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과학은 엄마를 자유롭게 하리라!: 『엄마 생물학』 이은희 편 ②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과학은 엄마를 자유롭게 하리라!: 『엄마 생물학』 이은희 편 ②

Editor! 2025. 4. 23. 15:56

대한민국 대표 과학 커뮤니케이터 하리하라 이은희 선생님이 『엄마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책을 가지고 ㈜사이언스북스의 독자들을 찾아왔습니다. 어렵기만 한 첨단 과학의 세계를 일반 독자들이 알기 쉽게,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 떠먹여 주어 왔던 ‘과학 엄마’ 하리하라 선생님이 이번에는 그 ‘엄마’의 생물학적, 철학적, 사회적 본질과 의미를 치밀하게 분석해 갑니다. 하지만 이 책은 냉철하기만 한 과학책이 아닙니다. 엄마가 될 사람들, 아이와 함께 피, 땀, 눈물, 그리고 웃음을 나누고 있는 현재 엄마들, 그리고 한때 엄마였고 이제는 할머니인 어르신들, 그리고 엄마 옆에서, 엄마와 함께 아이를 만들고 키우고 있는 아빠들을 위한 따뜻하면서도 과학적인 위로와 연대의 메시지가 가득 담긴 책이기도 합니다. 하리하라 선생님의 최신간 출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과학+책+수다에 담아 봤습니다.


과학적 문해력에 대해 설명하며 웃는 이은희. ⓒ ㈜사이언스북스.

 

 

우리 시대엔 과학적 문해력이 필요해

 

SB: 뇌 얘기 하니까……, 이 책을 읽은 주변 분들이 뇌 과학 쪽 얘기가 좀 적은 것 같다, 이 책은 엄마가 된다는 것의 과학과 의학, 그리고 생물학을 망라하는데, 뇌 과학적 요소가 좀 적은 게 아쉽다 하는 말씀을 주시더군요. 선생님은 대학원에서 신경 과학 쪽 공부도 하신 걸로 아는데,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가 여성의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좀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은희: 아아……, 찔리네요. 앞에서 아이를 낳으면서 뇌도 낳았다.”라고 했잖아요. 이 말은 아이의 뇌를 낳았다는 말인 동시에 자기 뇌도 일부 내보낸 것 같다는 의미도 있죠. 아이를 낳고 난 뒤 기억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이들이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을 하죠.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뇌의 시냅스 재배치가 일어난다고 해요. 그 결과 뇌의 회백질이 많게는 10퍼센트 가까이 줄어든다고 하죠. 인간의 뇌에서 회백질이 신경 세포들의 네트워크 다발인데 이게 줄어들면 분명 지적 능력에 영향을 주겠죠. 다행스럽게도 임신과 출산 때 줄어드는 정도로는 인지 능력에 큰 영향은 없다고 해요. 다만 이 회백질의 감소로 인해 계산적인 성향이 좀 줄어들어, 아기와의 애착이 더욱 강해진다고 해요. 사실 계산적으로만 따진다면, 아기는 내 돈과 시간과 체력을 엄청나게 소모하게 만드는 매우 비효율적인 대상이거든요. 하지만 효율성만 따진다면 인류는 멸종하고 말겠지요.

이처럼 인지 능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아기와의 애착은 강화시키는 정도로만 인지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인간이라는 계통을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만들어 준 진화적 전략이었겠죠. 어쩌면 간교한 유전자의 계략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이 애착이라는 감정이 주는 묵직한 무게감이 삶에 대한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게 참 신기해요.

