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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뭔지 아는 여자, 뭔지 모르는 남자?!: 『엄마 생물학』 이은희 편 ①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생명이 뭔지 아는 여자, 뭔지 모르는 남자?!: 『엄마 생물학』 이은희 편 ①

Editor! 2025. 4. 22. 16:52

대한민국 대표 과학 커뮤니케이터 하리하라 이은희 선생님이 『엄마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책을 가지고 ㈜사이언스북스의 독자들을 찾아왔습니다. 어렵기만 한 첨단 과학의 세계를 일반 독자들이 알기 쉽게,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 떠먹여 주어 왔던 ‘과학 엄마’ 하리하라 선생님이 이번에는 그 ‘엄마’의 생물학적, 철학적, 사회적 본질과 의미를 치밀하게 분석해 갑니다. 하지만 이 책은 냉철하기만 한 과학책이 아닙니다. 엄마가 될 사람들, 아이와 함께 피, 땀, 눈물, 그리고 웃음을 나누고 있는 현재 엄마들, 그리고 한때 엄마였고 이제는 할머니인 어르신들, 그리고 엄마 옆에서, 엄마와 함께 아이를 만들고 키우고 있는 아빠들을 위한 따뜻하면서도 과학적인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가 가득 담긴 책이기도 합니다. 하리하라 선생님의 최신간 출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과학+책+수다에 담아 봤습니다. (모두 2편으로 연재됩니다.)


이은희의 『엄마 생물학』. ⓒ ㈜사이언스북스.

 

 

「과학++수다」

생명이 뭔지 아는 여자, 뭔지 모르는 남자?!

엄마 생물학이은희 편

 

 

엄마 생물학에서 생명이란?

 

사이언스북스(이하 SB): 책 제목이 엄마 생물학입니다. 편집부에서 엄마로서 경험하고 느끼며 배운 생물학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지은 것이긴 하지만, 지어 놓고 보니까, 성 인지 감수성, 성 인지 의학처럼 남녀의 성차와 차별을 강조하는 뉘앙스가 어느새 스며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생명에 대한 관점이 남녀, 부모 사이에서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드는데요, ‘생명에 대한 관점이 아빠와 엄마가 다를 수 있을까요?

 

이은희: 생명에 대한 관점은 아빠와 엄마, 남자와 여자라고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생명이란 건 굉장히 포괄적인 개념이잖아요. 그러나 이걸 인간, 더 나아가 아이까지 좁히게 되면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경험의 차이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그랬지만 임신하고 출산하고 그다음에 수유까지 하는 과정이, 그러니까 여성은 자신의 몸에서 다 이루어지잖아요.

엄마에게 아이와의 관계는 직접적 경험으로 다가와요. 태아가 어느 정도 크면 태동을 하고, 때로는 딸꾹질도 해요. 막달에 다가오면 부푼 배 위로 작은 주먹이나 발자국이 찍히기도 하고, 아기를 낳고 젖을 물리는 경험이 모두 직접적이에요. 이게 너무 직접적이다 보니까, 아이와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기 전에 그냥 관계가 설정되어 버리죠.

내 몸속에 들어와 있는 이것이 그냥 내 아이구나 하는 생각이 딱 들죠. 인이 박힌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꽉 차는 거죠.

그런데 아빠는 이 모든 경험을 같이하긴 하는데, 모두 간접적이에요. 옆에서 봐요. 태동의 느낌도 출산의 선연한 고통도 젖을 물릴 때의 느낌도 보고, 알고, 지식으로 이해는 하고 있는데, 이걸 직접적으로 경험을 하지는 못해요. 모두 간접 경험이죠. 그래서 아이와 태어난 후 실제로 대면하고 아이와 관계를 쌓아 가는 과정이 좀 필요하더라고요.

