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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어머니 나무가 일으키는 기적의 과학

Editor! 2023. 12. 14. 11:58

삼림 생태학자 수잔 시마드의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를 영화, 생태, 가족의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조명해 보는 「사이언스-오픈-북: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연속 리뷰」의 두 번째 타래는 생태 탐험가 안선영 선생님이 맡아 주셨습니다.  『참나무 6형제 야외 도감』의 저자 안선영 선생님은 최재천 교수님이 이사장으로 있는 생명 다양성 재단 책임 연구원이자 숲 해설가로서 산과 숲을 거닐며 생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기적 같은 회복력을 가진 나무와 숲, 그리고 자연을 그들의 방식으로 회복시키는 방안을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 안선영 선생님의 리뷰를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기후 위기의 근본적 해법을 담은 책과의 만남

 

숲은 언제나 고요하고 생동감이 넘치고 마음이 편안하다. 이런 느낌이 다른 단어들을 같은 선상에서 나열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숲이다. 내가 함께하고 있는 생명 다양성 재단에서는 먼 자연이 아니더라도 캠퍼스나 공원 등 가까운 숲에서 주변의 자연을 발견하고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산책이나 숲 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함께 걷다 보면 진행하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모두 자연과 하나가 된다. 누구는 위로를 얻고, 누구는 즐거움을 얻고, 누구는 지식을 얻지만 커다란 나무를 올려다보는 경이로움과 작은 새싹을 발견하는 모험은 모두에게 특별하고 마음 속 깊이 남는다.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자연과 멀어진 채 대부분 도시에서 지내는 일상에서 어떻게 하면 자연에 대한 생생한 감동을 유지하고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재단이 있는 이화 여대 캠퍼스에서 “가깝고도 생태적인 단풍놀이”를 진행할 때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뿐만 아니라 기후 위기의 근본적인 해법을 담고 있는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를 만나게 됐다.

 

숲속 모든 생물을 존중하고 서로를 돌보며 깊은 관계를 발전시키고 지켜 나가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생명의 드라마가 실제로 펼쳐지는 현장에서 동식물의 생태를 직접 접하면서 이해하는 노력이 절실하다.(사진: 안선영)

 

 

이 책의 저자 수잔 시마드의 연구를 잘 모르더라도 이미 영화 「아바타」 시리즈를 보았거나 나무들이 어떻게 소통하고 있는지 들었다면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는 제법 친근하게 느껴진질 것이다. 저자는 오랜 연구를 통해 숲의 지하 세계에서 벌어지는 나무들의 진균을 통한 네트워크로 나무들이 서로 대화할 뿐만 아니라 협력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의 결과는 숲을 하나로 연결하는 공동체가 존재하고 이를 유지하며 우리가 정보를 주고받듯이 나무와 나무가 서로 탄소나 질소와 같은 물질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엄청난 사실이다. 시마드의 연구 전에는 영화 속, 상상 속에서나 있었을 법한 숲속 식물들의 거대한 공동체와 커뮤니케이션이 과학적인 사실로 밝혀졌다. 이 연구에서 또한 중요한 점은 그 오래된 숲의 중심에 모든 것의 시작이 되고, 유지하고, 연결하고 숲을 키우는 어머니 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숲과 깊숙히 얽힌 수잔 시마드의 삶과 과학

 

수잔 시마드가 자란 태평양 북서부 해안 숲지대 하층부에 풍성한 관목 중에는 폴리스티쿰 무니툼과 레드 허클베리도 있다. 태평양 북서부 선주민들은 그 잎을 화덕 보호용 덮개, 음식 보관 포장 용기, 마루, 침구로 사용했다. 봄에는 지하의 뿌리줄기를 파서 굽고 껍질을 벗겨 먹었다. 허클베리의 붉은 열매는 하천에서는 물고기 미끼로 사용했고, 말리고 으깨서 케이크를 만들거나 즙을 짜서 식욕 촉진제, 구강 청결제로 썼다.

 

 

저자는 캐나다의 오래된 숲에서 집안 대대로 나무와 관련된 일을 했고 본인 역시 연구를 하기 전까지 벌목 회사에 다니며 나무로 생계를 이어 갔다. 숲에서 나고 자란 그녀가 숲에서 생활할 수 있는 임업을 선택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숲의 멋진 나무들을 베어내고 저렴하고 빨리 자라는 나무들을 식재 규정에 맞춰 심는 과정은 숲이 좋아서 시작한 일에 오히려 많은 의문과 괴로움을 갖게 만들었다. 결국 현대 임업의 관행이 사랑하는 숲과 나무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성이 지배하는 상업 벌목의 세계에서 벌목이 생태계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떨어진다는 그녀의 주장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벌목 회사 다음 일자리로 고지대 벌채지의 잡초목 제거 효과를 조사하는 계약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실험 설계와 수행, 연구에 대해 배울 수 있었지만 제초제로 수많은 식물들을 죽이기도 했다.

