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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적군이 아닌 아군, 호르몬의 비밀을 밝혀 가는『호르몬 찬가』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호르몬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적군이 아닌 아군, 호르몬의 비밀을 밝혀 가는『호르몬 찬가』

Editor! 2022. 2. 16. 14:17

“무엇이, 어떻게, 왜 하필 여성의 배란 주기에 맞춰 21세기 현대인들이 이토록 기발한 갖가지 행동을 남몰래 실행하게끔 만들었는가?” 『욕망의 진화』의 저자로 잘 알려진 데이비드 버스가 대학원 세미나 시간에 던지곤 했다는 질문입니다. 다윈의 진화 이론은 단순한 해석이나 핑계거리가 아닌, 검증 가능한 연구와 새로운 발견으로 이끄는 길잡이로서 중요합니다. 과학적 근거를 분석하며 우리를 호르몬의 심오한 세계로 안내하는 책, 『호르몬 찬가』를 진화 심리학자 전중환 박사님과 함께 탐험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밥이나 먹고 있을 때야?” 배란 직전의 여성들은 마치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음식 섭취량이 급격히 떨어진다. 집 밖으로 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여성들은 가임력이 높아지는 시기에는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 즉 짝을 찾는 일에 전력을 다하게끔 진화했기 때문이다. 먹을 시간이 없다. 도저히 못 믿겠다고? 미국, 이탈리아, 독일, 호주 등 여러 문화권에서, 그리고 침팬지, 붉은털원숭이, 개코원숭이, 올빼미원숭이, 소, 돼지, 염소, 양, 개, 쥐 등에서 이러한 행동 변화가 보고되었다(147쪽). 이 책에서 인용되는 논문을 처음 읽은 날, 감탄한 나머지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정말로 배란기가 되면 여자들은 식욕이 떨어져?” 참 희한한 걸 전공한다고 구박만 당했다.

 

 

 

『호르몬 찬가』의 저자 마티 헤이즐턴(UCLA 심리학과, 사회와 유전학 연구소 교수). 저자는 우리의 몸과 정신의 작용 방법을 더 잘 이해함으로써 여성의 권리가 강화되어 왔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배울 것이 많다는 바로 그 지점이 자신의 연구에, 또한 이 책의 집필에 동기를 부여했다고 밝힌다.

 

 

진화 심리학계의 슈퍼 스타인 마티 헤이즐턴 교수는 이 책에서 어떻게 호르몬이 여성들로 하여금 배우자를 고르고, 동성과 겨루고, 가족을 돌보고, 대인 관계를 일구고, 영리한 선택을 하게 하는지 알려준다. 읽다 보면 출생에서 연애, 임신, 출산, 육아를 거쳐 완경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호르몬이 연주하는 현란한 오케스트라 선율에 절로 빠지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28일의 배란 주기 동안에 여성의 가임력은 고작 며칠 동안만 높아진다는 엄연한 사실에 남녀 모두 민감히 반응하게 하는 심리 기제가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더 놀랍고 당혹스러운 일이다. 배란 주기에 맞추어 조상 여성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먼 과거의 환경에서 번식 성공도를 높이는 지름길이었는지 분석함으로써, 진화 심리학자들은 현대인의 마음에 대해 새롭고 검증 가능한 예측을 생산한다. 다윈의 진화 이론은 다 아는 현상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비과학이긴커녕,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끄는 등대요 길잡이다.

 

 

 

호르몬 주기에 따라 아버지, 어머니와의 통화 시간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모든 여성은 호르몬 주기가 어떻게, 언제, 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함으로써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호르몬 찬가』 170~171쪽에서.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배란 주기에 주목한 선구자인 랜디 손힐과 스티브 갱스테드가 놓은 토대 위에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한 여러 주인공이 쌓아 올린 이른바 ‘배란 혁명’은 흥미로운 발견을 무수히 찾아냈다. 배란 직전의 음식 섭취 감소 외에도, 이 책에 실린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여자 대학생들은 가임 기간이 되면 아버지에게 먼저 전화하는 횟수도 줄고, 아버지로부터 걸려 온 전화도 더 빨리 끊는다 (170쪽). 남성들은 자기 애인이 가임력 고조기가 되었을 때 각진 턱과 동굴 목소리를 지닌 마초남을 만나면 애인이 가임력 저조기일 때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더 올라간다(187쪽). 예능 프로그램 ‘솔로 지옥’처럼 매력적인 남녀가 모이는 오늘 밤 파티에 어떤 옷을 입고 나가고 싶은지 여성들에게 물어보면, 가임력 고조기의 여성들은 가임력 저조기의 여성들보다 노출이 많고 더 섹시한 의상을 입겠노라고 답한다(154쪽). 객관적으로 귀엽다고 칭송받기는 어려운 아기, 한 마디로 메주같이 생긴 아기에 대해서도 완경을 맞이한 나이 든 여성들은 젊은 여성들에 비해 더 너그러운 반응을 보인다. 그러니 할머니들이 누가 봐도 못생긴 아기를 두고 예쁘다고 칭찬하는 말은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다(241쪽). 