이러다 보니까 이 경험의 강도라고 할까, 정도라고 할까 하는 게 좀 달라서 아이, 생명 등을 바라보는 초반의 시간이나 느낌은 좀 다를 수 있죠.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동물과는 다른 건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거잖아요.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상상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죠.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육아 과정을 함께하게 되죠. 그렇게 육아를 함께하는 것은 아빠만의 직접 경험이 되죠. 그 과정에서 엄마만큼의 생명에 대한 느낌, 개념, 그런 것들을 심화시켜 가면서 처음 있었던 엄마와 아빠 사이의 갭은 나중에 커버되어 갈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SB: 그래도 저는 남자들이 생명에 대해서 관념에서 구체성이 좀 떨어진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남자들은 연애도 책으로 배우고, 생명도 책으로 배우고 그 범위를 잘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죠.

이은희: 그래서 아이와 조금 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야 된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저희 아이 아빠가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큰아이가 태어났을 때 양육을 주로 한 건 저였고, 무유 수유도 직접 했기에 엄마와의 유대만이 계속 쌓였죠. 그러다가 제가 두 번째 임신을 했는데, 그게 쌍둥이여서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그러면서 큰아이가 자연스럽게 아빠에게 가 있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마침 남편이 당시 이식을 하던 시기라 약간 여유가 생겨서 한 달 정도 일을 쉬고 전적으로 아이를 돌보게 되었죠. 그러고 나더니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이를 이렇게 전적으로 돌보고 나니까 아이와의 관계가 좀 달라졌다.”

즉 몸으로 경험을 하니까 좀 달라졌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임신과 출산으로 느끼는 생명의 감각, 생명의 직관 같은 건 남자야 몸으로 경험할 수 없으니까 알지는 못하겠지만 육아할 때 느끼는 생명의 감각, 직관 같은 것은 충분히 느끼고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를 보듬고 안고 보호하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며 재우는 과정에 남자들도 충분히 참여하고 관여하게 되면 그게 아이와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시켜 주고 생명이라는 현상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으로 다가오면서 그 개념이 좀 달라지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남자들은 이런 게 약간 조금 더 책임감 같은 걸로 다가오는 것 같더군요. 책임감, 내가 얘를 보호해야 된다는 그런 책임감으로 다가오고, 엄마의 경우에는 똑같이 보호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안아서 보듬어야 된다 이런 느낌으로 더 가는 것 같아요.

 

SB: 그럼 여기서 생물학에서 얘기하는 생명의 정의 있잖아요. 그러니까 복제…….

 

이은희: 생명의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물질 대사, 에너지 대사를 하고, 번식이 가능해야 된다 이 정도로 이루어져 있죠.

 

SB: 그렇다면 그 엄마의 관점에서 생명을 한마디로 정의하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은희: 엄마의 관점에서 한마디로 생명을 정의한다면……이라, 생명이 아니라 여기서는 인간이겠죠

SB: 생명의 정의도 정리해 주시면 좋겠어요.

이은희: 그 정도 정리는 못 하고요. 그것은 너무 범위가 커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요. 이제 인간보다는 네 아이라는 개념이 더 강하게 될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전혀 스스로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가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존재로 커 나가고, 그리고 장차 다른 존재를 돌볼 수 있는 존재로 되어 가는 존재가 인간, 그리고 생명이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그러니까 단순히 재생산의 문제가 아니고요. 재생산을 한 뒤에 그 아이를 보호하고 돌봐주고 그 아이가 또 자라서 자신이 받은 일을 다음 세대한테 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게 엄마 생물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SB: 그 정의는 생명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복제와 그다음 복제 사이를 연결시키는 존재가 인간, 생명이다 하는 식으로 말이죠.

 

이은희: 그건 잘못 얘기하면 도킨스의 생존 기계가 되거든요. 근데 제 얘기는 그것보다 조금 더 따뜻한 의미에요.

SB: 그렇다면 인간은, 생명은 일종의 돌봄 기계라고 해야 할까요?

이은희: 그렇죠. 돌봄을 받아야 될 권리도 있고 나중에 돌봄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SB: 그렇군요. 그러니까 생명이라고 하는 게, 선생님 정의에 따르면,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그러니까 앞에 살았던 생명의 도움이 없으면 다음 생명으로 갈 수 없는 거네요.

