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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기원은 ‘술 취한 사피엔스’? 본문

(연재) 강양구의 과학 블랙박스

인류 문명의 기원은 ‘술 취한 사피엔스’?

Editor! 2019.04.30 17:32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 한국 정보는 1년 동안 2조 80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주세로 거둬들였다고 합니다. 시장에 공급된 35억 리터 정도의 알코올에 매긴 세금이죠. 엄청난 돈이요, 엄청난 술 소비량입니다. 술 아니면 맘 달랠 길 없는 국민들의 지갑에서 술병 하나마다 꼬박꼬박 세금 떼어가는 정부 심보가 밉지만, 우리가 왜 이렇게 술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합니다. 술이 없었으면 인류 문명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지식 큐레이터 강양구의 과학 블랙박스 이번 편은 ‘술 취한 사피엔스’ 이야기입니다.


 

강양구의 과학 블랙박스

인류 문명의 기원은 ‘술 취한 사피엔스’? 

 

 

『음식 원리』 164∼165쪽에서


술 마신 다음 날만큼이나 불행한 날은 없다. 숙취로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고, 몸살에 걸린 듯 몸도 천근만근이다. 속도 안 좋아서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속에 든 걸 게워 내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어 오른다. 술김에 술값이라도 냈다면 가벼워진 주머니 때문에 속이 쓰리다. 아, 왜 나는 어제 그렇게 술을 마셨단 말인가?

철들고 나서 20년 넘게 이런 일을 반복했다. 한때는 심각하게 알코올 의존증(중독)을 의심해 본 적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몇 년 전에 1년간 외국에 나가서 생활하면서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는데도 별다른 금단 증상이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또 생각했다. 그럼, 왜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술을 마셔댔던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통합 생물학 교수이자 파나마 스미스소니언 열대 연구소 연구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생물학자 로버트 더들리가 내놓고 있는 ‘술 취한 원숭이 가설(drunken monkey hypothesis)’이다.


호모 사피엔스와 알코올의 공진화

우선 더들리의 설명을 따라가 보자. 알다시피, 술은 중독을 일으키는 다른 물질(예를 들어, 요즘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메스암페타민, 즉 필로폰)과는 다르게 자연 환경에서 쉽게 발견된다. 발효 과정에서 효모가 과일에 포함된 당을 먹고 끊임없이 (에틸) 알코올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과일 입장에서 알코올은 두 가지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하나는 효모가 만들어 내는 알코올이 다른 세균의 공격으로부터 과일을 지켜 준다. (세균 감염을 막고자 알코올 소독을 하는 데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알코올의 독성 때문에 세균은 과일을 쉽게 공격하지 못한다. 그 덕분에 과일은 부패 속도가 늦어진다.

알코올의 다른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 발효 과정이 가능하려면 과일에 당이 충분해야 한다. 알코올은 과일이 발효 과정이 진행될 정도로 당이 풍부함을 증명하는 표시다. 또 알코올은 증발해서 멀리까지 퍼지면서 ‘여기 당이 풍부한 잘 익은 과일이 있어!’ 하는 신호로도 기능할 수 있다. 그런 신호를 포착한 동물이 과일을 포식하고 씨를 퍼트리면 모두에게 이익이다.

이제 인간으로 눈길을 돌려 보자. 과일은 인간이 진화해 온 오랜 시간 동안 가장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었다. 예를 들어,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침팬지 식단의 75퍼센트는 과일이다. 오랜 수렵 채집 기간 동안 인류의 조상에게 잘 익은 과일을 찾아서 포식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운이 좋은 인류의 조상 손에 들어간 잘 익은 야생 과일 가운데 상당수는 적당히 발효가 진행되어 알코올을 포함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과일 속의 알코올은 다른 세균의 증식을 억제해서 과일이 주인을 만나기 전에 훼손되는 것도 막았다. 이렇게 과일을 먹으면서, 인류의 조상은 자연스럽게 알코올을 섭취하게 되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더들리의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이 등장한다. 오랜 수렵 채집 기간 동안 인류에게 소량의 알코올이 포함된 당도 높은 과일을 섭취하는 일은 이익이었다. 더들리는 이 과정에서 인류가 알코올을 선호하는 경향을 가지게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술 취한 사피엔스’가 탄생한 것이다.

