으로 여겨지는 데다가 부가 가치가 높은 송이버섯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는 그 빈도가 높아지고 있는 산불에 아주 약하다. 뿐만 아니라 송이는 소나무를 조림한 곳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 소나무 단순림은 생물 다양성과 건강한 숲에도 잘 부합하지 않는다. 더구나 소나무 숲은 지구 온난화와 더불어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줄어드는 자연적 천이 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적인 산불 생태 연구

 

산불 피해 지역의 복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고성 산불 직후부터였다. 우리나라에서 자연 복원 방식이 정연숙 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제기된 것이었다. 자연 복원이란 사람이 전혀 개입하지 않고 불탄 나무까지도 그대로 놔두는 것을 말한다. 인공 조림은 자연적인 것, 생태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공 조림이 여전히 득세를 하여 자연 복원이 들어설 여지는 없었다. 다만, 자연 복원이 피해지 복구의 새로운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이 거론되었고 소규모나마 자연 복원 연구지를 설치하여(100헥타르) 그 추이를 살펴보기로 한 것은 주요 성과였다.

 

이때부터 강원대 생물학과 정연숙 교수는 자연 복원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선구적으로 추진했다. 그는 강원도 출신으로서 산림 생태에 관심이 많았다. 강원대 생물학과를 마친 후 서울대 식물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 과정에 다닐 시기였다. 1984년 봄 고향 영월에서 산불이 일어나 조선 단종이 묻힌 장릉 주변의 소나무 숲이 불탄 적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산불 생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나 연구 논문 1편(1987년)을 쓰는 것에 그쳤다. 그 내용은 화재 지역과 대조 지역 토양과 수질의 특성과 그 생태적 영향을 간단히 비교 분석한 것이었다.

 

 

1996년 고성 산불 피해 지역 전경. 정연숙 교수 제공.  

 

1988년 미국 옐로스톤 국립 공원에서 끔찍한 산불이 발생했다. 사람의 출입이 전면 금지되었고 국립공원의 36퍼센트(56만 2310헥타르)에 해당하는 지역이 피해를 볼 정도로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다. 1960~1970년대 미국에서는 불을 생태계의 자연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이론이 제시되었고, 이 이론이 국립 공원을 중심으로 ‘렛 잇 번 정책(Let it burn policy)’으로 정착했다. 즉 불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경우 숲은 타도록 두고, 복원도 자연이 하도록 두자는 정책이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은 이 정책을 1972년에 채택했다.

 

산불 생태에 관심이 있던 정연숙 교수는 자연 복원에 대해 흥미를 가졌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수를 마치고 귀국하던 1995년 여름에 그는 이 산불 피해 지역을 직접 방문해 그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그곳에서 그는 산불 발생 후 피해 지역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에서 축적된 연구 성과를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컸는데, 그것은 지역적 특성이 자못 다양하고 다르기 때문이었다.

 

고성 산불은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초대형 산불이었다. 이 사건은 정연숙 교수가 다시 산불 생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게 되는 주된 계기가 되었다. 그는 1998년 초 한국과학재단에 이를 위한 연구비 지원을 신청하며(2년간 4000만 원) 산불 생태 연구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산불 피해지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있었지만 그 대부분은 산불 발생 후 식생 및 토양 염류의 단기적인 변화에 중점을 두었다. 반면에 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로 다른 산불 피해지 유형의 비교 연구를 통해 그 차이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달랐다. 이 연구 성과는 2000년에 보고서와 논문 등으로 활발히 발표되었다.

 

국내 산불 피해 생태 연구에서 기념비적 논문으로 평가되는 정연숙 교수의 「산불 피해 생태계에서 식생 복원 기법의 비교 연구」(한국과학재단, 2000).

 

 

먼저, 정연숙 교수는 이 연구를 위해 새롭고 창의적인 현지 조사 연구 방법을 적용했다. 이른바 ‘시계열 접근법(chronosequence method)’으로 산불 피해 지역이 시기별로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비교 연구하는 것이었다. 특히 장기간에 걸쳐 자연 복원지와 조림 복원지의 변화하는 양상을 단기간에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정 교수는 이를 위해 산불 발생 후 3, 6, 13, 21, 27년이 경과한 곳들을 어렵게 선정했다. 모두가 강원도 지역으로서 이전에 소나무 숲이었던 곳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말하자면, 강원도의 표준적인 산림으로 여길 만한 곳들을 다루었다. 3년 지역 외에는 사실 정확히 자연 복원지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으나 인공 조림지 중 곧바로 방치된 경우는 그와 다를 바가 없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비교 대상지를 적절히 찾아내고 그것에 창의적인 시계열 접근법을 적용해 자연 복원 방식의 가치를 판별해 냈다는 점이 특별했다.