 

 『호르몬 찬가』의 저자 마티 헤이즐턴 박사는 내가 버스 연구실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졸업한 선배님(?)이다. 우리의 지도 교수였던 진화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세미나 시간에 종종 이런 농담을 던지곤 했다. “세상에 그 어떤 자본주의 체제, 불평등한 사회 구조, 가부장제 문화, 혹은 부모의 양육 방식이 21세기 현대인들이 하필이면 여성의 배란 주기에 맞추어 이토록 흥미롭고 기발한 갖가지 행동을 남몰래 실행하게끔 만들었겠는가? 무슨 이유로? 어떻게?” 아마 배란이 다가오면 마초남과 불장난을 저지르는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할리우드 영화가 여성들 사이에 암암리에 인기를 끌었을지 모른다.

 

몇몇 독자는 『호르몬 찬가』를 읽으며 어딘가 찜찜하고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여성의 행동을 뇌, 호르몬, 유전자 등으로 설명하면 여성을 억압하는 사태가 벌어지리라 우려한다.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에 혹시라도 미미하게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면 그러한 성 차이 때문에 소녀 특유의 고정 관념과 모성 역할에 여성들을 가두게 될 것”(10쪽)이라 걱정한다. 특히나 호르몬을 입 밖에 꺼내는 것은 금기이다. 여성은 호르몬에 좌우되기에 비합리적이고 변덕스러워서 최고위직에 오르면 안 된다는 편견을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격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호르몬 지능적으로 산다는 것은? 배란 주기에 맞추어 조상 여성들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먼 과거의 환경에서 번식 성공도를 높이는 지름길이었는지 분석함으로써, 진화 심리학자들은 현대인의 마음에 대해 새롭고 검증 가능한 예측을 생산한다. 다윈의 진화 이론은 다 아는 현상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갖다 붙이는 비과학이긴커녕,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끄는 등대요 길잡이다. 『호르몬 찬가』 282~283쪽에서. 사진 ⓒ (주)사이언스북스.

 

 

이런 걱정은 틀렸다. 수정란 세포 하나가 분열을 거듭해 유기체의 모든 형질을 만드는 발달 과정에는 수많은 요인이 복잡하게 관여한다. 유전자건, 생리건, 환경이건 간에 각각의 요인이 내는 효과는 통계적이다. 이를테면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은 흡연이 내 허파에 끼치는 영향과 비슷하다. 평생을 골초로 살면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무조건 예외 없이 폐암에 걸리지는 않는다. 평생을 금연해도 폐암에 무조건 안 걸리는 것은 아니다. ‘다른 조건들이 같다는’ 전제 하에 흡연은 폐암에 걸릴 가능성을 유의미하게 높여 줄 뿐이다. 그 ‘다른 조건들’에는 가족력, 석면, 간접흡연, 방사선, 공해, 라돈, 폐 질환 이력 등등 온갖 요인이 포함된다. 

 

마찬가지로 남성이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높다고 해서 무조건 남을 때리거나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여성은 에스트로겐이 급증하면 성관계를 찾아 헤매는 자동 인형이 아님을 처음부터 못 박아 둔다(8쪽). 호르몬은 여성을 미치게 만들지 않는다.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 중의 하나일 뿐이다. 모든 여성은 호르몬 주기가 어떻게, 언제, 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이해함으로써 이득을 얻을 수 있다(286쪽). 물론 여성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는 그 사람의 목표, 가치관, 선호, 도덕심 등 수많은 다른 요인에도 달린, 오롯이 개개인의 선택이다. 

 

『호르몬 찬가』는 단순히 유명 과학자가 최신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교양서가 아니다.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양성 평등과 사회 화합을 앞당길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다윈주의 페미니즘의 전범(典範)이다. 호르몬을 알면 여성이, 아니 남녀 모두가 해방된다.

 

 


 

전중환(경희 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진화 심리학자. 현재 경희 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로 재직하며, 인간 사회의 협동과 갈등, 이타적 행동, 근친상간과 성관계에 대한 혐오 감정 등을 연구하며 심리학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오래된 연장통』, 『본성이 답이다』, 『욕망의 진화』 등의 책을 쓰고 옮겼다.

 

 


『호르몬 찬가』

진화 심리학자 마티 헤이즐턴 교수가 선사하는
다윈주의 페미니즘의 새로운 패러다임

호르몬 지능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몸과 정신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평생에 걸쳐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면, 그에 따라 우리의 갈망에 대한 반응을 결정할 수 있다.
― 본문에서


『호르몬 찬가』는 굳건한 과학에 기초해 호르몬의 심오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 데이비드 버스, 『욕망의 진화』의 저자


마티 헤이즐턴(Martie Haselton, PhD)
UCLA 심리학과와 사회와 유전학 연구소 교수. 배란 주기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세계적인 과학자다. 전공 분야 주요 학술지인 《진화와 인간 행동》 편집자를 지냈으며 현재 UCLA에서 진화 심리학 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욕망의 진화』

 

『어머니의 탄생』

 

『인류의 기원』

 

『오래된 연장통』

 

『본성이 답이다』

 

『궁극의 질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