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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심리 극장 (2관) 구애의 정석 : 썸남, 썸녀를 만나다.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한밤의 심리 극장

한밤의 심리 극장 (2관) 구애의 정석 : 썸남, 썸녀를 만나다.

Editor! 2012.11.21 15:00

11월부터 사이언스북스 블로그에서 새로운 연재물이 시작됩니다. 입자물리학과 진화심리학, 진화경제학 등 최근 들어 과학계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크나큰 관심을 끌고 있는 새로운 학문 분야들이 전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우리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쉽게 소개하는 기획 코너들을 신설하여, 순차적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 타자는 진화심리학으로 드라마와 영화, 소설, 그림 등을 들여다봄으로써 인간 본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서려는 시도를 담은 <한밤의 심리 극장>입니다. 앞으로 연재될 <한밤의 심리 극장>에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한밤의 심리 극장

by 홍승효


한밤의 심리 극장 (0관) / 

한밤의 심리 극장 소년 (1관) 질투는 나이 들지 않는다 에 이어...


제2관 구애의 정석 : 썸썸녀를 만나다.

-- 리얼 연애다큐

 

매일 아침 나는 거울 앞에서 짝짓기를 한다.

오늘도 옷장촌은 심란하다.

이번 기수의 비주얼 담당 바지 1. 특유의 눈썰미를 발휘해 귀여운 외모의 셔츠 3호에게 재빨리 러브콜을 보낸다. 셔츠 3호도 바지 1호의 관심이 싫지는 않은 눈치다. 하지만 편안한 매력의 바지 5호에게 왠지 마음이 흔들린다.

셔츠 2호와 바지 2호는 원래 한 쌍이었으나 최근 결별하고 새로운 짝을 찾고 있다. 서로가 너무 비슷해서 싫다나. 셔츠 2호는 와일드한 매력의 바지 3호를 일찌감치 찜해두고 접근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바지 2호는 셔츠 2호만 아니면 다 괜찮다는 주의다. 여기저기 추파를 던지며 입질이 오길 기다린다.

단아한 매력의 셔츠 4. 첫인상 선택에서 1호를 제외한 모든 바지들의 몰표를 받았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심드렁하니 영 반응이 없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없는 건지 신중하게 상대를 고르는 중인지 아니면 지능적으로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도통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약속 시간이 임박할수록 옷가지들의 애정 전쟁은 가속화된다. 소재와 색채, 디자인과 패턴, 기능성과 내구성, 편안함과 T.P.O에 이르기까지 오늘 하루를 함께할 짝을 고르기 위해 적극적으로 상대를 탐색하고 접근한다. 몇 번의 데이트와 고백, 눈물과 실망의 된서리가 내린 뒤 바지 1호와 셔츠 3호가 이번 기수의 첫 커플로 떠오른다. 외모 매칭율 100%, 실로 선남 선녀의 만남이지만 알고 보면 영 실속 없는 관계다. 급작스런 11월의 추위를 견뎌내기엔 둘 다 너무 가볍다. 커플은 깨어지고 옷장촌은 다시 혼란에 빠진다. 짝짓기 경쟁은 치열하고 옷가지들은 서로를 저울질하기에 여념이 없다.

 

짝짓기는 어렵다. 태어날 때부터 내 짝이 딱 정해져 있으면 좋으련만.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만나 함께 어울리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옷 한 벌 고르는 데에도 이렇게 생각할 게 많은데 평생을 같이 할 배우자는 어떠랴. 빈틈없이 꽉 차 있지만 막상 입을 옷은 없는 옷장 속처럼 세상의 반이 남자, 나머지 반이 여자라지만 그 중에 내 사람은 정작 찾을 길이 막막하다. 그래서인지 짝짓기 프로그램은 끊이지 않고 존재했다. 미팅 프로그램의 대모 격인 사랑의 스튜디오에서부터 수많은 청춘스타들을 탄생시킨 장미의 전쟁산장미팅, 박경림이 훈남 남편을 만난 것으로 유명한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까지 공개 짝짓기 프로그램은 항상 있었고 많은 인기를 누렸다. 리얼 연애 다큐를 표방한 역시 이러한 짝짓기 프로그램 중 하나다. 다만 이전까지의 짝짓기 프로그램과 다른 게 있다면 일주일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제한된 공간에서 한정된 이성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에 대해 탐색할 시간이 더 많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또 회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단기적인 짝, 즉 일시적인 데이트 상대보다는 장기적인 배우자를 찾는 데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단칼에 승부를 보는 미팅이나 맞선보다 역동적이고 다채로우며 어떤 면에서는 더욱 신중하다.