 

SB: 멋진 연구네요. 나중에 이 문제를 자세히 푼 글을 써 주시면 독자들이 매우 좋아하겠는데요. 그럼 새로운 질문을 드려 볼게요. 이 책은 과학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된다는 것의 사회적, 철학적 문제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엄마라는 정체성을 생물학적으로 해석하는 게 현대 사회에서, 특히 남녀 갈등이 심화되고,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는 한국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엄마가 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게 여성의 경험을 보다 풍부하게 재조명하고 여성의 경력 단절이나 사회적 불평등 등을 해소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이은희: 사실 제가 요즘 들어서 계속 관심을 가지는 게 과학적 문해력이거든요. 과학적 문해력이라는 게 단순히 과학적인 정보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원래 문해력도 그래요. 어떤 단어나 문장의 뜻을 안다고 문해력이 좋은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모든 단어의 뜻을 사전 그대로만 알고 있으면 어디 가서 문해력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어요.
예를 들어, YES를 뜻하는 .’ 있죠. 그런데 카톡 같은 것 할 때 네네네.” 하면 그냥 대답만 하는 거고, “.” 해야 하겠다는 뜻이잖아요. “.” 하면 , 제가요?’ 하고 반문하는 뜻이고. 이런 식으로 같은 단어도 받침 하나, 물음표 하나에 완전히 그 뜻이 달라지잖아요. ‘.’의 사전적 의미만 알고 있어 봐야 문해력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죠.

마찬가지로 과학적 문해력이라는 것도, 물론 과학적 사실을 토시 하나 안 틀리고 정확하게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것보다 그 과학의 속성이나 개념들을 우리 삶에 적용시켜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느냐 응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죠.
과학은 현실에서 뭔가 변화가 일어나면 그걸 인지하고 이런 변화가 일어난 원인이 뭘까 하고 고민하고 그 고민이 정말 맞는지 확인을 해 보고 그 확인을 통해서 규칙을 발견하고 법칙을 만들어 내죠. 그런데 과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럼 다음엔 어떻게 될까, 이게 문제라면 어떻게 고쳐야 될까, 이게 좋은 것이라면 확산을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안정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까지 고민하는 게 과학적 사고의 기본이고 과학적 문해력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결국 이 책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 중에 하나는 우리 여성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가장 큰일 중 하나인 임신과 출산을 과학적 문해력으로 풀어 보자는 것이었어요. 저출산이 되었든 육아가 되었든 모든 문제들은 원인이 딱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있잖아요. 그 원인을 알아내고 해결법을 찾아내고 그것을 나만이 아니라 남과 사회로 확장을 시키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만 하죠.

예를 들어 저출산 문제도 돈과 집이 없어서 생기는 건지,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풍조가 퍼져서 그런 건지, 내 아이를 남에게 못 맡길 정도로 불신이 내재화된 사회 문화가 문제인지, 뭉뚱그려서 대충대충 파악하는 게 아니라 원인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한 원인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어떤 원인이 더 큰 역할을 하는지 자세히 알아내서 우선 순위를 갖고 대응해야 하죠.
저 역시 임신과 출산 과정을 거치면서 이럴 때는 이렇게도 대응해 봤고 저렇게도 대응해 봤는데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고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지만 하나씩 내 몸이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공부하면서 알아 가니까 결국 문제들도 조금씩 해결되고 상황도 더 나아지더군요.

아이들은 단순한 경제적 존재, 또는 다음 세대를 위한 자원 같은 존재로 이해한다면, 그러니까 경제적 관점에서만 아이들을 보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 망할 거예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가성비가 좋은 일이 전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아이들을 낳고 그들을 키워 보니까, 깨닫는 게 있어요. 안정감이 느껴져요. 그러니까 삶이 약간 좀 불안정하기도 할 때가 있잖아요. 근데 아이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 어쨌든 나는 이 아이를 낳았으니까 이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내가 버텨야 하는구나, 존재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걱정거리들이 의미 없어지더라고요.
얘를 키워야 하는데, 얘 때문에 나는 존재해야 되는데, 그럼 나의 존재라는 건 당연한 거구나 하는 것을 전제로 깔아 버리게 되면 되게 많은 것들이 되게 무의미해지죠. 내가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도 별거 아니구나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굉장히 고민했는데, 나는 내 얘랑 행복하면 돼 저 사람 관계는 끊어 버리자, 이럴 수도 있게 되죠. 굉장히 단순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개인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삶이 단순해지면서 조금 더 안정적으로 바뀌었죠. 더는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기반이 생긴 거죠. 그러고 나니까 세상을 보는 눈이 여유로워지더라고요. 오히려 저는 아이를 낳고 여유로워졌죠.