 

정 교수가 이 과정에서 주목한 것의 하나는 산불 피해 지역에서 나무들이 빠르게 재생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산불 발생 후 첫해에 1미터 가까이 자라고 10년이 지나면 이미 10미터 넘게 자라는 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는 소나무가 아닌 활엽수에서 보이는 현상으로 관심을 끌었다. 비록 불에 탔더라도 그 남은 활엽수의 줄기와 뿌리에서 왕성하게 뻗어 나오는 움싹(맹아) 때문이었다. 종자에서 자라는 것보다는 그 생장이 훨씬 더 빨랐다. 소나무는 급속히 성장하는 활엽수의 맹아로 인해 자리를 잡지 못했다. 움싹의 출발점이 마라톤 코스에서 10킬로미터쯤이라면 좁쌀 크기의 씨앗에서 자라는 소나무는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더구나 산불로 인한 재와 유기물은 활엽수의 맹아가 잘 자라도록 하는 영양분이 되었다. 인공 조림을 하게 되면 그로 인해 야기된 유출수와 토양 침식을 통해 환경이 교란되는 역기능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불에 타다 남은 나무와 식물 등을 제거하기보다는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오히려 산림 복구에 유익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결론적으로 자연 복원지와 조림 복원지를 비교해 보면 놀랍게도 자연 복원지의 나무 생장이 빠르고 더 일찍 숲이 조성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조림 복원지에서는 산불 발생 후 13년이 되어도 작은 나무층만 형성되고 21년이 되어도 여전히 숲 구조를 완전히 갖추지는 못했다. 그에 반해 자연 복원지의 경우는 13년이 되면 큰키나무가 들어서고 21년이 되면 풀-떨기나무-작은키나무-큰키나무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숲 구조가 갖추어졌다.

 

뿐만 아니라 나무나 식물이 덮고 있는 면적을 나타내는 피도(被度)의 수치에서도 자연 복원지가 훨씬 뛰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21년이 되었을 때에도 자연 복원지의 큰키나무 피도가 조림복원지보다 20퍼센트나 높았다. 50∼100년이 걸릴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과 달리, 자연 복원지에서는 20년 정도면 숲이 형성되었다. 이때 자연 복원지는 소나무에서 활엽수가 주류를 형성하는 숲으로 완전히 탈바꿈되었다. 그 종 구성은 소나무를 제외하곤 산불 이전의 식생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말하자면 산불로 파괴된 지역은 숲 구조가 잠깐 퇴행하지만 천이가 새롭게 이루어짐을 알 수 있었다.

 

 

산림 복원의 수십 년 패러다임을 바꾼 연구자이자 활동가

 

정연숙 교수가 한국과학재단 연구 보고서를 마무리 짓고 있던 2000년 봄에 또다시 초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이른바 동해안 산불로 불린 이 재난은 고성 산불보다도 그 규모가 훨씬 더 커서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최대의 산불로 여겨지고 있다. 이때 그는 산불 피해지의 복구 및 생태에 대한 학술적 연구를 체계적으로 수행하던 터라 당시 사회를 뜨겁게 달군 산불 담론에 적극 참여했다. 학문적 연구가 사회적 정책으로 저절로 수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연 복원의 가치에 대해 피력을 했지만 인공 조림 위주의 패러다임은 변화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과학적 연구에 기반한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실천적 활동에도 직접 나서게 되었다.

 

당시 정부와 학계에서는 동해안 산불 피해 지역의 복구 방향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란을 벌였다. ‘인공 조림이냐 자연 복원이냐.’, ‘침엽수 위주로 심느냐 활엽수 위주로 할 것이냐.’가 그 중심에 있었다. 산림청과 강원도는 피해 상황을 조사한 뒤 인공 조림 위주의 복구 정책을 펼 계획을 세워 놓은 상태였다. 산림청은 여러 연구자를 초청해 산림과학원이 마련한 동해안 산불 산림 피해 조사 결과 및 산림 복구 방향에 관해 논의했으나 그대로 밀고 나갈 태세였다. 강원도는 수백 년 앞을 내다보는 조림 방침, 다시 말해 소나무와 해송 등 풍치림(風致林)으로 관광 자원 역할을 극대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자 했다. 이에 대해 자연 복원 방식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내세우며 반대 의견을 강력히 펴고 나선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정연숙 교수였다.

