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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은 마음이라는 교향곡의 조율사인가?!: 호르몬 지능에 대한 진화 심리학의 최신 성과를 모은『호르몬 찬가』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호르몬은 마음이라는 교향곡의 조율사인가?!: 호르몬 지능에 대한 진화 심리학의 최신 성과를 모은『호르몬 찬가』

Editor! 2022. 2. 10. 16:51

진화 심리학은 본성과 양육, 자연과 문화, 마음과 몸이 길항하는 경계에서 새로운 발견과 통찰을 퍼올리는 융합적, 통섭적 학문입니다. 최근에 (주)사이언스북스에서 출간된 『호르몬 찬가: 진화 심리학으로 풀어 가는 호르몬 지능의 비밀』에서 UCLA 심리학과 교수 마티 헤이즐턴은 '호르몬'에 대한 생리학적 연구와 여성에 대한 진화 심리학적 연구를 융합합니다. 호르몬과 여성 심리의 관계를 연구한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여성을 호르몬의 노예로 만드는 것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헤이즐턴의 연구에 따르면 호르몬은 우리의 주인도 아니고, 훼방꾼도 아니며, 조력자입니다. 섣부른 오해와 두려움이 호르몬이 조율하는 생리 현상을 터부시하고 경시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호르몬을 좀 더 '스마트하게' 다루는 방법이 있습니다. 헤이즐턴은 그것을 '호르몬 지능'이라고 부릅니다. 과학 저술가 하리하라 이은희 선생님의 헤이즐턴의 새로운 주장을 차근차근 살펴보죠. 『호르몬 찬가』 속 교향곡에 몸을 맡겨 보시기 바랍니다.


예로부터 여성은 남성이 비해 더 ‘자연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달의 위상에 따라, 생리 주기에 따라, 그러니까 호르몬에 따라 감정과 지능이 바뀐다고 믿어졌다. 심지어 21세기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믿는 자들이 있다. 이 낡은 생각을 과학적으로 제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진 셔터스톡에서.

 

 

인간은 타고나는가 혹은 만들어지는가? 인간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본성 대 양육, 혹은 유전 대 환경이냐는 주제는 지난 세기 수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연구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알려진 것은, 결국 어느 한쪽이 아니라 둘 다라는 사실뿐이었다. 성장 과정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경험과 교육과 자원은 분명 아이에게 선택지의 일부로 고려되지만, 그것이 성향을 완전히 결정하지는 않았다. 인간의 아이는 결코 완벽한 빈 서판 상태로 태어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빈 공간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공간의 크기와 재질은 모두 다르고 심지어 그 공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양과 질, 종류는 개인마다 다르다. 그렇기에 인간의 정체성이 유전에 따라 결정되는지, 환경에 따라 만들어지는지 살피는 모든 실험은 무승부로 끝나고 만다. 유전적 형질을 맞추면 주어진 환경의 영향력이 커지고, 환경을 평준화시키면 타고난 유전적 특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근의 본성과 환경의 대립은 수많은 양육법 중 절대 옳은 것은 없으며, 아이의 타고난 기질에 맞춰 적절한 육아법을 골라서 적절히 적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오은영 박사식 솔루션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인간은 검은색 혹은 흰색의 흑백 대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회색 지대들의 그라데이션으로 이루어진 철저하게 아날로그적인 존재다.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중 본성과 환경의 문제는 이미 양극단의 적절한 조합 어디선가 자리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정 인간 집단을 한쪽으로 치우친 시각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오래된 습관은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편견의 대상이 아이들에서 여성들로 바뀐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성에 대한 편견은 끈질기게 남았다. 인류가 지금껏 고안해 낸 사고 방식 중 가장 객관적일 것이라고 여겨지던 과학조차도 이 기울어진 시선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과학은 ‘객관적’이라는 그 정의감 넘치는 이미지를 등에 업고 오래된 편견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예로부터 여성은 남성이 비해 더 ‘자연적’인 존재였다. 여기에는 암컷만이 아이를 낳을 수 있고, 암컷만이 젖을 물려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포유류의 특성이 여성에게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데 첫 번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간 여성에게는 자연과 함께 가는 주기, 저 하늘의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자연의 변화에 맞춰 변화하는 몸의 주기가 있다는 것이 이 편견을 확장했다. 그래서 여성은 지나치게 자연 친화적이기에 자연과 대비되는 이성이 자리 잡을 공간 자체가 부족하다고들 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성에게 교육과 사회 참여의 기회를 제한한 것은 여성이 ‘작은’ 뇌가 덜 발달했기에 복잡한 사고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고, 지나친 학문적 자극은 타고난 생명력을 손상해 생식적인 능력이 저하된다고 여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들은 자연적이기 때문에 인간적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을 타파하고자 시도되었던 다양한 과학적 시도 역시 오히려 편견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과학적 연구 결과 여성들의 몸은 분명히 주기가 있었다. 일정 나이가 지나 성적 성숙 상태에 이른 여성의 몸에서 나타나는 호르몬의 주기성과 그에 따른 신체적 변화, 즉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주기적 그래프와 그로 인해 촉발된 자궁 내막의 성장과 탈락 현상은 너무도 뚜렷해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배란기에 높아지는 에스트로겐은 성적인 욕구를 증가시키고, PMS(월경 전 증후군) 기간에는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 가임기의 건강한 성인 여성이라면 호르몬 수치가 일정 주기를 가지고 반복된다. 여성에게 있어 남성과 다르게 나타나는 신체적 변화의 근본 원인은 여성에게서만 특정 주기를 가지고 유의미한 신체적 반응을 이끌어낼 만큼 충분히 분비되는 호르몬 탓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은 자연적이기 때문에 인간적일 수 없다고 믿어졌다. 과학은 그런 편견을 없애기 위해 싸워 왔다. 그러나 그 편견은 얼마나 사라졌을까? 『호르몬 찬가』 74~75쪽에서.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물론 이것은 사실이다. 여성에게서는 남성에게서는 나타나지 않는 호르몬의 주기적 변화가 분명히 나타난다. 하지만 문제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것이 행동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호르몬의 탓이 되었다. 배란기에는 건강한 후손을 남기고 싶은 본능적 욕구가 증가하므로 충동적 판단을 하며, PMS 기간에는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기에 비이성적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생리 기간에는 실망감(임신하지 않았다는 실망감)과 안도감(역시 임신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공존하는데다가 출혈과 이에 따르는 통증 및 신체적 불편이 사고력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보고들이 그것이다. 과학은 이전 시대 막연했던 ‘자연’이라는 뭉뚱그려진 원인을 ‘호르몬’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으로 바꿨을 뿐, 여전히 여성들을 타고난 신체적 특성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규정하는 시각은 바뀌지 않았다.

