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ScienceBooks

한밤의 심리 극장 (9관) 끝나지 않은 잔혹 동화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한밤의 심리 극장

한밤의 심리 극장 (9관) 끝나지 않은 잔혹 동화

Editor! 2014. 2. 19. 09:00

진화심리학으로 드라마와 영화, 소설, 그림 등을 들여다봄으로써 인간 본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서려는 시도를 담은 <한밤의 심리 극장>,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한밤의 심리극장

by 홍승효


한밤의 심리 극장 (0관) / 

한밤의 심리 극장 소년 (1관) 질투는 나이 들지 않는다 

한밤의 심리 극장 (2관) 구애의 정석 : 썸남, 썸녀를 만나다 

한밤의 심리 극장 (3관) 거울이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한밤의 심리 극장 (4관) 선하지만 '공감제로'인 그와 공존하는 법 

한밤의 심리 극장 (5관) 친절한(?) 악마, 사이코패스의 두얼굴 

한밤의 심리 극장 (6관)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가져다 준 것은?

한밤의 심리 극장 (7관) 죽음을 부르는 치명적인 입맛 

한밤의 심리 극장 (8관) 열 손가락 깨물어 덜 아픈 손가락 에 이어

9 끝나지 않은 잔혹 동화

--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계모형(繼母型) 가정비극 소설장화 홍련

 

 

청나라에 순치 황제가 즉위하던 시절(1643~1661), 조선의 평안도 철산에는 배시경(裵時慶)이라는 양반이 살고 있었다. 그는 사별한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두 딸을 두었으며, 재혼한 후처와의 사이에는 두 아들이 있었다. 직무로 관부에 있던 배시경은 큰 딸이 스무 살이 되던 해 훌륭한 가문의 아들과 정혼을 결정한 후 후처에게 혼수를 잘 준비하도록 기별을 넣는다. 의붓딸에게 혼수를 마련해 주기가 아까웠던 후처는 새끼 쥐의 껍질을 벗겨 낙태한 태아처럼 만든 뒤 큰 딸이 부정한 행실을 저지른 것처럼 일을 꾸민다. 딸이 가문에 먹칠을 했다는 생각에 분노한 배시경은 아들을 시켜 누이를 물에 빠뜨려 살해하게 한다. 뒤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작은 딸은 원통한 마음에 언니의 뒤를 따라 자살한다.

가재사실록에 기록된 이야기를 발췌하여 정리함.

 


영화. 『장화, 홍련』의 포스터. 학대받는 자녀에 대한 잔혹한 동화는 현실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위 얘기는 고전 소설 <장화·홍련 전>의 모태가 된 실화로 효종 때 평안도 철산 부사로 재직했던 전동흘이 직접 겪은 일을 그의 후손이 가재사실록에 기록해 놓은 것이다. 한마디로 소설에서 억울한 자매의 원한을 풀어주던 담력이 센 원님이 그였던 셈이다. <장화·홍련 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으리라. 계모에게 속아 억울한 죽음을 맞은 자매가 귀신이 되어 고을 원님에게 나타난다니, 실화라 하기에는 다소 황당하고 한편으론 어딘가 익숙한 설정이 진부하기조차 하다. 악독한 계모에게 온갖 구박을 받는다는 부분은 <콩쥐팥쥐>와 비슷하고 한 맺힌 귀신이 원한을 풀어달라며 나타났다가 죄없는 원님들만 여럿 잡았다는 부분은 <아랑 전설>과 똑 닮았다. 사실 동화나 민담은 여러모로 서로 닮은 꼴이다. <콩쥐팥쥐><신데렐라>는 쌍둥이처럼 닮았고 <노간주나무>의 앞부분은 <백설공주>를 연상케 한다. 민속학자인 아르네와 톰슨의 분류에 따르면 계모의 구박을 받는 어린 소녀가 높은 지위의 남성과 결혼한다는 <신데렐라>형 이야기는 전세계적으로 500여 개나 있다고 한다. 소설의 모태가 된 이야기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가면서 서로 섞이고 변형되어 현재에 이르렀기에 나타나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중에는 <장화·홍련 전>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소설 같은 실화는 현대에도 계속, 끊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사례#1. 2008년 정모씨와 재혼한 양00씨는 이후 전처 소생의 남매를 양육하며, 2012년까지 3년간 상습적으로 아이들을 폭행해왔다. 특히 정양에게는 일주일에 2~3차례 다량의 소금을 넣은 밥을 강제로 먹이고 토하면 그 토사물과 심할 땐 대변까지 먹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양은 다량의 소금 섭취로 인한 전해질 이상으로 사망했다. 양씨는 이일로 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선고 받았으며, 아내의 학대를 방치한 혐의로 기소된 정양의 친부는 무죄를 선고 받았다.