 

정 교수는 산불 피해 복구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한겨레신문(2000427, 링크)에 칼럼을 발표했다. 산불만 발생하면 조림부터 생각하고 나서는 산림 정책 당국의 문제를 지적하며 이러한 경향이 계속되는 것을 비판했다. 산림 정책 당국이 조림에 집착하는 것은, 첫째로 산불 피해지에서의 자연 복원 능력을 모르고, 둘째로 비교 연구도 없이 조림의 상대적 우수성을 확신하며, 셋째로 경제림은 조림으로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의 연구에 따르면 자연 복원 방식이 인공 조림 방식에 비해 복구가 빠르고 숲의 회복 시간도 20년의 짧은 기간에 숲으로 회복된다는 것이었다. 숲은 임업 생산과 같은 경제적 가치 외에 종 다양성 보전, 수자원 함양, 토양 보전, 경관적 가치 등 생태계 서비스를 훨씬 크게 가지므로 자연 복원 방식이 그에 잘 부합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산림 피해지 복구의 기본 정책은 자연 복원을 원칙으로 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12년 국제 식생학회 광릉숲 현지 답사. 왼쪽에서 두 번째 인물이 정연숙 교수.  

 

곧이어 그는 산림청의 산불 피해지 복구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청원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내기도 했다. 산림청은 동해안 피해 산림을 인공 조림과 자연 복원 방식으로 병행 복구하겠다고 했으나 실제 내막을 보면 심한 경사지나 암석지를 제외한 모든 곳을 조림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산림을 생태계로 인식하기보다 조림할 수 있는 땅으로 생각하는 산림청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숲은 스스로 자연 복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숲이 지니는 경제적 가치를 넘어 공익적 가치의 증진에도 잘 부합한다는 점이 다시 한번 강조되었다. 우리나라 산림의 자연 복원 능력이 입증된 지금, 산불 피해 산림 생태계를 어떤 방법으로 복원하느냐보다는 무슨 목적으로 복원할 것인가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의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의 주체에 따라 복원림의 경제적 가치와 공익적 가치를 달리 평가할 수 있기에 정부부처, 학계, 국민들의 합의에 의해 그것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20005월에는 동아일보 주최로 동해안 산불 지역 생태계 복원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정부 관계자와 학계 연구자, 환경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정연숙 교수는 자연 복원의 입장에서 주제 발표를 했다.

 

우리나라 숲은 예전과 달리 그사이에 성숙해져 자연 복원력을 갖게 되었다고 역설했다. 그 자연 복원력의 실체는 외국의 사례에 의거하여 추측하는 씨앗 발아가 아니고 불에 타고 남은 활엽수의 나무 밑동에서 빠르게 자라난 움싹때문임도 보여 주었다. 여기에 화재로 생긴 재에 포함된 영양분뿐만 아니라 오래된 나무들이 사라짐으로써 늘어난 햇빛, 식물 간의 경쟁 감소 등도 자연 복원의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것까지 보여 주었다. 따라서 자연 복원지와 인공 조림지를 비교 연구한 결과 자연 복원지가 더 빨리 생물량을 축적하며 활엽수 숲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산림 정책 당국은 고성 산불 이후 자연 복원 주장이 제기되자 인공 복구와 자연 복구를 병행하겠다는 입장을 내세우나 실제로는 여전히 인공 조림 위주의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땅만 보면 조림하려 드는 것은 강만 보면 댐 건설하려는 것과 같은 발상이라고 보았다. 앞으로 산불 피해 지역은 대형 산불 방지 측면, 경제적 측면, 공익적 측면에서 자연 복원을 원칙으로 한 복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대되자 정부에서는 산림청, 환경부, 강원도, 시민 단체가 추천하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민관학연 공동 조사단을 구성하여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20006월에 조직된 공동 조사단은 176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9개 분야(19개 팀)를 조사하게 되었다. 산불 피해, 식생과 맹아·치수, 임지 환경, 동식물 자원, 산림 병해충, 송이 생산 환경, 사회 경제적 특성, 산림 농업, 복구 방법 평가 분야로 이루어졌다.

 

정연숙 교수는 식생 분과 팀장으로서 이 공동 조사 사업에 참여했다. 산불 피해지의 80퍼센트 이상이 자연 복원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공동 조사단은 3개월 동안 현지 조사를 실시했으며 방대한 조사 보고서를 남겼다.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산불 피해지에서 자연 복원 방식이 최초로 고려되고 그 비율이 절반을 차지할 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그렇지만 상당 면적을 차지하는 사유림의 산주들이 인공 조림을 강하게 원해 자연 복원의 확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산불 발생 20년 후의 자연 복원지 모습. 정연숙 교수 제공.  

