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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강양구의 과학 블랙박스

플라스틱의 저주

Editor! 2019.06.19 16:02

크리스 조던이라는 이름을 아시는지요? 1963년생인 조던은 사진, 개념 미술, 영화와 비디오 아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현대 문명의 불편한 진실을 폭로하는 작품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 2월부터 5월 초까지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라는 제목의 특별전이 국내에서 열려 환경 문제를 예술로 승화시킨 크리스 조던의 작품 세계를 한국 사회 시민들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지식 큐레이터 강양구 기자가 이번에는 조던의 작품 세계와 그의 문제 의식을 소개합니다. 


 

강양구의 과학 블랙박스

플라스틱의 저주

 


태평양 한가운데에 미드웨이 섬이 있다. 1942년 6월 5일 있었던 미드웨이 해전의 무대가 되었던 섬이다. 이 전투에서 미국의 전투기가 일본의 해군 함정을 궤멸시키면서 태평양 전쟁의 시소가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 물론, 미드웨이 해전이 아니었더라도 결국은 미국이 이길 전쟁이었지만.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70년 후, 얼핏 보기에 이 섬은 평화롭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군데군데 죽음의 흔적이 가득하다. 2009년 9월, 사진가 크로스 조던이 미드웨이 섬을 처음 찾았을 때 맞닥뜨렸던 것이 바로 그 죽음의 흔적이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알바트로스의 죽은 형상. 그리고 그 안에 가득한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조각들.

 

크리스 조던이 찍은 새끼 알바트로스의 사체. 내장 부분에 모여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확인할 수 있다. Photo credit: Chris Jordan. 

마치 취향이 고약한 예술가의 설치 미술 작품처럼 보이는 이 사진을 세계에 공개한 조던은 조작 시비를 걱정한 나머지 이렇게 덧붙여야 했다. “이 비극을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플라스틱 한 조각에도 손대지 않았다.” 도대체 알바트로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던은 그 뒤로 수차례 미드웨이 섬을 찾았다. 진실은 이렇다.

Photo credit: Chris Jordan. 


알바트로스, 창공의 방랑자


알바트로스는 하늘을 나는 새 가운데 가장 크다. 날개를 펼치면 약 3미터에 이르고, 몸길이도 약 90센티미터로 1미터에 가깝다. 큰 날개를 이용해서 빠른 속도로 오랫동안 수평 비행이 가능하다. 두 달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다. 주로 바다 위를 활공하면서 수면 가까이로 올라온 오징어 같은 먹이를 낚아채며 먹고산다.

알바트로스의 삶은 알면 알수록 흥미롭다. 예를 들어, 새끼 때 미드웨이 섬을 떠난 알바트로스는 약 3년 후에야 다시 고향을 찾는다. (심지어, 그동안 계속해서 바다 위에서만 살 수도 있다.) 고향에서 짝을 찾은 알바트로스는 바로 교미를 하지 않고 커플이 되어서 다시 바다로 떠난다. 연애 기간은 약 5년!

이런 연애 기간 동안 알바트로스 암수는 서로를 각인한다. 알바트로스는 약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새끼의 양육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갈수록 일부일처제 비율이 높은 점을 염두에 두면, 알바트로스의 일부일처제 본능의 원인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

알바트로스는 새끼를 양육하는 데에 에너지를 많이 쏟는 새다. 알바트로스 한 쌍은 약 2년에 한 개씩 알을 낳는다. 암수가 79일간 교대로 애지중지 품어야 부화 가능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태어난 새끼가 날 정도로 날개가 크려면 약 6개월간의 돌봄이 필수다. 새끼 한 마리가 알바트로스 구실을 하려면 약 9개월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독박 양육은 벅찼을 테다.

 


새끼에게 플라스틱을 먹이는 어미 알바트로스의 비극


미드웨이 섬에는 한 해 100만 마리의 알바트로스가 찾는다. 그 가운데 일부는 짝을 찾으며 구애의 춤을 춘다. 평생 함께할 알바트로스 한 쌍은 춤사위의 닮음으로 확인할 수 있단다. 그리고 이미 부부가 된 알바트로스는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그 가운데는 오랜 연애를 하고서, 첫 교미 후에 알을 낳는 신혼부부도 있다.

미드웨이 섬을 다시 찾은 조던은 살아 있는 알바트로스를 향해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알바트로스 사이의 애정과 신뢰의 징표인 춤과 따뜻한 스킨십, 두 달 넘게 암수가 번갈아 가면서 알을 품는 기다림, 기어이 알을 깨고 나오는 생명의 경이. 가장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모습은 바다에서 구한 먹이를 어미가 몸에 담고 와서 새끼에게 게워 먹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조던의 카메라는 충격적인 장면을 포착한다. 알바트로스가 새끼에게 게워서 먹이는 것은 오징어가 아니라 파란색 플라스틱 조각이었다. 이런 기막힌 일이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알바트로스가 둥둥 떠 있는 플라스틱 조각을 바다 위로 떠오른 오징어로 착각했다.

플라스틱 조각을 새끼에게 먹이는 알바트로스 어미. Photo credit: Chris Jordan. 