 

SB: 그렇군요.

이은희: 그러니까 이런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과학적 문해력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제가 SF 소설 하나 쓴 건 알고 계신가요?

 

SB: 소설가 김창규 작가나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와 함께 SF 소설집을 하나 내셨죠. 떨리는 손(사계절, 2020)이었나요.

 

이은희: . 그 책에 실린 단편 떨리는 손에서 이 문제와 관련된 주제를 다뤘어요.

 

SB: 표제작이군요.

 

이은희: 출산 때 많은 이들이 느끼는 자괴감을 다뤄 보려고 했죠.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정말로 동물적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사람이 아니라 아이를 담고 있는 인큐베이터나 애를 먹이는 젖소가 된 듯한 느낌을 받거든요. 이런 느낌들이 들면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 같은 게 되게 상처를 많이 받죠. 그래서 이게 왜 그런지 생물학적으로 알아본 거죠.
임신과 출산, 그리고 수유와 육아가 왜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든지 과학적으로 풀어 보면서 일종의 안심감 같은 걸 느꼈어요. ‘아 그래서 그렇구나. 생물은 어쩔 수가 없구나. 실재하는 세포와 조직과 지구 생태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내가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자존감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이 그냥 일어나는 일이구나.’ 이런 식으로 문제를 분리해서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되니까 임신을 하고 출산하고 애를 키우는 과정에서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해야 되는 것들이 있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해야 되는 것들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걸 좀 분리를 해서 접근해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죠. 임신과 출산, 이게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해서 받은 죄 혹은 원죄 같은 게 아니고 그냥 생물학적 현상이니까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다음에 우리 삶은 분리하자. 이게 이 책에서 제가 하고 싶었던 말 중 하나였어요.

 

SB: 말씀대로 엄마가 되는 과정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급격한 질적 변화이잖아요. 단속(斷續)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변화인데, ‘엄마 생물학’, 그러니까 과학이 그 단속적 변화가 주는 충격을 분리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는 말씀이죠.

개인적으로는 감정과 육체적 상태를 적절하게 관리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는 애를 낳고 키우는 것을 하나도 도와주지 않고 방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에 대해서 분노하고 좌절하고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는 데 과학적 문해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이은희: 그렇죠. 과학적 사고 방식의 기본은 현실의 상황을 인식하고, 이 현상의 원인을 가설을 통해 추론하고, 그 추론을 실질적 증거를 통해 증명하여 현상과 이유, 결과와 원인 사이의 논리적인 인과성을 입증한 뒤, 다음에는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를 알아보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현실적으로 중요한 건,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증명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이를 통해 다음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에요.

현실에서 여성의 경력 단절이나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은 수도 없이 많아요. 그리고 그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현실을 구성하고 있겠지요. 그중에서는 생물학적인 원인도 있을 거고, 문화적, 사회적, 관계적, 정치적, 관념적 원인 들도 있을 거예요. 여기서의 과학적 접근은 현상을 일으키는 원인들과의 관계를 살피고, 그에 따라 적절한 해결책을 내놓는 사고 방식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인간의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여전히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몸을 통해서만 이루어져요. 그건 바꿀 수 없죠. 그러다보니 아이와 엄마는 아이와 아빠에 비해 좀 더 직접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고, 누군가가 육아라는 책임을 져야 할 시기가 왔을 때, 기존의 커리어 대신 아이를 선택하는 건 주로 엄마 쪽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아이를 키워 보니, 아이는 생각보다 금방 크고, 아이를 함께 보듬어 줄 믿을 만한 보호자가 있다면 꼭 엄마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잘 크고요.