실제로 을 보다 보면 이전의 짝짓기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이 많이 느껴진다. TV를 통해 얼굴이 팔리는 불이익을 감수하고 나온 만큼 다들 원하는 짝을 찾기 위해 적극적이다. 여성 출연자들에게서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식의 수동적인 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지금 대놓고 짝을 찾고 있는 중이다. 애정촌은 오직 짝을 찾기 위한 공간이며 일주일은 그 미션을 완수하기 위한 시간이다. 이성에 눈 뜬 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디 한두 번 썸싱을 겪었겠냐만 아침에 일어나 잠이 들 때까지 이렇게 노골적으로 삶이 곧 구애요 작업인 시간은 드물었을 것이다. 그런 만큼 남녀가 상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좋은 점수를 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또 짝짓기의 과정들을 하나하나 제대로 밟아간다.

 

영주의 생에 대한 벽지 : 연애 장면(la tenture de la vie Seigneuriale : Scènes galantes), 

16세기경, 작자미상, 클뤼니 중세 박물관 소장

 

진화의 역사에서 좋은 짝을 고르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몇 번 만나고 말 상대라면 몰라도 평생을, 혹은 상당 기간을 함께할 사람이라면 특히 더 신중해야 했다. 짝은 자식의 유전자의 절반을 책임지며 자신과 자식의 생존과 번식에 영향을 미친다. 생식력이 있는 배우자를 만나야 자손을 얻는 기쁨을 느낄 수 있으며 상대가 우수한 유전자에 풍부한 자원, 부모로서의 자질까지 제대로 갖췄다면 자식을 훌륭히 키워내 많은 후손을 남기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 동물 사회의 짝짓기는 흔히 암컷선택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짝짓기 시 보다 귀중한 자원을 투자하는 성별(대개는 암컷)이 존재하며 그 성별의 선택을 받기 위해 반대 성별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 수컷은 구애하고 암컷은 선택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계를 위한 짝 고르기는 상호선택인 경우가 많다. 장기적인 관계를 맺는 동안 양성은 모두 다른 배우자를 만날 기회와 시간, 에너지를 상당 부분 포기한다. 짝짓기에서 양성이 짊어지는 부담감이 서로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비슷하기에 선택권도 서로 나눠서 쥐게 된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여생을 함께할지도 모르는 상대이므로 꼼꼼히 따져보고 재차 확인한 뒤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흔히들 선호되는 배우자의 조건으로 남자는 돈, 여자는 미모를 꼽는다. ‘미모는 중요한 조건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유일한 조건일 수는 없다. 살아가려면 미모와 돈 이외에도 많은 것이 필요하다. 게다가 배우자에게 바라는 것은 단지 생존만을 위한 자질이 아니다. 배우자의 자질은 자식의 생존뿐만 아니라 자식의 매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식이 제대로 살아남아 널리 번성하려면 배우자의 나이, 건강, 체력, 지능, 창의성, 유전병력, 인간성, 사회적인 스킬, 유머감각 등 많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 인간은 이러한 요소들을 두루 고려하여 짝을 선택하도록 진화했다.

상대가 가진 자질들을 제대로 식별하기란 쉽지 않다.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정보들도 있지만 어느 정도 상호 작용이 있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정보들도 있다. 정보의 탐색과 수집은 성공적인 짝짓기를 위한 필수 과정이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 흔히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고 표현한다. 그 사람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겉으로 보이는 그 모습이 맞는지, 나와 평생을 함께할 만한 사람인지 제대로 알아보고 판단하고 싶다는 얘기다. 더러 첫눈에 반해 그대로 결혼에 골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길든 짧든 상대를 탐색하는 시간을 가진다. 만약 이때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결혼생활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과거 정보 탐색과 수집에 서툴렀던 선조들은 뛰어났던 선조들보다 짝짓기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사람들은 짝을 고를 때 정확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하며 수집한 정보에 따라 상대에 대한 마음이 변화한다.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이 첫 인상 선택을 먼저 한 뒤 자기소개를 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상대에 대한 정보들이 공개될수록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뒤바뀌는지가 흥미를 자아내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점을 제작진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첫인상 선택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가능하다. 여자들은 대개 수더분한 인상의 남자들을 고르며, 남자들은 눈에 확 띄는 미모의 여성을 고른다. 재미있는 일은 자기소개를 하고 난 뒤에 벌어진다. 상대의 나이, 직업, 학력 등 소위 스펙이라는 것을 듣고 나면 상대에 대한 평가가 조금씩 달라진다. 예를 들면, 35회에 등장한 한 남성 출연자는 큰 키에 정우성을 닮은 매끈한 외모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첫인상 선택에서 한 표도 받지 못했다. 좀 놀았을 것 같은, 한 마디로 바람둥이 같은 너무나 잘생긴 부담스러운 외모와 능란한 시선처리가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명문대 출신에 대기업에 다닌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여성들의 평가가 180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첫인상 선택에서 마이너스로 작용했던 부담스런 눈빛도 수수하고 진심어린 것 같다는 의견으로 조심스레 대체되기 시작했다. 결국 5명의 여성 출연자들 모두가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는 해당 기수의 의자왕으로 당당히 등극했다.

