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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심리 극장 (7관) 죽음을 부르는 치명적인 입맛 본문

완결된 연재/(휴재) 한밤의 심리 극장

한밤의 심리 극장 (7관) 죽음을 부르는 치명적인 입맛

Editor! 2013.12.09 13:07

진화심리학으로 드라마와 영화, 소설, 그림 등을 들여다봄으로써 인간 본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서려는 시도를 담은 <한밤의 심리 극장>,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립니다.


한밤의 심리극장

by 홍승효


한밤의 심리 극장 (0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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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심리 극장 (3관) 거울이 들려주는 무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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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심리 극장 (6관)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가져다 준 것은? 에 이어...


7 죽음을 부르는 치명적인 입맛

         -- 굶주린 남매의 위험한 포식,헨젤과 그레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낯선 숲길. 어느새 아버지는 사라지고 날은 저물어 돌아갈 길은 막막한데 주책없이 배는 고프기만 하다. 그때 어디선가 풍겨오는 달콤한 향기. 무작정 냄새를 좇아 달려간 남매는 과자와 케이크, 사탕으로 만들어진 황홀한 과자의 집을 발견한다. 남매는 돌진한다. 자신들이 먹고 있는 게 다른 사람의 어엿한 집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그들은 음식을 훔쳤을 뿐만 아니라 집까지 훼손시켰다는 사실을 생각할 여유 따윈 없다. 집으로 돌아갈 길을 표시하느라 남매가 뿌려둔 빵 덩이를 배고픈 숲속의 동물들이 집어먹었듯이 그들도 거리에 버려진 과자의 집을 조금 집어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어쩌랴. 이 집은 마녀의 미끼 상품이었던 것을. 현장에서 붙잡힌 어린 장발장 남매는 마녀에게 호된 질책을 당하고 많은 무전 취식자들이 그러하듯이 몸으로 밥값을 때워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여동생은 마녀의 지시에 따라 집안일을 하고 마녀는 부엌에서 수프를 끓일 준비를 한다. 과자를 먹고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아이들을 넣어 만들 수프를.......

 

중세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아이들을 버리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헨젤과 그레텔에는 이같은 당시의 사회상과 그에 대한 경고가 담겨있다. 유사 이래 그 어느 때보다 먹을거리가 풍부한 요즘 만약 당신이 부모가 되어 아이들에게 헨젤과 그레텔을 읽어주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교훈을 전해주려 하는가.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마라? 위기에 처하면 기지를 발휘하여 탈출하라? 형제간에 우애 좋게 지내라? 그것도 아니면 과자는 몸에 해로우니 함부로 먹지 말아라?

 


아서 랙헴(Arthur Rackham)의 [헨젤과 그레텔] 일러스트

생각해보면 헨젤과 그레텔 스토리의 핵심에는 먹을 것에 대한 갈망이 놓여있다. 부모는 배가 고파서 아이들을 버렸고, 굶주린 아이들은 과자의 집을 먹을 수밖에 없었고, 마녀는 마녀 나름대로 덫을 놓아 자신의 끼니를 해결하려 하였다. 모두가 본능에 따라 움직였지만 결과는 씁쓸했다. 부모는 양심을 버렸고, 아이들은 죽을 위기에 처했으며 마녀는 최후의 만찬을 결국 즐기지 못했다. 동화는 극적으로 마녀를 해치우고 호숫가에서 오리를 타고 탈출하는 남매의 모습으로 끝을 맺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배고픔 때문에 자식을 버리는 부모들은 줄었어도 위험한 먹거리에 홀리는 아이들과 그들을 노리는 현대판 마녀가 각종 질병과 성인병이라는 이름으로 도처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위험한줄 알면서도 과자를 한 입 베어 물 수밖에 없는, 거부하기 힘든 오래된 입맛이 놓여있다.

입맛의 보편성을 얘기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낯선 지역에 가서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해본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가지고 있으니까. 음식은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지만 동시에 가장 곤욕스러운 문제기도 하다. 삭힌 홍어 냄새에 군침이 고이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올라오는 욕지기를 참지 못해서 화장실로 줄행랑을 치는 사람도 있다. 태국 음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고수가 누군가에게는 주방세제의 맛처럼 느껴지고 처음 먹어보는 이국의 낯선 요리에서 여지껏 경험하지 못한 황홀경을 맛보는 사람들도 있다. 확실히 입맛은 살아온 환경과 타고난 유전자, 개인의 신념과 세계관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감히 보편성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상대적인 그 입맛에도 절대치라는 것이 약간은 존재해서 오늘도 세계의 식당에는 블루리본이 달리고, 불경기라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해도 맛 집 앞에는 사람들의 행렬이 몇 십 미터나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음식을 먹지만 이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찾으며, 바삭바삭한 튀김, 짭조름한 스낵, 육즙이 베어 나오는 부드러운 스테이크, 아삭아삭하고 신선한 과일 등 문화를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있는 음식들은 분명 존재한다.

대체 왜 사람은 맛을 느끼는 것일까? 단지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아무 음식이나 고맙게 먹어주면 될 것을, 까다롭게도 사람들은 맛을 논하고 심지어 음식에 점수를 매기기까지 한다. 인간은 도대체 왜 맛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미각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는 완벽하지 않은 지침이라는 주장이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심리학과의 폴 로진 교수는 , 인간, 그리고 또 다른 동물들의 음식 선택(1976)’이라는 논문에서 잡식동물의 축복은 자연에 있는 아주 많은 것들을 모두 먹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반면 잡식동물의 저주는 그 가운데서 먹어도 안전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많은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기술한 바 있다. 코알라처럼 한 가지 음식 - 유칼립투스 잎-만을 먹으며 거기서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뽑아내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다양한 생물들을 먹이로 삼을 수 있는 대신 먹기에 적합한 것을 선별해내야 하는 문제, 이른바 잡식동물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미각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 중 하나다.

