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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 이상희+윤신영 편] ④ ‘과학+책+수다’ 못 다한 이야기: 고인류학과 고인류학자 본문
과학+책+수다 세 번째 이야기
『인류의 기원』 이상희+윤신영 편
‘과학+책+수다’ 자리를 빌려, 『인류의 기원』의 두 저자 이상희 교수님, 윤신영 기자님을 만나 뵈었습니다. 이상희 교수님은 아제르바이잔 발굴 현장에서 미국으로 돌아가시는 도중에 짬을 내어 방문하신 터라 『인류의 기원』 출간과 관련한 인터뷰 등으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계셨습니다. 윤신영 기자님도 《과학동아》 마감을 앞두고 무척 바쁘셨지요. 더 오래 얘기를 나누지 못해 모두가 아쉬운 마음을 갖고 ‘과학+책+수다’ 자리는 마쳤습니다. 고인류학자와 과학 기자라는 두 분의 직업 자체가 매우 매력적인 직업이어서 추가로 두 분께 본인들께서 하시는 일을 소개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질문을 메일로 드렸습니다. 『인류의 기원』을 읽고 그리고 이 ‘과학+책+수다’ 편을 보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인류학과 과학 저널리즘에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④ ‘과학+책+수다’ 못 다한 이야기: 고인류학과 고인류학자
편집자: 박사님께서 연구하고 계신 고인류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상희: 고인류학은 화석으로 남아 있는 옛사람을 연구합니다. 고고학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고고학은 옛사람의 흔적을 연구합니다. 그들이 남긴 도구(토기, 석기), 집터, 무덤자리, 부장품, 예술 등을 연구하지요. 그에 비해 고인류학은 옛사람의 몸을 연구합니다. 세월이 지나 몸이 모두 화석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요. 그나마 상대적으로 가장 화석으로 남아 있기 쉬운 이빨과 뼈가 대부분입니다. 고유전학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화석에서 직접 고DNA를 추출, 연구하게 되어 고인류학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인류학과 또 하나 비교할 수 있는 분야는 생물고고학입니다. 고인류학은 옛사람 중에서도 화석으로 남아 있는 옛사람을 연구하지요. 예를 들면 네안데르탈, 호모 에렉투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입니다. 화석이 아닌 인골을 연구하는 분야는 생물고고학(bioarchaeology)입니다.
예를 들면 청동기 시대 인골, 삼국 시대의 인골을 생각하면 됩니다. 고인류학에서는 종 단위의 문제들을 탐구하는 데 비해 생물고고학에서 다루는 인골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일까?”의 여부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생물고고학에서 다루는 주제는 옛사람 뼈로 통해 보는 미시적이고 해상도 높은 질문들입니다. 성별, 계급분화 등에 따른 건강, 형질적인 차이 등이죠.
ⓒ 이희중
편집자: 중앙아시아의 아제르바이잔에서 현장 발굴을 진행하시다 미국으로 돌아가시던 길에 한국에 방문하셨죠.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지요?
이상희: 제가 아제르바이잔에서 하고 있는 연구는 직접적으로는 생물고고학입니다. 인골이 나오면 발굴 작업부터 참여해서(제가 학부 시절 틈만 나면 했던 삽질 경험이 많이 도움 됩니다.) 인골을 수습하여 연령, 성별 및 기타 특기 사항(질병, 사인 등)을 기록, 분석합니다. 그런데 고인류학자인 제가 생물고고학을 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나온 인골들이 크게 보면 고인류학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고인류 화석의 다양성을 기본으로 연구합니다. 이 화석이 저 화석과 다른지 비슷한지, 이 ‘화석 집단/종’이 저 ‘화석 집단/종’과 다른지 비슷한지를 살펴보는 것이 출발점이지요. 그런데 그 작업에는 비교 집단이 꼭 필요합니다. 얼마나 비슷해야 비슷한 것이고, 얼마나 달라야 다른 것인지, 그 잣대를 제공하는 것이 현생 인류 집단, 혹은 현생 비인간 영장류 집단입니다. 아제르바이잔은 그 지리적인 특징상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인류가 계속 교류하면서 유전자와 문화를 섞었을 것입니다. 마치 호모속의 인류가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그런 역사가 형질적으로, 유전학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것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 이희중
말랑말랑한 이야기라면 아제르바이잔이 아니라 거의 20여 년 전에 참가했던 이스라엘 발굴 현장에서의 경험을 알려 드리고 싶어요. 미국 하버드 대학교와 프랑스의 보르도 대학교에서 합동 발굴하는 유적이었는데 10여 년 동안 네안데르탈 화석 발견을 희망하는 발굴이었어요. 결국 많은 석기들을 발굴했지만 화석은 못 찾았습니다. 원래 고인류 화석은 조상 삼대가 덕을 쌓아야 발견됩니다(농담입니다. 하하하).