 

자연은 자연이 치유해야

 

정연숙 교수는 2001년 환경부의 지원을 받아 2년에 걸쳐 동해안 산불 지역의 생태계 변화와 복원 기법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의 일부로 산불 발생 후 자연 복원지와 인공 조림지의 생태계 변화를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했다. 자연 복원지는 생물 종 다양성, 1차 순생산성, 영양소의 흡수 측면에서 우수하여 생태계를 안정화시키는 데 유리했다. 산불과 병해충 등 교란 요인에 대한 저항성, 숲으로의 복원력도 자연 복원지가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반해 인공 조림지는 산불 피해 후 피해목 및 움싹 등을 제거하고 조림을 하므로 토사 유출이 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는 나아가 산불 피해지 복원 모델을 제시했다. 자연 복원력이 있는 산불 피해 지역은 기본적으로 자연 복원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을 주되게 내세웠다. 사유림은 산주가 비용을 부담할 의사가 있는 경우에만 인공 조림을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주들의 강력한 요구이기도 한 소나무 숲을 인공적으로 조림해야 한다는 중요한 이유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는 송이 복원은 사실 연구는 많이 했으나 조림해서 송이가 복원된다는 연구 결과를 얻지 못했다. 물론 자연 복원력이 없는 경우에는 종자 직파(直播)나 보완 식재와 같은 생태 시업(施業, forest treatment)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연구에서는 종자 직파나 보완 식재보다, 토양 침식이 심한 지표면을 덮어 주는 멀칭(mulching)’과 같은 생태 시업이 효과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

 

동해안 산불이 발생한 지 몇 년 지난 2003년 산림청은 전문가들을 규합하여 산불 피해지 현지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목적은 인공 조림과 자연 복원 실태를 확인한 다음 그 개선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2001년에 확정된 산림 복구 5개년 계획에 따라 동해안 산불 피해 지역을 인공 복구(52퍼센트)와 자연 복구(48퍼센트)로 구분해 추진했다. 이중 인공 복구는 경제수 조림, 송이산 복원 조림, 경관 조림, 사방 복구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3년이 지난 후 인공 복구지는 경관 증진, 현지 주민 선호 등 임업적 측면에서는 양호하나 생태적 측면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고 여겼다. 자연 복원지는 종 다양성, 토양 교란 회복과 같은 생태 환경적 측면에서는 매우 긍정적 요인이 많고 맹아 발생, 자연 복원 가능 여부 등에서도 양호한 결과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이때 정연숙 교수의 제언이 개선 사항으로 특별히 추가 언급되었다. 그는 산불 피해지의 자연 복원 능력은 대부분 지역에서 입증되었으므로 향후 새롭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토양 보호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맹아 발생이 낮은 지역과 조기 조림 지역은 토사 유실의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앞으로 산불 피해지의 정책 방침은 토사 유실 방지를 첫째 목표의 복원 원칙으로 재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숲을 제대로 살리려면 토양부터 살려야 하기 때문이었다. 조림이 필요한 지역이더라도 산불 발생 5년 정도 경과 후 한정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토양이나 수자원 보호 등 공익적 목적은 이미 자연 복원 능력으로 달성되기 때문에 사유림을 국가 예산으로 조림 지원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국가가 예산을 지원하는 바람에 산주들이 조림 효과가 없는 경우에도 강행하여 여러 문제를 발생시킨다는 것이었다.

 

정연숙 교수는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2004년 국제 학술지 이콜로지컬 리서치(Ecological Research)에 대형 동해안 산불에 숲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살핀 논문을 발표했다. 산불로 활엽수보다는 소나무를 비롯한 침엽수의 피해가 훨씬 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시간이 지난 후 동해안 지역 산불 피해지의 소나무 숲은 전반적으로 활엽수 숲으로 바뀌어 나갔다. 무엇보다 한국의 숲에서 두드러진 움싹의 재생력에서 침엽수와 활엽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그 주류는 신갈나무와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와 같은 참나무류가 차지했다. 산불에 대한 저항력과 재생력 모두에서 활엽수가 단연 우수한 것이다.

 

그리고 산불 피해지에서 토양 침식은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이는 자연 회복지에서 식물의 재생에 의해 크게 줄어들 수 있었다. 빠른 재생 식물이 토양 침식을 막고 영양 물질을 보존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므로 자연 회복 방식은 숲의 재생과 토양 교란에 모두 유익한 방안이고 이렇게 해서 형성된 활엽수 숲은 자연 방화벽으로서도 역할한다는 것이다.