이은희: 그렇죠. 유전자를 전해 주는 게 가장 기본이겠지만, 돌봄과 도움을 앞의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사실 자연에서는 자식을 낳아 놓고 도망가는 부모가 되게 많잖아요. 혼자, 알아서, 잘 크라는 거죠. 물론 혼자 잘 크는 경우도 많지만, 그것도 가만히 보면 진짜 버린 건지, 돌봄과 도움의 책임을 방기한 게 아닐 수도 있어요. 예컨대 곤충들도 자신의 알들을 생존하기에 가장 적절한 곳을 찾아서 그곳에 낳아 놓고 떠나는 거거든요. 그것도 일종의 돌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돌봄을 받고 돌봄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순환의 일부인 셈이죠.

SB: 뭔가 조금 더 발전시키면 되게 재미있는 개념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은희: 그건 좀 더 생각해 보시죠. (웃음)

 

 

『엄마 생물학』의 핵심 메시지를 설명하는 이은희. ⓒ ㈜사이언스북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알리자.’

 

SB: 이 책은 크게 세 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임신 출산 시의 직접적이고 생생한 경험을 담은 1깃들다, 여성으로서 산다는 것의 이모저모를 생물학으로 푼 2살다, 양육과 가족의 문제 등을 다룬 3품다로 나뉘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각각의 부가 직접적으로 와닿는 나이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1부는 임신과 출산을 직접 경험하는 2030세대 엄마, 2부는 한창 육아와 직업을 병행하며 고생하는 3040세대 엄마, 3부는 이제 육아와 직업의 수레바퀴, 그리고 월경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4050세대 엄마가 그렇겠죠. 선생님께서는 이 각 세대의 엄마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 줬으면 하시나요?

 

이은희: 사실 이 책을 처음 기획하고 칼럼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누군가가 이렇게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보다는 제가 느낀 것들을 기록하는 심정이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세상 모든 일이 충분히 준비하고 안다고 생각해도 막상 겪어 보면 다른 것들이 많잖아요.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고 접하게 되면 훨씬 더 당황하고 혼란스러워서 더욱 힘들잖아요.

그래서 좀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경험을 아름답게 미화하거나, 지나치게 폄훼하거나 하지 않고 가급적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임신과 출산과 수유는 포유류인 인간 여성에게 있어 가능한 일이지만, 결코 수월하거나 당연하게 할 줄 알게 되는 일은 아니거든요. 이 책의 부제처럼 이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내 몸을 누군가와 나눈다는 것이잖아요. 우산 하나를 둘이 나눠 써도 불편하고 옷이 젖는데, 하물며 몸을 나누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기 전의 분들에게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미리 알아보고, 이미 겪어 본 이들은 각자의 경험에 비추어 공감하면서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고, 그 과정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제 50대이지만 이 이후는 저도 아직 살아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함께 알아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리 힘들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20, 30, 40대를 겪으면서 힘들었던 게 그거죠. 생물학적 여성을 생존하고 사회적 성인으로서 산다는 것 사이에서, 그 책임감 사이에서, 혹은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가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근데 그거를 어쨌든 간에 알고 시작하면 좀 낫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모르고 시작하면 당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래서 알고 싶었고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2030세대들, 제 아래 세대들, 살면서, 아이를 품고 키우는 과정에서 정말 다양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정말 예상치도 못했던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고,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쁨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들을 그냥 막연하게 생각하면서 두려워하거나 피하거나 그냥 막연하게 기대하거나 하지 마시고,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고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간에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그 시간을 겪어 가셨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있었죠.
그다음에 이제 3040세대 분들, 이제 임신과 출산과 육아의 그 과정을 통과하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어요. 이 시기가 정말로 힘든데, 이거 나만 이렇게 힘든가, 남들은 다 잘 낳고 사는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힘든가 하는 생각으로 너무들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아니다, 다들 힘든데,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위로하면서 같이 잘 살아 보자 이런 느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제 저희 애들도 조금 커서 저도 약간의 여유를 가지게 됐거든요. 또 저도 어느덧 월경의 고통에서 해방이 됐죠. 이제부터는 생물학적인 여성으로서의 삶과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좀 더 잘 어울리게 만들 수 있는 시기가 된 듯해요. 육체적으로는 노화의 시대를 맞이한 건 확실하잖아요. 이 둘의 조화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함께 알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펴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SB: 선생님 말씀을 정리해 보자면, 이 책은 알고 싶다. 함께 알아보자. 그리고 알리고 싶다.’ 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가 있겠네요. 미리 이 말씀 들었으면 책 카피로 쓸 걸 그랬습니다.