당시 저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동굴에 도착했는데 옛날부터 얼마 전까지 양치기들이 쉬는 곳으로 이용하던 동굴이었습니다. 바닥은 양과 염소 똥으로 두껍게 덮여 있었습니다. 아, 물론 따끈따끈한(?) 똥은 아니고, 오래되어 마른 똥이었는데, 그래도 그 위를 걸어 다니면 똥 먼지가 풀썩 거렸어요. 그 안에서 발굴단은 오전 새참, 점심, 오후 새참까지 매일 세 번 식사를 했습니다. 동굴 바깥은 너무 덥기 때문에 동굴 안 시원한 곳에서 바닥에 앉아 샌드위치 종류를 먹었지요.
저는 처음에는 그 마른 똥 냄새 때문에 역겨워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그런데 냄새 때문에 안 먹는다고 그러면 민폐잖아요?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아니면 미국에서 온 연약한 학생이라는 평가를 받을까 봐 냄새 때문에 안 먹는다고는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새참-점심-새참 시간에도 작업을 계속했어요.
ⓒ 이희중
그런데 작년 한국에서 당시 발굴단장이시던 교수님을 20년 만에 만났는데 저를 기억하시더라고요. “아, 그때 그 학생!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하던 그 학생! 물론 기억하고말고요.”라고 하시면서 반가워하셨습니다. 좀 쑥스러웠지요. 속사정은 달랐으니까요.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말입니다, 그렇게 역겹던 냄새가 1~2주일이 지나니까 하나도 역겹지 않더군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고, 저도 그냥 바닥에 앉아 먼지 풀풀 날리는 데도 아랑곳없이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편집자: 혹시 고인류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이상희: 고인류학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근본적인 질문을 방대한 스케일로 다루는 학문입니다. 문화와 생물을 복합해서 적응과 진화에 쓰는 인류는 그 모델을 다른 어느 동물 체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그 기원과 진화에 대해 독창적인 상상력과 탄탄한 기초 과학을 기반으로 합니다.
ⓒ 이희중
무엇보다도 고인류학 학문의 특성상 지극히 문과적이면서도 지극히 이과적입니다. 문과와 이과를 나누어 가르치는 한국에서는 공부하기 쉽지 않은 학문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책을 많이 읽고 감상과 이해에 대해 읽고 말하는 연습을 많이 하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고인류 화석의 발견은 언제라도 뉴스거리가 되니까 SNS 등을 통해 시시각각 일어나는 소식을 접하고 관심을 공유하는 학생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이야기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면 좋겠습니다.
요즘 활발한 SNS는 https://www.facebook.com/groups/BioAnthNews, https://twitter.com/BioAnthNews 등입니다. 저도 인류학 이야기(https://www.facebook.com/anthropology.korean)라는 한글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언급된 책 자세히 보기..
『인류의 기원』 [도서정보]
"『인류의 기원』 이상희+윤신영 편"은 다음과 같은 목차로 진행됩니다.
①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쓴 ‘환상의 콤비’를 만나다! [바로가기]
② 새로운 구성, 새로운 시각, 새로운 교과서 [바로가기]
③ 인류학자와 과학 기자, 두 전문가의 만남! [바로가기]
④ 과학+책+수다에서 못다한 이야기: 고인류학과 고인류학자
⑤ 과학+책+수다에서 못다한 이야기: 과학 저널리즘과 과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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