그럼 아이가 클 때까지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라던가, 믿을 만한 돌봄 시설 혹은 도우미 지원 같은 게 있으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해결되어요. 저의 경우 앞에서 얘기했던 가정 보육 교사 제도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과학적 접근이란 그런 거 같아요. 현실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문제마다 원인을 찾고, 가능한 지점을 찾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개선해 나가는 것 말이죠.

 

 

“페미니스트만이 아니라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히 아빠와 남편과 남자 친구와 함께 읽었으면 좋겠어요.”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면

 

SB:현실의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문제마다 원인을 찾고, 가능한 지점을 찾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개선해 나가는 것’, 과학에 대한 멋진 정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누군가는 던질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이죠.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생물학적 접근과 페미니즘적 시각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생물학은 인간의 신체적 본성을 설명하는 학문이지만, 종종 여성의 역할을 고정적으로 바라보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현대 페미니즘은 이러한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엄마 생물학이 이런 두 관점을 어떻게 조화롭게 연결할 수 있을까요?

 

이은희: 페미니즘이라……, 저도 여기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아서 정확한 의미와 정의와 범위를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조금 찾아보니 페미니즘에도 갈래가 너무 많아서, 더욱 헷갈리던데요. 그래서 본질만 보기로 했어요.

페미니즘의 사전적 정의는 성별로 인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차별을 지양하는 사상 혹은 활동이라 정의되더군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혹은 이 두 분류에 속하지 않는 누구든 간에, 자신의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의 차이가 인간 사회에서의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해요. 이렇게 접근하면 더없이 당연한 관점인데, 현실에서는 종종, 아니 아주 많이 페미니즘이 여성 우월주의로 변질되어 쓰이거나, 혹은 실상은 아닌데 그런 것으로 오해되는 것이 안타까워요.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차이점이 분명히 있어요. 저는 남녀 쌍둥이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들의 관계를 보며 세상 남녀들이 저렇게 살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분명히 아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같은 장난감이라도 남자아이는 타고 매달리고 던지는 움직일 수 있는 것을 좋아했고, 여자아이는 귀엽고 부드럽고 끌어안을 수 있는 것들을 좋아하더군요.

좀 더 크니 여자애는 가만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남자애는 친구들과 어울려 종일 축구를 하거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더군요. 이렇게 다른데, 하지만 신기하게도 둘이 더없이 친해요. 서로 너무 잘 알아서인지,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지점을 찾고, 나름의 균형을 잡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남녀는 사실 서로를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모르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는 혐오로 이어져 그다음부터는 서로 상종조차 하기 싫어하게 되잖아요. 엄마 생물학에서는 임신과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경험에서 제가 겪은 것에 과학적 근거를 추가하며 겪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정보와 감정들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과학의 기반이 아는 것이잖아요. 남녀가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나쁜 결과만을 가져와요. 우린 서로 없이 살아갈 수 없어요. 다만, 우리는 너무 달라요. 다르니까 알아보고, 얼마나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어떻게 그 차이를 좁혀 나갈 수 있는지 별로 얘기하지 않아요. 서로 비난하거나 하소연만 하지 말고, 진짜 이야기를 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서로 알아 가게요.

 

SB: 그런데 사람들은 조그마한 차이만 가지고도 차별을 만들어 내죠.

 

이은희: 우리가 항상 강조하는 게 그거잖아요.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하자.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차이가 차별로 되게 쉽게 이어지는 지점들이 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아이가 있어요. 이 아이가 갑자기 아파요. 혹은 장애가 있어요. 그럼 누가 이 아이를 케어해야 하잖아요. 누가 해야 할까요?