많은 시청자들이 여성 출연자들의 이러한 변심을 비난했다. 결국 외모도 스펙도 다 따진 거 아니냐며 속물근성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허나 누가 그녀들에게 돌을 던지랴. 선택이 이루어진 후, 아니 선택이 이루어지는 중간 중간 보여지는 그녀들의 속내는 결혼적령기 여성들의 일반적인 심리인 것을. 오직 한 가지만 보고 결혼 상대를 고르겠다는 사람이 오히려 더 드물고 특별한 경우이지 않을까?

자기소개를 통해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남자들만이 아니다. 여자들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이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어느 대 출신, 무슨 직업 같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스펙만이 아니다. 참가자들은 공개적인 말하기를 통해 자신감 있는 태도와 재치 있는 말솜씨, 유머와 창의성뿐만 아니라 숨겨진 마음씀씀이까지 드러낼 수 있다. 그들은 이 기회를 통해 예쁘지만 좀 멍청해 보였는데 자기소개를 하는 걸 보니 재치가 넘치고 창의적이기까지 하군이나 차가워 보였는데 마음이 따뜻하고 소탈한 것 같다같은 반전의 매력을 줄 수 있다. 또 공개석상에서 뛰어난 노래실력과 숨겨진 몸매 등 새로운 매력을 어필할 수도 있다. 애정촌 19기에서는 자기 소개 시 앳된 외모의 여성이 외투를 벗고 타이트한 원피스 차림으로 등장하여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어필, 베이글녀라 불리며 해당 기수의 퀸카로 떠올랐다. 의 자기소개는 동물들의 집단구혼 장소인 렉(lek)을 떠올리게 한다. 렉은 수컷들이 노래, , 시각 장식으로 암컷들을 유혹하기 위해 모이는 대규모 회합을 말한다. 차이가 있다면 애정촌의 자기소개는 남녀 모두가 자신을 어필하기위해 애를 쓰는 공공의 구애 장소라는 점이다. 어찌 보면 자기소개뿐 아니라 애정촌 전체가 남녀의 짝고르기를 위한 하나의 회합 장소, 현대판 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짝고르기에 있어 첫인상 선택과 자기소개는 단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이후 계속되는 도시락 선택과 랜덤 데이트, 공동 식사와 데이트권 쟁취를 위한 게임 등은 양성이 서로를 탐색하고 어필할 수 있는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해 준다. 처음 사랑 끝까지를 외치며 한 이성을 향한 남다른 뚝심을 보여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다수의 참가자들은 서로 마음이 어느 정도 통했고 친해진 상대가 있을지라도 복수의 짝 후보들을 염두에 두고 그 사이를 오가며 지속적인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 그로인해 바람둥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최종 선택에서 제외되는 경우들도 종종 있지만 프로그램의 성격상 복수의 상대를 탐색한다는 것 자체는 남녀 모두에게 있어 어느 정도 용인이 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탐색만 거듭할 수는 없다.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한정적이다. 적당한 선에서 탐색을 멈추고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이는 애정촌에서만 통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최고의 짝을 만나고 싶다고 해도 인생에서 우리는 탐색을 멈추고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을 맞는다. 어딘가 숨어있을 이상형이 애석하지만 사람은 많고 인생은 짧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적의 탐색을 위한 전략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고 한다. 일례로 평생 살아오면서 만난 짝 후보들 중 몇 명(유명한 진화심리학자인 제프리 밀러의 한 다스 법칙에 따르면 12명 정도)을 비교하여 그 중 최선을 택한 뒤, 이후 만나는 사람 중 그보다 낫거나 비슷한 사람을 선택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내 첫사랑 소녀를 닮았어.’라는 말은 속이 훤히 보이는 뻔한 수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만났던 수많은 소녀들 중에서 첫사랑을 줄만큼 가장 멋졌던 그녀가 그의 마음속에 하나의 기준으로 자리 잡아 이후의 만남에도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은 그 첫사랑 소녀와 견줄만한 괜찮은 이성, 그가 오랫동안 찾아 헤맨 운명의 여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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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상대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애정촌 참가자들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여러 명의 짝 후보 중 한 사람으로 마음을 정하고 나면 집중적인 구애 행동이 시작된다. 원하는 이성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인 데이트권을 둘러싼 싸움도 치열해진다. 한 번의 데이트가 상대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원하는 이성을 향해 사람들은 뛰고, 구르며, 물에 빠지고, 서로 뒤엉킨다. 구애를 위해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들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미모와 재력을 과시하는 것 이외에도 사람들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 식사 시 옆자리에 가서 앉거나 대화할 기회를 얻기 위해 별 관심 없는 축구프로를 새벽 늦게까지 같이 보기도 한다. 또 직접 대화를 신청하고, 요리를 해 주거나 깜짝 선물을 준비한다. 급조한 자작시를 낭독하거나 사랑의 세레나데를 들려주며 또 가끔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기도 한다.

