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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부는 한국어 공부 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한국어 가르치기『언어의 아이들』 : 조지은 편 ① 본문
이번 「과학+책+수다」에서는 『언어의 아이들: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언어를 배울까?』의 저자 조지은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언어학을 가르치시는 조지은 교수님과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원으로 계시는 송지은 박사님은 언어학자이자 이중 언어 사용자로서, 아이의 언어 습득 과정에 숨은 비밀을 탐구하는 이 책을 함께 쓰셨습니다. 마침 잠시 한국을 방문하신 조지은 교수님과 나눈 이야기들을 4회에 걸쳐 함께 보시겠습니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열한 번째 이야기
영국에 부는 한국어 공부 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한국어 가르치기
『언어의 아이들』 : 조지은 편 ①
SB : 선생님께서는 서울 대학교 아동가족학과를 나와 언어학 석사 학위를 취득 후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언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습니다. 영국에서 유학하시는 동안 언어 관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이신지요?
조지은 : 에피소드가 너무 많죠. 제가 20년 가까이 영국에서 살았지만 한 가지 뼈저리게 느끼는 건 말을 배운다는 게 한 번에 딱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영어로만 말을 하고 10년을 산다고 영국 사람이 된다거나 영국 사람처럼 말을 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언어 습득이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항상 느낍니다. 처음에 영어를 아주 못하는 상태에서 영국에 간 건 아니었지만 영어로 말을 할 때는 완벽한 상태로 말을 하려고 해서 더 어려웠어요. 수업 시간, 세미나 시간을 예로 들면 영국 사람들은 버팅(butting), 끼어들기를 잘해요. 끼어드는 게 자연스럽고 좋은 거예요. 누가 말하는 중에 끼어들고 또 주고 받고, 발언권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나이나 권위는 상관없거든요. 교수이기 때문에 혹은 학생이기 때문에 이런 조건 없이 자연스럽게 치고 들어가는 게 저는 한국 사람으로서 너무 힘들었어요. 게다가 저는 생각이 다 정리된 다음에 발언을 하려니까 더 어려웠죠.
저희 교수님도 퍼스트 네임을 부르라고 했는데 영국에는 친근감의 표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제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느껴졌어요. 루스라고 부를 적마다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어떻게 이렇게 부를 수 있지? 그래서 큰소리로 못 부르고 늘 조그마한 목소리로 불렀던 기억이 나요. 제가 공부하던 당시에는 아시아 학생이 많지 않아서 저희 교수님이 그 부분은 잘 이해를 못하셨어요. 왜 이름도 잘 안 부르고 뭔가 거리를 두는 것 같지? 이런 문화적 오해들이 있었어요. 저의 공손함이 그분에게는 거리를 두는 걸로 느껴졌던 거죠. 말을 배울 때 단순히 영어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말을 하려면 그 문화에 맞게 말을 해야 되거든요. 그 단계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참 입이 떨어지지 않았죠.
SB : 선생님께서 옥스퍼드 대학교에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되셨는지도 많은 독자들이 궁금해 할 텐데요.
조지은 : 언어학으로 박사 학위가 끝날 무렵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구인 광고가 나서 지원했습니다. 언어학을 가르치는 자리이면서도 한국학, 특히 한국어를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한국에서 지원을 해 주는 자리였습니다. 10년도 더 전인데 지금과 굉장히 판도가 달랐어요. 요즘은 한류 등의 영향으로 한국어나 한국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거든요. 당시에는 유럽에 있는 한국 학과들이나 한국어 교육 기관들이 문을 닫는 추세였고 한국에 대한 이해도 별로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국제 교류 재단과 YBM에서 지원이 이루어져 한국학을 되살리려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저는 언어학을 전공했지만 런던 대학교 박사 과정 중에 한국어를 가르친 적도 있거든요.
SB : 그럼 옥스퍼드 대학교에서는 어떤 수업을 하시나요?
조지은 : 한국학, 한국어 언어학도 가르치고 일반 언어학, 이론 언어학, 특히 제가 관심이 있는 이중 언어 관련 주제들(Multilingualism, Translanguaging)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옥스퍼드에서 저더러 어떤 내용을 가르치라고 의뢰하는 게 아니라 제가 수업을 만들어서 제가 원하는 걸 가르치면 되거든요. 한국과는 좀 다르지요. 그래서 한국어, 한국학 관계된 번역학 수업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관련된 한국의 시나 문학 번역서를 다루면서 능력 있는 번역가들도 많이 만나요.
SB : 그 번역가들은 영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번역가인가요?
조지은 : 재학생은 주로 영국이나 유럽 사람들인데 특히 한국 문학에 심취해서 한국 문학을 번역하는 학생들이에요. 옥스퍼드에서 매년 시 번역 워크숍도 열고 있습니다.
SB : 영국인들이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선생님이 말씀하신 한류나 케이팝, 한국 영화들이 인기를 모으는 것에 영향을 받은 것인가요?
조지은 : 많이 관계가 있지요. 물론 한류 붐이 단지 케이팝 때문은 아니에요. 1970년대, 1980년대 유럽에서 일본 망가나 애니메이션 때문에 일본어의 인기가 굉장히 많았어요. 이제는 그게 한국어, 한국 문화에 대한 인기와 맞닿은 것 같아요. 지난 10년 동안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아는 교수님 통해서 들었는데 프랑스 파리 7대학 한국어 수업의 경우 작년에 30~40명 모집에 1,000명씩 지원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거지요. 유럽 사람들은 주로 일본 문화에 빠져 있었는데 일본에 비해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최근에는 케이팝뿐만 아니라 문학, 문화, 영화, 음악, 드라마처럼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소프트 파워 컨텐츠에 관심을 갖는 것 같아요. 한국 시를 번역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고요, 한국 문학 번역도 물론 『채식주의자』 이후에 더 늘었지만 2014년 도서전 때부터 관심이 커진 것 같아요.
정말 똑똑한 학생들이 많이 번역을 하려 하고 있어요. 번역하고, 한국에 대해서 배우려고 하고요. 제 친구 중에는 독일인인데 판소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생이 있어요.
SB : 우리나라에서요?
조지은 : 런던 대학교에서요. 흔히 현대 문학이나 현대적인 것만 좋아할 것 같은데 한국 음악, 판소리, 고전이나 고전 문학에도 관심이 큰 학생들이 많아요. 제가 문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번역학을 가르치는데 번역의 이슈들이 다 언어학의 이슈들이거든요. 그런 수업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SB : 한류가 한국어를 전파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인 효과 외에 부작용이나 회의적인 면은 없나요?
조지은 : 아직 그렇게 부정적인 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다 케이팝 팬들은 아니고, 케이팝을 몰라도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심어져서 좋은 거 같아요. 케이팝을 모르는 세대들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심지어 음식 같은 경우도 제가 20년 전에 영국에 처음 갔을 때만 해도 한국 음식점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굉장히 트렌디한 음식이 되어 버린 거예요. 그런 여러 가지 면에서 굉장히 저는 좋지요. 자긍심도 생기고. 학생들도 여러 가지 분야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갖고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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