저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아이와의 애착도가 높으니까. 그리고 제가 아이를 전담해서 케어했어요. 제 선택이었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아이가 아프면 당연히 엄마가 봐야지, 혹은 학교에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엄마에게 먼저 전화해야지 하는 풍조가 있어요. 이게 쭉 나아가면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의 피해자는 주로 여성일 수밖에 없게 되고, 학교에서 아이가 일으키는 문제의 일차적 책임자도 엄마일 수밖에 없게 되는 식으로 차별 문화가 자리 잡게 되죠. ‘맘충같은 혐오 표현이 이런 문화에서 생기는 거죠. 아빠는 잠깐 아기 안고 있기만 해도 좋은 아빠예요. ‘파파충같은 표현도 없죠. 아이에 대한 애착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생물학적 차이가 차별 문화로 이어지는 거죠.
페미니즘은 이걸 막아야 해요. 생물학적 차이가 문화적 차별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야 하죠. 그러려면 페미니즘도 생물학과 손을 잡아야 해요.

 

SB: 만국의 페미니스트여, 엄마 생물학을 읽어라! (웃음)

 

이은희: 아뇨. 페미니스트만이 아니라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특히 아빠와 남편과 남자 친구와 함께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은희: 같이 읽고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지만 최소한 모르고 범하는 무례, 미처 알지 못해서 저지르는 잘못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굉장히 많거든요, 모르고 잘못하는 사람들. 근데 알면 의도적으로 잘못 저지르기 되게 어려워지는 게 사람이잖아요. 같이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엄마 생물학에 페미니즘이라고 느끼실 부분은 별로 없을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저는 누가, 어느 한쪽이 우월해지는 게 결코 좋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기울어지면 언젠가 또 뒤집히거든요. 이걸 어떻게든 맞춰 보자는 것, 그런데 그동안 서로 보지 못했던 부분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걸 서로 한번 같이 나눠 보자는 게 제 얘기의 핵심이겠죠.

SB: 남녀 차별이나 남녀 갈등 같은 문제를 해결할 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데, 그 커뮤니케이션의 공통 언어로 과학을 삼으면 좋겠다는 말씀이군요. 과학 만세!

 

 

‘엄마’ 이후의 삶에 대해 설명하는 이은희. ⓒ ㈜사이언스북스.

 

 

엄마 이후의 생물학

 

SB: 좀 방향이 다른 질문을 해 보죠. 선생님은 두 번의 출산 경험이 있습니다. 임신과 출산, 육아 이후에 몸과 경력을 회복하는 방법을 터득하셨는지요? ‘엄마이후의 삶을 더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은희: 전 아기 낳고 일단 정신적으로는 건강해진 것 같긴 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세상 모든 아이들이 다 귀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고, 사람들을 대하는 시선이 좀 더 부드러워진 건 사실이거든요. 그리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어도 아이가 있으니 바닥까지 절망하거나 우울해하진 않게 되더라고요. 애초에 상당히 긍정적인 성격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더 긍정적으로 된 거 같아요.

몸 건강도 마찬가지죠.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젊어서 그랬기도 했겠지만 건강에 큰 신경은 쓰지 않고 살았어요. 아이를 낳고 나자, 나이도 들고 이런저런 후유증으로 인해 몸이 아프긴 하더군요. 가장 힘들었던 건 허리 통증이었어요. 쌍둥이를 만삭까지 품고 있다 보니 아이들 둘 다 정상 체중으로 태어났고, 그 바람에 장기와 뼈가 눌려서 디스크가 다 튀어나왔어요.

아기 낳고 허리가 아파서 한동안 고생했는데, 약물 치료와 도수 치료를 받던 중에 누가 필라테스를 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3년 정도 지나니까 허리가 전혀 안 아파졌고, 그 후로는 여태까지 허리 통증은 없어요. 직업 특성상 걷거나 움직이기보다는, 앉아 있거나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많은데 허리가 안 좋았으면 아마 더 일하기 힘들었을 거 같아요.