구애의 과정은 말 그대로 문화와 예술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치열한 각축전이며 고도의 심리전이자 지능게임이다. 스포츠, 요리, , 음악 등 모든 장르의 예술이 등장하고 짧은 시간에도 순종과 헌신, 대화와 설득, 질투 유발과 밀고 당기기, 가벼운 스킨십 등 다양한 심리 수단들이 동원된다. 진화 심리학자인 제프리 밀러는 인간만의 여러 특징들, 예술과 감성, 창의성과 도덕성, 지능과 언어 발달의 상당 부분이 짝을 고르고 구애하며,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글렌 게어와 함께 엮어낸 짝짓기 지능(Mating Intelligence)’이란 책에서 그는 짝짓기 지능(MI)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짝짓기 지능이란 인간의 짝짓기, 섹슈얼리티, 남녀가 정을 통하고 있는 관계 등에 적용되는 인지 과정을 의미한다. 그는 이 짝짓기 지능으로 인간의 진화를 설명했다. 애정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구애 과정들을 찬찬히 지켜보노라면 제프리 밀러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 생긴다.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 두 남녀는 다양한 요구와 상황설정, 거짓말과 애교, 깜짝 선물과 사탕발림, 갑작스런 약속 취소와 거절 등으로 상대의 마음을 시험한다. 이 영화에서 짝짓기란 말 그대로 고도의 지능게임이다.


정서지능은 자신과 타인의 정서를 인식하고 표현하며, 공감할 줄 알고, 문제 해결을 위해 감정과 기분을 활용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회지능이란 사회성과 밀접한 개념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어울리며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짝짓기 자체가 하나의 인간관계이며 인간 정서의 거의 전 영역에 관여하기 때문에 언뜻 생각해도 짝짓기 지능은 정서지능, 사회지능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만약 정서지능, 사회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약간만 갖춘다면 이성들에게 호감을 얻을 확률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흔히들 남자는 눈 여자는 귀라고 한다. 남자는 시각적인 자극에 약하고 여자는 남자의 멘트에 약하다는 얘기다. 여기서의 멘트가 단순한 사탕발림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절한 때에 알맞은 멘트를 날려주기가 어디 쉬운가. 그럴려면 기본적인 배려와 매너, 상대에 대한 공감과 이해, 상대의 욕구를 파악하고 실현시켜주는 능력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정서지능과 사회지능이다. 에서도 이런 정서지능과 사회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이성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얻는 경우가 많다. 34회에서 남자 2호는 애정촌에서 며칠을 지내고 나자 모든 여성 출연자들의 호감을 얻으며 도시락 선택에서 몰표를 받았다. 그의 외모나 스펙이 다른 남성 출연자들에 비해 월등히 좋았던 것은 아니다. 인기의 비결은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매너에 있었다. 그는 다른 남성 출연자들이 아직 꿈속에 있을 시간 혼자 요리를 하며 모두의 아침을 준비할 만큼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자상하고 가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35기의 한 여성 출연자는 친화력과 대화스킬로 해당 기수의 의자왕이었던 남성 출연자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했다. 다른 여성들이 그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동안, 그녀는 그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처음에는 강한 이미지 때문에 그녀를 별로 탐탁치 않아하던 그도 점차 그녀의 편안한 매력에 마음이 기울었다.