 

『음식 원리』 170∼171쪽에서 


알코올 분해 능력 차이의 비밀

더들리에 따르면, 우리 몸속의 알코올 분해 생화학 반응도 과일을 매개로 한 인류와 알코올 사이 공진화의 증거다. 과일을 먹을 때마다 소량의 알코올을 지속적으로 섭취하게 된 인류는 자연스럽게 그것의 독성에 대응하는 다양한 방어 장치를 가지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생화학 반응이 바로 알코올 대사 반응이다.

몸속에 들어온 알코올은 즉시 혈관과 위장을 통해서 몸속 곳곳으로 흘러간다. 알코올 탈수소효소(ADH)는 몸속에 퍼진 알코올을 아세트알데하이드(독성)로 바꾼다. 독성 물질 아세트알데하이드를 기억하자. 왜냐하면 몸속에서 간을 비롯한 조직을 망가트리는 주범이 바로 아세트알데하이드이기 때문이다.

두통, 구토, 안면 홍조 같은 숙취의 원인도 아세트알데하이드다. 그래서 몸속의 아세트알데하이드는 빠르게 제거해야 한다. 간을 비롯해서 뇌, 폐, 신장 등에 있는 알데하이드 탈수소효소(ALDH)가 그 역할을 맡는다. ALDH는 있는 힘껏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아세테이트로 바꾼다. 최종적으로 아세테이트는 몸속에서 물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된다.

 

『음식 원리』 168∼169쪽에서


흥미롭게도 알코올을 분해하는 두 가지 효소는 개인과 남녀뿐만 아니라 지역 간에도 또렷한 유전적 차이가 있다. 특히 아시아계는 ADH는 빠르게 작동하는 반면에 ALDH는 천천히 작동한다. 즉, 아시아계는 술을 마시면 아세트알데하이드를 아주 빠른 속도로 축적한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ALDH는 천천히 작동하기 때문에 아세트알데하이드가 몸속에 더 많이 쌓인다.

일반적으로, 아시아계가 유럽계와 비교했을 때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 많은 등 술이 약한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기가 막힌 연구 결과가 또 있다. 아시아계 가운데 알코올 의존증이 심한 사람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ALDH가 유럽계처럼 빠르게 작동한다. 아세트알데하이드 대사 속도가 빠르면 술이 세고, 그것이 알코올 의존증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시아계와 유럽계의 알코올 대사 반응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결론을 내리기에는 연구가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더들리는 약 1만 2000년 전부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쌀농사가 시작된 사실을 언급한다. 동아시아계가 유럽계에 비해서 알코올 대사 능력이 떨어진 이유가 쌀농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흥미로운 질문이다.

(숙취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다양한 발효 과정 부산물이다. ‘컨제너’라고 부르는 발효의 부산물은 술에 고유한 풍미와 색감을 선사하지만 피로, 현기증, 메스꺼움, 두통 등을 유발한다. 일반적으로 숙취 정도는 맥주, 보드카, 진, 백포도주, 위스키, 럼, 적포도주, 브랜디 순으로 심하다. 하지만 알다시피, 술의 종류만큼이나 개인에 따라서 숙취도 천차만별이다.)

 

『음식 원리』 172∼173쪽에서


딱 한 잔도 나쁘다!

기왕 알코올 이야기가 나왔으니 술을 마실수록 세진다는 속설(?)의 진위도 확인하자. 몸속에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 가운데 MEOS가 있다. 주로 간에 분포하는 이 효소가 몸속에 들어온 알코올의 10퍼센트 정도를 분해한다. 앞에서 언급한 ADH, ALDH가 태어날 때부터 그 양이 정해져 있는 반면에 MEOS는 술을 마실수록 그 양이 증가한다.

