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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 탐색은 우리 문명의 기초 『자연의 패턴』 : 필립 볼 편 ②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패턴 탐색은 우리 문명의 기초 『자연의 패턴』 : 필립 볼 편 ②

Editor! 2019. 3. 25. 09:30

2019년 공개되는 두 번째 「과학+책+수다」의 주인공은 세계적인 과학 저술가 필립 볼입니다. 『자연의 패턴』 출간 기념 서면 인터뷰에 응해 주셨는데, 「과학+책+수다」 역사상 첫 번째 해외 저자이며, 필립 볼로서는 국내 최초 인터뷰일지도 모릅니다. 물리학과 화학을 전공했고, 과학자들에게는 논문 게재 희망 1순위일 《네이처》의 편집자로 20년 이상 근무한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저술가일 필립 볼은 ‘물질 세계’의 비밀을 파헤치는 현대 과학의 최근 성과를 알기 쉽게, 동시에 깊이 있게 소개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번에 출간된 『자연의 패턴』는 그 물질 세계를 이루는 구조와 형태, 그리고 패턴을 300컷의 화려한 그림과 사진으로 소개하는 책입니다. 미세 먼지로 자욱한 봄날, 사이언스북스 독자 여러분의 머리를 시원하게 해 드릴 책과 인터뷰가 되기를 바랍니다. 2편으로 나눠 연재합니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열 번째 이야기

패턴 탐색은 우리 문명의 기초 

『자연의 패턴』 : 필립 볼 편 ②



자연의 패턴을 추구하는 본능은 우리 문명을 떠받치는 기초


『자연의 패턴』 154∼155쪽에서.


SB : 저희 편집자 중에는 자연의 패턴을 바라보고 있으면 음악의 율동적 선율이나 약진하는 리듬이 떠오른다는 이도 있습니다. SNS 등을 통해 당신이 최근 듣고 있는 음악 앨범을 종종 공유하는 것을 봐 왔습니다. 한국에서는 미출간인 『음악 본능(The Music Instinct)』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으니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시각적 패턴에서 찾을 수 있는 미학적 기쁨과 비슷한 것을 음악에서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최근에 흥미롭게 들은 앨범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책을 읽을 때 함께 들으면 좋지 않을까요? 한국 독자들을 위해 선생님의 취미를 살짝 공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필립 볼 : 자연 속에서 패턴과 질서를 발견해 내려고 하고, 무질서와 충격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우리의 자연적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본능이 우리 문명의 시각 예술과 음악, 그리고 그 관계를 떠받치고 있는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마침 브라질의 화가이자 사진가인 비크 무니스(Vik Muniz)의 새로운 작품을 가지고 시각 예술과 음악의 관계에 대해 논하는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의 작품을 보고 무척 '음악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는 음악을 들을 때마다 항상 놀라게 됩니다. 어떻게 어떤 명백한 '의미'도 띠지 않은 몇 가지 소리의 조합이 자연의 패턴이 보여 주는 시각적 경험과 같은 세기로 우리를 감동시키는지 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가를 물어보셨죠? 제가 사랑하는 작곡가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라는 말을 듣고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지나치게 수학적이고 논리적인 작곡가라고 합니다. 당연히 그의 작품은 패턴과 대칭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압도적으로 감정적인 작곡가라고도 생각합니다. 그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조성의 완전한 붕괴까지 포함해서 서양 음악 전통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랑하는 음악가를 한 사람 더 꼽자면 헝가리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버르토크 벨러가 있습니다. 그 역시 수학과 자연의 패턴에 관심이 많았던 이로 알고 있습니다.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임현정 연주. 


SB : 「미크로코스모스(Mikrokosmos)」를 작곡한 버르토크 벨러를 사랑하시는군요. 오랜만에 찾아 들어봐야겠군요. 개인적으로는 잊고 있던 음악가인데, 기억을 되살려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음악 이야기에서 책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과학 저술가로 오래 활동해 왔는데, 선생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과학책들을 꼽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다면 하나는 다른 사람의 책, 다른 하나는 자신의 책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유도 알려주십시오.