이후로 열심히 운동하고 있고요, 얼마 전부터는 PT(personal training)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체력이 붙으니까 육아도 좀 덜 힘들고 아이들의 미운 짓도 덜 미워지게 되나 봐요.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나이 드니 이해되더군요. 그리고 내 몸을 남과 나눠 쓰는 경험을 한 번 하게 되면, 건강을 안 챙길 수 없게 되어요. 내 몸이 더 이상 나 혼자 것만은 아니니까요.

 

SB: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코어 강화군요. (웃음) 그런데 커리어는요?

 

이은희: 커리어는, 참 힘들어요. 현실적으로 육아와 커리어를 병행한다는 것은요. 이 지점은 사회가 책임져 주어야 하는데, 그래서 저는 이걸 공동체로 해결했던 것 같아요. 육아는 할머니와 가정 보육 교사와 어린이집과 시간제 베이비시터로, 가사는 가사 도우미로, 아이들의 케어와 활동은 주변 엄마들과의 커뮤니티에서 등등요. 이런 공동체 문화가 반드시 필요해요.

 

SB: 아이를 함께 키우는 공동체 문화 이야기하니까, 이 책에 나오는 할머니 가설문제가 생각나는군요. 그리고 할머니라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는 완경 또는 폐경 이후의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잖아요. 엄마가 된 후 경험하는 생물학적 변화는 완경과 어떤 관련이 있나 하는 문제도 한번 다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의 갱년기 증상이나 신체 변화에 차이가 있을까요? ‘엄마 생물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엄마로서 겪는 변화가 완경을 맞이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완경 이후에도 여성의 삶이 활기차고 의미 있게 지속될 수 있는 생물학적, 심리적 팁이 있다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완경을 삶의 마지막 챕터처럼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과학적으로 보면 완경 이후의 삶이 어떻게 더 건강하고 활기차게 이어질 수 있을까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더 나은 50, 60를 준비하는 방법이 있다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은희: 사실 월경이라는 것이 한 여성의 인생에서 3분의 1을 차지하는 시간 동안 일어나는 이벤트라서 여성의 인생에서 이걸 떼어놓고 생각하기는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평균 수명이 보통 80을 넘어가는 요즘 여성들은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월경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죠.
그래서 그 월경을 하거나 안 하거나 하는 데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시는 분들에게 월경은 하거나 안 하거나가 큰 의미가 없거든요. 어차피 아이를 안 낳을 건데 오히려 귀찮기만 한 일이 될 수가 있죠. 이 월경이라는 게 그냥 우리가 살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일 뿐이죠. 그러니까 배고프면 배가 고파지는 거나 낮에 열심히 일하면 밤에 졸리거나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잠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그때부터 무슨 무슨 기다 하면서 법석 떨지 않잖아요.

물론, 월경이 끝나고 나면 호르몬 분비 체계가 굉장히 극심하게 변하니까 그거에 따른 일시적인 변화는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게 정말 힘들면 호르몬 대체 요법 하면 되는 거고 아니면은 뭔가 다른 방법들도 요즘은 굉장히 많잖아요.
그래서 사실 저는 월경이라는 것 자체를 여성의 삶과 너무 깊게 연관시키는 게 오히려 사회 문화적인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너는 이제 생식이 불가능하니까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됐어.”라고 사람을 제한시킨다는 느낌이 좀 들거든요. 게다가 요즘처럼 스스로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 여성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이게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다만 이제 미묘하게도 월경이 끝나는 시점이 우리 몸이 급속하게 노화되는 시점이랑 맞물리잖아요. 주변에 제 나이 또래 분들도, 꼭 여성 분들 아니라고 하더라도 남성 분들도 이 나이쯤 되면 뭔가 좀 건강상에 문제가 생기시더라고요. 심장 질환이라든가 당뇨라든가 고혈압이라든가. 그래서 월경이 끝나는 것도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겪는 변화 중 하나라고, 자연스러운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 같아요.