그러니 술을 마실수록 세진다는 속설은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다. 다만 MEOS가 알코올을 분해하는 비중은 고작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하고, 그 양이 늘어나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주량이 맥주 한 잔인 사람이 한두 모금 정도는 더 마실 수는 있지만, 두 잔으로 늘지는 않는다. 그러다 탈 난다.

알코올을 둘러싼 또 다른 논란도 있다. 적당한 알코올 섭취(하루 와인 한 잔 정도)가 건강 특히 심장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끊이지 않았다. 포도주 한 잔이 혈액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면서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을 줄여 준다는 것이다. 글쎄다. 이런 주장은 작년(2018년)에 결정타를 맞았다.

2018년 8월 23일 세계 질병 부담 연구 그룹(Global Burden of Disease Study 2016, GBD2016)이 《랜싯》을 통해서 공개한 연구 결과(링크를 따라가면 논문 전문을 볼 수 있다.)를 보면, 1990년부터 2016년까지 195개국 다양한 연령대(15~95세)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그 영향이 적긴 하지만) 하루 술 한 잔도 건강에 좋지 않았다.

더구나 하루에 술을 딱 한 잔만 마시는 사람은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보지 못했다. 더들리가 정확히 지적했듯이, 지금 인류는 수렵 채집 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알코올(술)에 노출되어 있다. 오랜 진화의 시간 동안 서로 좋은 관계를 맺어 왔던 인류와 알코올 사이의 관계의 변화가 불가피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내놓은 더들리의 가족사를 하나만 언급하자. 더들리의 아버지 역시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는 중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젊어서 세상을 떴다. 더들리가 왜 우리가 알코올에 탐닉하는지를 묻고 또 물은 데에는 이런 아픈 가족사가 있었다. 더들리의 바람처럼, 과연 인류는 고삐 풀린 알코올을 길들일 수 있을까? 나는 자신 없다.

 

『음식 원리』 166∼167쪽에서


사족

로버트 더들리의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은 최근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술 취한 원숭이(The Drunken Monkey)』(김홍표 옮김, 궁리, 2019년)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2014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은 제목대로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을 처음으로 제기하면서 화제가 되었다. 감이 얼른 안 온다면 ‘술 취한 사피엔스’로 바꿔도 무방하다.

로버트 더들리의 『술 취한 원숭이』는 『과학 원리』의 옮긴이 김홍표 선생님 번역으로 나왔다. 알코올과 술의 이모저모를 짧은 시간에 정리하려면 『과학 원리』와 같은 ‘DK 인포그래픽 팩트 가이드’ 시리즈 『음식 원리』의 164쪽부터 173쪽까지를 참고하자. 이 정도만 알아도 술자리에서 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강양구
프리랜서 지식 큐레이터. 연세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프레시안》에서 과학·환경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부안 사태, 경부 고속 철도 천성산 터널 갈등, 대한 적십자사 혈액 비리, 황우석 사태 등에 대한 기사를 썼다. 특히 황우석 사태 보도로 앰네스티언론상, 녹색언론인상 등을 수상했다. 《프레시안》 편집부국장, 코리아메디케어의 콘텐츠 본부장(부사장)으로 재직했다.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1, 2』,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 『과학 수다』(공저), 『밥상 혁명』(공저), 『침묵과 열광』(공저), 『정치의 몰락』(공저),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공저),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공저) 등을 저술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음식 원리』 [도서정보]

 

『인체 원리』 [도서정보]

 

『요리 본능』 [도서정보]

 

『알코올 병동』 [도서정보]

1 Comments
  • 프로필사진 ㄹ ㄹ 2019.05.01 21:29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 알콜 분해 과정이 점진적 과정으로 생겨 날수 있나요? 그게 사실이면 인류도 풀을 조금씩 먹어서 소화될수있게 진화 하면 어떨까요? 식량문제 해결의 최고 대안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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