필립 볼 : 앞의 질문에서 거론되었던 『음악 본능』은, 그 주제가 워낙 크고 무겁기는 했지만 제게 최고의 글쓰기 즐거움을 제공한 책입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사랑하는 책을 한 권 꼽자면, 2014년에 출간된 『보이지 않는 것들(Invisible)』입니다. 이 책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문화사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을 고른 것은 제가 이 책을 쓰기 위해 가장 많이 애썼기 때문입니다. 더 큰 그림 속에서, 그리고 보다 광범위한 문화사적 맥락 속에서 과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광학과 메타 물질을 다루고 있습니다. 동시에 유령과 요정 이야기도 다룹니다. 대중 과학책에 익숙한 독자들 중에는 이런 주제들을 보고 당황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과학을 작게 정의된 '이성의 울타리'에 가둬 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과학책을 하나 뽑아 달라고 하셨죠. 저는 리처드 홈스(Richard Holms)의 『경이의 시대(The Age of Wonder)』(전대호 옮김, 문학동네, 2013년)를 고르고 싶습니다. 이 책이 19세기 초반 낭만주의 시대 시인과 과학자들의 상호 작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리처드 홈스가 정말로 뛰어난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저는 계속 흥분 상태로 있었습니다. 긍정적인 흥분 상태 말입니다. 논픽션 책을 읽을 때 하기 힘든 경험이죠. 홈스는 과학이 보다 광범위한 문화적 활동의 일부였음을 명확하게 보여 줍니다. 홈스는 책 끝부분에 예술 또는 종교와 과학 사이에 있는 완고한 벽을 치워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SB : 자연의 패턴에 매료된 분이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책을 쓰고, 과학 저술가가 과학 아닌 것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시는군요. 선생님은 대학 시절 과학을 공부하셨고, 대표적인 과학 저널인 《네이처》에서 과학 논문들을 다루며 인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프리랜서 저술가로서 활동을 하고 계시죠. 과학자로서 과학을 연구하는 것과 과학 저술가로서 글을 쓰는 것은 어떻게 다른지 한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과학과 문화, 과학과 대중 사이의 벽을 치워 버려라!

필립 볼 : 저는 더 이상 과학자로서 일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때로 과학 학회에 참석한다든지, 강연을 한다든지, 논문을 쓴다든지 과학계의 일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저의 과학 저술가로서의 포지션에는 장점이 많습니다. 과학의 특정 분야나 디테일에 매몰되지 않고,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그리고 과학자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어 가며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도 저의 주위에는 자신의 귀한 시간을 내어 조언을 주는 친절한 과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과학자들은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분야와 자명한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분야에 관심을 가져 주면 고맙다고 얘기해 줍니다. 저로서는 기쁠 뿐이지요. 


최근 저는 스스로를 '과학 저널리스트'로 규정합니다. 시민들에게 '과학적 해설'을 제공하는 존재로 말이죠. 과학적 발견이나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데 그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 배경을 설명하고, 문화사적 맥락과 어떤 관련이 있으며,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우리 눈앞에 등장하게 되었는지 조사하고 싶습니다. 과학자들 중에는 자신들이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규정된다는 생각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과학이 발견해 온 것들의 타당성을 침해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영국 왕립 학회에서 양자 역학으로 강연하는 필립 볼.