 

1898년경 캐나다 메이블 호숫가에서 몬티콜라잣나무 통나무를 옮기는 나무꾼들. 나무 한 그루를 손으로 베려면 하루 반나절 이상이 걸렸고, 한 뙈기 정도의 땅에서 나무를 베려면 일주일이 걸렸다. (사진: Courtesy of Enderby & District Museum & Archives, EMDS 0464)

 

 

이러한 개인적인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 숲과 나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지고 그녀는 결국 숲의 해답은 땅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식물의 뿌리 끝에 잔뜩 붙어 있는 균근(mycorrhizae)을 만나게 된다. 균근은 식물의 뿌리와 균류가 긴밀하게 결합하여 서로 간에 공생 관계가 맺어져 있는 뿌리를 의미하는데 숲속 지하에서 나무와 균류가 맺은 지구에서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공생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이 본인의 뿌리를 기르는 것 보다 진균의 생장에 투자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균근균의 균사가 식물 뿌리 세포 틈에서 복잡하게 자라서 식물은 광합성으로 생성된 당분을 균근으로, 균근에서 얻어진 물과 영양소는 식물로 보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저자는 나무와 함께하는 가정에서 자라며 이러한 배경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본인의 숲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 무엇이 바탕이 되고 있는지 자세히 보여 준다. 숲에서 균근의 연관성을 밝히는 지적 호기심이 오랫동안 진행되는 연구까지 이어지고 그러한 과정에서 학업과 직업, 가족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인정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이겨 내는 개인의 삶의 역사가 함께 적혀 있다. 오랫동안 생활한 브리티시 컬럼비아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곳에서 일하면서 겪었던 어려움,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이나 이직, 남편과의 이별, 본인의 암 투병 등 개인적인 이야기들과 본인의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발표되었는지 그리고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많은 이야기들이 마치 식물의 뿌리와 균근처럼 함께 연결되어 넓게 펼쳐진다.

 

외생균근균이 붙은 뿌리 끝과 균사다발(rhizonmorph). 균사다발은 균사가 치밀하게 모여 만들어진 다발로 식물 뿌리처럼 가지가 나뉘며 자란다. 나무의 뿌리 끝을 덮은 흰 균투(fungus mantle)는 뿌리 끝을 손상이나 병원체로부터 보호하고 균투로부터 나온 균사체(mycelia)는 양분을 찾아 토양을 탐사한다.(사진: Camille Defrenne)

 

 

저자가 자작나무와 미송이 소통하는 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 “별세계에서 일어날 것 같은 일을. 전파를 타고 오가는 은밀한 대화를,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대화를 엿들은 것” 같다는 표현은 그 발견이 얼마나 위대하고 새로웠는지 알 수 있다. 예전 사람들은 식물을 이동성이 없고 햇빛 경쟁을 하는 각각의 수동적인 유기체로 간주하고 주변 환경에 이미 결정된 방식으로 반응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했으나 그녀의 연구 덕분에 숲속 나무들은 각 개체가 아닌 공동체로 적극적으로 나누고 보호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우리는 대부분 생물이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해 생존하고 번식한다고 생각했으나 역시나 그녀의 연구 덕분에 나무들은 함께 서로의 존재를 이해하고 돕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숲의 공동체가 인간 사회에 줄 기적 같은 가르침

 

숲의 지하에는 나무들이 서로 연결되어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이처럼 숲은 다양한 존재를 인정하고, 배제하거나, 하나로 통일시키지 않고 균형을 잡고 서로를 품으며 함께 살아간다. 사람들이 숲속의 어떤 나무가 필요 없다고 하거나 돈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숲과는 상관없는 사람의 기준이다. 모든 나무는 그때그때 자신이 살고 있는 생명 공동체에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숲은 나무와 나무, 나무와 진균, 나무와 무생물까지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서로가 서로를 이끌고 도우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좋은 목재를 얻기 위해서 건강한 숲을 만들기 위해서 숲을 가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상업적인 임업과 조경업이 발달했다. 그러나 숲속에서 나무들은 가장 현명한 방법으로 여러 세대를 거쳐 공동체를 유지하고 번성하며 살고 있다. 이제는 사람의 손이 아니라 자연이 가장 잘하는 일을 자연의 방법으로 스스로 지킬 수 있게 우리가 지켜봐 줘야 한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에는 숲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에서 오늘날 영향력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산림 생태학 교수가 되기까지 개인적인 역사와 과학적인 연구 여정의 성공과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이 책은 기후 위기 시대에 가장 필요하지만 무시되고 있는 해법인 오래된 숲을 이해하고 보전하는 데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나무들이 숲에서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정교한 관계를 발전시키며 유지해 오는 공동체를 이해한다면 분명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어머니 나무로부터의 에너지 흐름은 대양의 조수처럼 강력하고, 태양의 광선처럼 강렬하고, 산맥의 바람처럼 억누를 수 없고, 제 자식을 보호하는 어미처럼 말릴 수 없다고 상상했다. 나는 심지어 숲의 대화를 들춰내기 전부터 내 안의 어떤 힘에 대해 알고 있었다. 집 마당 단풍나무의 에너지에서 어떤 힘이 흘러나와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477쪽에서)

 

 

숲은 기적에 가까운 회복 능력을 갖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얼마 남지 않은 오래된 숲을 파괴하고 사람의 구미에 맞는 숲으로 바꾸거나 도시로 개발하기를 원한다. 숲의 보전은 항상 경제적인 평가에 밀려 개발되고 잘못된 정책을 뒷받침하며 파괴되기도 한다. 심각한 기후 위기와 생물 다양성이 위험에 처한 지금, 숲의 다양성과 회복성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와 관계없다고 여겼던 드넓은 자연이 알고 나면 결국 나의 이야기와 나의 선택, 내 삶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연은 과학적인 사실이 밝혀져도 여전히 대단하고 아름다우며 우리 역시 그런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왔다.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식물 생태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환경 보전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참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다.


안선영

생명 다양성 재단 책임 연구원

식물 생태와 에코 과학(융합 과학)을 공부하고 (재)생명 다양성 재단 사무차장/책임 연구원과 이화 여대 행동 생태 연구실 연구원으로 있다. 과학 특히 식물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생활 식물 생태학, 바닥 식물원 등 강연과 전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참나무 6형제 야외도감』(공저)을 펴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희망의 책』

 

『희망의 자연』

 

『희망의 밥상』

 

『식물 대백과사전』

 

『개의 작동 원리』

 

『보이지 않는 권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