중년기라는 게 참 약간 좀 애매한 것 같아요. 제가 이제 딱 그 시기에 들어섰는데 더 이상 젊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정말 늙었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는 그런 시기거든요. 월경이 끝났는가 않았는가에 집착하기보다는 앞으로의 삶을 더 충실하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듭니다.

 

SB: 그러니까 이 책에서도 완경 또는 폐경 문제를 다루시면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부부 관계가 좋을수록 여성의 갱년기가 늦게 오고 그것도 굉장히 스무스하게 넘어간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시기도 했잖아요. 그러니까 실제로 중요한 건 어떻게 살고 있느냐지, 월경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냐는 말씀이신 거죠.

이은희: 그리고 저는 이제 갑작스럽게 건강상의 문제로 이제 수술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월경을 안 하게 되었는데요, 상실감을 느끼기보다는 홀가분함을 더 느끼는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부모님 연세의 중년 부인들이 넌 아직도 월경 하냐? 너 젊어서 좋겠다.” 이렇게 얘기하셨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저보다 조금 위의 언니들이 넌 아직도 하냐? 귀찮겠다.” 하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안 하니깐 너무 편한 거죠.

사실 사회가 바뀌고 의학 기술이 바뀌면서 이렇게 된 거죠. 예를 들어 예전에는 월경이 끝나면 호르몬 불균형 문제로 중년 여성들이 여러 가지 갱년기 증후군 같은 걸로 고생하고 골다공증도 생기고 해서 나쁘다 그랬는데, 생활이 안정적이고 삶의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건강 관리도 평소에 하고 의학적 치료의 도움도 받으니 이런 게 별로 없다고 해요.

월경 말고도 중년기라는 시기는 고민할 게 많죠. 이중고에 시달린다고 하죠. 편찮으신 부모님도 케어해야 하고, 아이들 육아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이들 취직 문제나 결혼 문제도 남았죠. 게다가 내 몸도 더 이상 젊지 않고.

그런 의미에서 완경’, ‘폐경논쟁도 좀 아쉬움이 많죠.

 

SB: , 알겠습니다. 선생님 이제 마지막 질문으로, 혹시 아빠 생물학은 가능할까요?

이은희: 가능하긴 하겠죠. 아마 그건 아빠랑 같이 써야 할 것 같아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은 다르잖아요. 저도 남편 얘기는 듣고 쓸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기존의 생물학 책들이 다 아빠 생물학아니었나요? (웃음)

 

SB: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긴 시간 감사합니다.

 

 

책으로 읽은 생물학가 몸으로 체험한 생물학을 융합한 이은희의 『엄마 생물학』. ⓒ ㈜사이언스북스.

 


이은희

과학 저술가. 필명 하리하라.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동 대학원에서 신경 생리학을 전공했다. 고려 대학교에서 과학 언론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졸업 후 신약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3년간 근무하다가 블로그에 연재하던 글을 모아 2002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를 출간했다. 이후 다수의 하리하라 과학 시리즈를 출간하며 본격적인 저술 작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과학책 방 갈다의 이사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일한다. 최근에는 미래를 읽다 과학 이슈시리즈와 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등을 저술했다. 21회 한국 과학 기술 도서상 저술 부문을 수상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엄마 생물학』

하리하라 이은희 최신 과학 에세이

 

 

『빅 히스토리』

138억 년의 역사를 한 권으로 옮긴 紙上 박물관

 

 

『어머니의 탄생』

세상 모든 어머니는 기업가적 제왕이자, 정치가, 전략가이다!

 

 

『호르몬 찬가』

다윈주의 페미니즘의 새로운 패러다임

 

 

『송기원의 생명 공부』

17가지 질문으로 푸는 생명 과학 입문

 

 

『웃음이 닮았다』

우생학, 인종주의, 성차별로 얼룩진 유전학의 빛과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