반대로 괜찮은 스펙을 갖추고도 여성과의 상호작용에 서툴러 선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35기의 한 남성 출연자는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공장의 사장으로 운동 능력도 뛰어나고 외모도 그다지 빠지지 않는 편이었다. 게다가 한 여자만을 향해 뚝심있게 다가서는 순정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연애 경력이 전무했던 그는 실제로 여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원하는 이성과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힘들게 얻은 상황에서도 그는 상대를 배려하기 보다 자신의 이야기만 계속 했다. 그런 태도에 상대편 여성은 다소 실망했지만 그는 자신의 장점을 어필했다, 좋은 시간이었다, 잘될 것 같다고 말하며 상대방 감정에 대한 몰이해와 관계 형성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보여주었다.

 

 <영화 「청혼」의 한 장면>

남자 주인공은 제때에 결혼만 하면 유산으로 1억 달러를 상속받을 수 있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여성들이 신부감을 자처하며 그에게 달려든다.


모두가 비슷한 기준으로 상대를 고르고 있다면 짝 선택에 있어서도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매회 어김없이 의자왕이 등장하고 퀸카가 생겨나는 것은 이러한 쏠림 현상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그 퀸카, 킹카의 무리 중 한 명이든, 아니면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에 해당하든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실로 빈익빈, 부익부다. 재산이 많으면 세금이라도 많이 내지 인기가 많다고 세금을 더 내는 것도 아니니…… 쯧쯧쯧, 그저 부족한 자신을 한탄할밖에.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카, 퀸카가 아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짝을 만나 결혼에 이른다는 점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배우자감이란 세상에 없으니까, 사람마다 약간의 취향의 차이라는 것이 존재하니까, 만날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고르다 보니까 등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들은 많다.

생물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동류교배라고 부른다. 동류교배란 표현형이 같은 상대나 상대적인 몸 크기, 순위 등이 매우 유사한 상대 간에 배우 관계가 성립되는 현상 또는 그러한 상대를 좋아하는 현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끼리끼리 만난다는 얘기다. 오래된 부부는 오누이 같이 서로 닮았다고 한다. 살면서 서로 닮아지는 부분도 있지만 처음부터 자기와 어느 정도 닮은 사람을 고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빚어지는 것 같다. 닮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은 어쩐지 근원적인 자기애를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내게는 왠지 희망적인 말로 들린다. 물론 이런 생각에는 아무런 과학적인 근거도 없지만 말이다.

2010년 통계청의 인구 센서스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25~29세 여성 중 80%가 아직 미혼이라고 한다. 남성의 경우는 30~34세 미혼 비율이 무려 60%에 달한다. 결혼적령기의 남녀 절반 이상이 미혼인 셈이다. 하지만 왜 막상 소개팅 한 번 주선하려고 하면 주변에 마땅한 사람이 없는 걸까? 과거보다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자유로워지고 만나는 방법도 한층 다양해졌지만 결혼은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물론 반드시 결혼을 할 필요도 없고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아갈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미혼보다는 비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짝짓기란 아직 해결해야만 하는 중요하고도 어려운 과제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만남을 위한 끊임없는 시도와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과 지혜, 추가적인 자기 개발이 필요하다. 더러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경우처럼 결혼을 위해 목숨마저 걸어야 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발생한다. 이런 경우가 흔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매번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짝짓기에 임했을 것이다. 짝짓기에 실패하여 그동안의 모든 투자와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위험, 이미 짝이 있는 상대에게 접근했다가 그 배우자로부터 상처를 입거나 생명을 잃을지도 모를 위험, 끝끝내 짝짓기에 실패해 후손을 하나도 남기지 못할 위험 등 짝짓기에 따르는 위험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위험을 피해가기 위해 선조들은 몸부림을 쳤으리라. 그 고뇌의 과정에서 다양한 예술과 문화가 꽃피고, 언어와 지능이 발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결혼을 원하는 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혹은 결혼은 별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은 쪽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드는 짝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연애가 고도의 지능게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진심은 통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제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진심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다. 투란도트의 칼라프 왕자처럼 목숨을 걸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원하는 사람을 얻으려면 많은 노력과 수고를 들여야 한다. 사랑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알며, 관계를 엮어나가는데 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면 짝짓기 시장에서 좋은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


중국 북경의 공주이자 절세미녀인 투란도트는 심각한 남성 혐오증을 앓고 있다. 그녀는 성가신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독신을 고수하기 위해 자신과 결혼하려면 자신이 내는 세 개의 수수께끼를 모두 풀어야하며, 만일 한 문제라도 맞히지 못할 경우에는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어려운 조건을 내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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