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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만 피하면 될까?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화학약품들 본문
과학 Talk. 가습기 살균제 사건, 살균제만 피하면 될까?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화학약품들
가습기 살균제는 가습기 분무액을 살균하는 제품으로, 2001년부터 판매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심각한 폐질환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해 2011년부터 판매 및 유통이 금지되었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집계에 따르면 2012년 10월 8일을 기준으로, 영유아 36명을 포함한 78명이 사망하였습니다. 특히 임산부나 영아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으며, 영구적인 폐질환으로 현재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옥시에서는 사건이 발생하고 5년이 지난 후인 2016년 5월 2일에 기자회견을 열어서 공식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5년이나 늦은 사과인 데다가 피해자들에게 구체적인 보상도 제시하지 않아 형식적인 사과일 뿐이라며 오히려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제품은 가습기 살균제 뿐일까요? 과거에도 화학약품이 첨가된 제품으로 소비자들이 영문도 모르고 피해를 봤던 일이 있었을까요?
1) 요람에서 의문의 돌연사
요람사는 죽음을 뜻하는 많은 단어 중에서도 가장 끔찍하게 들립니다. 안전하고 아늑해야 할 곳에서의 죽음이라니요. 특히 아기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요람에서 보낸다는 사실을 아는 부모들에게는 요람사라는 단어가 더욱 끔찍하게 들릴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요람사는 괴담이 아닌, 1950년대의 영국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입니다.
1950년대부터 영국에서 아기들이 잠을 자다 갑자기 사망하는 요람사가 증가했습니다. 1980년대 말에는 12개월 미만 아기들의 사망 사례 중 3분의 1이 돌연사에 해당하였으며, 영국에서는 1주일에 약 20건씩 돌연사가 보고되었습니다. 이 죽음을 두고 다양한 가설들도 제기되었습니다. 소젖에 대한 알레르기, 부모의 흡연, 심지어 송전선이 원인이라는 말까지 나왔죠. 그런데 죽음의 원인은 기가 막힌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가설에 따르면 스코풀라리옵시스 브레비카울리스라는 곰팡이균이 매트리스의 PVC에 방화재로 포함된 산화안티모니를 섭취해 스티빈 기체를 방출한다고 했다. 이 미생물은 습한 곳에서 번성하며 비소를 휘발시키는 녀석이다. 그러니까 안티모니도 휘발시킬 수 있을지 몰랐다. 그게 사실이라면 요람사는 고지오 병의 안티모니 버전인 셈이었다. 아기의 소변으로 축축해진 매트리스에 곰팡이가 자라서 비소 기체만큼 치명적인 스티빈 기체가 나오는 셈이었다.
─ 존 엠슬리, 『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2』
1950년대 영국은 방수 PCV 막이 씌워진 폼 매트리스에서 아기들을 재웠습니다. 1988년에는 내연 첨가물 규정이 법으로 만들어져서 매트리스에서 방화재가 포함되었죠. 때문에 제조사들은 대부분 PVC 막에 산화안티모니를 더하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산화안티모니는 스티빈 기체를 발생시켜 요람에 누운 아기들을 죽음으로 잠재웠습니다.
안티모니는 납을 강화하거나 특수 재료를 만드는 데 유용하게 활용되기 때문에 인간의 삶 속에서 영원히 떨어트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요람사 이후로 실내 환경의 재료로 안티모니를 만날 확률은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물론 산화안티모니가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급증한 아기 돌연사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PVC 매트리스가 도입된 시점부터 요람사가 증가했다는 점, PVC 매트리스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만 요람사가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요람사한 아기들의 혈중 안티모니 농도가 높았다는 점에서 아기들의 돌연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회피할 수 없을 겁니다.
2) 일상 속에서 스며드는 납
어린 아이들은 납에 민감합니다. 지금 이 사실을 모르는 부모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납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침투했는지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습니다. 1930년이 되어서야 납을 함유한 파우더를 어머니가 사용한 것만으로도 아이가 수막염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납이 든 파우더를 사용한 수백 년간 파우더 속의 납이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거나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죠.
보기 드문 사건이지만 1900년대 초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어린 아이들의 대규모 납 중독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햇볕에 바싹 마른 베란다에서 떨어진 납 페인트 조각을 아이들이 주워 먹은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납 페인트로 칠해진 건물이 많았으며 아이들이 떨어진 페인트 조각을 주워먹는 것으로 납 중독과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에서 납 페인트 근절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1971년 1월에 닉슨 대통령은 납 페인트 중독 방지법 제정을 수용하고 납 페인트 근절 사업에 3000만 달러를 쓰기로 했다. 덕분에 수천 건의 청소년 납 중독과 수백 건의 어린이 사망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1975년에 10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1980년대 초에는 40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이 사업 덕분에 납으로부터 보호되었다. 정부는 위험에 처한 아이들 25만 명을 파악했고 11만 2000가구에서 납 페인트나 회반죽을 벗겨냈다. 후에 통과된 수정법은 페인트 속 납 농도 기준을 1퍼센트에서 0.5퍼센트로, 나중에는 0.06퍼센트로 줄였다. 납 페인트를 먹고 죽은 아이의 사레가 마지막으로 보고된 것은 1990년 위스콘신에서였다. 아이가 먹은 페인트 조각의 납 농도는 30퍼센트였다.
