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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자의 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언어의 아이들』 : 조지은 편 ② 본문

(연재) 과학+책+수다

언어학자의 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언어의 아이들』 : 조지은 편 ②

Editor! 2019. 5. 30. 09:28

이번 「과학+책+수다」에서는 『언어의 아이들: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언어를 배울까?』의 저자 조지은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언어학을 가르치시는 조지은 교수님과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원으로 계시는 송지은 박사님은 언어학자이자 이중 언어 사용자로서, 아이의 언어 습득 과정에 숨은 비밀을 탐구하는 이 책을 함께 쓰셨습니다. 마침 잠시 한국을 방문하신 조지은 교수님과 나눈 이야기들을 4회에 걸쳐 함께 보시겠습니다. (SB: 사이언스북스 편집부)


 

「과학+책+수다」 열한 번째 이야기

"엄마 오늘도 녹음할 거야?" 언어학자의 아이는 어떻게 말을 배울까?

『언어의 아이들』 : 조지은 편 ②
 

 

SB : 『언어의 아이들』을 같이 쓰신 송지은 선생님은 오늘 못 나오셔서 아쉽습니다. 처음에 두 분이 함께 책을 쓰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두 분이 함께 또 다른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신가요?
 
조지은 : 송지은 선생님이랑 저랑 이름이 같죠? 서울 대학교 후배인데 영국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사실 송지은 선생님은 음성학 전공이고 뇌과학 쪽을 다루시는데 저는 음운론 전공이지만 음성학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야기하다 보니까 관심사도 겹치고 이중 언어에 대해서 관심 있어서 결국 이 책을 쓰게 됐고요. 아이들의 운율 습득을 연구는 프로젝트 중입니다. 아이들이 운율을 어떻게 습득하는지, 주로 서너 살 아이를 대상으로 한국어의 다양한 운율적인 특징을 아이들이 이해를 하는지 실험하는 거죠. 아이들이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SB : 따님들이 언어를 배우며 자라는 과정을 보시면서 언어학자로서나 어머니로서의 관점이 조금 다를 때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어떠신가요?
 
조지은 : 제가 자꾸 아이들 말을 분석하려고 해요. 둘째 아이가 어릴 적 식탁에 조그만 삼각대를 설치해 놓고 아침 먹을 때마다 30분씩 찍으면서 녹음을 했어요. 지금도 그 데이터가 있죠. 아이들이 “엄마 녹음하는 거야?”, “녹음 할 거야? 안 할 거야?” 이렇게 물어보던 기억이 생생한데 진짜 어느 순간 너무나 빨리 지나갔어요. 우리 아이들이 언제쯤에나 말을 배울까 싶던 처음에는 제가 단어 하나하나 다 적고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너무 빨라져서요. 도대체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없을 정도로, 말이 빵 터진다고 해야 될 정도의 시기가 오는 거예요. 아, 정말 언어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엄마, 아빠라면 진짜 경이로운 순간이지요.


저희 둘째가 이중 언어를 쓰는 과정에서 한국어 먼저 배우고, 영어를 배울 때 한국어 배운 내용을 사용했어요. 한국어 단어를 영어식으로 발음하고, 영어를 말하는 데 한국어 문법으로 영어를 말하는 거예요. 그럴 때 굉장히 신기했어요. 아이들이 제일 처음에 배우는 게 운율이라고 책에서 배웠지만 실제로 목격할 때는 또 새롭죠. 뜻을 몰라도 억양을 제일 먼저 배운 다음에 거기에 끼워 맞추듯이 말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한국말만 하다 영국 유치원에 처음 갔을 때는 영어를 잘못 알아들어서 제가 걱정을 했는데 정말 너무나 빠른 순간에, 너무 자신감 있게 해냈어요.

피버디 테스트(『언어의 아이들』 본문 67쪽에서)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는 “이건 맞는 말이야, 이건 틀린 말이야.”라는 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거지요. 그래서 너무나 자유롭게 말하는 거예요. 아이들 사이에서는 “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이러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선생님들도 그 시기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정말 자유롭게 언어를 탐험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기 코드가 생기는데 저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때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아마 한국에서라면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말해야 돼.” 이런 메시지가 많이 있었을 텐데 영국 유치원에서는 그냥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정말 즐거워하면서 배우더라고요. 그리고 마음대로 말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한국어 문법 구조에 영어를 집어넣어서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아이들끼리는 다 통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지나면 문법이 돌아오거든요. 두 개의 문법 구조가 생기는데 중간에 잠깐 둘이 왔다 갔다 섞이는 순간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 “이렇게 말해야 돼. 이렇게 말해야 돼.”, “한국어를 할 때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하지 않고 그냥 뒀거든요. 그 사이에 아이들이 시스템을 알아차리면 그 두 개가 그대로 발전하더라고요. 실제로 경험하고 나니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때 자료가 제가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자료예요. 이중 언어로 넘어가는 그 순간이요.