 

사례#2. 20131024, 친구들이 부산 아쿠아리움으로 소풍을 간 날, 8살인 서현이는 울산의 한 가정집 욕조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아이의 갈비뼈는 24개 중 16개가 부러진 상태였으며 부러진 뼈가 폐를 찌른 것이 사망 원인이었다. 부검 결과, 아이는 만성적인 폭행으로 인해 엉덩이 근육이 모두 소멸되고 섬유질로 채워지는 둔부조직섬유화 증상을 갖고 있었다. 이외에도 폭행으로 인해 대퇴부 뼈가 골절되고 손과 발에 2도 화상을 입는 등 오래전부터 계모에게서 만성적인 학대를 당해왔다는 사실들이 밝혀졌다.

 

사례#3. 20XX00은 인터넷으로 40만원에 신생아를 사서 자신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한다. 입양을 한 아이의 이름은 다복이. 남편의 월평균 수입은 40만원이었고 친정은 기초생활수급자였으나 다복이를 입양한 후 00네 가정은 정말 다복해진다. 과거에 보험설계사로 일한 경력이 있는 00은 아이 앞으로 15개의 보험을 든 후, 일부러 아이가 병에 걸리게 하여 수시로 입원시켜 보험금을 타냈다. 결국 00은 보험 사기로 신고를 당한다. 00이 아이를 입양한 이유는 자신의 친 딸 두 명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한 자원노릇을 시키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 사례들은 모두 최근 방송매체를 통해 보도된 사건들이다. 요즘 이러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아동학대 문제가 새삼 주목 받고 있다. 그러나 소설 같은 실화들과 비슷한 동화들의 편재가 보여주듯이 아동학대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장화 홍련을 필두로 의붓 부모에 의한 아동 학대나 사망 사건들을 사례로 들긴 했지만 다들 알고 있듯이 친부모에 의해서도 아동 학대는 일어난다. 유전자의 생존과 번식이라는 측면에서 부모가 자신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자식을 학대하거나 살해하는 행위는 참으로 있을법하지 않은 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유전자의 관점에서 모든 일들은 비용과 이익을 동시에 고려하여 살펴보아야만 한다. 자식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과 정신적·육체적인 노력을 감안할 때 아동학대와 자식살해는 결코 있을법하지 않은 일이 아니다. 부모는 현재의 자식에게 투자하는 대신, 동일한 자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을 포기한다. 다른 자식을 가지거나 새로운 짝을 만나 전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도 여기에 포함된다. 삼포세대니 출산율 감소니 하는 표현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친부모에게도 양육은 버거운 짐일 수 있다. 그렇다면 아무런 유전적인 연관관계도 없는 계부모 자식 간은 어떨까. 친부모에 의한 자식 살해 문제는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계부모 자식 간의 아동 학대와 살해에 대해 살펴보자.

사자 집단은 혈연 관계로 구성된 암사자들과 외부에서 들어온 몇 명의 수컷 사자들로 구성된다. 새로운 수컷 무리가 이전의 수컷들을 쫓아내고 집단의 지배권을 확보하게 되면 그들은 맨 먼저 기존 수컷들의 새끼들을 찾아내어 죽인다. 인도 원숭이인 하누만 랑구르 역시 마찬 가지다. 암컷과 수컷의 역할이 뒤바뀌어 있는 열대 새인 자사나에서는 암컷 새가 이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례들도 존재한다. 송골매는 이전 짝의 자식들에게 유전적 부모와 동일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컷 비비는 때때로 자기 자식일 가능성이 없는 새끼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다. 그렇다면 인간에서는 어떨까? 진화심리학의 예측은 보통 사람들의 직감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대체로 의붓 부모들은 의붓 자식에게 친부모에 비해 덜 호의적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여기서 덜 호의적이라는 표현은 동일한 정도의 애정과 관심을 가지는데 어려움을 겪거나 투자와 보호를 회피하려는 심리적인 경향을 가질 것이라는 얘기다. 아주 위험한 얘기지만 유전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계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거나 살해할 위험은 친부모 자식 간의 위험보다 더 높으리라고 예상된다. 또 학대의 정도(빈도와 강도)도 더 심각하리라고 추측된다.

아마도 이런 얘기를 하면, 전체 아동학대 비율 중 상당수가 친부모 자식 간에 발생했다는 자료를 들어 이 예측이 계부모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와 위험한 편견을 양산하고 있다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20136월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2012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를 보면 전국 47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된 아동학대 건수 중 친부모에 의한 아동학대 발생율은 약 79.7%로 계부모(3.5%)나 양부모(0.7%)에 의한 아동학대 발생율보다 월등히 높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발생 건수만 놓고 학대 위험을 비교할 수는 없다. 정확한 비교를 위해서는 자녀와 동거하는 전체 가구 중 의붓 자식과 동거하는 가구의 비율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다. 거기서부터 각 가구 종류별 구성비에 따라 기대되는 아동학대 발생율을 산정하여 실제 발생율과 비교해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아쉽게도 국내에는 그에 대한 통계 자료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일반 연구자들은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외국 여러 나라의 상황도 국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계자녀와 동거하는 의붓 가족에 대한 통계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악독한 계모에 대한 수많은 편견들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 요인을 정책적으로나 학문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변수로 여기지 않는다는 증표다.