 

본성은 쉽게 굴레가 된다. 인간을 구성하는 천칭 저울에서 본성과 환경은 균형을 맞춰야 하는 존재이지만, 부득이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면 환경 쪽에 무게를 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육아 전문가들이 아이들의 양육 환경에 변화를 주어 행동 교정을 유도하지, 아이들의 타고난 유전적 성향을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환경은 인간의 노력과 사회적 제도와 교육적 지원으로 인해 얼마든지 개선 가능하지만, 타고난 유전적 특성과 발현은 유연하게 바꾸는 것이 (적어도 아직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말이다. 그래도 하나 더 가지고 태어난 X 염색체와 난소와 자궁과 호르몬의 조율 아래 움직이는 존재로 보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은 여성을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하나의 인간 주체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아니라고? 선거일에 어떤 여성이 미혼이며 배란기라면 진보적인 성향의 민주당에 투표할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선거일에 배란기가 아니거나 기혼 여성이라면 좀 더 보수적인 공화당에 투표할 성향이 크다는 기사가 21세기 들어서도 공신력 있는 언론 매체(예를 들어, CNN)에 버젓이 실리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남성들은 섹스하기 전 흥분기에는 투쟁적인 남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과격한 진보 정당에 투표한다거나, 섹스 후 불응기에는 좀 더 안정적인 보수 정당에 투표한다거나 하는 기사가 나왔다면 어땠을까? 아니, 애초에 그런 기사가 버젓이 CNN 뉴스로 선택될 수 있었을까? 이렇듯 종종 과학은 가장 객관적일 것 같은 이미지를 등에 업고 인간이 가진 편견과 선입관을 강화하는 선택적 지원 체계로 이용되어 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성들에게 있어 여성 호르몬의 역할을 완전히 배제하고 단지 ‘인간’이 가진 기능적 역할에 대해서만 연구해야 할까? 물론 여성을 본능적 존재로 묶어놓는 지나친 확대 해석에 대한 반발로 이런 식의 연구가 시도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호르몬 찬가(Hormonal)』(변용란 옮김, 사이언스북스, 2022년)의 저자 마티 헤이즐턴은 그런 방식의 기계적 평등이 결코 여성을 더 평등하고 더 자유롭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여성과 남성은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동등한 존재로 대우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차이가 나는 점까지 애써 동일하다고 얼버무릴 필요는 없다. 헤이즐턴은 문제는 여성에게서 남성과는 다른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그 변화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호르몬이 변화하는 건 사실이지만 호르몬이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미미했음이 드러났다. 호르몬은 일시적으로 평소와 다른 이성에게 눈길을 주게 만들고 옷차림을 바꿀 수 있었지만, 실제 여성들이 호르몬에 농도에 따라 다른 남성을 선택해서 섹스를 하거나, 더 비이성적으로 구는 것은 아니었다. 호르몬은 선호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지만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호르몬 찬가』 154~155쪽에서.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실제로 여성들은 배란의 유무에 따라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여성들에게 두 종류의 남성들, 즉 섹시하고 잘생겼지만 바람둥이인 나쁜 남자와 성실하고 착실하지만 성적 긴장감은 적은 착한 남자의 사진을 보여 주고 선호도 조사를 했다. 배란기의 미혼 여성들은 전자를, 배란기가 지났거나 이미 배우자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은 후자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여성들에게 월경 주기 내내 매일 오늘 입고 싶은 옷을 그림으로 그리게 했더니 배란기가 다가올수록 더 신체적 굴곡이 많이 드러나는 옷을 그렸고, 실제로 그 시기에는 평소보다 더 과감한 옷을 입는 경향도 나타났다. 반대로 월경이 시작되면 몸을 더 감추는 경향이 나타났다. 여기까지는 객관적으로 관찰된 사실이다. 문제는 이에 대한 해석이다. 지금껏 사람들은 이 결과를 두고 배란기의 여성들은 더 과감해지고, 그 시기가 지나면 이전보다 소심해지고 신중해지기에 실제 이성과의 관계에서도 이것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대했다. 하지만 추가적인 연구 결과, 호르몬이 변화하는 건 사실이지만 호르몬이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미미했음이 드러났다. 호르몬은 일시적으로 평소와 다른 이성에게 눈길을 주게 만들고 옷차림을 바꿀 수 있었지만, 실제 여성들이 호르몬에 농도에 따라 다른 남성을 선택해서 섹스를 하거나, 더 비이성적으로 구는 것은 아니었다. 호르몬은 선호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지만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여성의 배란기를 노려 성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하지 마시길. 애초에 감춰진 인간 여성의 배란기를 구분할 만큼 친밀한 관계라면, 이미 그런 생각조차 나지 않겠지만 말이다.