정상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을 느낄 수 있는 혀를 가지고 있다. 단맛은 음식에 탄수화물 에너지가 풍부하다는 신호이며 감칠맛은 단백질 영양소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쓴맛은 음식에 독성이 있다는 정보가 될 수 있고 신맛은 음식이 덜 익었거나 상했다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 임신을 하면 특히 쓴맛에 민감해지는데 이는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된 일종의 적응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짠 맛은 체액의 전해질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네랄의 정도를 감지해내는 작업을 한다. 물론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처럼 쓴맛을 내는 식물이 약효가 있을 수도 있고 인공 감미료처럼 단맛을 내는 음식이 칼로리가 전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과거 미각은 본연의 역할을 꽤나 훌륭하게 수행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전 인류가 현재와 같은 형태의 미각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인류는 가치있는 음식을 선별해내는 능력에 더해 그러한 음식에 대한 선호도 역시 같이 진화시켰다. , 단맛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단맛을 좋아하게 되었다. 여러 실험에 따르면 거의 모든 영장류가 과일보다 설탕을 선호한다고 한다. 설탕처럼 극도로 정제된 포도당을 상용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따라서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설탕에 대한 선호는 강한 단맛에 대한 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생존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불완전하게나마) 감지해내는 능력과 그에 대한 선호도를 진화시켜왔다. 과거에 이 적응들은 인간의 식생활을 현명하게 이끌어주는 꽤나 믿음직한 안내자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문제는 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먹거리가 급격하게 풍요로워지면서 입맛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헨젤과 그레텔의 경우를 살펴보자. 아이를 버릴 정도로 힘든 처지였다니 평소 헨젤과 그레텔은 얼마나 굶주렸을까. 그들에게 과자로 만든 집은 손대면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믿기지 않는 강렬한 유혹이었으리라. 이미 부모에게 버림받고 숲 속에서 들짐승들에게 잡혀먹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법처럼 등장한 이 멋진 과자의 집은 좀처럼 만나기 힘든 포식의 기회, 굶주림이 일상인 현실에 풍요로운 에너지를 가져다줄 수 있는 귀하디귀한 기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1세기의 헨젤과 그레텔은 어떤가? 충치, 비만, ADHD, 근시, 소아 당뇨 등 과자 한 개를 맛보기 위해 남매가 감내해야하는 위험은 점점 늘어난다. 굶주린 헨젤과 그레텔에게 과자는 영양 보충이었지만 배부른 현재의 어린이들에게 과자는 해로운 잉여의 디저트일 뿐이다.

 

엥겔베르트 훔퍼딩크가 작곡한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의 한 장면

프랑스의 연출가 로랑 펠리는 과자로 만든 집 대신 과자가 가득 쌓인 현대의 마트 진열대를 무대로 삼았다.

  

다른 입맛들 역시 마찬가지다. 소금이 귀했던 시기에 적합했던 짭짤한 음식에 대한 선호는 현대에 와서는 고혈압을 부르는 몹쓸 취향이 되어버렸다. 고소하고 기름진 음식에 대한 선호 역시 그렇다. 과거에는 죄다 부족했던 음식들인데 어쩌다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되었는지. 이제 넘치는 먹거리에 둘러싸여 우아하게 깨짝깨짝 사치를 누려도 되건만 입맛은 아직 고생을 기억하고 위장은 아직 배고픔을 기억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고, 성인병에 걸리든지 말든지 달고 짜고 기름지고 감칠맛나는 음식들에 둘러싸여 유전자의 형태로 각인돼 있는 과거 조상들의 한을 거나한 먹부림으로 맛깔나게 풀어봐도 좋을 것이다. 이보다 더 안 좋은 것은 영양가도 없으면서 있는 척 오래된 입맛들을 착취하는 가짜 음식들이다. MSG로 대표되는 각종 조미료들과 인공 감미료들이 그들이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유명한 냉면집의 고기 육수에 사실은 고기가 한 점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비밀은 어쩌면 별반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간편하고 경제적이고 무엇보다도 맛있는 조미료들을 마냥 나쁘게만 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은근히 화가 나는 건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보고도 모르는 평균치의 내 입맛과 그런 입맛들을 착취하여 값싼 재료를 쓰고도 비싼 가격을 붙이는 후안무치의 음식점 주인들 때문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리서치 디렉터 미셀 레이몽은 식생활은 일종의 적응이다라고 얘기했다. 현대의 식생활이 가진 문제는 우리의 몸이 식생활의 빠른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는데 있다. 어찌되었든 풍요의 시대를 맞아 음식은 삶의 필수 요소이자 중요한 유흥거리로써 날로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경쟁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모습을 방송한다. 먹방 드라마를 표방하는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먹거리에 대한 우려와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내 나이보다 더 오래된 혀를 지니고 마트의 진열대 앞에 서서 전과는 또 다른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느낀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어떻게 먹을 것인가. 산처럼 쌓인 음식물 앞에 서서 가치있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택하기 위해 타고난 입맛 외에 새로운 수단이 필요함을 느낀다. 이제 이 음식물의 숲에서 무엇이 안내자가 되어 나를 이끌어줄까. 세상은 넓고 착한 식당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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