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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이것은 사라짐의 목록이란 말인가: 『포토 아크』 본문

(연재) 사이언스-오픈-북

정녕 이것은 사라짐의 목록이란 말인가: 『포토 아크』

Editor! 2019.09.25 15:01

『비숲』의 지은이이자 국내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인 김산하 박사가 『포토 아크』 서평을 보내 주셨습니다. 김산하 박사는 지난 7월에는 ‘쓰레기와 동물과 시’ 프로젝트를, 2018년 7월에는 ‘동물축제 반대축제’ 프로젝트를 기획한 생명 다양성 재단의 사무국장이기도 합니다. 동물들이 존엄과 다양성을 지키며 지구에서 살아갈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앞장서서 활동을 펼쳐 온 그는 『포토 아크』 속 멸종 위기 동물들의 사진을 어떻게 보았을까요? 흐트러짐 없는 동물 사진의 이면에 담긴 메시지를 김산하 박사와 함께 생각해 봅니다.


정녕 이것은 사라짐의 목록이란 말인가

『포토 아크: 사진으로 엮은 생명의 방주』

 

『포토 아크』

사람과 동물이 마주하는 순간들이 있다. 집에서 반려동물과, 동물원에서 사육된 동물과. 야생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만남은 대부분 몰두할 시간이 허락되지 않기에 금세 끝나고 만다.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사람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동물의 반응은 거의 일관되게 유사하다.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반대편의 인간은? 동물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다. 동물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계속 내며 관심을 집중한다. 왜 그리도 쳐다보려고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동물도 저 인간이 이상하고 신기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가장 큰 감정은 약간의 두려움이다. 저것들이 날 어쩌려고 저러나……. 인간에게 오래 노출되어 불안감이 불식되면 신경은 먹이로 쏠린다. 뭐 맛있는 거라도 주려나…….

 

반면 인간은 말은 건넨다. 상대방이 단 한 단어도 못 알아들을 것을 너무나 확신한 상태에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나 유아를 상대할 때와 같은 어투가 동원된다. 마치 동물도 어린 인간처럼 아직 언어 능력이 발달하지 못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의 침묵이 어떤 미성숙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친절하고 상냥하게 타이른다. 순수한 동물들의 눈망울을 보고 있노라면 아무리 나이 먹은 개체라도 다 한없이 어려 보이기만 한다. 그들을 본떠서 만든 인형과 그들이 닮았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잊어서일까? 인형과 같은 순진함의 결정체로 우리는 그들을 보고 또 대한다.

 

『포토 아크』 358~359쪽에서.

그러고는 결국 마지막으로 한 가지 행동을 한다. 사진기를 꺼내든다. 검은 네모가 눈앞에 놓인 동물은 여전히 어리둥절하다. 저건 대체 뭐 하는 것인지. 그러고는 찰칵. 영문도 모른 채 담긴다. 카메라 렌즈 앞에서 눈을 껌뻑거리는 그들의 표정은, 방금 일어난 상호 작용이 실은 그리 상호적이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물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씻은 듯이 잊어버릴 일들이다. 하지만 동물들의 삶을 갈수록 깊이 파고드는 인간이라는 존재란 언제나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엇이라는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것. 언제나 그런 아리송한 기분으로 저 두 발로 선 동물을 바라본다. 그들은, 대체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포토 아크』 44~45쪽에서.

인간이 동물에게 들이대는 상호 작용의 인터페이스는 대략 이런 형식을 띤다. 일방적인 독백과 같은 대화 그리고 사진 한 장. 내가 그들을 모르고, 그들도 나를 모르지만 바라보는 재미가 있고 피사체로서 미학적으로 적합한 것이다. 말 한마디, 사진 한 장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열정도 귀한 요즘 같은 세상에서 그것조차 의미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만 그것이 그 대상의 극히 작은 일부분에만 닿는다면, 그 찰나의 만남 이면에 숨은 엄청난 양의 이야기와 풍부한 세계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면, 그 행위 자체도 무의미에 근접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이면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사진기 앞에 놓이기까지 그 대상이 겪은 과정과 역사, 시각적으로 포착되는 형상에 담긴 한 개체의 사연과 그것이 속한 종 전체의 운명이 시처럼 함축되어 있는 그 이면 말이다. 장례식의 영정 사진이 불러일으키는 심상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 얼굴이 상징하는 그 삶. 한때 싱그럽게 아침을 맞이하고, 낮의 활기를 만끽하고, 저녁의 운치를 음미하던 그 삶. 얇은 한 장의 사진이 보여 주는 것은 한 순간의 얼굴에 불과하나, 그것이 얼마나 더 큰 것을 응축하는지 우리는 안다.

 

『포토 아크』 386~387쪽에서.