 

이은희: 미리 물어보시지 그랬어요. 기본적으로 아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게 낫죠.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옛말도 있잖아요. 그걸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어서 신기했고,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마시지 마라.’라는 속담이 얼마나 무서운 경고였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엄마 되기의 가장 신비로운 순간?!

 

SB: 그렇군요. 그럼 다음 이야기를 해 볼까요? 좀 가벼운 질문들입니다.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과학적으로가장 신기하거나 놀라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그리고 혹시, ‘과학 외적으로가장 신기하거나 놀라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어떤 사건들이었나요?

 

이은희: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사실 매 순간이 신기하고 놀라운 일의 연속이었어요. 그중에서 지금 기억나는 것 하나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할 때, 전 냉동 배아를 이용했거든요. 수정란을 일주일 정도 시험관에서 키운 뒤, 액체 질소에 담가 냉동해 보관하는데, 둘째 아이들은 무려 52개월 동안 배아 상태로 냉동되어 있었거든요. 그걸 해동해서 제 몸에 이식하는데, 병원에서 배아를 모니터로 보여 줬어요. 그런데 지금 막 해동된 배아가 난막 껍질을 뚫고 부화되는 중인 거예요. 배아가 임신으로 이어지려면 이렇게 수정란을 둘러싼 난막 껍질을 찢고 나와야 하는데, 이를 부화라고 불러요. 이렇게 부화가 되어야 모체의 자궁벽에 달라붙어 자라날 수 있거든요.

몇 년 동안이나 생명 현상이 정지되었던 배아가 다시 깨어나 살기 위해서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이 신기했고, 일반적인 임신이라면 이 과정은 몸속에서 일어나기에 볼 수 없지만, 시험관 시술을 하니 이렇게 아기랑 눈맞춤할 수 있구나 싶어 신기했었어요.

둘째는 아이를 낳고 난 뒤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는데요. 대학원에서 나름 신경 과학을 전공했기에 인간의 아기들은 매우 무력하게 태어나지만, 거울 세포는 아주 어릴 적부터 발달해 부모의 행동을 모방한다고 배웠어요. 하지만 아직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기에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게 문제지만요.

그래서 생후 일주일 때부터 아기와 눈맞춤하면서 혀를 내미는 행동, 소위 메롱을 해 봤어요. 키워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시기 아기들은 시력도 매우 나쁘고 근육 조절도 제대로 못 해서 눈맞춤도 제대로 안 되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 이런 행동을 일주일쯤 하니까, 아기가 메롱을 따라하는 거에요, 이거 참 신기한 일이거든요. 아기의 그 조그만 뇌가 엄마의 얼굴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인지하고, 입과 혀라는 기관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깨닫고, 신경을 조율해서 근육을 움직이게 하여 이를 따라하는 것이잖아요.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옛말도 있잖아요. 그걸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어서 신기했고,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마시지 마라.’라는 속담이 얼마나 무서운 경고였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과학 외적인 걸로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일찍 상대를 고려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쌍둥이가 아직 두 돌도 채 안 되었는데, 산책 나갔다가 하나가 넘어졌어요.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는데 놀랐는지 좀 울더라고요. 그랬더니 다른 아이가 다가가더니 넘어진 데 한 번 살펴보고 꼭 안아 주고 토닥토닥해 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넘어진 애도 울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더라고요. 이렇게 어린 아기도 상대에게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구나 싶어서 놀라웠죠.

 

SB: 그 위로하는 행동도 일종의 흉내 내기 아니었을까요?

