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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양구의 과학 블랙박스

기후 변화, 과학이 정치를 만날 때

Editor! 2019.06.05 16:00

지난 5월 17일 영국 언론 《가디언》은 기후 변화(climate change) 대신 기후 위기(climate crisis)라는 단어를 쓰기로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비상 사태(emergency)나 붕괴(breakdown) 같은 단어도 기후 관련해서 사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가디언》 기사 링크) 지구 온난화가 가져올 재앙을 “정확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랍니다. 그러고 보니 지구 온난화도 지구 가열(global heating)로 바꾸기로 했고 기후 변화 회의론자(climate sceptic)라는 표현을 ‘기후 변화 부정론자(climate denier)로 대체하기로 했답니다. 왜 《가디언》은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그 배경에 담긴 기후의 과학과 정치 경제의 관계를 「강양구의 과학 블랙박스」가 파헤칩니다.


 

강양구의 과학 블랙박스

기후 변화, 과학이 정치를 만날 때

 

2019년 1월 31일 브뤼셀에서 열린 벨기에 학생들의 기후 정책 관련 항의 집회. 벨기에 정부와 미국 트럼프 정부의 기후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가끔 지구 온난화를 놓고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벽에 부딪힐 때가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같은 기후 변화 부정론자(climate denier)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알다시피, 정유 업계 등의 강력한 후원을 받고 당선된 트럼프는 지구 온난화와 이해 관계가 충돌한다. 지구 온난화를 인정하면 해야 하는 여러 행동이 달가울 리 없다.

당혹스러운 상대는 지구 온난화와 그것이 초래하는 기후 변화를 믿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사람 가운데 일부는 지구 온난화나 기후 변화의 과학적 증거가 부실해 보이기 때문에 쉽게 납득이 안 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들은 그간 몇 차례에 걸쳐서 유엔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내놓은 보고서의 예측이 수정된 사실을 그 부실의 증거로 내놓는다.

일급의 훈련을 받은 과학자 다수가 지구 온난화는 ‘사실’이고(산업화 이전과 비교했을 때 지구 평균 온도가 약 1도 상승했다.), 앞으로 지구 온도 상승 폭을 1.5도 안에 잡아두지 못할 경우 심각한 재앙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는데도 이들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도대체 어떤 대목에서 소통이 단절된 것일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현대 과학의 성격 변화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변화에 대한 몰이해야말로 소통 단절의 중요한 원인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 과학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확실성(certainty)’이 아니라 ‘불확실성(uncertainty)’이 되었다. 낯선 이야기일 테니,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 읽어 보자.

 


과학의 확실성
가장 최근에 전 인류를 설레게 한 과학 이벤트를 떠올려 보자. 2019년 4월 10일, 사상 최초로 블랙홀 이미지가 공개되었다. 이 이미지는 지구에서 55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블랙홀을 촬영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새삼 강조하자면, 그 블랙홀은 우리가 이미지로 촬영하기 전에도 55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존재했다.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 메시에 87(M87) 중심부에 있는 초질량 블랙홀의 모습. 사건 지평선 망원경에 의해 2019년 4월 10일 촬영되었다. 사진 제공: ESO.

이렇게 블랙홀을 이미지로 촬영한 일은 과학자뿐만이 아니라 대중에게도 아주 익숙한 과학 활동이다. 과학자는 오랫동안 자연에 존재해 온 어떤 원리를 발견해 왔다. 예를 들어, 아이작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기 전에도 일상 생활 속의 질량을 가진 물체는 그 법칙을 따라서 움직였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마찬가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인류의 사고 체계 변화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떠올리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미쳤음은 틀림없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견하기 전에도 우리 우주의 시공간은 상대성 이론을 따라서 존재했다.

20세기 물리학의 또 다른 혁명적 발견인 양자 역학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어떤 과학자와 철학자는 양자 역학의 해석 문제를 놓고서 고민 중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과는 별개로 양자 역학은 수학 방정식으로 깔끔하게 기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시 세계는 양자 역학을 발견하기 전에도 그 논리대로 움직였다.

즉 우리가 익숙한 과학은 세계가 움직이는 방식의 ‘이해’를 구하는 활동이다. 이런 이해에 성공하기만 하면, 우리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것까지 가능했다. 20세기 과학 기술은 바로 이런 이해를 통한 ‘확실성’에 기반을 두고 자신의 위상을 높여 왔다.

 


기후 과학은 다르다
현대 과학의 성격이 변했다.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나 기후 변화의 핵심에 위치한 기후 과학의 사정을 살펴보자.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세계적인 과학 저널에 실린 기후 과학 논문에서는 “might” 같은 단어를 자주 볼 수 있다. 알다시피, “might”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추측할 때, 그것도 조심스럽게 추측할 때 쓰는 표현이다.