 

 

호르몬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삶의 정체성을 바꿀 수는 없다. 여성에 대한 연구, 나아가 인간에 대한 모든 연구가 이런 관점으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과학이라는 사고 방식을 기초로,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제대로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문제는 늘 그렇듯 “all or nothing”이 아니라, 미묘한 균형점을 찾는 것에 있으니 말이다. 사진 셔터스톡에서.

 

 

 

『호르몬 찬가』는 하나의 악기로만 구성된 단조로운 곡이나 특정 구절만 반복되는 후크송이 아닌, 수많은 악기들이 하나로 한 사람의 지휘자에 의해 어우러져 이루는 절묘한 교향곡에 대한 찬사다. 일시적으로 하나의 악기가 독주를 하기도 하고 클라이맥스로 치닫기도 하지만, 진정한 감동은 특정한 악기와 구간이 아니라, 모든 악기와 연주자와 멜로디가 만드는 하모니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의 악기들은 좀 더 세심하게 관리되어야 하고 연주자의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악기와 연주자의 특성이 세심하게 고려되고 반영되면 멋진 음악은 더욱 큰 감동을 불러일으킬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들이 연주하는 곡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호르몬이 조율하는 여성의 삶도 마찬가지다. 호르몬을 잘 알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호르몬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삶의 정체성을 바꿀 수는 없다. 여성에 대한 연구, 나아가 인간에 대한 모든 연구가 이런 관점으로 진행된다면 우리는 과학이라는 사고 방식을 기초로,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고 더 제대로 서로를 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문제는 늘 그렇듯 “all or nothing”이 아니라, 미묘한 균형점을 찾는 것에 있으니 말이다. 

 

 

 

마티 헤이즐턴 UCLA 교수의 최신작, 『호르몬 찬가』.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하리하라(이은희, 과학 저술가)
한국 과학 기술 도서상 수상작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를 비롯해 『하리하라, 미드에서 과학을 보다』, 『하리하라의 청소년을 위한 의학 이야기』 등을 썼으며 다양한 매체에서 칼럼을 연재하고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호르몬 찬가』

진화 심리학자 마티 헤이즐턴 교수가 선사하는
다윈주의 페미니즘의 새로운 패러다임

호르몬 지능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몸과 정신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평생에 걸쳐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면, 그에 따라 우리의 갈망에 대한 반응을 결정할 수 있다.
― 본문에서


『호르몬 찬가』는 굳건한 과학에 기초해 호르몬의 심오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 데이비드 버스, 『욕망의 진화』의 저자


마티 헤이즐턴(Martie Haselton, PhD)
UCLA 심리학과와 사회와 유전학 연구소 교수. 배란 주기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세계적인 과학자다. 전공 분야 주요 학술지인 《진화와 인간 행동》 편집자를 지냈으며 현재 UCLA에서 진화 심리학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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