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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우주를 이해하고자 만든 가장 찬란한 지도:『주기율표』 함께 읽기 본문
영화 「프로젝트 헤일 메리」 속 라이언 고슬링이 우주선에서 입고 있던 주기율표 티셔츠를 눈치채셨나요? 과학을, 화학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에 깨알같이 숫자와 기호가 채워진 네모칸에는 인간의 호기심, 실패를 견디는 인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끝내 이해하고자 하는 집념이 담겨 있답니다. 인간이 우주의 물질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위험하고 집요하게 싸워 왔는지를 보여 주는 책 『주기율표』에 대한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장님의 리뷰를 함께 읽어 보시겠습니다.
물질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아마 주기율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주기율표는 많은 이에게 여전히 시험을 위해 잠깐 암기해야 하는 차가운 도표로 남아 있다. 원소 기호와 원자 번호가 빽빽하고 이름은 낯설다. 비록 배열은 질서 정연하지만 쉽게 마음이 열리지는 않는다. 우리는 주기율표를 배우면서도 정작 그것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거의 만나지 못한다. 『주기율표』는 바로 그 지점을 뒤집는다. 이 책은 주기율표를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서사로 되돌려 놓는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원소를 단순한 정보의 목록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소 하나하나는 그저 자연에 이미 존재하던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마주한 질문이고 때로는 실패와 착오를 거듭하며 가까스로 손에 넣은 답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주기율표는 정리된 결과가 아니라 발견의 현장이 된다. 고대인들이 금속을 다루던 시대에서 출발해 연금술이 품었던 욕망과 환상, 근대 화학이 세운 방법과 질서 그리고 핵물리학과 입자 과학이 열어젖힌 현대의 세계까지 이 책은 원소의 발견사를 따라가며 화학의 역사를 살아 있는 이야기로 풀어낸다.

원서의 제목 “The Periodic Table: From Alchemy to the Nuclear Age”는 이 책의 성격을 정확하게 보여 준다. 여기에는 연금술사의 실험대도 있고 근대 화학자의 정밀한 저울도 있으며 현대 과학의 거대한 가속기도 있다. 화학은 금을 만들고 싶다는 연금술의 욕망으로 시작되었다. 더 귀한 금속을 얻고 물질의 비밀을 손에 넣고 싶었다. 그 욕망은 비과학적인 착각과 미신도 낳았지만 동시에 물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끝까지 묻는 집요함도 키워 냈다. 이 책은 바로 그 연속성을 보여 준다. 연금술의 꿈은 실패했지만 결국 물질의 본성을 밝히는 과학으로 이어졌다. 금을 만들겠다는 욕망은 원소를 구분하고 분리하고 성질을 이해하고 나아가 새로운 원소를 합성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이 흐름을 읽고 나면 독자는 주기율표를 단지 실험실의 도표가 아니라 인간 사고의 역사로 보게 된다.
이 책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원소를 ‘발견 순서’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 배치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보통 주기율표를 세로줄과 가로줄로 본다.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 역사의 시간을 불어넣는다. 고대부터 알려졌던 금, 은, 철, 구리 같은 친숙한 금속들이 먼저 등장하고, 이후 인류의 관찰과 실험이 정교해지면서 점점 더 낯선 원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원소는 광석 속에서 어렵게 분리되었고, 어떤 원소는 반응성이 너무 강해 발견 과정 자체가 위험했다. 어떤 원소는 존재를 예측한 뒤에야 비로소 실험으로 확인되었고, 어떤 원소는 자연 속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이 책은 원소 하나하나를 과학적 사실과 역사적 드라마가 만나는 자리로 만든다.

독자들이 특히 매력을 느낄 부분은 각 원소에 얽힌 발견담이다. 흔히 과학에는 정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의 과학사는 정답으로 곧장 가는 길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위험한 물질을 다루다 건강을 잃었고, 누군가는 수없이 실패한 끝에 마침내 새로운 원소를 분리해 냈다. 어떤 원소는 아주 짧은 순간만 존재하고 곧 사라지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실험실의 첨단 기술 속에서 겨우 확인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장면들을 놓치지 않는다. 덕분에 독자는 화학을 죽은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도전과 집념이 쌓인 결과로 이해하게 된다.
DK 책답게 시각 자료의 힘도 대단하다. 이 책은 글만으로 원소를 설명하지 않는다. 실제 물질의 모습, 색과 질감, 구조와 용도, 원자 세계를 보여 주는 인포그래픽을 통해 독자가 눈으로 먼저 이해하게 만든다. 보이지 않는 원자의 세계는 대개 추상적으로 느껴지지만, 이 책에서는 놀랍도록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왜 어떤 금속은 유난히 잘 늘어나는지, 왜 어떤 물질은 강한 색을 띠는지, 왜 어떤 원소는 반응성이 커서 다루기 어려운지 같은 질문들을 이미지와 함께 설명하기 때문에 독자는 개념을 억지로 외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이 책은 원소를 일상과 연결해 준다. 원소는 실험실 안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사용하는 금속, 전자 제품, 의약품, 배터리, 건축 자재, 빛과 색을 만드는 재료들까지 현대 문명은 원소의 성질 위에 세워져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화학은 먼 학문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설명하는 언어임을 깨닫게 된다. 교사에게는 수업 자료로서, 부모에게는 자녀와 함께 읽을 교양서로서, 학생에게는 과학의 문을 여는 첫 책으로서 매우 훌륭하다. 한 번 훑어보는 것으로 끝나는 책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다시 펼쳐 보고 싶은 책이라는 점도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주기율표를 보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어 놓는다. 더 이상 원소 기호를 외우는 일에 머물지 않게 한다. 대신 독자는 각 칸마다 한 편의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호기심, 실패를 견디는 인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끝내 이해하고자 하는 집념이 있다. 『주기율표』는 화학책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탐구심에 대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단지 원소를 배우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세계를 읽어 왔는지를 배우는 일이 된다.
과학책을 고를 때 우리는 종종 두 가지를 바란다. 정확해야 하고 동시에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다. 내용은 탄탄하고 구성은 매력적이며 시각 자료는 뛰어나다. 과학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지식을 넓혀 주는 책이고, 과학이 아직 낯선 독자에게는 두려움을 호기심으로 바꾸어 주는 책이다. 독자, 교사, 부모, 학생 모두에게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주기율표를 처음으로 읽게 만드는 책, 원소를 통해 인류의 지적 모험을 보여 주는 책, 그리고 과학이 왜 아름다운지 다시 느끼게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주기율표는 더 이상 교실 벽에 붙은 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려고 써 내려간 가장 찬란한 이야기의 지도다.
이정모
과학 저술가, 펭귄 각종 과학관장. 연세 대학교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대문 자연사 박물관장, 서울 시립 과학관장, 국립 과천 과학관장을 지냈다. 2019년 과학의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 기술 훈장 진보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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