 

이은희: 그건 아니었어요. 아니 모르겠어요. 흉내 내기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그런 행동들을 아기들이 해요. 그걸 보고서, 역시 인간은 같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또 다른 건 뭐냐면, 아이가 말을 배울 때 스스로 말의 규칙을 나름대로 만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쌍둥이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말, 언어로 소통을 하는 걸 본 거죠. 하나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는데, 다른 하나가 반응해요. 자기들끼리는 알아듣는 거죠. 음절로 분리된 단어도 아니고 어른 입장에서 보기엔 의성어 같은 걸 반복하는 건데, 알아들어요. 한 아이가 .” 같은 소리를 내면 그 소리를 듣고 다른 아이가 장난감 같은 걸 가져다줘요. 보고 있으면 너무 신기했거든요. 학자들은 쌍둥이 언어라고 하더라고요. 아직 할 줄 아는 말도 별로 없고 아는 단어도 별로 없는데, 자기들끼리 의사 소통을 하기 위해서 문법도, 단어도 만들어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가 저렇게 어린 아이들도 말을 만들어 쓰게 하는구나, , 말을 할 줄 아는 능력이라는 거, 그 소통의 욕구라는 거 굉장히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거구나, 아이들이 말을 못하는 게 아니라 어른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아직 몰라서 못하는 거구나 하는 걸 알았죠.

SB: 그거는 쌍둥이를 키워 봐야 알 수 있는 거군요.

이은희: 아마도 단태아였던 저희 첫애도 갓난쟁이 때 그런 소통의 욕구를 가졌을 테고, 어른들은 알아듣지 못한 소통의 시도를 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걸 못 알아들었던 거죠.

 

SB: 단태아는 ’, ‘같은 자기들만의 단어나 문법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상대방이 없을 테니까요.

 

이은희: 그러니까 첫애는 말을 빨리 배우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좀 자료를 찾아보니까 오지 마을이나, 사람들이 아주 오랫동안 고립되어 사는 경우 이런 식으로 거의 암호에 가까운 언어 체계가 생긴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요즘 아이들은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 가고 주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그런 현상은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첫 돌과 그 후 한두 달 사이에 잠깐 있다가 사라졌어요.

SB: 근데 선생님은 정확하게 관찰을 하셨군요. 누군가 연구 주제로 삼을 만한 재미있는 주제 같습니다.

 

이은희: 실제로 연구하시는 분도 있어요.

 

SB: 다음 책을 쓰실 때는 그런 연구 소개하시는 것도 괜찮겠네요.

 

이은희: 언젠가 할머니 생물학이라는 책을 쓰려고 하는데, 아이들 키우면서 남겨 놓았던 기록 같은 게 있거든요. 그거 뒤져 보고 제 경험과 그다음에 과학적 논문들 연결해서 한번 써 보도록 하죠.

SB: 글자 수를 맞추려면 할멈 생물학으로 해야 할까요?

 

이은희: 할미 생물학이 낫겠죠. 왜냐하면 애들이 할머니를 처음에 할미라고 해요.

 

SB: 그렇군요. 이것 역시 키워 본 사람만이 아는 얘기군요!

 

 

여성에서 엄마로, 자신의 커리어와 육아 과정을 설명하는 이은희. ⓒ ㈜사이언스북스.

 

 

출산은 또 하나의 뇌를 세상에 내놓는 일

 

SB: 이번에는 각도를 바꿔서 질문을 던져 보죠. 두 번째 질문과도 연관되는 걸 수 있는데, 선생님은 엄마가 되었을 때, 과학 저술가, 작가였습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선생님의 직업적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혹은 엄마라는 역할이 여성에게 주는 장점이나 단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은희: 영향을 미쳤죠. 전 작가가 되기 전에 제약 회사 연구원이었는데, 만약 제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일을 계속했다면 두 번째 임신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그래서 임신과 육아 시에는 부모들이 좀 더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는 사회적 제도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둘째로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 커리어의 문제였어요. 특히나 둘째 쌍둥이가 태어났을 때, 전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중이었을 뿐 아니라, 대학에서 강의하는 강사이기도 했어요. 갓난아이 둘에 유치원생 큰 애를 돌보고 집안일도 하면서, 그 사이사이 글감을 찾고, 이를 엮어서 글을 쓰고, 수업 준비를 하고 강의를 하고 성적 처리를 하는 일이 쉬울 리 없죠. 일단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고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전혀 없어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을 때가 많았죠. 둘 중 하나를 포기하고 싶었고, 아이들을 포기할 순 없으니 일을 포기해야 할 텐데, 그러긴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아기 띠 2개로 쌍둥이 하나는 등에 업고, 하나는 앞에 안고, 서서 아이 둘 재우면서 한 손으로만 키보드를 두드린 적도 있었어요. 그때 제 구원자가 되어 주신 분이 제 엄마였어요. 엄마가 주 양육자가 되어 주시니, 시간제 베이비시터를 구할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갈 정도로 자라고 나니 한숨 돌릴 수 있었죠. 동네 친구들의 도움도 받았고요.