또 저희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랑 대화할 때도 흥미로웠어요. 영어를 못하시는 외할머니나 영어만 하시는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문법으로 보면 엉터리지만 대화가 되는 거죠.
 
SB : 책에는 아들의 옹알이를 9만 시간 동안 녹음한 학자 이야기도 나오잖아요. 자녀나 주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언어학에서는 일상적인 것인가요?
 
조지은 : 사실 언어를 배우는 데 미스터리 중 하나가, 오늘 이렇게 말을 할 거라고 미리 생각은 했겠지만 방금 말한 것, 조금 후에 말한 것이 다르잖아요. 경험적으로 분석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거예요. 아이들의 말을 빅데이터로 분석해 내서 패턴을 만드는 것도 어렵죠. 말을 할 때마다 다르게 말하는 거예요. 이 데이터에 의존하는 연구는 패턴을 찾아내는 정도예요. 물론 예전부터 언어학자들은 아이들의 언어 자료를 사용했어요. 특히 엄마, 아빠가 언어학자라면 아이들의 말을 기록하려고 해요. 저도 처음에는 노트를 쓰다가 ‘아, 안 되겠다. 지금 안 하면 놓치겠구나.’ 싶어서 비디오를 찍게 됐어요.
아이들이 운율보다 더 먼저 배우는 건 몸짓, 행동이에요. 새로운 환경에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제일 잘 통할 수 있는 게 바디 랭귀지잖아요. 그래서 영상으로 찍어서 아이들이 비언어적 행동을 어떻게 배워나가는지도 연구해 보려고요. 언어를 배우는 것과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다르죠.


예를 들어 한국 사람을 대할 때, 영국 사람을 대할 때가 다르거든요. 또 그중에서도 크로스오버가 있어요. 둘째아이가 제일 처음 배운 제스쳐 중 하나가 슈러깅(shrugging), 어깨를 으쓱하는 거예요, 이렇게. 그런데 걔가 한국말을 하면서 한국 어른들 앞에서 그러니까 굉장히 웃긴 거예요. 슈러깅은 영어로 할 때 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 이쪽에서 하는 거 저기다 쓰기도 하고 저쪽에서 하는 거 여기 쓰기도 하고요. 또 이중 언어 아이들이 어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을 어려워하는 수가 있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제 아이들이 나이 많은 분들의 이름을 부르는 걸 어려워하더라고요. 아빠 친구 이름 대신에 삼촌이라고 부르거나 이모라고 부르는 거예요.

SB : 어른들이 영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관계없이요?
 
조지은 : 네. 가르치지 않았는데 이름만 부르면 안 된다고 배운 거예요. 두 가지가 항상 크로스오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신기한 부분이 있어요. 사실 두 가지 언어를 쓰는 상황이 정확히 나뉘는 게 아니고 항상 공존하거든요. 그래서 제 아이들이 연구 대상이 되는 편이에요.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달라서 일반화하기는 힘들겠지만 영어와 비교했을 때 욕이라든지 감정 표현 레퍼토리가 한국에 더 많아요. 한국의 형용사들이 훨씬 많아요. 제가 영국에서 강의할 때도 이야기하지만 이중 언어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 있어요. 여러 가지 언어를 많이 알면 표현력이 늘어나요. 요즘에는 이중 언어 작가도 많아졌는데 그 강점은 두 가지 언어 문화를 이해한다는 데도 있지만 무엇보다 표현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는 데 있어요.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 이 언어에 많으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고, 저 언어에 많으면 저렇게 표현할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레퍼토리가 굉장히 커지는 거예요.

문을 여는 아이 (CC) Public Domain  

아이들이 말하는 내용 자체는 조절해 줄 필요가 있을 때도 있지만 문법적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영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도 3인칭 단수에 s를 붙인다든가 하는 실수가 많아요. 그런데 이렇게 말했다고 알려 주면 자기가 그렇게 말한 줄도 모르거든요. 인도-유럽어 문법에 관해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은 언제든 실수를 할 수밖에 없어요. 실수를 하지만 그 실수가 어떤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우리 아이들의 경우 선생님도 학교 분위기도 그 실수를 자연스러운 것,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어, 실수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말을 못하는 거예요. “그런 단순한 실수를 내가 하다니!” 이러면서요. 제가 영국에 살면서 그런 실수에 대해서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저를 포함해서 한국인들은 그런 실수에 민감하게 길들여진 거예요. 물론 말하는 것과 쓰는 것은 달라요. 쓸 때는 항상 모니터링을 하지만 말을 할 때는 모니터가 없으니까요.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모국어 상실(mother tongue loss)도 종종 일어나요. 독일인인데도 미국에서 20년 동안 살다가 독일에 갔더니 관사를 못 쓰는 것처럼요. 모국어를 안 쓰는 데 있다 보면 모국어 상실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죠. 우리 몸이 노화되듯이 언어를 조금씩 상실해 나가는 과정이거든요. 문법에 대해서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까 실수를 안 하려는 대신 표현력이나 내용이 좀 약해지게 되는 면이 있죠.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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