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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그런 거잖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자연스럽다는 말』 이수지 편 ① 본문
우리는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설득할 때, 너무도 자주 ‘자연스럽게’라는 말을 꺼냅니다. “자연이 좋다.”, “자연스러운 관계가 편하다.”, “자연스러운 표정이 예쁘다.”....... 일상에서는 대체로 호의적인 뜻으로 쓰는 이 말이 논쟁의 장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확고한 판결문처럼 변합니다. “원래 그런 거잖아.”, “자연의 질서니까.”. “본능이니까.” 말하는 사람은 가벼운 확인처럼 던졌다고 느끼는데, 듣는 사람에게는 ‘설명’이 아니라 ‘끝내기’가 되는 순간이 생기죠.
이수지 박사의 『자연스럽다는 말』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자연은 정말 우리 질문의 정답을 쥐고 있는가? 우리가 자연을 불러오는 방식에는 어떤 기대와 편향이 섞여 있는가? 그리고 그 말이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다르게 보이게 만드는가? 책이 쌓아 올린 질문의 궤적을 따라, 이번 인터뷰에서는 이수지 박사와 함께 ‘자연스러움’이라는 말의 안쪽을 한 겹씩 벗겨 보려 합니다. 지금부터 같이 들어가 보시죠.

정의하려는 욕심을 내려놓기
사이언스북스(이후 SB): 박사님께서는 이 책을 거의 10년 가까이 준비해 오셨고, 출간에 앞서 《가톨릭 평론》이라는 잡지에 연재되는 형태로 글이 축적되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질문이 같은 자리에서 머문 게 아니라 여러 번 업데이트되었을 텐데요. (1) 바뀐 것 한 가지, (2) 끝까지 안 바뀐 것 한 가지, 그리고 (3) 가장 중점을 두었던 지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수지: 처음부터 “책을 쓰겠다.”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 온 것은 아닙니다. 박사 과정 때부터 하나 둘씩 모인 생각들이 일상에서 들려오는 말들과 만나면서 메모처럼 쌓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 메모들이 유기적으로 한 편 한 편의 원고로 수렴하더군요. 책은 그 정리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바뀐 것을 하나 꼽자면, ‘자연’을 정의하려는 생각이 점점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자연을 끝내 정의할 수 없을 거라는 – 또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는 – 생각은 원고를 모으고 다듬는 작업 후반부에 이르러 명확해졌습니다. 반대로 끝까지 바뀌지 않은 것은 “자연스럽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점을 둔 지점은 ‘자연’과 ‘스럽다’가 결합할 때 벌어지는 연결의 방식을 독자에게 친숙한 예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자연”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어떤 문장은 설명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명령이 되고, 어떤 판단은 중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배제의 기준이 되지요. 저는 그 연결의 고리를 끊어내기보다, 고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일상의 대화에서 출발한 독자상
SB: 연재 글과 달리 단행본은 훨씬 더 다양한 독자를 한 번에 만나게 됩니다. 박사님은 이 책의 ‘독자’를 마음속에 어떻게 그리셨나요? ‘이 독자만큼은 꼭 설득하고 싶었다/혹은 오해 없이 데려가고 싶었다.’라는 독자상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고, 그 독자상을 기준으로 문장 톤이나 설명 방식에서 의식적으로 선택하거나 바꾼 부분이 있었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이수지: 자연스럽다는 말 혹은 그를 변주하는 어법은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기 때문에, 저는 가족이나 친구, 동료와 나누는 일상의 대화를 상상하며, 습관적으로 “자연스러우니까”를 말하는 사람을 가장 또렷한 독자로 떠올리고 글을 썼습니다.
서로가 마음을 주고받는 대화는 쉽지 않습니다. 대화라고 하지만 일방향일 때도 많으므로, 제가 쓰는 글이 끝내 독백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상상’할 수 밖에 없었지요.) 각 원고에서 다루는 주제에 대해 최대한 여러 각도에서 질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상상의 독자가 그 질문에 뭐라고 답을 할까 생각해 보고 다시 거기에 답해 보는 식으로 글을 써 보았습니다.