조엘 사토리의 사진기 앞에 잠시 섰던 이들은 동물원에서 사육되던 동물들이다. 그래서 아마 촬영 당일 그들은 평소와는 다른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을 것이다. 웬만해서는 우리 밖으로 나가 보지도 못하는 것이 당연한 동물원 케이지 신세인데, 오늘따라 무슨 일인지 평소에 안 가던 곳으로 화려한 외출이 허락된다. 일상이 흐트러지면 불안감을 느끼는 동물들의 습성에 비추어 보면 아마 많은 이의 가슴이 당시에 콩닥콩닥 뛰지 않았을까 싶다. 나를 대체 어디로 데려가는지, 어차피 물어 볼 수도 알아들을 수도 없는 해결 불가능한 불안감을 안고 말이다. 그런데 정작 다다른 곳은 동물원 내의 다른 공간. 평소보다 밝은 빛이 나를 비추고, 누군가 내 앞을 부산하게 왔다 갔다 하며 연신 기계음을 낸다. 뭔가 좀 벌어지나 싶더니 금방 다시 집에 갈 시간. 여전히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뭐 일진이 나쁘지는 않은 셈이다. 새로운 경험도 했고. 이제는 익숙한 방으로 돌아가 잠을 청할 일만 남은 하루이다.

 

『포토 아크』 68~69쪽에서.

그렇다. 전혀 일진이 나쁘지 않은 날이다. 왜냐하면 이 일에 동원된 약 1만 2000종은 사상 처음으로 전 지구적 생명의 앨범 촬영에 가담한 셈이기 때문이다. 나무늘보에서 호랑이까지, 개구리에서 올빼미까지, 모두 예외 없이 사진사와의 개인적인 면담의 시간을 보냈다. 어떤 이들은 씩씩거리며 경계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익숙하다는 양 여유 있게 임하기도 했다. 아마 이보다 다양한 군상을 상대해야 했던 사진작가가 여태껏 또 있었을까? 그의 동물원 스튜디오는 매번 전혀 다른 크기와 행동과 요구 조건을 가진 동물을 위해 새롭게 단장되었다. 동물들이 하나 둘, 차례대로 들어왔다 잇따라 나갔다. 그들은 전혀 몰랐다. 사진에 찍히는지. 그러나 무엇보다 그날 같은 배에 타는지는 더욱 몰랐다.

 

왜냐하면 그 사진의 순간은 방주에 올라서는 승선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동물들은 모두 모아 기록하는 그 행위는 실은 그 많은 동물이 한꺼번에 타도 충분한 커다란 배를 상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 문제 많고 살기 어려워진 곳을 떠나, 모두가 다 잘 살 수 있는 상상의 나라로 떠나기 위한 거대하고 믿음직스러운 그런 배 말이다. 그것은 코끼리와 하마가 편안히 쉴 만한 방대한 크기의 선실에서부터 어느 방이든 다 좋다는 모기까지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설비를 두루 갖춘 것이어야 한다. 한 마리도 뒤에 놔두고 출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까. 애초에 방주를 띄웠던 원래 정신에 충실하게 하나하나 차례대로 태우고 난 다음 힘차게 경적 소리를 내고 출항해 나갈 테니까.

 

『포토 아크』 148~149쪽에서.

자연계에서 점점 그 수가 줄어드는 생물들이 영원히 사라지기 전에 한 사진가의 손을 거쳐 이렇게 한 책에 담겼다. 그래서 이 사진들의 배경에는 안타까움과 슬픔의 음악이 흐른다. 사진의 모델들은 씩씩하고 당당하다. 아마 사라지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그들은 흐트러짐 없이 그 자세를 지키리라.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다. 저 사진이 저 세계의 죽음을 의미하는 영정 사진이 될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을 알기에. 그리고 그 비극을 초래한 원인 제공자가 다름 아닌 우리이기에.

 

그래서 이 사진들은 그냥 감상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이미지들이 아니다. 어째서 우리는 여기까지 와 버렸을까. 정녕 이것은 사라짐의 목록이란 말인가. 이 생각을 먹구름처럼 드리운 채로 한 장, 한 장 넘기며 비애와 신비와 회한과 경외의 소용돌이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지구상의 모든 동물을 헤아리며 이 사진의 방주에 태울 정성과 노력이 우리에게 있다면, 애초에 이미 가진 이 훌륭한 방주를 못 지키는 것일까? 이 지구라는 방주를 말이다.

 

『포토 아크』 226~227쪽에서.

 

『포토 아크』 268~269쪽에서.

 


김산하(생명 다양성 재단 사무국장)

서울 대학교 동물 자원 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생명 과학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인도네시아 구눙할라문 국립 공원에서 ‘자바긴팔원숭이의 먹이 찾기 전략’을 연구하여 한국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로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이화 여자 대학교 에코 과학부 연구원이자 생명 다양성 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비숲』, 『김산하의 야생학교』, 『STOP!』 시리즈 등이 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 ◆

 

『포토 아크』

인류세의 멸종 쓰나미에 맞선 400여 멸종 위기 종의 존엄과 희망

 

『비숲』

한국 최초 야생 영장류학자의 밀림 모험기

 

『세실의 전설』

2015년 7월 2일, 한 사자의 죽음이 세상을 바꾸었다

 

『지구의 절반』

여섯 번째 멸종과 공존의 갈림길,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

과학적 자연주의자의 생명 사랑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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