 

2006120일 세계적인 과학지 사이언스(Science)에 산불 피해지의 복구 방법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주장의 요지는 미국에서 산불 발생 후 벌목은 산림 재생을 저해한다.”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산불 피해지의 벌목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이에 대한 과학적 데이터는 부족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산불 발생 후 벌목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토양 교란으로 인해 산림 재생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산불 피해지의 나무를 그대로 두는 것이 산림의 안정화와 재생을 위해 좋은 방법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한국의 산불 피해 지역 복구 정책은 2000년 동해안 산불을 계기로 근본적인 전환을 이루어 나갔다. 무조건적인 인공 조림에서 자연 복원의 적극적인 고려로 그 정책 방향이 크게 바뀌었다. 의무 조림을 담고 있던 산림법 관계 법령의 개정도 이루어졌다. 그 중심에는 자연 복원의 과학적 근거를 밝히고 그것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정연숙 교수가 있었다. 현재 한국의 산불 복구 정책이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끄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자연 복원 방식을 적극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다. 2015년 강원도 평창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린 제6차 세계산불 총회(International Wildland Fire Conference)에서 한국의 산불 피해지 복원 정책이 주목을 끌었다. 영국의 스테판 도르(Stefan Doerr) 교수는 한국은 인공 복구와 자연 복구의 장점을 적절히 활용하여 생태계가 최대한 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이 놀랍다.”라고 평가했다.

 

정연숙 교수는 생태학자로서 생태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산불 피해 지역의 복구 방향을 바라본다. 그는 험한 강원도 산악 지대를 수없이 오르내리며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필드과학자다. 정 교수는 학술적 연구를 실제 사회의 정책으로까지 연결시키기 위해 열성적으로 활약한 과학 활동가다. 어찌 보면, 그는 진정한 지구의 주인공이라 할 소리 없는 자연의 대변자다. 그는 자연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대표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자연과 인간의 지속 가능한 공존은 이로부터 그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까 한다.

 

 

2016년 고성 산불 피해지 조사 현장에서 정연숙 교수와 연구자들.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사람이 정연숙 교수이다.

 

 

참고 문헌

 

국립산림과학원, “동해안 산불 산림피해조사 결과 및 산림복구 방향” (2000).

김훈, “숲은 죽지 않는다”, 󰡔자전거여행󰡕 (생각의 나무, 2000), 111-119.

동아일보사, “동해안 산불지역 생태계 복원에 관한 토론회” (2000).

동해안 산불피해지, “동해안 산불지역 정밀조사 보고서 I” (2000).

산림청, “동해안 산불피해복구지 현지조사 결과 보고” (2003).

정연숙, “산불피해 생태계에서 식생복원기법의 비교연구” (한국과학재단, 2000).

정연숙, “불탄 숲 자연 복원”, 󰡔한겨레신문󰡕 (2000. 4. 28).

정연숙, “청원서: 동해안 산불피해지, 산림청의 산림 생태계의 복원방향에 문제 있습니다” (2000).

정연숙·김준호, “산화가 소나무림의 토양과 유출수의 화학적 성질 및 식물량에 미치는 영향”, 󰡔한국생태학회지󰡕 10-3(1987), 129-138.

정연숙·노찬호·오현경·이규송, “동해안 산불피해 생태계의 자연 복원 기법”, 󰡔자연보존󰡕 110(2000), 34-41.

환경부, “보도자료: 동해안 산불지역 생태계 복원에 관한 연구 결과” (2003).

Choung, Yeonsook, “Forest Fires and Vegetation Responses in Korea”, D. Lee et al. eda., Ecology of Korea (Seoul: Bumwoo Publishing Company, 2002), pp. 119-137.

Choung, Yeonsook, “Natural Regeneration after Forest Fire, and Restoration Policy in Korea”, The Ecological Society of Korea, 2000 Year International Symposium (2000), pp. 1-26.

Choung, Yeonsook, Byung-Chun Lee, Jae-Hyoung Cho, Kyu-Song Lee, In-Soo Jang, Sun-Hee Kim, Sun-Kee Hong, Hui-Cheul Jung, and Heung-Lak Choung, “Forest Responses to the Large-scale East Coast Fires in Korea”, Ecological Research 19(2004), pp. 43-54.


이 글은 기초연구연합회의 「2018년도 기초 연구 성과 사례 모음」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글의 작성은 전북 대학교 부설 한국 과학 문명학 연구소의 김근배 교수님께서 맡아 주셨습니다.

 

참고 링크

정연숙, 이경은, 『한반도 중부 지방 숲 물 생태 데이터북(자연과생태, 2019)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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