SB : 최근 선생님의 저술 활동을 보면 그 영역이 무척 넓습니다. 앞에서 말씀하신 ‘과학 저널리스트’로서의 자기 규정이 나름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양자 역학(『이상함을 넘어서(Beyond Weird)』)이나 '자연의 패턴' 같은 소위 정통 과학 주제부터 시작해 히틀러와 물리학(『제3제국의 과학자들(Serving the Reich)』), 투명성(『보이지 않는 것들』) 같은 기발하면서도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는 주제까지, 넓은 영역을 망라하는 과학 저술가로 활동하고 계시죠. 창조성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쓰며 책을 펴내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필립 볼 : 저는 새로운 책을 쓰기 전에 항상 스스로에게 한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새로운 무엇을 배우게 될까? 그것이 저의 출발점입니다. 저는 예전에 써먹은 주제나 항상 쓰는 얘기나 하는 책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자연의 패턴이라는 주제는 제게 있어 예외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로 먹고살 수 있어 정말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주제, 새로운 지평, 새로운 관점을 계속 추구해 가지 않는다면 이 행운과 기회를 낭비하는 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이 중국의 역사를 다룬 『물의 왕국(The Water Kingdom)』(2017년)과 중세의 철학, 신학, 공예를 다룬 『돌의 대학(Universe of Stone)』(2008년)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두 책을 쓰는 동안, 저는 아마도 이 주제들에 미쳐 있었을 것입니다. (웃음) 저는 화학자와 물리학자로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과학 저술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열린 마음과 그 주제에 대한 호기심과 정열일 것입니다.  


『자연의 패턴』 130∼131쪽에서.



과학 글쓰기의 원동력은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열린 마음과 그 주제에 대한 호기심과 정열

SB :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열린 마음과 그 주제에 대한 호기심과 정열”이 과학 글쓰기의 원동력이라는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닿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급해 주신 새로운 책들도 다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주제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가지신 선생님이라면 당연히 최근에 새로운 주제나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지시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것으로는 어떤 게 있는지요? 왜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또 그에 대한 출간 계획이 있는지 필립 볼의 책을 기다리는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필립 볼 : 물론입니다. 저의 다음 책은 올해(2019년)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생물학, 특히 세포 생물학에 대해서 다룬다는 점에서 저에게는 새로운 출발점이자 도전입니다. 저는 세포 생물학이 유전학이나 진화 생물학에 비해 과소 평가되면서 대중 과학책이 비교적 적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저는 세포에 대한 이해가 우리가 생명 현상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들의 핵심임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세포에 새로운 역할과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다시 프로그래밍하는 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최근 한 가지 과학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 팔에서 일부 세포를 떼어낸 다음, 이것을 실험실에서 배양해 신경 세포로 이뤄진 초보적인 뇌 닮은 기관으로 키워 내는, '미니브레인(mini-brain)'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입니다. 이 책은 부분적으로는 이렇게 놀라운 신기술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들이 우리 자신에 대한 감각과 정체성을 어떻게 바꿀지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의 패턴』과는 또 다른 '그림책'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멋진 그림으로 가득한, '화학'에 대한 책입니다. 중국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SB : 감사합니다. 말씀 주신 새 책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애독자로서, 편집자로서 말입니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해 주신 것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선생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과학+책+수다: 필립 볼 편 끝)




 필립 볼(Phillip Ball)

과학 저술가. 1962년생인 필립 볼은 1983년에 옥스퍼드 대학교 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88년에는 브리스틀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여 년 동안 《네이처》의 물리, 화학 분야 편집자, 편집 자문으로 일했다. 지금은 프리랜서 과학 저술가로 활약하며 책, 칼럼, 방송, 텔레비전, 블로그, SNS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주론에서 화학과 분자 생물학까지 과학의 이모저모를 해설하고 있다. 『화학의 시대(Designing the Molecular World)』, 『스스로 만들어진 태피스트리(The Self-Made Tapestry)』, 『H2O』, 『브라이트 어스(Bright Earth)』,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Critical Mass)』, 『음악 본능(The Music Instinct)』, 『모양(Shape)』, 『가지(Branches)』, 『흐름(Flow)』, 『제3제국의 과학자들(Serving the Reich)』, 『이상함을 넘어서(Beyond Weird)』 등 20여 종의 과학책을 펴냈다. 미국 항공 우주국(NASA),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 런던 정치 경제 대학(LSE)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으며, 《네이처》, 《뉴사이언티스트》, 《가디언》, 《뉴욕 타임스》 등 여러 과학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홈페이지: philipball.co.uk



필립 볼의 책들


『자연의 패턴』 [도서정보]


『화학의 시대』 [도서정보]


『사이언스 북』 [도서정보]


『모양』 [도서정보]


『흐름』 [도서정보]


『가지』 [도서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