플라스틱 조각이 낳은 알바트로스의 비극은 이뿐만이 아니다. 알에서 깨고 나서 어미의 보살핌을 받으며 6개월 이상 날개를 키운 알바트로스 새끼는 비행을 시도한다. 다시 육지에 머물기까지 몇 년이 될지 모를 긴 공중 여행을 준비하면서 알바트로스 새끼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몸을 가볍게 하는 일이다.

비행을 준비하는 알바트로스 새끼가 곳곳에서 뱃속의 소화되지 않은 먹잇감을 게워 낸다. 아니나 다를까, 게워 낸 먹잇감 안에서 반짝이는 플라스틱 조각이 보인다. 그렇게 있는 힘껏 몸속을 비운 알바트로스 새끼는 공중으로 힘찬 도약을 시도한다. 아! 조던의 카메라는 다시 한 번 탄식이 나오는 장면을 포착한다.

분명히 날갯짓을 힘차게 하는데도 날지 못하고 해변이나 인근 바다로 곤두박질치는 알바트로스 새끼가 여럿이다. 무슨 일일까? 그렇다. 몸속을 가득 채운 플라스틱을 미처 게워 내지 못한 새끼가 한둘이 아니다. 그들은 물속에서 익사해서 다른 포식자의 먹잇감이 되거나, 미드웨이 섬의 곳곳에서 점점 힘이 빠져 목숨을 잃는다.

조던이 처음 미드웨이 섬을 찾았을 때, 알바트로스가 떠나고 나서 곳곳에 남아 있는 죽음의 흔적은 바로 이 날지 못한 알바트로스 새끼의 유해였던 것이다. 알바트로스 새끼의 몸은 썩어서 부스러지고 그 새의 형상을 닮은 플라스틱 흔적만 남았다.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다시 담으며 조던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들이 죽어 가는 이유를 놓고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알바트로스는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애도의 윤리학이 필요하다!


미세 먼지처럼 미세 플라스틱이 또 다른 환경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연구진은 그간의 여러 연구를 종합해서 “음식물 섭취 등을 통해서 인체로 흡수하는 미세 플라스틱 양이 성인 남성은 연간 12만 1000개, 여성은 9만 8000개로 추정됐다.”라고 밝혔다. 아동도 예외가 아니어서 남자아이 8만 1000개, 여자아이 7만 4000개나 된다.

미세 플라스틱은 1마이크로미터(머리카락 굵기의 70분의 1에서 100분의 1)에서 5밀리미터 크기의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다. 수돗물(연간 4,000개)이나 생수(연간 9만 개)에 포함된 미세 플라스틱이 물을 마실 때마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렇게 몸속으로 들어온 미세 플라스틱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대부분이 그대로 대변으로 배출된다는 견해(실제로 대변에서 많은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와 90퍼센트 이상이 배출되더라도 130마이크로미터 미만의 좀 더 작은 미세 플라스틱은 몸속에 남아서 인체 조직으로 침투해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견해가 대립 중이다. 식수, 소금, 어패류 등 온갖 것이 포함되어 있는 미세 플라스틱이 몸속에서 무슨 일을 일으킬지는 앞으로 중요한 과학의 과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여기서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앞으로 여러 연구를 통해서 ‘미세 플라스틱이 인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인간에게 당장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지금처럼 수많은 플라스틱을 생태계로 내놓아도 상관이 없을까?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의 쓰레기를 새끼에게 먹이는 어미 새의 모습을 보고서도?

이제는 멈춰야 한다. 조던은 플라스틱과 함께 죽어 간 수많은 알바트로스를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애도의 윤리학! 이렇게 가다간, 마지막에 우리 인류를 애도할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애도는 슬픔이나 절망과는 다르다. 그것은 사랑의 감정과 같다. 애도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 혹은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족 1
크리스 조던은 8년간의 미드웨이 섬에서 알바트로스와 함께한 사진 작업을 다큐멘터리 영화 「알바트로스」로도 공개했다. 다음 링크에서 영상을 볼 수 있다. 영상 감상하기

 

사족 2
올 2월 22일부터 성곡 미술관에서 열린 「크리스 조던: 아름다움 너머」 전시회는 5월 5일 일단 막을 내렸다. 올해 말까지 부산, 순천, 제주 순서로 순회전이 이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관심 있는 독자는 꼭 찾아가 보기 바란다.

 



강양구 
프리랜서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환경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부안 사태, 경부 고속 철도 천성산 터널 갈등,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언론상, 녹색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프레시안》 편집부국장, 코리아메디케어의 콘텐츠 본부장(부사장)으로 재직했다. 현재 팩트 체크 미디어 《뉴스톱》의 팩트체커로 활동하면서, 지식 큐레이터로서 「YG와 JYP의 책걸상」을 진행하고 교통방송 「색다른 시선, 이숙이입니다」, SBS 라디오 「정치쇼」 등에서 과학 뉴스를 소개하고 있다.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1, 2권),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과학 수다』(공저), 『밥상 혁명』(공저), 『침묵과 열광』(공저), 『정치의 몰락』(공저),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공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공저)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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