─ 존 엠슬리, 『세상을 바꾼 독약 한 방울 2』
이 사건처럼 정부의 적극적인 대처와 발 빠른 움직임으로 더 큰 피해를 막아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화학제품의 피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처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옥시 사건 또한 가습기 살균제 외에 우리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유독한 화학약품을 발견하고, 그 제품들로 인한 피해를 막아낼 수 있도록 정부가 제 역할을 잘 해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3) 공장의 암살자
소비자의 피해 사례들을 살펴보았는데 마지막으로 공장 근로자들에 대한 사례도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문제의 화합물은 PCB로 알려져 있는 폴리염화바이페닐류입니다. PCB는 1920년대 후반부터 산업적으로 생산되었으며 극도의 안정성과 불연성 덕에 변압기, 콘덴서, 차단기 등의 절연재 및 냉각제의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1회용 아기 젖병, 식품 포장재 같은 다양한 중합체의 가소제이자 인쇄 관련 제품, 먹지 없는 복사지, 페인트, 왁스, 접착제, 윤활유 등을 제조할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PCB는 우리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친숙한 재료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공장 근로자들은 클로라크네라는 피부병에 걸렸다. 이 병은 얼굴과 몸에 검은 여드름과 농포가 생기는 병이다. 클로라크네는 PCB 중독 초기 증상으로, 이후 면역 체계, 신경계, 내분비선, 생식기 계통이 손상될 수 있고 간 질환과 암이 유발될 수 있다. PCB는 기적의 분자는커녕 지금까지 합성된 물질 중 가장 위험한 화합물군에 속한다.
─ 페니 르 쿠터·제이 버레슨, 『역사를 바꾼 17가지 화학 이야기』
그렇다면 PCB는 왜 위험한 걸까요?
PCB가 위협적인 이유는 인간과 동물에게 직접적인 독성을 나타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자가 너무나 안정적이어서 CFC처럼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너무 많이 사용되었다는 데에 있다. PCB는 생태계에서 분해되지 않기 때문에 먹이사슬의 상위로 갈수록 생물 농축 현상을 거치면서 농도가 증가한다.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동물들(북극곰, 사자, 고래, 독수리, 그리고 인간)은 체내 지방 세포의 PCB 농도가 매우 높아지게 된다.
─ 페니 르 쿠터·제이 버레슨, 『역사를 바꾼 17가지 화학 이야기』
PCB에 노출되거나 PCB를 섭취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일본 규슈의 사건으로 알 수 있습니다.
1968년, 사람이 PCB를 직접 섭취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 준 참혹한 사건이 있었다. 일본 규슈 주민 130명은 PCB에 오염된 식용유를 먹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클로라크네 증상이 나타나고 숨을 쉬기 어렵고 앞이 잘 안 보이는 증상이 나타났다. 장기적으로는 선천성 결함을 가진 태아가 태어나거나 간암에 걸릴 확률이 정상치보다 15배 높게 나왔다.
─ 페니 르 쿠터·제이 버레슨, 『역사를 바꾼 17가지 화학 이야기』
현재 PCB의 제조는 금지되었지만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1977년, 미국은 PCB 함유 물질의 방류를 금지했다. 인류 건강과 지구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 PCB의 독성을 보고하는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발표된 지 한참이 지난 1979년, 마침내 PCB의 제조가 금지되었다. 그러나 PCB를 금지하는 규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백만 킬로그램의 PCB가 사용되고 있거나 안전하게 폐기 처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PCB는 지금도 생태계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 페니 르 쿠터·제이 버레슨, 『역사를 바꾼 17가지 화학 이야기』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다시 한 번 대두되면서 유해 물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위에서 보여드린 세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 일상 속에 알게 모르게 숨어 있는 위험 물질이 얼마나 많은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제품에 인체에 매우 유해한 성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혹은 이미 유해한 물질이 검출되었다고 발표됐지만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아 사용하는 제품도 존재할 수 있죠.
우리 삶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도 있지만 잘못 알고 쓰면 독약이 될 수 있는 화학 원소들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접하고 싶다면 아래 책들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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