의붓 자녀와 동거하는 의붓가족의 비율에 관한 정확한 통계자료가 미비했지만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유사한 추정치에 입각해 미국과 캐나다, 영국에서 계부모에 대한 이 위험한 예측을 검증했다. 연구 결과, 이들 지역에서 의붓 부모와 거주하는 아동은 친부모와 거주하는 아동에 비해 학대당할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호주나 홍콩, 일본과 나이지리아 등지에서 진행된 연구들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사실 이 주제는 내게 참 특별하다. 내 석사학위 졸업논문 주제가 바로 자식살해였기 때문이다. ‘학대’, 특히 주양육자에 의해 어린 아동에게 가해지는 학대는 은폐되기 쉽다. 그런 점에서 살해는 다른 학대에 비해 비교적 명확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은폐나 왜곡되기가 어렵다. 자식살해가 비교적 드문 사건이며 사건 기록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서 내가 조사한 사례 수는 55건으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조사한 사례에서 계부모에 의한 자식살해율은 11.0%로 해당 지역의 계부모 가구 비율의 추정치에서 기대되는 것 보다 다소 높았다. 부연하자면 앞서 인용한 <2012년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서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동 수는 10명 이었으며, 그 중 친부모에 의해 사망한 아동수가 6, 계부에 의해 사망한 아동 수가 1, 그 외(유치원교사 및 이웃)3명이었다.

 

오늘 다룬 이야기는 매우 위험하고 불편하며 가슴 아프고 또 역겹기까지 하다. 양부모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건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낳은 정과 기른 정이라는 주제가 어딘가 뻔하고 보수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불편하며, 관련 사례들이 대부분 힘이 없는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정하게 저질러졌다는 점에서 가슴이 아프다. 또 사건의 내용들을 살펴보다 보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그토록 잔인하며 악독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와 실망, 그리고 역겨움마저도 느끼게 된다. 혹자는 이혼율이 증가하며 재결합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이런 얘기들이 의붓자식이나 입양한 자식을 사랑으로 키우고 있을 부모들에게 상처가 된다고 걱정할 수도 있다. 나 역시 혹시나 이 글이 의도와는 달리, 그렇게 읽혀질까봐 겁이 난다.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이 글에서 말하려는 바는 양부모나 계부모는 친부모처럼 자식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여러 동화 속에서처럼 계모를 아이를 학대하는 무시무시한 마녀나 친자식만 위하는 이기적인 위인으로 다루려는 것도 아니다.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목숨을 바칠 만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는 아이와 어른이 만나 목숨을 바칠 만큼 사랑하는 일 역시 가능하다. 아이의 친부모보다 더 아이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타인들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양녀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장발장처럼 낳은 정을 넘어서는 기른 정 역시 실재한다.

이혼율과 불임율의 증가로 재결합 가정과 입양 가정의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아동 보호와 가족 복지에 관한 새로운 제도와 정책 역시 필요할 것이다. 그 기초 단계로써 이러한 변화가 반영된 통계 자료의 양산과 연구의 진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부모는 친자식보다 의붓자식에게 부모로서의 애정을 덜 느끼며, 그로인해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와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예상이 그저 편견일 뿐이라면, 편견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도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된다. 또 만약 편견이 아니라면, 적절한 연구를 통해 이들 가정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위험들을 줄여주는 사회적인 장치들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 점은 친부모 가정 역시 마찬가지다.


<로시니의 오페라, 신데렐라의 한 장면>

로시니의 신데렐라는 마법의 도움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사랑을 이룬다.


로시니의 오페라 <신데렐라>에는 원작과는 달리 마술을 부리는 요정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신데렐라는 타고난 성품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기회를 얻고, 돈과 명예 보다는 사랑을 선택하는 진취적인 모습으로 표현된다. 현실의 신데렐라들에게도 마술을 부리는 요정은 나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힘으로 학대를 견디며 어른으로 성장한다. 몇몇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장화와 홍련처럼 억울한 죽음을 맞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대신 원한을 풀어줄 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준다해도 원한은 원한으로 남을 뿐이다. 나쁜 계모와 무심한 친부를 벌 줄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지 않아서다. 그렇게 잔혹한 동화는 현실이 되고, 현실은 다시 잊혀진 옛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린 신데렐라들은 동화처럼 잔혹한 현실을 견디며 소원을 들어줄 요정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