2019년 5월 20일 공개된 새로운 기후 과학 논문(「전문가 판단에 따른 미래 해수면 상승에 대한 빙상의 기여(Ice sheet contributions to future sea-level rise from structured expert judgment)」)을 살펴보자. 이 논문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 기체 배출량이 현재 추세대로 이어진다면, 2100년 세계 해수면이 0.62~2.38미터까지 상승하리라 추정했다. (지구 평균 기온 5도 상승)

이런 추정치는 파격적이다. 그동안 IPCC를 비롯한 일반적인 기후 과학자는 2100년에 1미터 정도 수준으로 해수면이 상승하리라고 전망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IPCC 5차 보고서(2014년)는 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한다면 지구 온난화로 2100년까지 세계 해수면이 0.52~0.98미터까지 상승하리라고 전망했다.

 

지구 가열(지구 온난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의 추이.  

과학자의 추정치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은 그간 IPCC를 비롯한 과학계가 가능성(확률)이 낮은 영역을 무시하는 전략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2100년 해수면이 2.38미터까지 상승할 가능성은 5퍼센트 정도로 높지 않다. 하지만 이런 적은 확률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제 흥미로운 진실을 살펴볼 차례다. 여기 두 그룹의 과학자가 내놓은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한쪽은 지금 온실 기체 배출이 그대로라면, 2100년에 해수면이 약 1미터 상승하리라고 본다. 다른 한쪽은 최악의 경우에는 2미터 넘게 상승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 두 과학자의 시나리오 가운데 어느 쪽이 사실(fact)에 더 부합하는지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맞다. 2100년까지 인류가 온실 기체 배출을 지금처럼 그대로 하고서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할지 확인하면 된다. 2미터 넘게 해수면이 상승했다면, 21세기 초반의 소수 의견 과학자 그룹이 좀 더 사실에 부합하는 시나리오를 내놓은 승자로 확인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

지금 기후 과학자가 수많은 시나리오를 내놓은 이유는 자신의 연구가 사실로 확증받기를 기대해서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논문을 발표한 과학자가 2100년 해수면이 2미터 이상 상승할 수 있으리라는 추정치를 내놓은 이유는 인류가 온실 기체를 줄이려는 좀 더 긴박한 노력을 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기후 과학과 20세기까지 주류를 차지했던 과학 일반과의 차이점이 또렷해진다. 기후 과학은 자연의 변화를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할 뿐만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상호 작용’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 기후 과학이 관심을 가지는 자연의 변화에 인간은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그런 긍정적인 영향이야말로 기후 과학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다.

 


기후 변화, 과학에서 정치로
이 대목에서 기후 과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과학이 갖는 중요한 특징이 나타난다. 바로 ‘불확실성’이다. 그 자체로 복잡한 기후 현상을 다루는 기후 과학의 불확실성은 자연과 인간의 상호 작용 때문에 더욱더 증폭된다. 즉 기후 과학에서 불확실성은 이전 과학의 확실성만큼이나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사정은 기후 과학뿐만이 아니다. 20세기 후반부터 과학 활동의 중요한 영역이 되어 가고 있는 안전, 보건, 환경 분야(the science of safety, health and environmental) 모두 어느 정도는 기후 과학과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 분야들의 연구가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되고, 또 불확실성을 중요한 특징으로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불확실성을 특징으로 갖는 새로운 과학 활동의 특징을 강조하면서 제롬 라베츠 같은 학자가 ‘탈-정상 과학(post-normal science)’을 이야기하고, 또 많은 이들이 기후 과학 같은 과학을 ‘정책을 위한 과학(science for policy)’이라고 특별히 구별해서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후 과학의 불확실성은 그 과학이 과거의 ‘정상 과학’과 비교했을 때, 과학적이지 못함을 보여 주는 증거가 아니다. 불확실성은 오히려 그런 과학 활동의 고유한 특성이다. 또 불확실성은 기후 과학의 연구 대상인 기후 변화가 자연과 인간의 상호 작용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대상임을 강조한다.

더구나 이런 불확실성을 통해서 우리는 기후 변화가 단지 과학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즉 너와 내가 관심을 가져야 할 우리의 문제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기후 과학의 불확실성은 기후가 과학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정치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불확실성을 통해서 기후 과학은 기후 정치와 만난다.

기후 과학과 기후 정치가 만나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양구
프리랜서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환경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부안 사태, 경부 고속 철도 천성산 터널 갈등,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언론상, 녹색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프레시안》 편집부국장, 코리아메디케어의 콘텐츠 본부장(부사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팩트 체크 미디어 《뉴스톱》의 팩트체커로 활동하면서, 지식 큐레이터로서 「YG와 JYP의 책걸상」을 진행하고 교통방송 「색다른 시선, 이숙이입니다」, SBS 라디오 「정치쇼」 등에서 과학 뉴스를 소개하고 있다.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1, 2권),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과학 수다』(공저), 『밥상 혁명』(공저), 『침묵과 열광』(공저), 『정치의 몰락』(공저),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공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공저)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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