그때 바뀐 게 있어요. 이전까지 저는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아쉬운 소리 안 듣고 살려고 했었거든요. 소위 독립적으로 살려고 했죠. 하지만 아이와 커리어를 동시에 가져가려니 도저히 안 되어서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모두 받고, 혹은 내가 도와주기도 하면서 함께 도우면서 살아가는 법을 강제로 익히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달라졌어요. 작가로서는 그런 시야의 변화가 도움이 되었죠. 오히려 그때, 한창 바쁠 때 아이들을 낳고 기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정도죠.

 

SB: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가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은희: 그렇죠. 그때 도움을 받은 제도가 있어요. 가정 보육 교사 제도였어요. (성남시청 제도 안내 링크: https://www.snbokji.net/1326) 이걸 모르시는 분이 되게 많더라고요. 이게 뭐냐면, 어린이집 선생님을 집으로 보내 주는 제도예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게 아니라 우리 집이 어린이집이 되고 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출근을 하시는 거죠.
지방 정부에서 지원을 하니까 일반 사설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것에 비해서도 훨씬 저렴하고 더 좋은 건 뭐냐 하면 이분들이 모두 보육 교사 자격증을 가지신 분이니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이게 관리가 돼요.

선생님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건강 검진 받으시고 그다음에 예방 접종도 다 받으셔야 되고 교육도 계속 받으시죠. 그래서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었죠. 저는 그 제도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당시에는 주변 분들이 잘 모르셨는지 이걸 잘 이용을 못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런가 봤더니 이게 수요에 비해서 공급이 너무 부족하다 보니까 신청을 해 놔도 언제 매칭이 될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이제 당장 다음 달에 복직해야 하는 부모의 경우 매칭이 될지 안 될지 알 수 없으면 이걸 이용할 수가 없어요. 선생님 풀이 좀 넓어져서 매칭이 좀 더 쉽게 되면 좋겠는데, 쉽지 않은가 보더군요.

중앙 정부나 국가 사업이 되면 훨씬 더 좋을 것 같죠. 어린이집 다니시다가 건강상의 문제나 아니면 나이 문제로 은퇴하신 분들도 충분히 한 집에서 3명 정도의 아이면 케어가 가능하실 테니까요. 그리고 이런 연결을 전국적으로, 상시적으로 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면 좋겠는데, 그렇게 필요한 곳에 적시 적소에 연결해 주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러다 보니까 느낀 게 아이가 태어나면 일단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하고, 받을 수 있는 도움은 다 받는 게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도움이 필요한 아이와 엄마를 도와주는 식으로 그 공동체를 확대시켜야겠다 하는 것이었어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확산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출산과 육아 관련해서 한국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들도 많은 부분 풀리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저도 주변에서 보면 애를 키우면서 직장 생활을 하는 제 또래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가장 힘들어했던 건 아이를 키운다는 게 자꾸 눈치를 봐야 된다는 거였어요. 실제로 많이 그러거든요. 애를 데리고 어디 가면 애가 큰소리 낼까 봐 울까 봐 그 눈치 봐야 하고, 회사에서도 정시 퇴근이 원래 당연한 건데 정시 퇴근하려고 그러면 왠지 애 때문에 일찍 가는 것 같아서 눈치를 보고 했죠. 그런데 그건 육아의 책임이 오로지 부모한테 집중이 돼 있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특히나 부모 중에서도 아무래도 엄마가 아이와 더 심정적으로 가까우니까 더 많이 눈치를 보게 되죠.