불편함을 남기는 방식
SB: 원고를 쓰다 보면 “좋은 이야기지만 책에는 넣지 말자.” 혹은 “지금 넣으면 오해를 부를 수 있다.” 같은 결정을 하게 되잖아요. 박사님이 원고를 저희에게 주시기 전에 사례나 표현을 덜어낸 적이 있다면, 그때 가장 크게 작동한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사실성, 윤리, 독자 안전, 맥락의 복잡성, 개인/집단에 대한 영향 등) 그리고 ‘빼는 대신’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남겨두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수지: 완전히 “덜어낸”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다만 마지막까지 고민한 대목은 분명히 있었는데, 9장 「(안)낳는 것이 옳다는 말 」에서 우생학을 다룬 부분입니다. 우생학은 단지 과거의 일탈이 아니라, 지금도 “선한 의도”라는 외피를 두른 채 되돌아오곤 하니까요.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했을 때 민감한 주제이더라도 다루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빼는 대신 우생학이 등장하는 지점을 장의 한가운데에 두고 ‘인구가 너무 많다/너무 적다’는 말이 얼마나 쉽게 “누가 더 낳아야 하는가” 같은 선별의 언어로 이어지는지, 그 연결이 보이도록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민감함을 더 날 세워 드러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독자 쪽으로 한 걸음 더
SB: 독일에서 연구 생활을 하시면서 이 책을 한국어로 쓰셨는데요. 그 환경에서 한국어로 글을 쓸 때 특히 와닿았던 점이나 의식하게 된 변화가 있었을까요? 예를 들어 단어 선택, 문장 리듬, 설명 방식, 독자와의 거리감 같은 것 중에서 “이건 신경 써야 하겠구나.”라고 느낀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수지: 연구는 대부분 영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연구소 밖 일상에서는 독일어에 둘러싸여 지내고 있기 때문에, 책 작업을 통해 모국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다는 의미가 컸습니다. 그래서 작업 초기에는 구어체를 이용해 대화하듯 말하는 문장을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존댓말이 발달한 한국어에서 2인칭 대명사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독자에 대한 태도가 다르게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가능한) 중성적인 어미에 기반한 문어체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대신 지식 전달의 객관적 언어가 아니라, 화자인 저를 적극 드러내 독자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어법을 통해 거리감을 좁히려고 노력했습니다.
AI 시대의 ‘자연스러움’이란?
SB: 요즘은 글쓰기나 번역뿐 아니라, 상담, 고객 응대, 교육 같은 장면에서도 인공 지능(AI)이 빠르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AI 번역, 이미지, 대화에서 ‘더 자연스럽게’를 품질 기준으로 쓰는데요. 박사님은 기계가 만드는 ‘자연스러움’을 어떤 개념으로 이해하시나요?
이수지: 개미가 만드는 집이 개미의 신체와 생태에 맞춰 만들어지듯, AI를 비롯한 기계들은 궁극적으로는 사용자인 인간의 기대를 반영하고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디자인됩니다.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서요. 그래서 기계가 만드는 “자연스러움”은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확률적 기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많이 본 것처럼 보이는가?”, “낯설지 않게 이어지는가?”, “사용자에게 거슬리지 않고 받아들여지는가?” 같은 기준이지요. 그 점을 기억하고 또 AI를 훈련하는 데 사용되는 정보에 내재한 편견이나 한계 또한 우리의 것임을 기억한다면, 기계로부터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은 정녕 놀라울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AI의 자연스러움을 무조건 경계하거나 찬양하기보다 그것을 거울로 삼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기계가 만든 자연스러움은 결국 인간이 설계한 자연스러움입니다. 그 사실을 또렷이 기억하는 순간 우리는 기술을 더 잘 쓰는 동시에 우리 자신을 더 잘 읽게 될 것입니다.

이수지
서울 대학교 아동 가족 학과와 인류학과에서 학사를, 같은 대학교 대학원 인류학과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고 뉴욕 대학교(NYU)에서 생물 인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독일 막스 플랑크 인구학 연구소에서 현대 인류의 출산 및 생식 행동을 연구하고 있다. 2026년부터 막스 플랑크 인구학 연구소 생식 노화(Reproductive Ageing) 독립 연구단을 이끈다. 미국 《과학 국립원 회보》, 《영국 왕립 협회 회보》, 《진화 의학 및 공중 보건》, 《동물 생태학 저널》 등에 논문을 다수 기고했다. 저서로는 『휴먼 디자인』(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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