나라에서 사회에서 아이 낳으라고 정부에서 출산율 올리려고 온갖 정책을 펴는 이유가 결국에는 아이가 태어나 자라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사회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거잖아요. 아이가 영원히 부모의 자식으로 남아 있을 거면 국가에서 출산율을 올리라고 할 필요가 전혀 없거든요. 결국 아이를 낳아라 하는 소리 뒤에는 아이를 나중에 사회의 일원으로 포함시켜 자신의 연속성을 보장해 가겠다는 의도가 있는 건데, 그렇다면 사회가 아이를 키우는 데 지원을 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서로 돕고 돌보고 하는 것들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SB: 중간에서 갑자기 저출산 관련 사회 문제로 얘기가 옮겨 간 듯합니다. 질문의 취지로 다시 돌아가서, 말씀 주신 걸 정리해 보자면, ‘과학 저술가를 하면서 얘를 낳고 키우는 것은 좋았다.’가 될까요?

이은희: 과학 저술가라는 직업은 그런 면이 있었죠. 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쓸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다른 모든 사람에게 그런 직업으로 바꾸라고 할 수는 없죠. 다만 직업을 가진 이들이, 노동자들이 모두 다 시간적 유연성을 좀 가질 수 있게 사회와 제도와 문화가 좀, 제발 바뀌었으면 좋겠다 하는 거죠. 또 좋은 제도들이 많은데, 그걸 필요한 사람과, 필요한 때 잘 연결시켜 주면 좋겠다 하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작가라고 하는 것은 집에서도 일할 수 있는 일이라 보육 교사 매칭도 언제든 쉽게 할 수 있었죠.

, 그리고 작가로서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무척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저는 과학 작가이자 커뮤니케이터이잖아요.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기는 했지만 이제는 연구하는 과학자는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연구하는 전공 분야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연구자들이 내놓는 수많은 과학적 지식들과 사회적 현상들을 연결해 가면서 거기서 의미를 뽑아내는 작업을 하면서 글을 쓰는 게 제 직업이죠.

근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소재가 굉장히 많이 생겨요. 왜냐하면 아이들은 생각지도 못하는 일들을 해내거든요. 소재가 무궁무진하죠. , 아이를 키우면, 삶의 결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러니까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나만 잘하면 되지, 뭐 나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주의자였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그게 안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어떤 일이든 못하는 사람도 있고 잘하는 사람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좀 달라지게 되었죠. 또 세상을 한 발짝 떨어져서 좀 넓게 바라보면서, , 이 일은 이것과 연결 지을 수 있겠구나 하는 식으로 관계를 보는 눈이 좀 생기더라고요. 그게 글 쓸 때는 굉장히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만약에 제가 그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지금과 같은 글을 쓰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해요.

SB: 지평이 바뀐 거군요, 어떤 글쓰기의 지평 자체가. 출산과 글쓰기는 되게 매칭이 좋군요.

 

이은희: 출산이라는 게 세상에 없던 또 하나의 뇌를 만들어 내놓는 일이니까요.

SB: 또 하나의 뇌를 낳는다! 출산은 멋진 일이군요.

 

 

(2편에서 계속)

 

이은희의 『엄마 생물학』. ⓒ ㈜사이언스북스.

 

 


이은희

과학 저술가. 필명 하리하라.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동 대학원에서 신경 생리학을 전공했다. 고려 대학교에서 과학 언론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졸업 후 신약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3년간 근무하다가 블로그에 연재하던 글을 모아 2002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를 출간했다. 이후 다수의 하리하라 과학 시리즈를 출간하며 본격적인 저술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과학책 방 갈다의 이사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일한다. 최근에는 미래를 읽다 과학 이슈시리즈와 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등을 저술했다. 21회 한국 과학 기술 도서상 저술 부문을 수상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엄마 생물학』

하리하라 이은희 최신 과학 에세이

 

 

『빅 히스토리』

138억 년의 역사를 한 권으로 옮긴 紙上 박물관

 

 

『어머니의 탄생』

세상 모든 어머니는 기업가적 제왕이자, 정치가, 전략가이다!

 

 

『호르몬 찬가』

다윈주의 페미니즘의 새로운 패러다임

 

 

『송기원의 생명 공부』

17가지 질문으로 푸는 생명 과학 입문

 

 

『웃음이 닮았다』

우생학, 인종주의, 성차별로 얼룩진 유전학의 빛과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